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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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애를 생각하다!


몇 해 전 방송된 드라마 중에, 재방송까지 다시 챙겨보며 그 드라마의 폐인이기를 자처했던 홈드라마가 있다. 배우 공효진 주연의 <고맙습니다>라는 드라마이다. 미혼모인 주인공 영신이는 에이즈에 걸린 딸과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부양하며 살아가면서도 밝고 씩씩하다. 남들은 에이즈에 걸린 딸과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 영신이를 불쌍하게 생각하지만, 영신이에게 딸과 할아버지는 살아가는 이유이고, 삶의 유일한 행복이다. 언제 자신의 곁을 떠날지 모르는 딸과 할아버지에게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영신이 가족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하도록 울었다 웃었다 했던 기억이 난다.

IMF는 국가 경제뿐만 아니라, 한국의 ’가족’에게도 커다란 위기를 몰고 왔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가장은 집안에서 고개 숙인 아버지가 되고, 집에서 나와 노숙자 생활을 하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이혼을 하는 등 가족이 급속도로 해체되면서 가족관계가 재조명 되어야 할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이후로 선거에서도, 광고에서도, 학계에서도 ’가족’이 하나의 중요한 코드로 떠올랐다. 때로는 감동을 주고, 때로는 감성을 자극하면서 ’가족애’가 강조되는 분위기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오 해피 데이>는 부부를 중심으로 한 여섯 가족의 이야기이다. 여섯 가족 모두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이웃 같이 친근한 부부들이다. <오 해피 데이>는 이 여섯 가족의 ’보통의’, 그러면서도 조금은 ’남다른’ 일상을 그리고 있다. 

재미로 시작한 인터넷 경매에 빠져 남편이 아끼는 물건을 몰래 경매에 올리는 아내, 
아내가 짐을 챙겨 집을 나가자 필요한 물건을 하나 둘 사들이며 점차 자신이 꿈꾸던 공간으로 자신만의 집을 완성해가는 남편, 
낮에 잠시 스친 영업 사원의 꿈을 꾸며 황홀감을 느끼는 아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집안 살림을 맡게 된 남편과 남편 대신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
대책 없이 사업을 벌이는 남편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남편에게서 영감을 얻는 아내,
로하스에 열광하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놀려주려다 식은땀을 흘리게 되는 남편 등.

<오 해피 데이>는 가족으로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가족의 일상사가 얼마나 잘 묘사 되는지, 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의 이름만 다를 뿐 국적이나 문화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친근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여섯 가족 모두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적 요소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독특하고 유쾌하게 그려지는 ’가족애’를 통해 아슬아슬 위기를 잘 극복해간다. <고맙습니다>라는 드라마에서 영신이가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가족에게 감사할 때, 에이즈에 걸린 딸도,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들이다.

언젠가, 가족관계를 재조명하는 어떤 논문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내게 가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일본인은 비교적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답을 한다. 그들은 ’가족은 곧 나와 일체이다’라는 식으로 답하기보다는 ’가족은 내가 사랑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답하는 편인 것 같다.> 유쾌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전혀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내게 가족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 있는 듯 하다. "가족은 내가 사랑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말이다. 그러한 사랑은 모두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마음으로 느끼고, 일상 안에 가득 차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가족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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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 전쟁편
류펑 지음, 김문주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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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쟁을 통해 새롭게 쓰여지는 인류의 역사,  
이제는 전쟁 욕구와의 전쟁을 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누가 가르쳐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편, 네 편을 갈라 한창 '전쟁 놀이'에 열중했던 어린시절이 기억난다. 그러나 곧 '전쟁'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배웠다.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가장 나쁜 악 중의 악이라는 학습된 이미지가 내게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치뤄지고 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을까?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인지도 모르겠다. 인류는 전쟁을 근절하기는 커녕, 막대한 자본과 세계적인 두뇌를 쏟아부어가며 더 끔찍하고 더 파괴적인 전쟁 무기를 생산해내고 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말이다. '문명화'된 인간 사회에서 전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가 문명화되고 있는 것이다. 진화하는 사회만큼 전쟁도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류는 무엇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을 할까? 다시 말해, 전쟁은 대채 왜 일어나는 것일까? 시그마북스에서 발간한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중 <전쟁편>은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는, 권력 추종자들 간의 게임, 둘째는 부(미인 포함)에 대한 유혹, 셋째는 피와 맞바꾼 문화 전파(종교, 이데올리기 등)의 야욕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을 통해 전쟁이 발발한 원인을 살피며 전쟁의 역사를 돌아보면, 실로 허무하기 그지없다. 어릴 때, 친구들과 땅 따먹기 놀이를 하다가 해가 지고 때가 되면 모두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어차피 모두 두고 빈손으로 떠날 인생들이 참으로 치열하게도 싸웠다. 잔혹한 종교전쟁이나 이데올로기 전쟁도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다. 전쟁을 통해 사랑을 실현하려 하고, 전쟁을 통해 이상적인 평화를 이루려고 하나, 과연 진정한 사랑과 평화가 전쟁으로 얻어질 수 있을까.

'인류의 운명을 바꾼'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전쟁'은 그야말로 인류의 운명을 삶의 밑바닦부터 꼭대기까지 흔들어 갈아 엎어버리는 가장 강력한 기제일 것이다. 그러나 끔찍하고 파괴적인 전쟁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초보적인 가르침의 단계를 지나 전쟁이 인간 삶에 유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불균형한 남녀의 성비를 맞춰주기도 하고, 또 여성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전쟁이 억압된 여성의 삶을 해방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을 비교적 최근에 알았다. 그러나 전쟁의 유익을 논하기에는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희생을 생각한다면, 그 대가가 너무 크지 않을까.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중 <전쟁편>은 중국인 저자의 시각에서 전쟁이 발발한 원인을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적인 전쟁 사례를 선별해 실었다. 전쟁의 발발과 과정을 다층적으로 살펴보며, 다소 주관적인 코멘트도 덧붙인다. (그런데 왜 이 책의 저자는 저자가 아니라 '엮은이'로 소개되는지 궁금하다. 중간 중간 Tip으로 제공되는 백과사전적 정보 때문인지, 객관적인 자료에 대한 각주가 없기 때문인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 책의 엮은이 '류펑'은 '들어가는 글'에서 "전쟁의 핑계를 찾는 대신 전쟁 욕구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평화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적고 있다. 인간이 벌이는 그 어떤 전쟁도 그것이 아무리 의로운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이 땅에 전쟁이 그치기 위해서는 류펑의 말대로 전쟁 욕구와의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것이 실현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공허한 말로 들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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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풍경화첩 - 지금, 여기, 서울의 진경을 그린다
임형남, 노은주 지음 / 사문난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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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그리고, 서울을 이야기하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서울’이라고 대답하지만, 고향과 연결지어 떠오르는 서울의 이미지는 없었다. 내가 아는 서울, 이사를 자주 다니기도 했고 또 서울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고정된 이미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에 대한 고향으로서의 추억이나 향수는 없었다.

그런데 건축가 부부가 서울에 대한 10년의 기억을 그림과 이야기로 담아냈다는 <서울 풍경 화첩>은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는 ’고향 서울’을 찾아주었다. 많은 사람이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가는 서울이야말로 고향의 향수를 간직한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서울 풍경 화첩>은 마치 친구의 그림일기처럼 읽힌다. 일기처럼 써내려간 저자의 서울살이는 개인의 역사만이 아니라, 그대로 서울의 역사가 된다. 저자를 따라 내가 나고 자란 서울 땅을 다시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꿈을 안고 숨가쁘게 그곳을 디디며 살았는지, 그것을 지탱해주느라 서울이 참 고생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활기찬 도시 한편에 깊은 한숨이 섞여 있다. 좀 더 아끼고 소중하게 간직했어야 할 서울에, 욕심에 치우신 꿈이 덕지덕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러느라 우리가 소중한 것도 모른 채 허물어뜨려버련 서울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자꾸만 서울이 돌아보아졌다. 서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살려내고, 가꿔가는 것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것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으니 말이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고 유행가 가사를 목청껏 불렀던 시절보다, 지금에야 철이 좀 드는 것 같다.

저자의 기억을 통해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다시 걸으니 내 기억도 더듬거려진다. 술래잡기를 하던 골목,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였던 종로와 강남역 사거리, 늦은 밤 길거리 공연에 신이 났던 대학로, 친구들을 불러 모아 그곳에 다시 나가보고 싶다. 어릴 적 아빠와 함께 자주 나들이를 나갔던 덕수궁, 창경궁, 남산에도 아빠와 다시 가보고 싶다. 늘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서울이 다시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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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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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함정 : 7가지 심리 기제

"우리는 왜 잘못을 알고도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는가?" <생각의 함정>의 저자 자카리 쇼어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커다른 실책을 저지르는 핵심 원인은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사고방식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인데, 잘못된 사고 방식이 아니라 경직된 사고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의 생각과 선입견만으로 문제에 접근하려고 하는 경직된 사고 방식을 ’인지함정’이라고 부른다.

<생각의 함정>은 역사가의 관점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고찰하여 7가지로 인지함정을 유형화하였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7가지 인지함정은 심리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인지함정은 노출불안(나약함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함), 원인혼란(복잡한 사건의 원인을 혼동함), 평면적 관점(1차원적으로 세상을 봄), 만병통치주의(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한다는 믿음), 정보집착증(정보에 대한 지독한 편견들), 거울 이미지(상대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함), 정태적 집착(변화하는 세계를 거부함) 등 7가지 심리 기제이다.

<생각의 함정>을 읽으며, 나에게 특별히 흥미로웠던 인지함정은 노출불안과 정보집착증이다. 단호하고 강력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위치가 약화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발생하는 노출불안은, ’과잉진압’과 같은 강력한 대응을 부추긴다. 기원전 427년 아테네에서 벌어진 미텔레네 진압논쟁이 그러한 예로 등장한다. 권력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여 비극을 초래했던 역사적 인물들이 떠오른다. 폭군으로 낙인찍힌 연산군도 그 원인이 노출불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안스럽기도 하다. 강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국 두려움을 표출하며, 나약함의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정말 강하게 보이고 싶다면 오히려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래 전, "진정한 아름다움은 부드러움이다"라고 했던 광고 카피처럼 말이다.

지식을 통제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믿음에서 강박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독점하는 정보집착증은, 정보를 독점하려 하거나 반대로 회피하는 성향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 피해 사례가 놀랍다. 구역다툼을 하는 경찰들은 정보를 독점하려 하는데, 경찰들의 그러한 정보 독점이 살일한 시간을 벌어준다는 것이다. 미국 범죄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연쇄살인사건은 바로 그러한 헛점을 이용하여 발생한 사건이라고 한다. 이것은 한 개인의 의사결정과정이 아니라, 집단적인 심리가 초래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인지함정을 극복하는 과제는 집단적 차원의 심리에도 적용되어야 함을 분명히 알게 해준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의 함정>을 읽고 개인적인 대입과 적용을 해보는데 있어서 심리학자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부분이 있다. <생각의 함정>에서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7가지 심리 기제가 보편적으로 일반화가 가능한 충분한 범주인가 하는 것이다. 역사와 심리가 만나 ’인지함정’이라는 개념의 도출도 상당히 흥미롭고, 7가지 심리 기제에 대한 이론도 문제해결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의 주관적인 ’선택’과 ’기준’에 따라 역사적 사건을 고찰한 연구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특수한’ 사례와 유형이 될 수 있다는 약점을 지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모든 경험론적 학문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학자가 다른 사례를 들어 연구를 하면 또다른 심리 기제가 얼마든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론의 일반화에 대한 한계가 보인다. (굳이 일반화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을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타인의 잘못을 발견하고 어리석음을 자각하는 것은 쉬어도,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에게 대입해보아도 7가지 심리 기제 중에 내가 가장 빈번하게 빠지게 되는 인지함정을 진단해내기가 쉽지 않다. 

책을 덮으며 한편으로는, 우리가 가진 그러한 불완전함이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열린 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개인은 물론 국가와 국제적인 운명까지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단과 선택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최대한 줄여가야 하겠지만, 그러한 ’빈 틈’이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역사가 삶의 묘미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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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잠언록 - 추호의 끝보다 큰 것은 없다 태산도 작은 것이다
황천춘 외 지음, 김현식 옮김 / 보누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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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게, 겨울에 나무를 베면 안 되네. 그때는 생명력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 이처럼 삶에서 자네가 낙담했을 때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 안 되네. 그때 자네는 생활의 빛나는 일면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p. 94). 

참으로 감탄스러운 혜안이다. 출구가 없는 캄캄한 지하실에 한줄기 빛이 비쳐드는 것처럼, 지혜로운 한마디 말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길이 찾아진다. 

어렸을 때는 남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존경스러워 보였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달달달 암기한 지식을 자랑하는 학자보다 혜안을 가진 지혜자의 위대함이 보인다. 지식을 얻는 방법은 알겠는데,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혜로운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얻고 싶다. 

잠언이라고 하면 '솔로몬'의 것밖에 읽어본 적이 없는 내가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불안한 삶과 영혼을 위로하는' 잠언과 지혜라는 <장자 잠언록>. 장자, 많이 들어본 인물이지만 막상 그가 누구인지 한마디도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알수록 흥미로운 사람이다. 장자는 송나라의 몽(蒙) 사람이었고, 370년부터 280년 사이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직을 버리고 숨어 살면서 짚으로 신을 엮어 생활을 유지하고, 학문에 심취하여 자기가 노자로부터 계승 발전시킨 도가의 이론을 연구하고 널리 알렸다고 한다. 성품은 매우 낙천적이고 호방하며, 자유를 좋아하고 속받당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천수를 누리기 위해 몸을 보호하고 재앙을 피하려고 했던 재밌는 사람이다. <장자 잠언록>을 읽어보면 자유로운 마음으로 유연하게 살며, 스스로 인생을 즐겼던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子非魚(자비어), 安知魚之樂(안지어지락)?"
"당신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습니까?"(pp. 80-82).


나는 이 문구에 담긴 일화가 장자의 성격과 철학을 가장 잘 해준다고 생각한다. 흐르는 물을 보면서 장자가 "작고 흰 물고기가 물속에서 오고가며 놀고 있구나. 한가롭고 편안해 보이니 진실로 즐겁겠구나!"라고 말하자, 장자의 친구 혜시가 "당신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들의 논리적인 변론이 상당히 흥미롭다. 장자와 혜시가 호양에서 나눈 이 변론은 중국철학사상 매우 유명한 일화라고 한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지성을 가진 혜시의 논리대로라면, 물고기 아닌 사람은 자연계와 서로 소통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장자는 다르다. 장자는 자신을 대자연의 일부로 보았다. 마음을 열고 대자연의 만물과 하나가 되면 산은 아름답고, 해와 달에도 정취가 있음을 느낀다. 

전운으로 가득하고, 학설이 어지럽게 일어났으며, 서로 다투고 빼앗는 어지러운 시대에 여유로이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장자에게서 나는 이치에 '순응'하는 철학을 배운다. 무엇인가를 거슬러 내 뜻대로 해보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고 부질없고 교만하게 느껴진다. 그에게는 집착이 없다. 사랑에 대해서도 유연하다. "문제는 과도하고 맹렬한 정서에서 나오는 것일지 모른다. 지나친 사랑은 때로는 위기를 가져다 줄 수 있다"(p. 27).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 '성공'과 '실패', 그렇게 서로에게, 모든 것에 가치를 매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물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으며 그 자체가 가장 좋다"고 말하는 장자는 현세를 초월한 도인처럼 경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지혜로운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성인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와 같은 어떤 가르침들은 알듯 모를 듯 하다.

재치 있으면서도 심오한 <장자 잠언록>. 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전해지는 지혜의 철학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귀 기울여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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