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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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는

하나 되려는 간절함을

잃었을까

2021년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고 하면, 개인적으로 이 책을 1등으로 꼽고 싶습니다.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이 별로 없는 제가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옆에 두고 반복해서 읽으려고 합니다. 이 책은 통곡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기쁨과 소망 가운데 춤추며 책장을 덮게 되는 책입니다.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하나 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교회를 떨게 만드는 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 됨을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깨달으며 말씀 앞에 떨게 되는 책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교회 안에서 끼리끼리 모이고, 당을 지어 수근수근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보다는, 교회는 원래 죄인들이 모인 곳이라는 자조 속에 사실상 '연합'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교회도 많을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됨을 꿈꿀 때, '연합'이라는 주제가 이처럼 크고 중하고 무거운 주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과연 몇 교회나 될까 싶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가 교회되어야 한다며 '서로의 옳음'을 주장하다 오히려 분열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입니다.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교회 안에 '연합'이라는 열매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도 일깨웁니다. 만약 연합이라는 열매가 없다는 이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다는 증거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연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관심이 없고, 또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든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가? 그렇다며 그것 자체가 진짜 문제가 아니다. 이면에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바로, 성령이 당신 안에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실제로 구원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31).

교회 공동체가 갈라지고, 깨뜨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용히 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한 뒤, 실제로 온 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겪었는데, 아직도 그 아픔이 생생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속에서 통곡이 멈추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책과 회개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를 읽으며, 그것이 성령님의 눈물, 성령님의 애통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프란시스 챈 목사님과 같이, "주님이 느끼시는 것을 저도 느끼게 도와주소서(57)"라는 기도가 터져나왔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고통스럽고 아픈 눈물일 뿐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것이 소망의 눈물로 바뀌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서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아파하시는 일이 우리 공동체에서 일어났다는 죄책감과, 교회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상처가 뒤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우리가 하나 되라는 명령에 두려워 떨며 연합을 추구하려고 해도, 절대 연합을 이룰 수 없는 '당연한 충돌'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눈 뜨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연합,

'죽어 가는 세상'을

되살리기 위한 것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교회 안에 신자임을 자처하지만 하나님과 깊은 연결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너무도 많으며, 같은 신자를 비판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사랑하기보다 지식을 배우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상태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금 우리는 심히 교만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미지근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일갈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이라는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스스로는 항복을 한사코 거부하는 자들이 기꺼이 그리스도께 온 삶을 바친 사람들과 온전히 하나가 되려고 하면"(76)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자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우기는 미지근한 사람들은, 마음을 터놓고 교제하려고 해 봐야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같은 주님을 따르지 않고 있다면 동행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연합의 문제 앞에 심각하게 질문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내 입맛에 맞는 교회, 내게 맞춤 교회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 교회들은 잃은 양들의 울음소리보다 교인들의 불평에 더 귀를 기울인다.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보다 다른 교회로 떠나는 사람들을 더 안타까워 한다. 메시아를 거부하는 사람들보다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속상해한다면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95).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교회가 분열하는 이유의 심각성 뿐 아니라, 교회 연합을 위한 실제적인 면들을 다각도로 다루며,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됨'이라는 위대하고 멋진 꿈을 꾸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과 서로를 향한 사랑에서 이미 성장을 멈추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교회에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가슴에 다시 새겨야 합니다.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모든 사람이 그분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도 합니다. 오직 주님의 양 떼만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달려올 수 있는데, 과연 온전히 연합하라는 이 준엄한 명령 앞에 '자기 주장', '자기 기준', '자기 신념'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를 주님의 양들은 누구일지 기대가 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모여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면 과연 우리가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좌절되기도 하고, 낙심되기도 하지만, 프랜시스 챈 목사님은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하나 됨을 주님이 더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와 하나가 되기를 원하셔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의 몸짓을 보여 주신 하나님이 계시다. 그런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의 하나 됨을 위해 역사하리라 믿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37).

이 책을 읽으며 뜨거운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서로에 대한 사랑을 더 키워 주시기를,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연합할 수 있다고 믿는 신자들의 군대를 일으켜 주시기를, 아름다운 다양성이 숨 쉬는 공동체가 되게 해주시기를, 우리의 눈을 멀리 두지 말고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 됨을 추구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구하며 성령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며 역사하신다면,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들 가운데에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믿습니다! 끝으로, 프랜시스 챈 목사님의 말을 다시 한 번 더 마음에 새겨봅니다. "성화는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다시 말해, 성화는 사랑 위에서 이루어진다"(161).

교회가 연합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연합해야 할지 막막하셨던 분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교회 공동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을 선물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모이게 해주시고, 짝지워 주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꿈을 같이 꾸자고 요청하고 싶습니다.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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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다움 -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리처드 코킨 지음, 장성우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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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교회는 새로운 인류가 회집한 모임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며, 영원히 지속될 그분의 작품으로서 천사들이 보기에도 기이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당신의 교회를 기뻐하라(141).

교회의 타락을 비난하고, 모이는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지는 성도를 만나면 늘 '교회론'을 공부해볼 것을 권했고, 특히 <에베소서>를 깊이 묵상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인지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나면, 교회의 타락을 비난하기보다 애통해하게 되고, 교회가 교회되기를 갈망하며 '교회다움'을 위해 하나님 앞에 다시 무릎 꿇게 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론'을 공부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바로 이 책'이라고 추천해줄 만한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이 책, 리처드 코킨의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교회다움>입니다.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교회다움>은 설교집이나 강해집이라기보다, <에베소서>를 공부하기에 좋은 교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같은 성경 본문이라도 설교하는 목회자나, 강의하는 저자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기도 하고, 유명한 설교자일수록 지은이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기 마련인데, <교회다움>은 그런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원 메시지에만 철저하게 집중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럼 점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이 책이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극적인 이슈를 끌어들이지도 않고, 일부러 흥미를 유발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남다르고, 탁월하게 <에베소서>를 풀어내는지 자랑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에베소서> 본문에 집중하며, 그 진리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는 일에 철저히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교회다움>은 <에베소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드러냅니다.




그 주제란 이미 수차례 확인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런데 그 계획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이 에베소서의 핵심 사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연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간관계로서 결혼을 먼저 설명하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290).

교회다운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아마도 많은 성도들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많이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도행전적 초대교회가 '겉모습'이었다면,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교회다움>에서 말하는 교회됨은 교회됨의 본질, 교회의 '속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교회 개척을 시작한 저에게는 교회의 교회다움을 위해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기도하며,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해주었지만, 그것보다 더 유익했던 것은, 내가 그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영광스러움에 전율하고, 그 교회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은혜에 기뻐 뛰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교회다움>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 계획의 중심에 교회가 있음을 반복해서 일깨워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 있는 모든 민족 가운데 사람들을 불러내어 교회를 세우시는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 세워진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은혜가 영적 세계 속에 드러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영적 세계 가운데 펼쳐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성장'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족' 관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계획하셨고, 다양한 사람을 불러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로 세우시기 때문에 교회는 마땅히 숫자적으로도 성장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는 교회의 각 구성원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살면서 그분의 거룩하심을 따라 부도덕한 삶을 회개할 때 실제로 드러나기 때문에, 교회는 서로 하나 되어 사역해야 합니다.

<교회다움>은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나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준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인 내가 교회답게 생각하는 방식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사실 대형 교회에서 사역하며, 교회의 조직 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여 왔지만, 교회 안의 다툼과 분열이 얼마나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인지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것에 대해 마음과 영으로 반응하는 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또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인지 강의를 하기도 했지만, 내 영으로 그것을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각 교회는 천상의 교회, 곧 다양한 문화에서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 그 장엄하고 눈부신 하늘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하나님 백성으로서 준비하는 장소이다. 또한 악의 권세를 정복하신 하나님의 승리를 영적 세계 가운데 드러내어 만물을 그리스도 아래 복종시키려는 그분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는 장소이기도 하다"(140-141).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세상은 낯설고, 불합리하며, 고통스러운 장소일 뿐인 것처럼, 교회를 교회로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의 교회생활은 인간적인 친교의 장소, 습관적인 종교행위의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문화에 의해 빚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빚어지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교회다움>은 우리의 교회도 인간에 의해 빚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빚어지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모이는 교회'에 대한 회의와 고민이 깊어지는 지금이 바로 <교회다움>을 읽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다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에베소서>를 통해 하시고자 하셨던 말씀이 모든 믿는 자들의 가슴에 새겨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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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신앙 맥 잡기 - 무디가 전하는
D. L. Moody 지음, 장광수 옮김 / 가나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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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골 청년이 집을 떠나 대도시, 그것도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살아가려면 그의 앞에는 파멸로 이끌기에 좋은 유혹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마련입니다. 삶의 전환점을 맞은 이 청년처럼 다니엘 앞에도 성공과 패배의 갈림길이 놓여 있었습니다"(22).

이 책은,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인 D. L. 무디가 <다니엘서>를 본문으로 전하는 설교입니다. 특별히 온 세상의 풍조와 맞서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복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도자, 무디는 오늘날 젊은들이 처한 '현실'을, 세계적인 대도시였던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와 살아야 했던 다니엘의 상황과 연결시킵니다. 그리고 "젊었을 때 한 번 잘못 출발하게 되면 99%는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만다"(30)고 경고하며, 다니엘과 같이 젊었을 때, 믿음 안에서 뜻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오늘날 직장에서, 사회에서, 또 문화라는 이름 아래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고 한탄하는 믿음의 청년들에게 <무디가 전하는 다니엘의 신앙 맥 잡기>는 그 어떤 설교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뜻을 정해 믿음으로 지키려고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도, 그런 유혹이 그 어느 때보다, 그 누구에게보다 강력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다고 인도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온 나라에서 포로가 자신의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하고, 다니엘에게도 '현실'을 직시하라고 조언했을 것입니다. "너희가 조국에서 산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여기는 바벨론이니까 너희 고국에서처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도 안 돼!"(25)라고 말이지요. 신앙적 기준을 내세우며 남보다 튀어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손가락질 했을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현명하게 판단하라고 충고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자'가 되어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았던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무디는, 이 세상의 풍조를 거부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하나님을 위해 참된 믿음을 소유하거나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반드시 충돌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 사이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믿음의 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줍니다. "그들은 천국을 위해 사는 쪽을 택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는 말입니다. …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하나님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해 사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큰 보상을 받기로 작정한 셈입니다(58).

<무디가 전하는 다니엘의 신앙 맥 잡기>는 그 어떤 다니엘서 설교보다 더 생생한 우리의 현실을 성경에 대입할 수 있도록 인도해줍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처한 환경이나 다니엘의 신앙 이야기가 멀고 먼 지역의, 이제 우리와는 거리가 먼, 옛날 옛날 다른 나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많은 믿음의 청년들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유혹' 속에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19 이후,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디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다가오는 유혹을 이렇게 함축적으로 표현합니다. "'세상의 명예를 주세요. 그러면 천국에 대한 소망도 포기할 수 있어요. 은 삼십냥을 주세요. 그러면 그리스도라도 당신에게 넘기겠어요.' 이것들이 오늘날의 세상이 요구하는 것입니다"(60).

<무디가 전하는 다니엘의 신앙 맥 잡기>는 이러한 세상(바벨론) 한복판에서 우리가 싸워야 할 믿음의 싸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그 영원한 승리를 위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 우리를 붙잡아 줄 성경의 약속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 이름의 명성대로 아주 쉽게 복음을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우리 안에서 뜨거운 무엇이 올라오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특별히 믿음과 삶, 신앙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괴로워하는 청년들,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상황(바벨론)이 '현실'이 아니라, 믿음(하나님)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줄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

- 호라티우스 보나르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모든 악한 것과의 평생 전쟁이?

여러분의 싸움은 비천한 자와

이기적인 목적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거인들과 왕들과의 싸움입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죽음과 어둔 권세와의 싸움이?

강한 자보다 더 강하신 주님이

가장 모진 시간에 여러분을 위해

여러분과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소음과 담배 연기,

열띤 분위기의 숨막힐 듯한 장소에서도 두려워 마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그것은 우리 주님의 싸움입니다.

가서 주님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법을 배우십시오.

만인이 실패하고

사랑하는 자의 죽음으로 너른 들이 뒤덮인다 해도

믿음의 방패와 말씀의 검을 더욱 굳게 붙잡고

여러분 혼자라도 끝까지 싸우십시오.

만인이 두려워하여

조그만 두려움을 보고 도망친다고 해도

많은 사람의 두려움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선장이 되신 주님이 약속하신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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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을 걷는 기도 - 위기의 동반자가 되어 줄 존 던의 하나님 대면 기록
필립 얀시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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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시련이

삶을 멈춰 세울 때,

어떻게 오늘을 살고,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어느 작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목숨은 지구보다 무겁다." 그러나 "목숨을 중이 여기는 당연하지만, 인간의 목숨이 최우선이라는 과대평가 때문에 과보호와 에고이즘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나약하게 만든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과 시체를 금기로 여기고 철저히 은폐해왔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우리는 지나치게 묵숨을 과대평가했고, 죽음이 우리 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믿어왔다." 코로나19는 우리 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죽음'과 '시체'를 우리 눈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정상적인 삶이 멈춰서 버렸고, 불과 몇 달만에 경제는 심각한 곤경에 처했습니다. 삶을 유희로만 여겼던 현대인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존 던은 죽음이 주변에 널리고 널렸던 시절, 아이들의 절반이 어른이 되기 전에 죽고, 기대수명이 33년이었던 시절에 이 글을 썼다"(24). 인류가 경험하는 펜데믹은 코로나19가 처음이 아닙니다. 이 책은 "코로나19보다 4세기 앞서 세상에 나온 책"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명적인 역병(페스트)이 유행하던 1623년에 존 던이 쓴 <비상시의 기도문>을, 필립 얀시가 21세기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든 것입니다(12).

역병이 창궐하던 시절, 어느 날, 존 던에게도 병증이 시작되었고, 존 던은 병상에 누워 사람들의 죽음을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한 달 동안 들으며, 질병 때문에 극도로 쇠약해진 육체를 가지고 영적인 고갈, 무기력, 죽음의 공포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존 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비상시의 기도문>, 그리고 그것을 21세기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든 <한밤을 걷는 기도>가 의미 있는 것은, 죽음이라는 극한 위기의 상황에 하나님과 대면한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고통 때문에 힘들 때 제가 당신을 바라보게 하시고,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통이 드러낼 때

하나님이 제 전부이심도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무엇이 찾아오든 주님에게서 옵니다.

무슨 일이 다가와도 제가 주께로 가게 하소서.

<한밤을 걷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한판 씨름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신앙인이라면, 죽음 그 자체에 직면하는 일보다,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이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상황을 허락하시고, 이 상황을 지켜보시는 전능자의 '뜻'을 이해하려는 몸부림이 더 고통스러울테니까요. 코로나19 이후, 카페를 경영하며 한 달, 한 달이 고통스러운 동생도, 망해가는 가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한밤을 걷는 기도>에서 역병으로 죽어가는 한 사제가 절규하듯 소리치는 것도 그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입니까?"(20)

"나는 태어날 때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매일 그 이유를 알게 된다"(29).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죽을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삶의 유희를 즐기기에 바빴던 현대인들에게, 코로나19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고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실존적 현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주님은 이 병상을 제단으로 만드셨습니다"(61). <한밤을 걷는 기도>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큰 질문, 가장 핵심적인 질문,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우리는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사는가?"일 것입니다.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운명에 처한 우리들이 질병 가운데서도, 고통 가운데서도, 홀로 죽어가면서도, 낙담하지 않고, 위안을 얻고, 소망을 붙잡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제게 회개를 허락하셔서 후회할 것이 없게 하신 것처럼 제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제게 두려움을 주소서"(88). <한밤을 걷는 기도>는 죽을 준비, 즉 신자로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임종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를 깊이 묵상하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한밤을 걷는 기도>가 신앙인들에게 던지는 가장 큰 충격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입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서 던에게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는 죽음을, 삶을 영원히 망치는 질병으로가 아니라 삶이라는 질병을 다스리는 유일한 치료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다주는 인생 여정의 마지막 단계로 보기 시작했다"(242). <한밤을 걷는 기도>는, 그것이 무엇이든, 역병이든, 죽음이든, 고통이든,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한다면, 그것은 선한 것이라는 사실에 눈 뜨게 해줍니다.

필립 얀시는, 선조들이 지옥을 두려워한 것처럼, 우리는 천국을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245). 언제부터인가 신앙인들에게조차 천국은 가상 세계가 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한밤을 걷는 기도>는 병상에 누워 죽어가는 한 신앙인을 따라, 우리도 마지막 날을 준비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소망 가운데로,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첫 발걸음이기도 합니다. 하루에 한 편씩 읽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주신 영생을 묵상해볼 수 있기를 권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을 말씀하실 수 있으며, '영원'을 약속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진리 앞에 다시 전율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영광, 주님의 기쁨이 있는 곳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영원히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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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뮬러가 경험한 기도의 재조명 - 뮬러의 생애가 이시대의 신앙인들에게 재조명되어야 할 이유
조지 뮬러 지음, 장광수 옮김 / 가나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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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내가 어떤 사람의 재정적 도움도 받지 않고 기도와 믿음만으로 고아원을 세우고 운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믿음을 굳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신자들의 양심에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역사하는 분이심을 확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고아원을 세운 핵심 이유이다"(28).

기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뮬러는,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은 사람, 기도가 전부 응답된 사람, 가진 것 하나 없이 오직 믿음과 기도만으로 고아원을 운영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조지 뮬러가 경험한 기도의 재조명>은 조금 더 본질적인 것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조지 뮬러가 목적한 것은 고아원 운영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조지 뮬러가 원했던 것은 기도 응답 자체도 아니었습니다.

조지 뮬러가 소원했던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여 고통 받는 신자들에게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조지 뮬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성경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임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녀들을 도우실 수 있는 능력과 사랑을 지닌 분이라는 사실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조지 뮬러가 고아원을 운영하게 된 것은, 자신의 이러한 소망을 가장 잘 이룰 수 있는 길이 고아원을 세우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중점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지 뮬러가 경험한 기도의 재조명>을 통해 하나님께서 조지 뮬러의 기도에 그토록 신실하고 놀랍게 응답하실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또한 조지 뮬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는 분이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녀들을 능력과 사랑으로 도우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조지 뮬러가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조지 뮬러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만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지 뮬러와 하나님은 심정이 통했던 것입니다.

조지 뮬러가 이렇게 하나님과 심정이 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조지 뮬러가 경험한 기도의 재조명>을 보면, 조지 뮬러는 항상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간구하기에 앞서 말씀을 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했고, 말씀을 묵상하며 찾아낸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를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 속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일이라고 확인이 되면 더욱 담대하게 간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했기에, 때로 실망스러운 상황이 닥쳐도,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은 유혹이 밀려올 때도, 응답이 지연될 때에도, 하나님을 기뻐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여 고아원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조지 뮬러가 경험한 기도의 재조명>에서 우리는 조지 뮬러가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조지 뮬러'라는 특별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 이러한 기도 응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지 않는 것입니다. 조지 뮬러는 자신이 경험한 이러한 기도 응답은 자신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릴 줄 아는 자녀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강조합니다.

<조지 뮬러가 경험한 기도의 재조명>은 기도자에게 닥친 고난을 주님이 어떻게 큰 축복으로 바꿔주시는지를 증언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전심으로 기도하면, 주님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응답하신다"는 믿음만 있다만 말입니다(101).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기도하는 많은 신자 중에, "기도로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가 몇 명이나 될까요? 어쩌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기 보다,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더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잠잠이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성도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아닌가 하는 애통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방법은 얼마나 다양한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기도하고 기다리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놀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지 뮬러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조지 뮬러처럼 날마다 하나님께 놀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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