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문제의 핵심은 결국 '용서'에 대한 질문이라 할 수 있다. 망각이란 오직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지만 용서는 인간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고난을 당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도, 나와 입장을 바꾸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156)

저자인 시몬 비젠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학살자들에 의해 무려 89명이나되는 일가친척을 잃고 아내와 단 둘이서만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증인으로, 전쟁이 끝난 후 미국전쟁범죄조사위원회 및 유대역사기록센터 등에서 활동하며 "무려 1,100여 명이나 되는 나치 범죄자들"을 법정에 세워 심판을 받게 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이 책을 통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기된 가장 강력한 윤리적 질문"을 던져놓았습니다.

저자는 침대에 누워 죽어 가던 한 SS대원 청년과 만났던 일화를 들려줍니다. 학살에 참여했던 그 청년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죽기 전, 어느 유대인 한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손을 꽉 붙잡으며 그토록 간절히 용서를 구하는 그 SS대원을 외면한 채 아무 말도 없이 그곳을 나와 버립니다. 그 청년이 참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용서의 말을 할 수 없었던 시몬 비젠탈은 그런 사실 때문에 고민하고 그 고민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와의 만남은 내게 커다란 짐이 되었고, 그의 고백은 나를 깊이 흔들어 놓았다"(95). 그리고 이제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요청합니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내가 그때 그 죽어 가는 SS대원과 함께 병원에 있았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이것은 독자 개개인의 양심에 던져지는 상황적 질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범죄와 속죄에 관한 보다 거대한 담론이기도 합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이 질문에 대한 53인의 답변(심포지엄)을 함께 엮고 있습니다. 답변자들은 저마다의 양심적, 심리적, 경험적, 도덕적, 윤리적, 정치적, 종교적, 신앙적, 인도주의적, 철학적 가정 하에서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중 에바 플레이슈너(가톨릭 신학자, 미국인)의 경험이 흥미롭습니다. 홀로코스트 관련 강의 때마다 매번 학생들은 이 책의 내용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데,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기독교 신자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용서를 주장한 반면 유대인 학생들은 하나같이 시몬이 카를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 정당했다고 주장한 점이다. 거의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말이다"(227).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124).

개인적으로 '용서'에 대한 교리(말씀)를 열심히 배우고 가르쳐온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가장 깊이 공감하며 마음에 새긴 교훈은, 누군가에게 함부로 용서를 강요할 권리가 내겐 없다는 것입니다. "섣부른 용서는 희생자에 대한 배신이다"(178)는 모세 베이스키의 말처럼, 값싼 은혜는 희생자들에게 대한 또다른 모독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전 세계의 여러 성직자들과 박애주의자들과 철학자들이 나치를 용서하자고 전 세계를 향해 탄원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타주의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남에게 뺨 한번 맞아 보 적도 없는 주제에,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들을 동정하고 있었던 것이다"(138).

이 책은 (쉽게) 용서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일깨웁니다. 용서가 피해보다 더 큰 고통과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숭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강요할 권리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용서의 문제에 대해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많은 희생자들이 자네에게 권리를 위임하지 않은 이상, 자네로서는 그를 용서해 줄 권리가 없기 때문이지. 누군가가 자네에게 저지른 짓에 관한 한, 자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용서하고 잊어버려도 되지.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문제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자네의 양심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오히려 끔찍한 죄가 될 수 있을 거야"(108-109).

"자기와 똑같은 인간이 이처럼 끔찍한 모욕을 당하는 광경을 말없이, 항의 한마디 없이 바라보는 것 역시 악랄한 행동 아닐까?"(97)

어쩌면 나치가 저지른 혐오스러운 악행이 언제고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그 SS대원처럼 우리도 범죄를 저지르도록 세뇌당할 수 있는 연약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진정한 참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모든 답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참회 없이는 용서도 없다"는 것이니까요.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경험한 인류가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씨름하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문, 모욕, 살인과 같은 위법 행위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도 마찬가지로 유죄라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의 작은 보금자리가 평화롭고 안전하기만을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수백만 명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생각을 일종의 발판으로 삼아, 나치 범죄자들은 권력을 획득하고 또 유지할 수 있었다"(148).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용서나 화해가 아니라, 나의 죄인됨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코 잊지 말자"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홀로코스트의 가장 분명한 교훈이 아닐까](로버트 매커피 브라운, 192).

개인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모욕과 배신을 당하고 마음이 지옥일 때 이 책을 읽었습니다. 시몬 비젠탈이 그 SS대원을 만난 것은 마음의 큰 짐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치유의 시작이기도 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1,100명의 전범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법정에 세움으로써 얻으려 한 것은 처단의 의미보다 정의가 존재한다는 믿음, 인간성에 대한 믿음,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 이외의 것들에 대한 나의 믿음을 되찾으려 한 것"(137)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 시작은 그 SS대원으로부터 진정한 참회의 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으니까요. 진정한 참회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전 세계의 독자 앞에 이 묵직한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우리에게 비극적 역사를 (올바로) 기억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누군가 나의 아픔을 진정성 있게 들여다 보아주고, 그 고통을 깊이 공감해주고, 내가 당한 일은 옳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해줄 때, 다시 회복되고 치유되는 것을 경험했으니까요.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함부로 용서를 말할 수 없게 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화해, 진정한 용서로 나아가는 길을 함께 모색해보도록 만드는 힘이 있는 책입니다. 이 비극적인 역사가 소설처럼 아름답게 읽히며 강렬한 감동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시몬 비젠탈의 인간적인 고뇌가 그 처첨하고 처절한 비극 속에서도 선한 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 스스로 은혜 베풀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묵직한 주제이지만 잘 읽히는 책입니다. 모든 분야의 필독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성령의 열매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크리스토퍼 J. H. 라이트 지음, 박세혁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할 때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그가 사용하는 은유-열매-다. 그가 사용한 이 모든 아름다운 단어들을 하나로 묶으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복수가 아닌 단수)다. 열매는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살아있다면 나무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나무의 본성이다! 나무가 그 안에 생명을 지니고 있을 때 우리는 나무에서 열매를 얻는다"(26).

'성령의 열매'는 시리즈로 설교하기도 좋고, 또 많은 설교자들의 단골 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교인들은 '성령의 열매'를 주제로 한 설교를 한 두번 이상은 꼭 들어봤을 것입니다. 교회학교 때부터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암송해왔던 교인들도 많을 테고 말입니다. 그만큼 저에게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익숙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성령의 열매>라는 메시지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충분했고, 역시 기대했던 대로 <성령의 열매>는 뻔한 메시지가 아닌 새롭고 도전적인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동일 출판사의 책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십자가>를 읽고 수준 높은 그의 '성경적 설교'에 매료되었는데, 그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성경적 설교의 기준을 높여놓고 있습니다. 크리스포터 라이트라는 이름은 이제 제게 '성경적 설교'의 정석과 같은 이름이 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갈라디아서 5장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등장하기까지 앞서 초대 교회 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배경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며,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하나씩 풀어갑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왜 '열매'라는 은유를 사용했는지, 그 아홉 가지 열매가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나의 삶의 나무 안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하는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분명한 그림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왜 이 책의 제목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여야 했는지도 깨달아졌습니다(성령의 열매는 단일한 성품의 꾸러미라는 측면에서)!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 영생(생명)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역사하고 있는지, 우리들의 교회가 살아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성령의 열매를 찾아보라"고 말합니다. 열매는 나무가 그 안에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많은 성도에게 이렇게 되묻습니다. (거꾸로) "성령의 열매가 없을 때, 그것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많은 교회가 이것을 알면서도 성령의 열매가 없는 삶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령의 열매를 가꾸는 것은 그리스도가 보일 수 있게 하고 복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에 관한 문제다"(105).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이것이 '성품'의 문제임을 강조하면서 사도 바울이 '열매'라는 은유를 사용한 이유에 주목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 열매는 자연스러운 산물이면서 동시에 열매처럼 길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렇게 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라'는 뜻"(106)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로 가득 차 있는 매력적인 삶을 살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의 성품 안에서 열매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증거"(51)가 되라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강조하는 바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의 최종적인 결과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야 말로 열방을 그리스도께로 끌어당기는 강력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성품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도록 돕습니다. 동시에 예수를 주로 섬기며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오래된 질문에서 해방시키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성령님의 일하심이 우리 안에 풍성하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그 생명이 우리 삶의 나무 안에 풍성히 열매 맺히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됩니다.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이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운지를 다시 깨닫게 해주는 책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정신 차리고 들으면) 무서운 경고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열매>에 관해 이미 알고 있다는 교만을 모두 내버리고, 모든 교회가 새로운 마음으로 이 메시지에 다시 귀 기울여볼 것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 목회 가이드 - 당신의 도시를 복음으로 채우라
스티븐 엄.저스틴 버자드 지음, 장성우 옮김 / 두란노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는 '도시를 적대하는' 마음으로 살아오면서 도시를 섬기기보다는 비판해왔는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도시를 초월하는' 자세로 살아오면서 도시를 무시하고 개인적인 생활만 추구해 왔는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도시 안에서' 살아가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그 도시에 참여하며 축복한 적이 없어 회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은 '도시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220).

이 책은 특히 교회 개척의 사명을 품은 자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개척자들을 도시로 부르고 계심을 뜨겁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 안에는 도시 목회에 대한 편견이 존재합니다. 도시 목회에 헌신하는 목회자들을 농어촌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보다 더 성공지향적인 목회자로 오해하거나, 도시에서의 목회를 조금 더 편안하고 안락한 목회로 생각하는 경향이 그것입니다. <도시 목회 가이드>는 이런 편견을 말끔히 없애 줍니다.

또, 이 책은 도시에서 사역을 하고 있으면서도 도시에 대해 무관심 한 채, 도시를 적대하거나, 초월하거나, 혹은 단지 그 안에서 살아가기만 하는 교회들을 회개의 자리로 불러냅니다. <도시 목회 가이드>는 교회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만 온 관심이 집중된 교회들에게 일침을 가합니다.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도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깊으신지를 일깨우며, 복음의 능력을 교회 안에만 가두지 말고 바깥 세상(도시) 가운데 폭발시킬 것을 요청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기독교인에게 주어지는 도전은, 세상의 영향이 집중되는 그곳에서 복음을 전할 것인가 아니면 그 도시가 일으키는 현상들에 단순히 반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확신하건대 복음은 단지 우리로 하여금 반응하게 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도시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으로 아름답게 침투하게 만든다"(53-54).

<도시 목회 가이드>는 세계 인구가 빠른 속도로 대도시에 몰려들고 있는 상황을 주목하게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규모의 도시화는 우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세계 전역의 도시에서 새로운 복음 운동을 일으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유래 없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가능한 많은 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면 도시를 향해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주후 33년에 소수의 무리였던 제자들이 100년경에는 2만 5천 명이 되어 작은 집단으로 운동을 이어가다가 마침내는 로마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적 군대로 성장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답변은 바로 도시에 있다"(215).

<도시 목회 가이드>는 도시가 왜 중요한지, 도시가 존재하는 독특한 방식, 도시 사역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전략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하며, 교회가 전략적으로 도시 안으로 침투하도록 돕습니다. <도시 목회 가이드>를 통해 제 안에 도시에 대한 적대적인 마음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며, 도시의 파급력(도시에서 발생한 일은 도시에만 머무르지 않고 널리 퍼진다는 것), 도시의 영향력(전략상 도시로 다가가야 세상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 도시는 "타락한 인간의 사악한 발명품"(96)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계획하신 것이라는 사실에 새롭게 눈 뜰 수 있었습니다.

 

 

 

 

"도시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바로 그와 같이 복음으로 도시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도시가 품고 있는 소원과 갈망과 희망과 염려 등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 도시의 이야기를 복음과 연결시킬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이다"(209).

<도시 목회 가이드>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와 도전과 사명을 제공하는데, 가장 도전이 되었던 내용은 "복음으로 도시의 이야기를 다시 진술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모든 도시에는 이야기가 있는데, 복음을 도시의 갈망이나 우상과 연결시켜 도시의 이야기(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의 인생 이야기)를 새롭게 완성하라는 부르심이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 질문을 안고 있다. '과연 나는 어떤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도시를 지배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바로 이 질문에 복음으로 답변해야 한다"(210).

복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어떤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지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들,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고 싶지만 어떻게 일치시켜야 할지 모르고 있는 이들,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시대에 복음을 맡은 자들이 주목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이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도시가 얼마나 큰 의미를 품고 있는 곳인지, 복음이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이야기인지 뜨겁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 - 현실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원지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때 결심했다.

나는 소중한 것을 누군가에게 쉽게 빼앗기지 않도록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겠노라고(27).

이 책은 "여행 유튜버 원지"의 성장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이 만약 한 청춘 유튜버의 '피땀눈물'로 범벅이 된 화려한 성공기였다면 부럽기는 해도 큰 감동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책이 깊고 진한 향처럼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것이 알고보면 실패담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포장도 없이 건네주는 선물처럼 솔직담백한 그녀의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 이야기는 짠내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 짠내 속에 저자와 독자가 함께 깨달아가는 것이 있습니다. 별일 없는 여행보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여행이 두고두고 음미할 것이 많은 추억으로 남듯이, 실패처럼 보이는 삶의 모든 순간들도 그 하나하나가 다음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기회를 만들고 결국 한 사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완성하는 소재가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군가가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용기는 어떻게 얻으시나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진정한 여행의 용기는 '무를 수 없는 비행기 표'에서 나오노라고(49).

이 책은 한 사람의 이야기이고, 아직 그리 긴 시간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30대 청춘의 이야기이지만, 참 다양한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책입니다. 저자의 "짠내 나는 판잣집살이부터, 현실에서 탈출하다시피 했던 아프리카 종단, 서울에서 우간다까지 이어지는 스타트업 도전, 곧바로 이어지는 미국 취업, 그리고 지금의 여행 유튜버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일"을 담고 있습니다(20). '후원이 없는 외로운 군대가 힘에 벅찬 적군과 맞서 온 힘을 다하여 싸움'이라는 뜻을 가진 '고군분투'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절실해서, 강해서가 아니라 피할 수 없어서 선택했던 일들이 그녀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놓았고, 온 힘을 다해 현실과 부딪히느라 앞뒤 없이 벌인 인들이 예상치 못한 인연을 이어주며 매번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때보다 몇 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다행히 답을 알고 있다.

퇴사를 하든 안 하든, 장기 여행을 하든 안 하든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라는 문제는

각자 죽을 때까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라는 것을 말이다(94).

많은 이들이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에서의 탈출,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한 일탈을 외치며 저마다의 버킷리스트에 여행을 우겨놓고 있는 이때에,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는 장기 여행에서 돌아온 일상의 '변함없음'과, 또 "내게는 무료하고 답답했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큰 꿈이자 사치였"(142)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다른 손에는 비싼 요금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들고, 내일에 대한 불안과 현실의 팍팍함을 토로하는 청춘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비록 그 끝에 남은 건 하나도 없을지라도)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삶 아니겠나 싶어서 말입니다. <제 마음대로 살아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자기 인생에 대한 이 정도의 책임감과 열정은 배워야 하지 않나 싶어서 말입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조금이나마 나를 위로해주었던 것은

헛짓거리라 생각하며 벌여온 일들이 (금전적 보상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꼭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258).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생각의 깊이가 글의 재미를 더해서 읽는 재미도 넘치는 책입니다.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벅차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녀의 좌충우돌 성장기가 독자들에게 남기는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 고백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동안 결과만 보고 헛된 노력이었다고 우울해했던 모든 '짓'들은 지나고 보니 쓸데없는 시간 낭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172). 혹시 무엇인가에 최선을 다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났다는 좌절감에 주저앉아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헛짓거리라고, 실패라고, 상처라고 여기는 모든 일들이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신비한 자양분이 될 수 있는지를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모든 독자에게 소리 없이 건네는 응원의 한마디를, 이 멋진 "여행 유튜버 원지"에게 다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 Stay awesome. (계속 멋있어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교회사 걷기 - 109편의 스토리를 따라
임경근 지음 / 두란노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회는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가?

한국사에 설민석 작가가 있다면, 세계 교회사에는 임경근 목사님이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 교회사 걷기>는 "굶주린 사자도 이기는 믿음,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하여, "꽃길은 고통이요 돌짝밭은 은혜라" 이름붙인 로마교회, "탐욕에 눈이 멀어 빛을 잃은" 중세교회, 말씀으로 개혁의 칼을 꺼내들은 루터와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거대한 물줄기를 타고 흐르는 칼뱅과 그 후, "계몽주의와 인본주의에 물든", 서구교회, 이데올로기의 전쟁 속에 있는" 19-20세기 교회까지 세계 교회사를 한 편의 드라마로 보여줍니다. 대형교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편안한' 목회를 해오다 교회 '개척'이라는 사명에 붙들린 뒤로는 계속해서 교회의 교회됨에 대한 질문과 씨름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책 속에서 교회의 교회됨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과연 역사 속에 길이 있었습니다!

<세계 교회사 걷기>는 "교회는 각 시대마다 당면한 과제가 있었다"(388)는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줍니다. '드라마틱하게'라 함은 하나님께서 직접 쓰시는 역사라는 말이요, 시대의 도전 앞에 반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요,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마다 참으로 '극적인' 감흥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계 교회사 걷기>가 교회 역사를 통해 '오늘'의 교회들에게 일깨워주는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첫째, 교회의 역사는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 다시 말해, 교회는 언제나 사탄의 공격에 직면해 왔으며 사탄은 지금도 쉬지 않고 교회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 사탄의 공격은 시대를 따라 더욱 교묘하고 악랄하고 집요해지고 있으니 이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 안에 깨어 하나님의 지혜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된 교회는 이미 승리했으며, 그 승리는 영원할 것이라는 것!

둘째,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의 승패는 말씀을 얼마나 잘 배우고 잘 지키는가에 달렸다는 것. "초대교회가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말씀이다. 교회가 새 언약의 말씀을 얼마나 잘 보존하고 또 전파하는지에 따라 그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22).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과 말씀으로 세워진다는 것. 개혁은 칼이 아니라 말씀으로 이루어지며, 신앙은 강제할 때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는 것. 단 한 사람이라도 말씀대로 살고자 결단하고 일어설 때, 성령님은 따르는 자들을 일으키며 그들을 통해 교회를 세워가신다는 것!

셋째, 핍박은 교회를 강하게 하고 풍요는 오히려 교회를 타락시킨다는 것! 정말 모든 시대마다 교회가 특권과 풍요와 자유와 권력을 누릴 때, 오히려 신앙적으로는 나태해지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헌신도는 떨어지고, 힘을 잃고, 세속화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부가 쌓이면 늘어난 재산을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신앙의 자유가 있을 때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시간과 노력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이 시대는 어떤가? 아무런 핍박이나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도 교회를 향한 사탄의 공격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탄은 공격을 멈추는 일이 없다. 교회와 성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먹이를 찾는 사자처럼 어슬렁거린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29).

<세계 교회사 걷기>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았던 세계 교회의 역사를 하나의 대하 드라마로 읽으며 거대한 물줄기를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부분 부분, 조각 조각, 듣고 알았던 지식을 큰 흐름을 따라 하나로 꿰어주니 흐트러졌던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자이신 목사님이 칼뱅을 매우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덕분에 저도 칼뱅에 대한 오해도 풀고, 칼뱅과 그 삶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매장마다 밑줄을 긋지 않은 장이 없습니다. 그만큼 배울 것이 많았고, 재미있었던 책입니다. 교회사라고 하면 늘 지루하기만 했는데, 교회의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 마음으로 깨닫게 되니, 눈이 확 떠집니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 그 길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음을 실감합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많고, 잘못 알고 있는 지식들을 바로 잡아주는 것들도 많고, 역사에 남겨진 거룩하고 담대한 신앙의 유산들도 많아, 설교자료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현재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고 있거나, 교회의 교회됨을 물으며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세계 교회사 걷기>를 통해 교회마다 교회사 배우기 열풍이 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게다가 당시 로마 시민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공허하고 우울했다. 왜냐하면 황제가 각 국가의 종교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 준 탓이다(24).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항거하던 유대인 40명이 갈릴리의 요새 요타파타에 숨었다. 그들은 제비 뽑아 서로를 살육하는 처참한 일을 벌였다. 마지막 남은 사람이 자살하는 작전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살아남은 이가 자살하지 않았고 로마 군대에 항복했다. 그는 플라비우스였는데, 베스파시아누스는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가 바로 <유대 전쟁사>를 기록한 요세푸스다(33).

"저는 이제야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어떤 것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나의 길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불이여, 오소서! 십자가여, 오소서! 야수들과 싸워 뼈들이 뭉그러지고, 팔 다리가 떨어지고, 나의 온몸이 부서질 것입니다. 사탄의 잔인한 고문이여, 오시오! 다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르게 하시오!"(35,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제네바에서 하룻밤 자고 떠나려 했던 칼뱅의 계획은 어떻게 되었을까? … 마침 칼뱅이 제네바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제네바교회의 목사 기욤 파렐이 듣고 칼뱅을 찾아왔다. … 그는 제네바교회의 개혁에 진이 빠져 있던 참이었는데, 칼뱅의 소식을 듣고 제네바교회를 위해 적임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 칼뱅은 교회에서 설교를 해본 적도 없고 목회는 생각지도 못했다. 더구나 칼뱅은 책을 읽으며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기 위해 바젤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목사직을 요청받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칼뱅은 기욤 파렐의 요청을 단박에 거절했다. 하지만 기욤 파렐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 정도에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만일 당신이 우리와 함께 주님의 일 하는 것을 거절한다면 당신의 연구는 위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저주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지 않습니다"(196-197).

프랑스 위그노는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경제적으로 부요하거나 지식인이 많았다. 위그노의 망명은 그 지역이나 나라에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대신 프랑스는 그들의 지적 능력과 경제력을 잃으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241).

청교도에 대한 오해들도 있다. … 삶이 엄숙해 숨이 막히고, 검정 옷만 입어 패션 감각이 없고, 남녀를 지나치게 구분할 뿐만 아니라 성적 쾌락을 죄악시하며,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조장한다고 비난받았다. 이런 비난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오해들로 덧씌워졌다. 청교도는 신앙과 삶이 균형 잡힌 신실한 성도들이다. 죄를 멀리하고 미워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과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을 맘껏 사용할 줄 아는 자들이다. 청교도가 주일에 즐겨 입던 검은색 옷은 당시 전통에서 볼 때 고급 패션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262).

주후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사회는 점점 지식인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지혜란 하나님과 성경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성을 계발해 만든 것이었다. 계몽주의로 무장한 인간은 교회의 기초를 흔들고 신앙을 흠집 내기 시작했다.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폭발한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도전은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289).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이성을 신뢰하던 인간이 만든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간 탐욕의 결과는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으로 끝나고 말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였다(3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