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위크 인 하와이 One Week in Hawaii
이진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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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꿈꾸는 하와이 여행의 모든 것"

 

 

어렸을 때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해외하면 당연히 "하와이"였고, "하와이"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하와이는 노년에 즐기는 휴양지라는 이미지가 깊이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해외여행 우선순위에서 하와이는 계속 뒤로 밀리고 있었는데, 저자의 한마디가 저의 가슴을 몹시 울렁이게 합니다. "만약 제게 단 일주일의 자유가 허락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하와이의 눈부신 바닷가로 떠날 것입니다"(4).

 

하와이의 강렬한 매력에 끌려 아예 삶의 터전을 옮겨버렸고 그곳에서 10년째 살고 있다는 저자! 이 책은 하와이와 사랑에 빠진 저자가 하와이 여행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특별히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고 하와이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알찬 정보를 깐깐하게 선별"했다고 자신합니다. 매우 친절한 가이드 북 <원 위크 인 하와이>로 꿈같은 하와이 여행을 계획해보세요.

 



 

 

 

책을 펴면 맨 앞장에 호놀룰루 폴더지도(뒷몃에는 와이키키 상세지도)가 절취 가능하도록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행에 관한 세부 정보를 찾아보기 전에 지도를 펴놓고 여행지를 미리 둘러보는 습관을 가진 저에게는 참 반가운 지도입니다. 이렇게 하면 세부적인 계획을 짜기 전에 대략적인 동선을 미리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 좋습니다. 특히 해외로 떠나는 자유여행이라면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두면 참 편하겠지요.

 



 


"하와이는 폴리네시아 말로 '신이 있는 장소'를 뜻"한다고 합니다(16). 그 이름에서부터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인지 짐작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하와이가 "14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라는 것은 예전에 몰랐습니다. 우리가 "하와이"라고 부르는 섬은 하와이에서 가장 덩치가 커서 "빅아일랜드"라고 부르며 코나 국제공항이나 힐로 국제공항을 통해 들어가는 섬이고, 세계적인 해변과 명소가 밀집해 있는 섬은 "오아후"라는 섬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하와이 여행의 중심인 '오하우 섬"을 중점적으로 안내하고, 하와이의 주요 섬(마우이, 빅아일랜드, 카우아이)를 "이웃섬"으로 통칭하여 가이드합니다.





하와이 여행 가이드 북으로서 이 책이 가장 강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여행에 필요한 상세 정보도 중요하지만, 하와이를 진짜 즐길 수 있는 노하우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와이 생활 10년 차 저자가 소개하는 진짜 하와이를 즐기는 10가지 노하우"만 잘 숙지하고 가도 평생 잊지 못할 하와이 여행이 될 듯합니다. 서핑 도전하기처럼 액티비티한 체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가로운 오후 같은 분위기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와 편안한 쉼을 주는 듯합니다.

 

저자를 즐기운 하와이 여행을 위해 "하와이에 관한 흔한 오해들"도 풀어줍니다. 특별히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자유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들이라면 반드시 챙겨야 할 정보가 가득합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저자는 하와이를 제대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정도의 일정을 추천하는데, "렌터카와 내비게이션, 그리고 여행 책 한 권만 있으면 자신의 입맛에 꼭 맞는 자유여행을 즐길 수 있"(60)다고 약속합니다. 또 "운전을 하지 않고도 대중교통만으로도 충분히 하와이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61)다고 하니 자유여행에 한 번 도전을 해봐도 좋을 듯합니다.

 




하와이는 주요 섬 네 곳이 "각각 성격도, 분위기도 다르고 풍광이나 볼거리, 할거리가 모두 달라 각각 독립된 여행지처럼 느껴질 정도"(69)라고 합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우아이 섬을 최고의 섬으로 꼽았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저자의 별점을 보면 전체적으로는 오아후 섬이 가장 무난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라면 빅아일랜드나 카우아이 섬을 선택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 위크 인 하와이>에서 추천하는 여행 일정은 "오아후"를 중심으로 일주일에 맞춰져 있습니다. 추천 루트를 따라 저자가 선정한 "꼭 가볼 곳"을 중심으로 여행을 계획하면 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충분할 듯합니다. 세부 정보 사이사이에 꼼꼼하게 적혀 있는 여행 팁은 나에게 맞는 일정을 짜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나에게 가장 눈부신 일주일을 선물하다."

 

 

지난 번 북경에서 너무 영악한(?) 가이드를 만나 여행의 뒷맛이 좋지 않았는데, <원 위크 인 하와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 친절한 가이드 북입니다. 이 책 한 권만 있다면 하와이 여행, 걱정할 것 없을 듯합니다. 곳곳에 하와이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매여 있는 것을 느끼며, 나도 살면서 이렇게 푹 빠져들만한 곳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도 생깁니다.

 

이 책을 열심히 살펴보는 내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했던 한 광고의 카피처럼, 저에게 하와이 여행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노년에 하와이에서 살겠다는 꿈을 가진 후배가 있는데, 그때가 되면 젊어서 와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해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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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야기 - 무신론자를 위한
조반니 파피니 지음, 음경훈 옮김, 윤종국 감수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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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일 그리스도가 틀렸다면, 우리에겐 절대적인 부정과 자발적인 포기밖에는 남는 게 없을 것이다. 완벽하게 엄격한 무신론 - 오늘날 회의론자들이 취하는 뭔가 위선적이고 뒤틀린 무신론이 아닌 -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139).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허망하게 떠나버린 어린 생명들을 지켜보며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을 회의하게 된다고 합니다. 신에 대한 회의에 빠진 사람들은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없다고 하고, 인생에 대한 회의에 빠진 사람들은 신앙을 갖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 조반니 파피니는 그의 명성만큼이나 유명한 무신론자였다고 합니다. 공공연하게 종교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며 무신론자임을 고백했던 그가 돌연 <예수 이야기>라는 책을 발표하며 "가톨릭으로의 회심"을 알린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이탈리아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합니다. 그토록 부정했던 것을 깊숙이 받아들이기까지 그의 내면 세계에서 일어난 소용돌이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의 영혼을 그의 삶을 삼켜버린 '예수'라는 한 사람(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예수 이야기>는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의 행적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여 그의 생애를 한 편의 드라마로 재구성한 책입니다. 예수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어졌던 예수 이야기는 총 4개의 복음서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4개의 복음서는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을 각각 4개의 망원경으로 4개의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이야기>는 그 4개의 복음서를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해냈습니다. 그러나 연대기적 순서는 공관복음의 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나 짧은 공생애를 보내고 죄인의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후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기까지 전생애를 낱낱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노벨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명망있는 조반니 파피니는 예수의 행적, 가르침, 기적, 주변 인물들을 역사적으로 문학적 맥락 속에서의 해석을 시도하는데, 물론 유명 언론이지마 문학가로서 해석의 객관성을 담보하지만 일면 '파파니 개인의 입장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신앙고백이라고도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한 편의 역사소설 같은 분위기이지만, 어떤 부분은 주석인 듯 읽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동방박사가 찾아와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장면을 이렇게 풀어냅니다. 자연을 대표하는 동물들에 이어 백성을 대표하는 목동들이 찾아오고, 세 번째 힘이라 할 수 있는 지식을 상징하는 동방박사들이 그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25). (논란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세례 의식이 처음에는 익사 의식에서 비롯되었다든지 하는 흥미로운 주석들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86).

 

또 어떤 장면들은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성경구절에 숨은 뜻을 밝혀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년 예수를 잃어버린 뒤 다시 찾았을 때,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49) 저자는 이 구절에 숨겨진 메시지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왜 나를 찾느냐? 너희는 내가 길을 잃지 않을 것을 모르느냐? 그 누구도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것은 누군가 나를 땅속에 파묻어둘지라도 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지 못할지라도 나를 믿는 자가 있는 곳에는 항상 내가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만일 돌아오는 길에 내가 숨거나, 혹은 죽는다 해도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며 부활할 것이다. 나를 잃었다면 나를 되찾으면 된다"(39).

 

조반니 파피니가 집중 조명하는 역사적 인물 예수는 역설적이고 급진적인 혁명가의 모습입니다. 예수의 사회적 신분은 미천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계급 간 경계가 분명했던 신분사회에서 예수는 높은 계급에 속하지 않았다. (...) 예수는 일반 백성 가운데서도 최하층 계급에 속했다. 떠돌이 부랑자, 사기꾼, 도망자, 노예. 죄수, 창녀와 같이 미천한 이들과 같은 부류에 있었다"(42). 예수가 하고자 한 일은 사회의 전복입니다. "예수는 기쁨으로 마무리한 참행복의 설교에서 인간의 계급을 뒤집어엎었다. 예수는 계속해서 삶의 가치를 바꿀 것이다. 예수를 재평가하는 그 어떤 말도 예수의 역설만큼 그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131).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역설가는 예수다. 그는 최고의 역설가이자 근본적이고 겁 없는 반전의 혁명가다. 예수의 위대함도, 예수의 영원한 새로움과 젊음도 거기에 있다. 빠르든 늦든 위대한 사람들이 복음에 끌리는 비밀 역시 예수의 역설에 있다. 예수는 죄악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들을 바로잡으려 한다. 그렇다면 죄악의 소굴인 세상의 원리를 뒤집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135).

 

그러나 예수가 뒤집어엎으려고 한 것을 보이는 세상이 아닙니다. 혁명은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첫 외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죄를 뉘우치는 수준이 아닙니다. 저자는 헬라어를 풀이하며 이것은 "정신을 바꾸라는 것", 즉 "예수는 우리에게 정신의 본질을 변화시키라고, 즉 영을 바꾸라고 말하고 있는 것"(105)이라고 설명합니다.

 

혁명가로서 예수 삶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 죽음입니다. 이 책은 십자가 앞에서 마주해야 했던 예수의 공포 등을 밀도있게 포착해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어떤 인물도 예수만큼 위대한 역설가이자 혁명가일 수 없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를 쓴 이탈리아 추기경 '엔니오 안토넬리'는 "이 책 <예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의 문학적 토양인 회의주의를 알아야 한다. 당시 회의주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더듬는 가운데 절대자의 빛을 발견하는 식으로 귀결되곤 했다"고 설명합니다. 가난한 인간의 실존을 고발하며 "결국 비관주의자들이 옳았다"고 토로하는 한 무신론자가 "석가모니는 인간이 처한 불행을 보고 삶이 억압당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반면 예수는 아주 황당해 보일 만큼 숭고한 희망을 전한다"(136)고 한 고백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예수 이야기>는 "무신론자를 위한 예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어디까지 소화할 수 있을지 조금 의문이 듭니다. 성경 지식은 물론 신학과 철학과 문학적 해석이 녹아 있으면서 때로는 개인의 입장에서 예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예수를 전혀 모르는 독자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 묵직한 메시지가 신앙을 가진 독자들에게 더 빠르게 전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수를 따르는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를 위해 이 세상이 말하는 가치를 분토와 같이 버리겠다고 다짐하고서는, 어느 새 다시 세상의 가치를 좇고 있는 나를 봅니다. 나는 과연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물음 앞에 당당히 "예, 그렇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예수처럼 제가 역설적이고 혁명적인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아프게 뼈를 파고 들었습니다. 싫어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무시할 수 없는 단 사람이 "예수"라는 측면에서 한 번쯤 관심을 가지고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철학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권합니다.

 

"예수를 따르려면 배고픔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 곡식이 풍성한 밭도, 창고에 쌓인 많은 재물도 모두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호사스러운 여행 가방도 두둑한 노잣돈도 없이 초라한 외투 하나만 걸치고 예수와 함께 길을 떠날 각오가 돼야 한다. 들에서 이삭 껍질을 벗기고, 남의 집 문 앞에서 구걸할지라도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워야 한다"(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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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두뇌는 희망이다 - 혼란을 넘어 창의로 가는 위대한 힘
대니얼 J. 시겔 지음, 최욱림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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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의 뇌의 변화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우리가 청소년으로서 또는 그들 곁의 성인으로서 청소년기라는 바다를 어떻게 항해하느냐에 따라 삶이라는 배가 위험지역으로 갈 수도 있고 신나는 모험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결정은 우리의 몫이다"(21).

 

 

우리나라만큼 청소년들이 불행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입시 스트레스에 짓눌린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도 방관한 했던 어른들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부픈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의 목숨을 짓밟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을 "위해" 한다는 조치가 고작 수학여행 취소 결정인 것을 보며, 이 나라에서 청소년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고, 청소년 문제에 반응하는 어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여 부끄럽다는 말도 미안할 지경입니다.

 

<십대의 두뇌는 희망이다>는 청소년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또 그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우리는 보통 '십대'는 불안정하고 미숙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는 그저 아무탈 없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시기가 바로 십대, 청소년기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신화를 깨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모든 문화권'에서 청소년기는 하나의 "거대한 시련"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문화 속에 살고 있건 청소년기가 문제의 시기인 것은 분명한가 봅니다. 문제는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우리가 청소년들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대 정신의학 임상교수이며 자녀양육법를 집필하기도 한 저자는 "청소년기를 둘러싼 많은 신화가 명백한 거짓임이 과학적으로 밝혀졌음을 지적"합니다. "청소년기를 둘러싼 가장 강력한 신화 중 하나는 폭주하는 호르몬이 십대들을 '돌게 또는 '정신을 놓게' 만든다는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이다"(13). 청소년이 겪는 문제는 단순히 호르몬만의 영향이 아니라, "뇌 발달 과정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십대의 두뇌는 희망이다>는 바로 청소년기의 뇌 발달 과정의 변화를 밝히는 책입니다. 저자는 이 시기의 뇌 발달 과정의 변화를 이해하고 청소년기의 특징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킨다면 이 청소년기의 특징이 성인이 된 뒤에도 우리 삶을 놀랍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예를 들면, 청소년기는 새로움 추구, 예민하고 강렬한 감수성, 사회적 참여(유대감), 창조적 탐험과 자의식이 확대되는 중요한 시기인데, 이러한 특징을 이해하고 잘 활용하여 청소년기의 힘과 목적의식을 성인기까지 유지하면 인생 전반에 걸쳐 활력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청소년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청소년기 동안 뇌가 성장하는 방법을 탐구하며, 특히 청소년기에 타인과 강한 유대관계를 쌓는 방법을 논의하고, 청소년기의 내면 심리와 대인관계를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파트의 끝에는 "마인드사이트 도구"라고 하여 배운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훈련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마인드사이트는 내면의 바다 속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종의 명상, 주의집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뇌의 통합적 사고를 기르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많은 십대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는 "사고, 마약 사용, 무기로 인한 상처, 자살 그리고 살인까지 12세부터 24세에 이르는 이 기간은 일생 중 가장 위험한 시기"(36)라고 말합니다. 청소년기가 재앙이 되느냐 행복한 삶의 원동력이 되느냐는 우리가 그 시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무지와 게으름, 그리고 선입견 때문에 어쩌면 막을 수도 있는 재앙에 청소년들이 내몰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십대의 변화와 특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직접 경험한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자세히 일러줍니다. 십대와 갈등을 겪으며 그들과 소통하고 교육하는 일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많은 부모에게 이 책이 해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특히 십대에게 '금연'을 가르치는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담배는 몸에 해롭다든지, 해서는 안 좋은 행동이라든지,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된다든지 하는 잔소리나 금지 명령이나 위협은 청소년들에게 전혀 효과가 없다고 합니다. "효과가 있었던 전략은 담배회사를 소유한 어른들이 십대가 흡연을 하도록 세뇌시켜서 돈을 벌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117)이었다고 합니다. "끔찍한 정보를 십대에게 전달해서 겁을 먹게 하기보다는, 십대에게 담배를 팔아서 부자가 되려는 어른에 맞선다는 긍정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전략이 더욱 효과적"(117)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청소년기의 자녀를 이해함과 동시에 부모의 역할과 준비에 대해서도 가르쳐주는데,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양육법은 "권한부여 양육법"입니다. 권한부여 양육법이란, "따뜻한 사랑을 주고, 적절한 한계를 설정하며, (자녀의) 나이에 적합하게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방식이다. 이 양육법은 동시에 안정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균형잡힌 방법이다(53). (자녀에게) 도움을 제공하되 (자녀와의) 분리를 장려하는 것이다"(53).

 

솔직히 길거리에서 십대를 마주치면 눈이 마주칠까 겁나고, 교복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학생을 보아도 훈계는커녕 오히려 고개 속이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에서 경찰서에 붙잡혀 와 있는 동협이라는 학생이 보호자가 되어준 도진에게 "저희 왜 도와주셨어요? 별로 좋은 인연도 아닌데" 하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도진이 (불량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는) 동협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난 어른이고 니들은 아직 보호해야 할 만큼 어리니까." 동협이 힘으로는 도진을 이길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어른의 보호를 받아야 할만큼은 어렸습니다. 저절로 좋아지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관계는 서로가 얼마나 이해하려고 애썼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 십대 시절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그때 제 꿈이 결정되었고, 제 믿음이 결정되었고, 제 가치관이 결정되었으니까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십대, 그들에 대한 최소한 애정으로라도 이 책을 읽어봐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갑니다.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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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3
루치아 임펠루소 지음, 최병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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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품이 명화임을 아는 것보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왜 명화로 불릴 만한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명화라면 늘 생각할 만한 질문들을 제시해줄 것이다"(8).

 

 

이탈리아 여행은 제 오랜 꿈입니다. 로마에도 가보고 싶고, 피렌체에도 가보고 싶고, 밀라노에도 가보고 싶고, 또 시실리아 섬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가 바로 베네치아입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영상이나 사진으로 볼 때마다 그 이국적인 풍경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베네치아의 낙조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몸살이 날듯 합니다.

 

이탈리아가 이토록 매혹적인 것은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고대 로마 유적 뿐 아니라, 그곳이 르네상스를 꽃피운 본토이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발달한 미술과 건축물도 죽기 전에 이탈리아에 꼭 가봐야 할 이유 중 하나입니다.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12세기, 그러니까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이행하는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주요작품부터" 르네상스의 절정을 거쳐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베네치아 회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교육적인 용도"로 설립된 미술관인데,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혁명군이 베네치아를 점령하여 "100여 군데의 종교 건물이 철거되고 40여 개의 교구 교회의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과정 중에서 "교회가 가지고 있던 여러 점의 미술품"을 구입하여 설립한 미술관입니다(11). 이런 까닭에, <베니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제단화를 비롯한 성화가 많이 보입니다.

 



 

 

미술에 대해 아주 일반적인 대중적 지식밖에 없는 저는 <베니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아는 화가의 이름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베니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기행은 새로운 만남이었고 낯선 여행이었습니다.

 

위의 작품은 조르조네의 <폭풍>이라는 작품입니다. 저자는 이 그림이 "베니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작품이 명화인 것은 우리에게 "생각한 말한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랍니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새로운 수수께끼는 "새로운 도상학적 시도"라는 것,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재"라는 것, "자연 풍경에 대해 놀라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등을 종합하여, 바로 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그림의 소재는 미술사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가장 뛰어난 해석은 피사의 유명한 고고학자인 살바토레 세티스가 제시한 것으로 원죄로 인해 천국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운명을 표현했다는 것"(64)이라고 합니다. 빛과 색채, 구도, 그리고 상징들을 어떻게 풀이해 내느냐에 따라, 또 거기에 감상자의 감정을 더하여 해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그림을 읽어주고 책'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일 것입니다.

 

<베니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읽으며 하나 배운 것은 해석의 열쇠를 어디서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이 명화를 감상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색채치유학'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색채론에 의하면 "주황색은 임산부와 젖을 먹이는 어머니들에게 아주 좋은 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서양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치마는 거의 주황색"이라는 것입니다(박광수, 의식주 힐링칼라 中에서). "라파엘로를 비롯한 중세 화가들의 성모상은 거의 주황색 치마를 입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성모도 대부분 빨간색인듯, 주황색인 듯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미술가들의 심미안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기행은 (우리에겐 낯선) 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간략한 설명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포인트를 콕콕 짚어줍니다.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설립되기 전, 베네치아는 "오랜 세월 동안 자치권을 가지고 있던 베네치아"가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로 편입시킨 후라는 설명을 염두에 두면, 아마도 이탈리아와는 독자적으로 차별화된 양식의 회화를 발전시키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 (제게 그런 미술사적 지식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감상하는 또다른 의미와 재미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 간다면 베네치아를 방문하고 베니치아에 간다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미술관입니다. 그곳에서 이 그림들을 다시 만난다면 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몹시 반가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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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열린책들 세계문학 3
알베르 카뮈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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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끔찍한 필연성을 사랑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334).

 

 

 

"그 이후 운명이 그에게 허락한 최후의 7개월은 예정에 없던 유서가 되고 만 [최초의 인간]의 열광적인 집필에 바쳐진다. <때로는 마침표도 쉼표도 찍지 않은 채 판돈하기 어려운 속필로 펜을 달려 쓴 144페이지의 원고>라고 카트린이 표현한 그 뜨거운 상상력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367).

<최후의 인간>은 카뮈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미완성 소설', '미발표 원고'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카뮈의 최후의 소설입니다. 카뮈가 숨을 거두기까지 "살아 있던 마지막 6개월 동안에" 질주하듯 써내려간 이 작품은 "온갖 자전적인 내용이 전혀 여과되지 않은 상태로 노출되어"(367), 카뮈를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민낯의 '카뮈'를 만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이기도 할 것입니다. 미완성의 육필 원고를 정리한 것이라 판독할 수 없는 글자도 있지만, 작가의 메모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카뮈는 이렇게 글을 썼구나' 하는 감상과 함께 그의 작업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인간>은 큰 줄거리는 '아버지 찾기'라고 부제를 붙여도 좋을 듯합니다. 마흔 살의 아들이 어머니의 부탁으로, 전몰장병들의 묘소에 묻혀 있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1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그러니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와의 추억도 하나 없는 아들은 아버지의 무덤을 찾으면서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 앞에서 돌연 깨달아지는 한 가지 사실이 그의 마음에 강한 동요를 일으킵니다.

 

(...) 스물아홉 살. 갑자기 어떤 생각이 뇌리를 치는 듯하여 그는 몸속 깊이에까지 동요를 느꼈다. 그 자신은 마흔 살이었다. 저 묘석 아래 묻힌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지만 그 자신보다 더 젊었다(33).

 

당혹스럽게도 죽은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은 아들이 자신보다 어린 아버지의 무덤에서 빠져 들었던 감정은,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그 무엇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어린아이 앞에서 다 큰 어른이 느끼는 기막한 연민의 감정"(33)이었습니다. 아들은 불현듯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실 그에게 바로 그 삶을 주고 나서는 금방 바다 저 건너편의 낯선 땅으로 가서 죽어 버린 한 사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로서는 단 한 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채 그 삶은 송두리째 흘러간 것이었다(34).

 

그리하여 아들은 "한 낯모르는 사람으로만 여겨 왔던"(35)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그에게 더 가깝게 여겨지는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35) 알아보기로 합니다. 옮긴이는 이 아들의 여정을 "원천과 뿌리"를 "찾아가는 일종의 순례 행로"라고 표현합니다(370). <최초의 인간>은 아버지를 알고자 했던 아들이 서서히 복원해내는 과거와 고향과 가족들의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그 여정 속에서 결국 아들이 다시 찾은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그 자신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누구의 기억 속에도 아버지는 생생한 존재로 살아있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기억은 벌써 부자들의 기억만큼 풍요롭지 못하다. (...) 물론 가장 확실한 것은 마음의 기억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마음은 고통과 노동에 부대껴 닳아 버리고 피곤의 무게에 짓눌려 더 빨리 잊는다.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는 것은 오직 부자들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죽음이 지나간 길의 희미한 자취를 표시할 뿐이다. 그리고 잘 견디려면 너무 많은 기억을 하면 못 쓴다. 매일매일, 시간시간의 현재에 바싹 붙어서 지내야 했다(90).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 그의 부조리한 죽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조국의 깃발 아래 집징당했을 때 아직 프랑스를 한번도 본 일이 없었다. 그는 프랑스를 보았고 그리고 죽었다. (나의 가족들처럼 보잘것없는 가족들이 프랑스에 바친 것)"(303, 부록2 '노트와 구상' 中에서).

 

어린 시절은 다시 찾지만 아버지는 되찾지 못한 아들이 마주한 진실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자신이 "최초의 인간"이었다는 것과,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 없이 혼자 자라며 혼자 세상과 마주하고 혼자 삶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 모두 최초의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 그가 오랜 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서는 저마다가 다 최초의 인간이었다. 또 그 땅에서는 그 역시 아버지 없이 혼자서 자랐을 뿐, (....) 그는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잠재적 능력만을 지닌 채 자라고, 혼자서 자신의 윤리와 진실을 발견해 내고 마침내 인간으로 태어난 다음 이번에는 더욱 어려운 탄생이라고 할, 타인들과 여자들에게로 또 새로이 눈뜨지 않으면 안 되었다(203).

 

어린 시절이 아니라, 마흔 살이나 된 아들이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게 된 것은, 앞을 향해 내달렸던 젊은 열정이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마흔 살이 되어, 그는 누군가 자기에게 갈 길을 가르쳐 주고 나무람이나 칭찬을 해줄 사람이, 어떤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권력이 아니라 권위가"(312).

 

<최최의 인간>은 일종의 아버지 찾기 있지만, 어린 시절과 고향과 가족을 따라 차례로 떠났던 순례의 행로를 가득 메우며 존재하는 것은 오히려 '어머니'였습니다. 카뮈의 노트를 보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에게 쓴 것"(316)일지도 모른다는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읽어주기를 원하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들의 작품을 단 한 줄도 읽을 수 없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그 어머니에게 말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 즉 그의 어머니가 자기의 생명이요 살인 그 모든 것을 읽어 주었으면 하는 것,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사랑, 그의 유일한 사랑은 영원히 벙어리일 것이다"(316).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위험 속에서 자라서 말 없는 체념을 강요받으며 맹목적인 인내 속에서 말 한마디 없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견디는 삶을 살아온 어머니처럼 살 수 없었던 아들은, 넘쳐나는 광기로 " 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건설했고 창조했고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326)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모든 광기에 골고루 몸"을 던지며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온 아들은, 시대를 초월한 듯 몇 마디 말 없이 살아온 엄마의 침묵이 훨씬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최초의 인간>에는 어머니를 향한 카뮈의 사랑과 존경, 그리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 숨쉬고 있습니다. 탐욕스러울 정도로 인생을 사랑한, 살려는 광기, 그것이 바로 그가 그토록 부조리한 세상 앞에 절망해야 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을 꿈꿀수록 지독히 현실적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 그에게 삶의 이유들을 부여해 주던 그 지칠 줄 모르고 한결같은 너그러움으로 늙어 갈 이유와 반항하지 않고 죽을 이유 또한 그에게 제공하리라는 맹목적인 희망에만 자신을 맡긴 채, 오늘 삶이, 젊음이, 존재들이 어떻게 구해 볼 길도 없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290).

<최초의 인간>이 대작처럼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카뮈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 먼저는 삶 전체를 조망하면서도 순간으로 지나치는 생의 어느 한 지점을 벅찬 환희로 다시 마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호흡이 아주 긴 문장들이 많아 주어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지 다시 문장의 첫 구절로 돌아가야 할 만큼 그의 문장들이 내달리고 있지만, 빨리 읽어내려갈 수가 없는 책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 어떤 감정들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 내 안에서 솟구쳐 올라 오래도록 내 마음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슬프고 아름답고 빛나는 이야기입니다.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영영 떠나버린 그가 새삼 몹시도 안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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