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것은 일종의 질병이었다. 질병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게 아니라 참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었다. 석류꽃이 뚝뚝 지고 추분이 지나갔다. 갑자기 혼자 컴컴한 관속에 남겨진 듯한 두려움도 제법 견딜 만해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앉았어도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어둠에 눈이 익어 발 앞의 오래된 라디오도 보이고 먼곳의 등대 불빛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