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첼로 - 이응준 연작소설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을 조롱하다.

 

 

성경에 보면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사랑의 시샘)는 지옥처럼 잔혹하며, 사랑은 아무도 끌 수 없는 타오르는 불길"이라는 표현이 나온다(아가서 8:6). 그리고 그 기세가 신의 불과 같다고 말한다. 사랑은 분명 매혹적이고 행복한 감정이지만, 동시에 지옥불처럼 잔혹한 고통이기도 하다. 어쩌면 사랑을 느끼는 것은 신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체험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한 철학자(신학자)는 인간이 신을 경험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누미노제'라는 철학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소름이 끼쳐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과 같은 "전율하지 않을 수 없는 신비"이며 동시에 "마음을 끌어들이는 매혹적인 신비"라는 두 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압도적 절대 타자(신)와 마주했을 때 경외감(공포)에 전율하지만, 동시에 매우 매혹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두렵지만 끌리는 마음. 그런 맥락에서 신은 사랑이 맞는 것 같다. 사랑 또한 두렵지만 끌리는 마음이니까.

 

<밤의 첼로>는 "멀쩡하던 한 인간의 삶이 치정으로 인해 얼마나 끝없이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여섯 편의 이야기이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밤의 첼로>라는 제목을 힌트로 주관적인 감상을 적어보자면, 첫 번째 이야기 '밤의 첼로'는 주제부에 해당하고, 이어지는 4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듯 닮은 4개의 변주곡이며, 마지막 여섯 번째 이야기는 그 4개 변주부가 하나로 합쳐져 다시 주제부를 형성하듯 읽힌다.

 

<밤의 첼로>는 사랑을 조롱한다. 오래된 농담처럼 새로울 것 없지만, 그 건조함 속에 광적이고 격렬한 불꽃이 튄다. <밤의 첼로>에서 연주되는 사랑은 혼돈이며, 환각이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상처의 집이며, 모순이다. 사랑은 변덕스럽다. 명식과 인경은 사랑했지만, 인경은 명식을 버렸고, 전신 근육의 대부분이 마비된 인경은 죽기 전에 명식을 한 번 보고 싶어 한다. 사랑은 혼란이다. 명식은 자신을 버렸던 옛 애인의 죽음 앞에 혼란스러워한다. 사랑은 상처의 집이다. 명식의 상처의 집은 인경의 죽음으로 다시 들쑤셔졌다. "이제 그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명식을 "제 생애에서 가장 혹독한 밤 한가운데"로 몰아넣었고, 명식은 "인간의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 첼로를 연주한다"는 신의 첼로 소리를 듣는다(밤의 첼로).

 

'밤의 첼로'에 이어지는 나머지 다섯 편의 이야기에서는 "사랑하지 않았다면 죽이지 않았을", 그러니까 사랑하기에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상대를 죽여버렸기 때문에 그 사랑을 끝낼 수가 없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들 속에 서로 연결되어 등장한다. 치정 살인. "그 치정도 처음에는 아름다운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랑의 이중주가 죽음의 광시곡으로 변질되는가. <밤의 첼로>가 찾아낸 원인은 '변심'이다. "멀어지는 사랑을 분노 안에 가두려다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람들. '물고기 그림자'의 은희는 사람이 정말 절망스러우면 미쳐 버린다고 말한다. 변심한 사랑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미쳐버리면, 사랑은 폭력이 된다. "몽골에서 늑대는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사냥의 대상이기도 하다. 가죽도 가죽이려니와 가축들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이는 신에게 인간이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징벌의 대상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죄도 죄려니와 세계를 망치니 이런 치정 같은 모순에 매우 적합한 것이다"(버드나무군락지, 217).

 

<밤의 첼로>에서 연주되는 변주곡이 '버드나무군락지'라는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서로 연결될 때, 그 연결의 접점에 서 있는 두 인물이 있다. "이예훈"과 "권진규". 이예훈은 애인이 그의 둘도 없는 친구와 바람이 나 버림 당했지만, 체념했다. "나는 사랑을 잃고 고통 때문에 고지식해졌다. 깊은 병을 앓았고 값진 체념을 배웠으며 누가 뭐라든지 홀로 화가가 되었다"(버드나무군락지, 246). 체념을 배운 이 남자는 한쪽 눈을 도려내고 살아 남았다. 이런 맥락에서 권진규는 이예훈과 대칭점에 존재하는 듯한 인물이다. 우스운 농담처럼 던진 악마같은 한마디에 장해인이 스스로 목을 매 숨진 뒤, 그는 몸에 달라붙어 도망갈 수도 없는 진짜 지옥 불 속에서 산다. 휘청거리는 영혼, 그의 통곡소리마저 삼켜버리는 지옥불 속에서.

 

작가는 왜 마지막 이야기 속에서 "사랑했기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지었을까. "문득 그는 사랑했기 때문에 상처 입은 어떤 이들과 자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간절히 연결돼 있는 것만 같았다"(버드나무군락지, 250). 태연하게 지나는 사람들 속에 감추어진 사랑의 상처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일까. 누구가의 옛 사랑이 누군가에는 현재의 사랑이고, 누군가에게 버려진 사람이 누군가에는 짝사랑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랑했기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사랑에 상처 입은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하고 상처로 연결된 사람들을 통해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작가는 끝까지 사랑을 조롱한다. 잃어버린 사랑에 집착하는 고재만은 그의 옛 연인과 그녀의 새로운 연인을 찾아간다. 그녀의 새로운 연인인 목남은 시각장애인이지만, 은희에게 집착하는 재만의 고통을 본다.

 

"은희를 사랑하지 마세요.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을 하지 마세요."

(목남의 충고에 재만은 반격을 시도한다.)

 

".......네가 사랑을 알아?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알아?"

"당신의 두 눈을 내게 주십시오. 그럼 내가 당신 대신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 그 여자를 증오해 드리겠소."

"......."

고재만은 완벽히 패배했다(버드나무군락지, 230-231).

 

 

<밤의 첼로>에서 나는 환멸을 보았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고, 신에 대한 환멸이기도 하다. "병운은 어떠한 법칙으로도 장담할 수 없는, 어떠한 진심으로도 설득할 수 없는, 어떠한 겸손으로도 평화로울 수 없는 이 세상이 끔찍했다"(40). 그런데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환멸이라는 감정도 존재할 수가 없으니, 작가가 사랑을 조롱하는 것은 신 존재 증명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원일 선생님은 "이 책은 시적인 문체와 모더니즘으로 불교의 연기론과 기독교의신학적 해석 안에서 슬픈 사랑을 이응준 특유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신과 씨름하듯 사랑의 환멸과 씨름한다. 그것은 오래된 주제이고, 더 이상 웃기지 않는 농담이지만, 내가 버리고 싶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은 신이 아니기에,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 주는 절망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6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정지현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드를 위한 심리 상담

로버트 드 보드 | 고연수 옮김

교양인 2013.01.05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라는 동화를 알게 된 것은 <토드를 위한 심리 상담>이라는 책 때문입니다. <토드를 위한 심리 상담>은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상담을 받는 "설정"으로 구성된 심리 우화입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등장하는 말썽꾸러기 "두꺼비"가 왜 그렇게 말썽꾸러기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상담을 통해 돌아보며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 <토드를 위한 심리 상담>입니다. <토드를 위한 심리 상담>을 읽은 후, 그 내용을 차용한 원작을 읽어보고 싶었던 차에 '인디고'에서 아름다운고전시리즈의 16번째 책으로 출간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만났습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1908년에 영국에서 출간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명작"이라고 합니다. 1908년이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막 동화를 읽으며 상상력과 꿈을 키웠을 즈음입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기에 '고전동화'라 불립니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어릴 적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이 책을 꼽았으며, <곰돌이 푸우> 시리즈의 작가 앨런 알렉산더 밀른은 "어느 가정에나 한 권씩은 꼭 갖춰야 할 책"으로 극찬했다고 합니다. 영국인들이 얼마나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책인지 짐작이 갑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개성 강한 동물 친구들의 모험과 우정을 그린 동화입니다. 원래 이 책은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작가)가 "날 때부터 시력이 약해 앞을 잘 보지 못한 아들을 위해 직접 편지를 쓰고 머리맡에서 들려주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아들에게 들려주는 아버지의 동화라서 그런지 줄거리가 흥미진진하면서도 따뜻한 교훈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착한 성품과 지혜를 지닌 '물쥐', 용감하고 정 많은 '두더지', 구제불능에 허세로 꽉 차 있지만 아무도 못말리는 열정의 소유자이기도 한 '두꺼비', 엄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따뜻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오소리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땅 속에 집이 있지만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좋아하는 두더지는 친구들과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모험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잘 빠져들며 흥분을 잘 하는 성격입니다. 지혜로운 물쥐는 모든 면에 노련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구해주기도 하고 충고도 아끼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두꺼비는 어딜 가나 사고뭉치이지만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줄 아는 면도 있습니다.

 

친구가 된 물쥐와 두더지는 두꺼비가 제안한 마차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오소리 아저씨 집을 찾아 숲으로 들어갔다가 위험에 처한 두더지를 물쥐가 도와주기도 하고, 자동차에 푹 빠진 두꺼비가 자동차를 훔쳐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기도 하고, 그런 두꺼비를 걱정하는 친구들이 족제비들과 흰담비들에게 빼앗긴 두꺼비의 집을 용기와 지혜로 찾아주기도 합니다.

 

세 친구는 모험을 통해 쑥쑥 성장해갑니다. 두더지는 추운 겨울 날, 숲에 있는 오소리 아저씨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두더지는 익숙하고 기분 좋은 것들이 가득한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발걸음이 더 바빠졌다. 이번 일로 분명히 깨달았다. 자신은 갈아놓은 들판, 산울타리와 어울리는 동물이라는 것을. 쟁기로 일궈놓은 고랑, 생기 가득한 고원, 해질 무렵의 시골길, 잘 가꾸어진 텃밭과 잘 어울린다는 것을. 물론 자연 속에서 살다 보면 가혹한 일도 때로 있고 꿋꿋하게 참아야 할 때도 있으며 서로 부딪히는 일도 많으리라. 그렇기에 눈앞에 펼쳐진 즐거운 그 공간 속으로 지혜롭게 따라갈 것이다. 평생 즐거운 모험이 가득한 그곳으로"(115-116).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즐거운 모험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두더지는 평범한 것들, 소소한 보통날들, 특히 돌아올 수 있는 '집'의 소중함도 깨닫습니다.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평범한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으며 특별한 가치가 있는지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두더지는 새로운 생활과 햇살과 공기로 가득한 아름다운 장소들을 버리고 다시 땅속 집으로 기어 들어와 지내고 싶진 않았다. 바깥세상은 매우 강렬한 곳이었다. 두더지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올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없이 좋았다. 돌아온 그를 반갑게 맞아준 집, 언제든지 환영받을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이"(145). 이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는 아버지(작가)는 아마도 언젠가 넓은 세상과 마주할 아들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것과 동시에 언제든지 돌아와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쥐와 두더지와 두꺼비의 모험은 항상 따뜻하고 익숙한 집으로 돌아와 편히 쉬는 것에서 끝나니까요.

 

"당신도 나랑 같이 갑시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남쪽은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모험을 합시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에요! 어서 부름에 응답해요! 문을 닫고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옛 생활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거예요! 모험을 끝내고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추억을 벗 삼아 조용한 강가에 앉아 있는 걸로 만족하면 돼요"(251).

비록 앞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울렁였을 어린 아들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인생이란 도처에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지만 해볼 만한 모험이라는 것, 그러니 인생의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는 길이 시작되는 지점밖에 볼 수 없지만 그 길이 우리를 데려다줄 멋진 세상을 상상하며 마음껏 꿈을 꾸라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인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강과 들판, 숲의 아름다움과 모험의 즐거움, 우정의 소중함, 돌아올 집이 있는 것에 대한 감사가 버드나무를 살랑살랑 흔드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마음을 기분좋게 간질이는 책입니다. (교육상(!) 감옥을 탈출한 두꺼비의 행동과 그 결말을 설명하기가 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좋은 동화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화입니다. 이 책이 나온 당시에는 <해리 포터>급 충격을 던져준 책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오은영 박사가 전하는 공부력 향상 육아법!
오은영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는 대학입시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우리는 그렇게 한 목표를 위해 달렸지만 누군가는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고, 끝내 그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이루지 못한 채 대학을 단념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그 치열한 경쟁 속에 있었던 친구들이 이제는 대부분 '엄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엄마'가 되면 좀 다를 줄 알았습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부쩍 성적이 떨어지는 딸을 앞에 두고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셨다는 엄마, 공부 시간을 다 채울 때까지 방문을 열어두고 보초를 서 듯 앉아 계셨던 엄마, 항상 성적을 가지고 자식들과 굴욕적인(?) 협상을 시도하셨던 우리의 엄마들과는 좀 다른 엄마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친구들은 자식들과 더 치열한 공부 전쟁 중입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올백만 맞았던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아가서 갑자기 성적이 떨어졌다며 이 과외, 저 과외 쉬지 않고 붙여주는 엄마,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게임과 축구에만 빠져 있는 아들과 날마다 힘겨루기를 하는 엄마, 아이 성적이 나쁜 것이 엄마의 무능함인 것만 같아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가 바로 그때 그 치열한 입시지옥에서 숨막혀 했던 친구들입니다.

 

'엄마'들은 억울해 합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잘 가르치기 위해 이것 저것 안 해본 것이 없는데,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는데, 왜 아이의 성적은 그렇게 형편이 없고, 아이를 자기 엄마를 원수 대하듯 하며 징글맞게 말을 안 듣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를 읽으며 가장 깊이 깨달은 것은, 공부를 잘 하고 못 하는 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부모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가르쳐주는 것도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문제 행동'을 고치려면 '부모'(양육자)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를 읽고 난 뒤, 엄마인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왜 엄마들은 억울할 정도로 최선을 다 했는데, 아이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잘 키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부모일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인데,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더 빨리, 더 많이, 더 제대로'를 부르짖으면서 아이를 혼내고 다그쳐서 공부에 대한 동기를 잃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9). 오은영 선생님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려는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고 말합니다(339).

 

우리 엄마들이 무대포 열심이었다면, 우리들은 전문적(!)인 열심으로 아이를 몰아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불안할수록 아이를 더 달달 볶게 되고, 엄마가 계속 채근할수록 아이는 아예 무기력해지고 맙니다(341). 엄마들의 불안은 어쩌면 지난 날에 대한 엄마 자신의 후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때 더 열심히 공부할 걸'하는 후회가, '열심히 공부했으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아이들을 더 닦달하고 후회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자녀가 맞이하게 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낙오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부모의 그런 마음조차 사랑의 또다른 이름이겠지만, 문제는 그런 부모의 태도가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저하시키고, 결과적으로 아이 인생을 망치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는 공부 전쟁으로 불행한 아이와 부모를 구원하는 책입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볼 때마다, 아이의 욕구를 정확하게 알아내고 그에 맞게 부모 행동을 수정해주는 오은영 선생님의 통찰력과 탁월한 코칭이 이 책에서 빛을 발합니다. 이 책은 "부모가 어떻게 공부에 접근해야 아이가 두뇌 능력만큼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를 다루며, 풍부한 사례를 통해 공부하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생각, 행동, 고민이 무엇인지 살피며, "공부라는 주제를 가지고 서로 마음과 관계가 상하지 않으면서 상호작용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줍니다(22-23). 전문적인 책이면서도 어렵지 않고, 사례를 통한 (간접적) 상담이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재미있게 읽으며 중요한 양육 포인트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은 유아기(만 3세)부터 초등기(13세)까지 아이들의 공부 지도를 다룹니다. 특히 유아기의 공부 지도가 강조됩니다. "모든 것의 열쇠가 사실은 유아기에 있다. 초등학교 공부 문제는 그 안에 어떤 부모와 자녀 관계가 숨어 있는지 나타내는 것이라면, 유아기 공부는 그 잘못된 부모와 자녀 관계가 어떻게 시작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343). 선생님은 "만 3세 공부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만 3세는 아이의 공부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데, 잘못하면 "아이와의 관계, 육아, 부부간의 관계 모두 '만 3세 공부'로 망가져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22). 더 심각한 것은 "그러는 와중에 어이없게도 본격적인 공부에 진짜 중요한 아이의 두뇌 발달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22). 이제 막 부모가 된 분들에게는 어떻게 아이를 지도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고, 공부 때문에 자녀와의 관계가 어그러져 고민하는 부모라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 책에서 배운 공부 지도 방법 중에 네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유아기 학습의 기본은 '아이의 관심'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 초등기 아이에게는 공부법이 아니라 '문제해결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아이가 공부를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자율성, 독립성, 문제해결력"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책은 모든 부모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줍니다. "나는 어떤 정의를 가지고 아이를 공부시키고 있는가?" 내 아이가 공부를 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입니다. 모든 부모가 한 번은 이 질문 앞에 진지하게 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시'라는 좁은 관문을 통과할 사람의 숫자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입시라는 목표만 놓고 보면, 많은 아이들이 "실패자가 되려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성장기 공부는 대학이 아니라 두뇌 발달에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는 무조건 배워야 한다는 것, 좋은 직업 선택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심과 같은 삶의 태도를 배우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얻기 위해 "수준의 맞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이 세 가지 이유를 보며, 우리 스스로 그동안 공부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고 (어떤 추상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공부'는 정말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학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양육으로 완성"된다는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공부와 양육의 목적은 같다. 공부의 목적은 두뇌를 발달시키고, 삶을 살아가는 데 바람직한 자세와 태도를 갖춘 자신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헤쳐나가기 위함이다. 양육의 목적은 또한 튼튼하고 똑똑하고 따뜻하고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서 아이 스스로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 위함이다"(383). 이는 모든 부모가 잡고 있어야 할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어깨 위에는 한 아이의 인생(행복)이 걸려 있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영은 맛있다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강제윤 지음, 이상희 사진 / 생각을담는집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살면서 몇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부동산 전망이 좋았기 때문에, 아버지 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에, 직장과 학교가 가깝기 때문에라는 이유에 끌려 다닌 이사였습니다. 한 번도 그곳에 반해서 삶의 자리를 옮겨 앉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여러 모로 참 가난한 삶을 살았다 싶어 마음이 텁텁해집니다.

 

옛날에 비해 이동이 자유롭고 편리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삶의 자리를 옮겨 앉는 일도 쉬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대인의 삶을 여기저기 떠도는 삶이라고도 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삶이라고도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내가 "원하는 곳"에 뿌리를 내리는 새로운 트렌드도 보입니다.  제주가 좋아 제주에 사는 사람, 울릉도가 좋아 울릉도에 사는 사람을 만났고, 이번엔 통영이 좋아 통영에 사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자는 "통영으로 여행을 가서 3년째 눌러 살며 통영을 여행 중"이라는 통영 주민입니다. 저자는 섬 여행가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8년 동안 300여 개의 섬을 걷고 기록해 왔다"는 저자의 이력에서, 섬 여행가를 눌러 앉힐 만큼 강력했던 통영의 멋과 맛은 무엇이었는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통영을 선명한 사진에 담아낸 이도 "통영에 살면서 20년여 년 간 통영과 통영의 섬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오고 있는" 통영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행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이나 통영의 맛과 멋을 찾아떠난 여행기라기 보다, 통영 사람들이 진하게 우려낸 통영의 깊은 맛을 정답게 들려주는 구수한 이야기입니다.

 

<통영은 맛있다>는 잘 차린 잔칫상처럼 푸짐합니다. 통영의 팔색조 매력을 한상차림으로 차려냈습니다. 통영은 시인이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노래할 만큼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 미항이며,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항구이며,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예향이며, 게다가, 이순신 장군이 한산해전을 승리로 이끈 구국의 땅이기도 합니다(12-13). 통영이 가진 이 많은 매력 중에서 가장 제 마음을 끌었던 것은 그곳에 남겨져 있는 예술가들의 향과 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청마 유치완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의 한구절입니다. 한때,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사인처럼 적어보낼 만큼 좋아했던 시입니다. 이 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바로 그 시인의 "우체국"을 만났습니다. 통영에 있는 중앙동 우체국이 "청마가 사랑했던 여인 정운 이영도 시인에게 매일 편지를 부치던 곳"(217)이라고 합니다. 시험에 나오는 것고 아닌데 통째로 암기하고 다닐 만큼 좋아했던 이 시를 어느 날 마음 밖으로 던져버린 이유는, 바로 '이영도'라는 여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라는 것, 또 시인이 사고로 작고한 지 "한 달만에" 그 여인이 연서를 모아 펴낸 시집에 이 시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의 충격이란. 그것은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통영은 맛있다>에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만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우체국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이 마음은 또 뭔지 모르겠습니다.

 

통영에 가보고 싶은 또다른 이유는 행복이라는 시만큼 저를 사로잡은 "충무김밥" 때문입니다. 아무리 촌스럽다 놀려도 뷔페 음식점에 가서도 꼭 김밥을 집어먹을 만큼 김밥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명동이었는지 고속도로휴게소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먹어본 충무김밥의 맛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통영은 바로 그 충무김밥의 고장입니다! 충무김밥은 "부산과 여수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 승객들의 점심식사로 탄생"(89)한 김밥이라고 합니다. '김밥 속에 소를 넣고 말아 두면 상하기 쉬운 까닭에 김밥과 반찬을 따로 만들어 팔게 된 것"이라고요. <통영은 맛있다>는 충무김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사연도 소개합니다. "통영항에서 김밥을 팔던 어두리 할머니가 서울까지 올라가 '국풍 81' 현장에서 김밥을 만들어 팔았는데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87)니 그 용기와 도전 정신이 참 대단한 할머니입니다. 충무김밥의 생명은 "잘 삭은 젓갈에 버무린 맛깔스런 나박김치와 싱싱한 오징어무침"이니 본고장인 통영에 가서 먹어야 제대로 먹어봤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통영에 가봐야 할 이유는 이밖에도 많습니다. 도다리쑥국도 먹어봐야 하고, 토속음식들이 즐비한 통영오일장에도 가봐야 하고, "통영의 밤바다와 야경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동피랑 언덕에도 가보고 싶고, 백석의 시, 박경리기념관, 이순신 장군의 애국혼이 깃든 바다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통영이 품은 이야기 속으로 직접 걸어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휴가철입니다. 여행을 계획할 때 가끔 욕심으로 여행지를 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 "나도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어떤 경쟁심이 작동할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통영은 어쩐지 다른 느낌입니다. 어쩐지 떠나기도 전에, 마음이 비워지는 여행이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훌쩍 떠나고 싶은 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기운을 차리고 싶은 날 바람처럼 소리 없이 통영에 다녀와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스터리의 법칙 - 내 안에 숨겨진 최대치의 힘을 찾는 법
로버트 그린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안에 숨겨진 최대치의 힘을 찾는 법 

 

 

저자는 마스터리의 법칙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잠재력을 나타내는 힘이자 지성", "그 힘을 마스터리(mastery)라 부르겠다"(11-13). <마스터리의 법칙>은 '달인 또는 거장이 되는 법'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달인 또는 거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천재가 아니라,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이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그 일에 능숙해진다거나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폭발이라고 할 만한 능력의 극대화가 나타나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입니다.

 

책의 표지에 보면 "당신이 그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했다면 마스터리가 나타날 시점이다"라는 선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같은 일을 하다보면 웬만하면 누구나 "누워서 떡 먹기"라고 할 정도로 그 일에 능숙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 일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그 분야에서 천재성(마스터리)을 나타내는 거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마스터리의 법칙>은 바로 그 비밀을 파헤쳐낸 책이며, 그 비밀을 내 것으로 만드는 전략을 전수해주는 책입니다.

 

 

"당신의 성향에 맞는 것들을 탐구하고 다양한 측면에서 공략함으로써 씨앗이 뿌리내릴 토지를 배양하라.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흙 속, 저 땅 밑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 인생의 과업과 연결된 끈을 함부로 놓지 마라. 그 끈을 놓치지 않는다면 무의식적으로라도 삶에서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마스터리가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497).

 

마스터리에 이르는 첫 번째 열쇠는 나의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생의 과업을 발견하라"고 조언합니다. 자기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 몰두하는 사람은 타고난 천재도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윈의 예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 경은 (다윈 보다도 훨씬) 뛰어나게 높은 IQ를 가진 천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천재 소년은 "학문 영역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으나 위대한 거장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29)습니다. 그에 비해 다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대단히 평범한 소년이었다. 아니, 오히려 평균적인 지능 수준에 못 미치는 아이였다." 다윈은 이 수수께끼의 해답이 바로, "특정한 주제에 이끌리는 깊고 강한 성향"(31)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마스터리에 도달하여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고유한 성향을 남들보다 더욱 강하고 분명하게 경험하는 이들이다"(31).

 

<마스터리의 법칙>은 레오나르도가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에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힘은 그가 아버지 방에서 종이를 훔쳐 끝없이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다. (...) 피렌체의 궁정에서 벗어나도록, 당시 예술가들에게서 흔히 목격되던 불안한 자아를 탈피하도록 이끌었다. 그가 남들은 상상하지 못한 과감한 시도를 하게 이끈 것도 바로 그 힘이었다"(51-52).

 

가슴 뛰는 일을 발견하는 것, 사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고 여기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마스터리의 법칙>은 인생의 과업을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전략을 제시합니다. 나의 운명이랄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이 제시하는 전략을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마스터리에 이르는 두 번째 열쇠는 "당양한 측면에서 공략", 즉 수련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마스터리의 법칙>은 어떤 거장이라도 "기본 역량이 형성되고 발달하는 특정한 시기"(106)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시기는 "나비의 번데기 시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차르트와 아인슈타인처럼 타고난 천재들은 이런 수련기를 거치지 않고 "하루아침에 독창적인 천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176)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경우를 보면, 그가 진정으로 독창적인 중요한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작곡을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넘어서였다는 것이 고전 음악 비평가들 대부분의 의견"(176)이라고 전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열여섯 살 때부터 진지한 사고실험을 하기 시작"하여, "10년 뒤 혁신적인 상대성 이론을 처음 내놓았다"고 합니다. 어떤 일을 마스터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좌절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에 굴복하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을 포기하거나 중도 탈락합니다. 그러나 <마스터리의 법칙>은 최소 5-10년쯤 지속되는 수련 기간을 거쳐야 마스터리의 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바로 여기가 거장과 평범한 사람들의 운명이 갈리는 지점입니다.

 

 

마스터리에 이르는 세 번째 열쇠는 좋은 스승을 만나 겸손하게 배우는 것입니다(거인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라). 우리는 에디슨이 독학으로 공부한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그에게도 스승이 있었습니다. 정식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에디슨은 공공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권의 책을 통해 패러데이라는 거장을 만나고, 이후 "패러데이가 설명한 실험 방식"을 따르고, 과학에 대한 그의 철학적 접근법을 열심히 흡수"했습니다. 이렇게 "에디슨은 팽생 패러데이를 롤모델로 삼았"(236)습니다. 농사처럼 '경험'적 지식의 중요성이 낮아지다 보니 현대사회에서는 연륜이나 스승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스터리의 법칙>은 스승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마스터리의 법칙>은 이 밖에도 마스터리에 이르는 열쇠를 몇 가지 더 제시하는데, 그것은 '몰두'와 '새로운 시도'라는 말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요지를 한 문장으로 간추려 보면, "자기 성향에 맞는 가슴 뛰는 일을 찾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몰두하다 보면 '마스터리'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마스터리의 법칙>은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서나 성공학에서 많이 해온 이야기들입니다. 이 책의 차별점이라면, 누구나 "노력하는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점이 아닌가 합니다. <마스터리의 법칙>은 내용은 독창적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사례 분석을 통해 객관성을 담보한 법칙을 잘 정리해냈습니다. (5-10년 이상 지속되는) '수련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는 점에서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분야의 거장이 되는 길,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