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고물상 - 개정판
이철환 지음, 유기훈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또로록 눈물 한 방울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만 눈물 한 방울이 또로록 떨어졌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눈물을 훔치는데, 참으려고 하니까 더 걷잡을 수 없어졌습니다.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잠시 허공을 바라보는 사이로 지금의 내 나이만큼이었을 아빠의 젊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거대한 산처럼 보였던 아빠가 그때 얼마나 어렸었는지, 내가 나이를 먹어보니 이제야 알겠습니다. 집에 경매 딱지가 붙고 대가족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전부 아빠 책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욕심이 너무 컸다고 하고, 누군가는 정보가 없었다고 하고, 누군가는 사람을 너무 믿었다고 하며 아빠 탓을 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빠에 대한 원망이 날로 커졌습니다. 아빠는 왜 그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을까. 아빠가 가족에게 안겨준 가난이 원망스러웠습니다. 3년만 참으라고 약속해놓고선, 5년이 가고, 7년이 가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가 끝이겠지 했는데 더 바닥이 있었고, 여기가 정말 끝이겠지 했는데 더 바닥이 있었습니다.

 

<행복한 고물상>에서 그때 그 시절 아빠와 마주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아빠도 얼마나 두려웠을지.



 

 

"그날 밤 아버지는 천둥치는 지붕 위에 앉아 우리들의 가난을 아슬아슬하게 받쳐 들고 계셨다. 우리 가족의 든든한 지붕이 되기 위하여 비가 그치고 하얗게 새벽이 올 때까지……"(60).

 

 

사람들 많은 데서 나를 울린 이야기는, "우리들의 지붕, 아버지"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더 높은 산동네로 이사를 간 뒤 마른 꽃잎처럼 시들어가며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아버지. 가난 때문에 우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곰팡이 핀 벽을 향해 돌아앉아 말없이 술만 삼키시는 아버지.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천장에서 물이 새는 데도 때마침 팔에 깁스를 하고 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조용히 집을 나가셨습니다. 밤 12시가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청둥소리는 더욱 요란해지고 가족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온 가족이 아버지를 찾아나섰지만 찾지 못합니다. 포기하고 돌아오다 아버지를 발견합니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지붕 위에 앉아 계셨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지붕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는 분명 아버지였다"((58)

 

"천둥치는 지붕 위에서 온몸으로 사나운 비를 맞으며 앉아" 계신 아버지. 아버지는  "깨어진 기와 위에 앉아 우산을 받치고 계셨던 거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게 하십니다. 가족을 위해 그것마저도 할 수 없다면 더 슬퍼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고물상>. 고물상으로 먹고사는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이들은 행복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그 마음 안에 있는 사랑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날의 행복

 

 

<행복한 고물상>은 행복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첫 발간은 2005년이고 이 책은 개정판입니다. 이 책에 대한 입소문을 들었던 터라 개정판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행복한 고물상>은 작가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입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기억들이 따뜻한 동화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작가의 행복한 기억이 제 유년시절도 다시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행복한 기억으로 말입니다.

 

세련된 아파트에서 문을 굳게 잠그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이 책은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제 우리 삶엔 소용없는 '연탄재' 같은 그 무엇일지도 모릅니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한 친구가 부끄러울까 자신도 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주는 친구, 냄새가 싫다며 아들에게만 순댓국 한 그릇을 사주셨지만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순댓국이었다는 것, 취객에게 맞고 있는 피에로를 우연히 보았는데 알고보니 가족 몰래 알바를 하는 아버지였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진부할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울어보고, 내 아픔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도 돌볼줄 알게 되었다면 이 책이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이 작가가 <눈물은 힘이 세다>라는 작품을 쓸 수 있었구나 혼자 고개를 끄덕여보기도 했습니다.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이라는 작품 때문인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안도현 시인의 시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제는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와 같이 흘러간 세월의 이야기이지만, 가슴 속에 뜨거운 불을 지펴주는, 꽁꽁언 마음을 녹여주는, 눈물의 힘을 알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내 마음의 거리에 자리를 내어주고 싶은 <행복한 고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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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바이러스 2017-03-12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반갑습니다.
요즘 걱정이 있어서 인지, 물론 삶의 순간들이 선택의 연속으로 고민이지 않은 날이 없겠지만요.
행복한 고물상, 연탄길 등은 다 서민들의 삶에 묻어나는 사랑이 꽃피는 이야기죠.
현대인들은 욕심, 더 많은 탐욕에 마음이 아파지는 것 같아요.
님의 글을 읽고 보니 마음 한켠이 따뜻해 짐을 느끼고 갑니다.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