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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ㅣ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6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정지현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13년 7월
평점 :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라는 동화를 알게 된 것은 <토드를 위한 심리 상담>이라는 책 때문입니다. <토드를 위한 심리 상담>은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상담을 받는 "설정"으로 구성된 심리 우화입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 등장하는 말썽꾸러기 "두꺼비"가 왜 그렇게 말썽꾸러기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상담을 통해 돌아보며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 <토드를 위한 심리 상담>입니다. <토드를 위한 심리 상담>을 읽은 후, 그 내용을 차용한 원작을 읽어보고 싶었던 차에 '인디고'에서 아름다운고전시리즈의 16번째 책으로 출간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을 만났습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1908년에 영국에서 출간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명작"이라고 합니다. 1908년이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막 동화를 읽으며 상상력과 꿈을 키웠을 즈음입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기에 '고전동화'라 불립니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어릴 적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이 책을 꼽았으며, <곰돌이 푸우> 시리즈의 작가 앨런 알렉산더 밀른은 "어느 가정에나 한 권씩은 꼭 갖춰야 할 책"으로 극찬했다고 합니다. 영국인들이 얼마나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책인지 짐작이 갑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개성 강한 동물 친구들의 모험과 우정을 그린 동화입니다. 원래 이 책은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작가)가 "날 때부터 시력이 약해 앞을 잘 보지 못한 아들을 위해 직접 편지를 쓰고 머리맡에서 들려주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아들에게 들려주는 아버지의 동화라서 그런지 줄거리가 흥미진진하면서도 따뜻한 교훈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에는 착한 성품과 지혜를 지닌 '물쥐', 용감하고 정 많은 '두더지', 구제불능에 허세로 꽉 차 있지만 아무도 못말리는 열정의 소유자이기도 한 '두꺼비', 엄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따뜻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오소리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땅 속에 집이 있지만 밝고 아름다운 세상을 좋아하는 두더지는 친구들과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모험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잘 빠져들며 흥분을 잘 하는 성격입니다. 지혜로운 물쥐는 모든 면에 노련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을 구해주기도 하고 충고도 아끼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두꺼비는 어딜 가나 사고뭉치이지만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줄 아는 면도 있습니다.
친구가 된 물쥐와 두더지는 두꺼비가 제안한 마차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오소리 아저씨 집을 찾아 숲으로 들어갔다가 위험에 처한 두더지를 물쥐가 도와주기도 하고, 자동차에 푹 빠진 두꺼비가 자동차를 훔쳐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기도 하고, 그런 두꺼비를 걱정하는 친구들이 족제비들과 흰담비들에게 빼앗긴 두꺼비의 집을 용기와 지혜로 찾아주기도 합니다.
세 친구는 모험을 통해 쑥쑥 성장해갑니다. 두더지는 추운 겨울 날, 숲에 있는 오소리 아저씨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두더지는 익숙하고 기분 좋은 것들이 가득한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발걸음이 더 바빠졌다. 이번 일로 분명히 깨달았다. 자신은 갈아놓은 들판, 산울타리와 어울리는 동물이라는 것을. 쟁기로 일궈놓은 고랑, 생기 가득한 고원, 해질 무렵의 시골길, 잘 가꾸어진 텃밭과 잘 어울린다는 것을. 물론 자연 속에서 살다 보면 가혹한 일도 때로 있고 꿋꿋하게 참아야 할 때도 있으며 서로 부딪히는 일도 많으리라. 그렇기에 눈앞에 펼쳐진 즐거운 그 공간 속으로 지혜롭게 따라갈 것이다. 평생 즐거운 모험이 가득한 그곳으로"(115-116).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즐거운 모험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두더지는 평범한 것들, 소소한 보통날들, 특히 돌아올 수 있는 '집'의 소중함도 깨닫습니다.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평범한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으며 특별한 가치가 있는지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두더지는 새로운 생활과 햇살과 공기로 가득한 아름다운 장소들을 버리고 다시 땅속 집으로 기어 들어와 지내고 싶진 않았다. 바깥세상은 매우 강렬한 곳이었다. 두더지는 더 넓은 세상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올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한없이 좋았다. 돌아온 그를 반갑게 맞아준 집, 언제든지 환영받을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이"(145). 이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는 아버지(작가)는 아마도 언젠가 넓은 세상과 마주할 아들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것과 동시에 언제든지 돌아와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것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쥐와 두더지와 두꺼비의 모험은 항상 따뜻하고 익숙한 집으로 돌아와 편히 쉬는 것에서 끝나니까요.
"당신도 나랑 같이 갑시다.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남쪽은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모험을 합시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에요! 어서 부름에 응답해요! 문을 닫고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옛 생활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거예요! 모험을 끝내고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추억을 벗 삼아 조용한 강가에 앉아 있는 걸로 만족하면 돼요"(251).
비록 앞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울렁였을 어린 아들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인생이란 도처에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지만 해볼 만한 모험이라는 것, 그러니 인생의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는 길이 시작되는 지점밖에 볼 수 없지만 그 길이 우리를 데려다줄 멋진 세상을 상상하며 마음껏 꿈을 꾸라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왜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인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강과 들판, 숲의 아름다움과 모험의 즐거움, 우정의 소중함, 돌아올 집이 있는 것에 대한 감사가 버드나무를 살랑살랑 흔드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마음을 기분좋게 간질이는 책입니다. (교육상(!) 감옥을 탈출한 두꺼비의 행동과 그 결말을 설명하기가 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좋은 동화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화입니다. 이 책이 나온 당시에는 <해리 포터>급 충격을 던져준 책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