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평점 :
품절




"안녕하세요, 저는 에디타 아들러예요.

우리 도서관에는 종이 책이 여덟 권 있고

살아 있는 책도 여섯 명이 있어요"(394).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8권의 낡고 헤어진 여덟 권의 책을 목숨 걸고 지켜낸 열네 살 소녀 디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31블록에 독일 출신 유대인 수감자가 운영하는 작은 비밀 학교가 있었고, 그곳에는 다리달린 도서관, 살아 있는 도서관도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이라고 해봤자 너덜너덜해진 8권의 책과 어떤 책을 특별히 잘 아는 교사들이 자기가 기억하는 대로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들려주는 여섯 명의 '인간 책'이 전부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 도서관의 사서를 맡은 열네 살 소녀 디타는 나치로부터 그 8권의 책을 들키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했으며, 매일 검열의 공포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어차피 이 수용소를 살아서 나갈 가능성도 희박한데

굳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킬 이유가 있을까?

시체를 태운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굴뚝의 그림자 밑에서

과연 아이들에게 북극곰 이야기를 하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는 게 의미가 있나"(29).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역사상 가장 커다란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끌려온 수용자들의 목표는 단 하나, '생존'입니다. 철조망과 화장장 사이에 갇혀 총 알 하나가 사람 한 명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그 야만적인 현장에서 생존이 단 하나의 목표라면 당연히 "책을 버리고 목숨을 지키는 쪽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학교라고 해봤자 누군가 멈춰서서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듣는 것이 고작이었는데도, 그들은 왜 그토록 위험한 작은 도서관, 비밀 학교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집요한 독일 나치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책이다.

그것도 낡고 제대로 철도 안 된, 중간에 몇 페이지씩 찢어지고 없어진 그런 책.

나치는 책을 금지하고 샅샅이 색출해낸다"(18).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의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 디타라는 그 어린 사서가 목숨을 걸고 지킨 그 여덟 권의 책은 무엇이었을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그 여덟 권의 도서 목록을 알고자 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그 여덟 권의 책이 무엇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책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이 갇혀 있는 전쟁의 악몽 말고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학교는 순수한 교육이라는 목적 이상의 미션이 있죠. 아이들에게 어떤 정상성을 보여주고, 감정을 잃지 않도록 하고, 또 삶이 지속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 말이에요"(147).

"역사상 모든 독재자며 폭군이며 압제자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

그들은 모두 책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책은 아주 위험하다. 책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18).

집이며, 재산이며, 옷이며,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가족이며, 어린시절이며, 미래까지, 그리고 결국 목숨까지 빼앗기고 있는 그들이 가진 것은 상상력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책은 신발보다 더 먼 곳으로 그들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책이라는 타임머신은 그들을 이집트 피라미드의 지하 통로로, 아시리아의 전장으로 안전하게 안내했으며, 그들은 지도책 한 권으로 지겹도록 세계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책은 비밀의 다락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 같아서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고, 때로는 구급상자가 되어 웃음을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웃음을 되찾아주기도 했습니다. 왜 역사상 모든 독재자며 폭군이며 압제자들이 책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위험하게 생각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 31블럭의 비밀 학교가 운영되는 동안 521명 중 단 한 명의 어린이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존엄성을 강탈당하고 있었지만, 전쟁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니 평화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들은 비록 총알 하나보다 못한 목숨 취급을 받았지만, 그 여덟 권의 책을 통해 품위를 유지하며 그 고난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책을 전부 한데 모으자 아주 작은 부대가 된다.

보잘것없는 백전노장들이다.

그러나 지난 몇 달간 이 책들은 아이들 수백 명과 함께 세계 곳곳을 거닐었고

아이들에게 역사와 수학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소설이란 섬세한 세계로 이끌며 아이들의 삶을 몇 배는 더욱 크게 만들어주었다"(420).

이 비밀 학교, 그리고 그곳에서 운영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비밀 도서관이 수용소에 끌려온 아이들에게 해준 것은 하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 다울 수 있다는 것! 언젠가 성경 <다니엘서>를 공부할 때, 짐승 같은 세상(권세)가 우리를 위협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저항은 일상으로 맞서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위협과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자기 일상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힘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그럴 때 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서 잔혹함은 더 잔혹하게, 처절함은 더 처절하게 와닿습니다. 역사가 스포라 큰 결말은 미리 예상할 수 있다 해도, 이 비밀 도서관의 사서와 함께하는 순간 어떤 페이지도 공포의 긴장을 놓을 수 있는 페이지가 없습니다. 번역도 잘 되어 있고, 문장도 통찰력이 있어 밑줄도 많이 긋게 되는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입니다. "진실은 전쟁의 최초 희생자이다"(324), "작은 것에 짜증이 날 때 일상은 되돌아온다"(482).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가장 도서관의 사서를 맡은 디타가 삶을 하찮게 그리는 책보다, 삶을 더 위대하게 생각하게 끔 해주는 책이 좋다고 독백처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디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이 책이 바로 디타가 좋아하는 책, 삶을 더 위데하게 생각하게 끔 해주는 책이라고 한줄 평을 하고 싶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야만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은 경이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간직한 이 책 또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책이 하도 흔해서, 오히려 짜증이 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오히려 얼마나 나약하고 배부르고 게으른 투정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토록 경멸하고 지루해 했던 나의 오늘이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나를 아리도록 깊이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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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좋아 2020-11-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를 읽었을 때도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들었었는데, 더 처절하게 그려진것 같고, 그래도 읽고는 싶고 ~~어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