무릇 만나지 말지어다, 헤어지는 것이 두렵도다.
오늘도 영등포는 거기에 있다.
영등포 전체가 잃어버린 한 개의 머리핀처럼 내 가슴속에 있다.
실제로 사막을 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한다. 사막에는 사막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를 정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도피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면 현실에 발을 붙여야 한다.
스무 살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들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힘들었겠지요. 언제나 보내는 사람이 힘겨운 거니까요. 가는 사람은 몸만 가져가고 보내는 사람은 그가 빠져 나간 곳에 있는 모든 사물에서 날마다 그의 머리칼 한올을 찾아내는 기분으로 살테니까요. 그가 앉던 차의자와 그가 옷을 걸던 빈 옷걸이와 그가 스쳐간 모든 사물들이 제발 그만해, 하고 외친다 해도 끈질기게 그 사람의 부재를 증언할테니까요. 같은 풍경, 같은 장소, 거기에 그만 빠져 버리니 그 사람에 대한 기억만 텅 비어서 꽉 차겠죠.
숲에 가면요, 밑동은 다른데 함께 붙어 자라는 나무가 간혹있어. 연리지 현상이라고 부르는 건데, 이웃해 크다가 어떤 요인 땜에 어느 한쪽이 기울면서 윗몸 어느 부분이 붙어버린 나무예요. 너무 밀착되어 버렸기 때문에 떨어질 수도 없고 그 상태로 함께 살아요. 뿌리에서 각자 걷어올린 양분 서로 나눠 쓰면서 겹친 채 또 새로 피워 낸 가지며 이파리들을 함께 키우면서 공생하는 거죠.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일종의 질병이었다. 질병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게 아니라 참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었다. 석류꽃이 뚝뚝 지고 추분이 지나갔다. 갑자기 혼자 컴컴한 관속에 남겨진 듯한 두려움도 제법 견딜 만해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앉았어도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어둠에 눈이 익어 발 앞의 오래된 라디오도 보이고 먼곳의 등대 불빛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