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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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함정 : 7가지 심리 기제

"우리는 왜 잘못을 알고도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는가?" <생각의 함정>의 저자 자카리 쇼어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커다른 실책을 저지르는 핵심 원인은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하는 사고방식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인데, 잘못된 사고 방식이 아니라 경직된 사고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의 생각과 선입견만으로 문제에 접근하려고 하는 경직된 사고 방식을 ’인지함정’이라고 부른다.

<생각의 함정>은 역사가의 관점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고찰하여 7가지로 인지함정을 유형화하였다.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7가지 인지함정은 심리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인지함정은 노출불안(나약함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함), 원인혼란(복잡한 사건의 원인을 혼동함), 평면적 관점(1차원적으로 세상을 봄), 만병통치주의(과거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한다는 믿음), 정보집착증(정보에 대한 지독한 편견들), 거울 이미지(상대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함), 정태적 집착(변화하는 세계를 거부함) 등 7가지 심리 기제이다.

<생각의 함정>을 읽으며, 나에게 특별히 흥미로웠던 인지함정은 노출불안과 정보집착증이다. 단호하고 강력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자신의 위치가 약화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발생하는 노출불안은, ’과잉진압’과 같은 강력한 대응을 부추긴다. 기원전 427년 아테네에서 벌어진 미텔레네 진압논쟁이 그러한 예로 등장한다. 권력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여 비극을 초래했던 역사적 인물들이 떠오른다. 폭군으로 낙인찍힌 연산군도 그 원인이 노출불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안스럽기도 하다. 강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국 두려움을 표출하며, 나약함의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정말 강하게 보이고 싶다면 오히려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래 전, "진정한 아름다움은 부드러움이다"라고 했던 광고 카피처럼 말이다.

지식을 통제하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믿음에서 강박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독점하는 정보집착증은, 정보를 독점하려 하거나 반대로 회피하는 성향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 피해 사례가 놀랍다. 구역다툼을 하는 경찰들은 정보를 독점하려 하는데, 경찰들의 그러한 정보 독점이 살일한 시간을 벌어준다는 것이다. 미국 범죄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연쇄살인사건은 바로 그러한 헛점을 이용하여 발생한 사건이라고 한다. 이것은 한 개인의 의사결정과정이 아니라, 집단적인 심리가 초래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인지함정을 극복하는 과제는 집단적 차원의 심리에도 적용되어야 함을 분명히 알게 해준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의 함정>을 읽고 개인적인 대입과 적용을 해보는데 있어서 심리학자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 부분이 있다. <생각의 함정>에서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7가지 심리 기제가 보편적으로 일반화가 가능한 충분한 범주인가 하는 것이다. 역사와 심리가 만나 ’인지함정’이라는 개념의 도출도 상당히 흥미롭고, 7가지 심리 기제에 대한 이론도 문제해결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의 주관적인 ’선택’과 ’기준’에 따라 역사적 사건을 고찰한 연구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특수한’ 사례와 유형이 될 수 있다는 약점을 지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모든 경험론적 학문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학자가 다른 사례를 들어 연구를 하면 또다른 심리 기제가 얼마든지 등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론의 일반화에 대한 한계가 보인다. (굳이 일반화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을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타인의 잘못을 발견하고 어리석음을 자각하는 것은 쉬어도,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에게 대입해보아도 7가지 심리 기제 중에 내가 가장 빈번하게 빠지게 되는 인지함정을 진단해내기가 쉽지 않다. 

책을 덮으며 한편으로는, 우리가 가진 그러한 불완전함이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열린 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개인은 물론 국가와 국제적인 운명까지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단과 선택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최대한 줄여가야 하겠지만, 그러한 ’빈 틈’이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역사가 삶의 묘미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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