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맛있다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강제윤 지음, 이상희 사진 / 생각을담는집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살면서 몇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부동산 전망이 좋았기 때문에, 아버지 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에, 직장과 학교가 가깝기 때문에라는 이유에 끌려 다닌 이사였습니다. 한 번도 그곳에 반해서 삶의 자리를 옮겨 앉은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여러 모로 참 가난한 삶을 살았다 싶어 마음이 텁텁해집니다.

 

옛날에 비해 이동이 자유롭고 편리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삶의 자리를 옮겨 앉는 일도 쉬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대인의 삶을 여기저기 떠도는 삶이라고도 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삶이라고도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내가 "원하는 곳"에 뿌리를 내리는 새로운 트렌드도 보입니다.  제주가 좋아 제주에 사는 사람, 울릉도가 좋아 울릉도에 사는 사람을 만났고, 이번엔 통영이 좋아 통영에 사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자는 "통영으로 여행을 가서 3년째 눌러 살며 통영을 여행 중"이라는 통영 주민입니다. 저자는 섬 여행가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8년 동안 300여 개의 섬을 걷고 기록해 왔다"는 저자의 이력에서, 섬 여행가를 눌러 앉힐 만큼 강력했던 통영의 멋과 맛은 무엇이었는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통영을 선명한 사진에 담아낸 이도 "통영에 살면서 20년여 년 간 통영과 통영의 섬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오고 있는" 통영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행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이나 통영의 맛과 멋을 찾아떠난 여행기라기 보다, 통영 사람들이 진하게 우려낸 통영의 깊은 맛을 정답게 들려주는 구수한 이야기입니다.

 

<통영은 맛있다>는 잘 차린 잔칫상처럼 푸짐합니다. 통영의 팔색조 매력을 한상차림으로 차려냈습니다. 통영은 시인이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노래할 만큼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 미항이며,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항구이며,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예향이며, 게다가, 이순신 장군이 한산해전을 승리로 이끈 구국의 땅이기도 합니다(12-13). 통영이 가진 이 많은 매력 중에서 가장 제 마음을 끌었던 것은 그곳에 남겨져 있는 예술가들의 향과 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청마 유치완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의 한구절입니다. 한때,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마다 사인처럼 적어보낼 만큼 좋아했던 시입니다. 이 시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바로 그 시인의 "우체국"을 만났습니다. 통영에 있는 중앙동 우체국이 "청마가 사랑했던 여인 정운 이영도 시인에게 매일 편지를 부치던 곳"(217)이라고 합니다. 시험에 나오는 것고 아닌데 통째로 암기하고 다닐 만큼 좋아했던 이 시를 어느 날 마음 밖으로 던져버린 이유는, 바로 '이영도'라는 여인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있는 남자가 다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이라는 것, 또 시인이 사고로 작고한 지 "한 달만에" 그 여인이 연서를 모아 펴낸 시집에 이 시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의 충격이란. 그것은 어떤 배신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통영은 맛있다>에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만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우체국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이 마음은 또 뭔지 모르겠습니다.

 

통영에 가보고 싶은 또다른 이유는 행복이라는 시만큼 저를 사로잡은 "충무김밥" 때문입니다. 아무리 촌스럽다 놀려도 뷔페 음식점에 가서도 꼭 김밥을 집어먹을 만큼 김밥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명동이었는지 고속도로휴게소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먹어본 충무김밥의 맛은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통영은 바로 그 충무김밥의 고장입니다! 충무김밥은 "부산과 여수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 승객들의 점심식사로 탄생"(89)한 김밥이라고 합니다. '김밥 속에 소를 넣고 말아 두면 상하기 쉬운 까닭에 김밥과 반찬을 따로 만들어 팔게 된 것"이라고요. <통영은 맛있다>는 충무김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사연도 소개합니다. "통영항에서 김밥을 팔던 어두리 할머니가 서울까지 올라가 '국풍 81' 현장에서 김밥을 만들어 팔았는데 한마디로 대박이 났다"(87)니 그 용기와 도전 정신이 참 대단한 할머니입니다. 충무김밥의 생명은 "잘 삭은 젓갈에 버무린 맛깔스런 나박김치와 싱싱한 오징어무침"이니 본고장인 통영에 가서 먹어야 제대로 먹어봤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통영에 가봐야 할 이유는 이밖에도 많습니다. 도다리쑥국도 먹어봐야 하고, 토속음식들이 즐비한 통영오일장에도 가봐야 하고, "통영의 밤바다와 야경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동피랑 언덕에도 가보고 싶고, 백석의 시, 박경리기념관, 이순신 장군의 애국혼이 깃든 바다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통영이 품은 이야기 속으로 직접 걸어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휴가철입니다. 여행을 계획할 때 가끔 욕심으로 여행지를 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들이 많이 가는 곳이라 "나도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어떤 경쟁심이 작동할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통영은 어쩐지 다른 느낌입니다. 어쩐지 떠나기도 전에, 마음이 비워지는 여행이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훌쩍 떠나고 싶은 날,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기운을 차리고 싶은 날 바람처럼 소리 없이 통영에 다녀와야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