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잠언록 - 추호의 끝보다 큰 것은 없다 태산도 작은 것이다
황천춘 외 지음, 김현식 옮김 / 보누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기억하게, 겨울에 나무를 베면 안 되네. 그때는 생명력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 이처럼 삶에서 자네가 낙담했을 때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 안 되네. 그때 자네는 생활의 빛나는 일면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p. 94). 

참으로 감탄스러운 혜안이다. 출구가 없는 캄캄한 지하실에 한줄기 빛이 비쳐드는 것처럼, 지혜로운 한마디 말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길이 찾아진다. 

어렸을 때는 남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존경스러워 보였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달달달 암기한 지식을 자랑하는 학자보다 혜안을 가진 지혜자의 위대함이 보인다. 지식을 얻는 방법은 알겠는데,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혜로운 스승을 만나 가르침을 얻고 싶다. 

잠언이라고 하면 '솔로몬'의 것밖에 읽어본 적이 없는 내가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불안한 삶과 영혼을 위로하는' 잠언과 지혜라는 <장자 잠언록>. 장자, 많이 들어본 인물이지만 막상 그가 누구인지 한마디도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알수록 흥미로운 사람이다. 장자는 송나라의 몽(蒙) 사람이었고, 370년부터 280년 사이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직을 버리고 숨어 살면서 짚으로 신을 엮어 생활을 유지하고, 학문에 심취하여 자기가 노자로부터 계승 발전시킨 도가의 이론을 연구하고 널리 알렸다고 한다. 성품은 매우 낙천적이고 호방하며, 자유를 좋아하고 속받당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천수를 누리기 위해 몸을 보호하고 재앙을 피하려고 했던 재밌는 사람이다. <장자 잠언록>을 읽어보면 자유로운 마음으로 유연하게 살며, 스스로 인생을 즐겼던 사람이라는 짐작이 간다.


"子非魚(자비어), 安知魚之樂(안지어지락)?"
"당신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습니까?"(pp. 80-82).


나는 이 문구에 담긴 일화가 장자의 성격과 철학을 가장 잘 해준다고 생각한다. 흐르는 물을 보면서 장자가 "작고 흰 물고기가 물속에서 오고가며 놀고 있구나. 한가롭고 편안해 보이니 진실로 즐겁겠구나!"라고 말하자, 장자의 친구 혜시가 "당신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들의 논리적인 변론이 상당히 흥미롭다. 장자와 혜시가 호양에서 나눈 이 변론은 중국철학사상 매우 유명한 일화라고 한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지성을 가진 혜시의 논리대로라면, 물고기 아닌 사람은 자연계와 서로 소통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장자는 다르다. 장자는 자신을 대자연의 일부로 보았다. 마음을 열고 대자연의 만물과 하나가 되면 산은 아름답고, 해와 달에도 정취가 있음을 느낀다. 

전운으로 가득하고, 학설이 어지럽게 일어났으며, 서로 다투고 빼앗는 어지러운 시대에 여유로이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장자에게서 나는 이치에 '순응'하는 철학을 배운다. 무엇인가를 거슬러 내 뜻대로 해보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고 부질없고 교만하게 느껴진다. 그에게는 집착이 없다. 사랑에 대해서도 유연하다. "문제는 과도하고 맹렬한 정서에서 나오는 것일지 모른다. 지나친 사랑은 때로는 위기를 가져다 줄 수 있다"(p. 27).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 '성공'과 '실패', 그렇게 서로에게, 모든 것에 가치를 매기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물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으며 그 자체가 가장 좋다"고 말하는 장자는 현세를 초월한 도인처럼 경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지혜로운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성인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와 같은 어떤 가르침들은 알듯 모를 듯 하다.

재치 있으면서도 심오한 <장자 잠언록>. 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전해지는 지혜의 철학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귀 기울여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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