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인간 열린책들 세계문학 3
알베르 카뮈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의 끔찍한 필연성을 사랑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334).

 

 

 

"그 이후 운명이 그에게 허락한 최후의 7개월은 예정에 없던 유서가 되고 만 [최초의 인간]의 열광적인 집필에 바쳐진다. <때로는 마침표도 쉼표도 찍지 않은 채 판돈하기 어려운 속필로 펜을 달려 쓴 144페이지의 원고>라고 카트린이 표현한 그 뜨거운 상상력의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367).

<최후의 인간>은 카뮈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미완성 소설', '미발표 원고'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카뮈의 최후의 소설입니다. 카뮈가 숨을 거두기까지 "살아 있던 마지막 6개월 동안에" 질주하듯 써내려간 이 작품은 "온갖 자전적인 내용이 전혀 여과되지 않은 상태로 노출되어"(367), 카뮈를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민낯의 '카뮈'를 만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이기도 할 것입니다. 미완성의 육필 원고를 정리한 것이라 판독할 수 없는 글자도 있지만, 작가의 메모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카뮈는 이렇게 글을 썼구나' 하는 감상과 함께 그의 작업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인간>은 큰 줄거리는 '아버지 찾기'라고 부제를 붙여도 좋을 듯합니다. 마흔 살의 아들이 어머니의 부탁으로, 전몰장병들의 묘소에 묻혀 있는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1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그러니 얼굴도 모르고, 아버지와의 추억도 하나 없는 아들은 아버지의 무덤을 찾으면서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 앞에서 돌연 깨달아지는 한 가지 사실이 그의 마음에 강한 동요를 일으킵니다.

 

(...) 스물아홉 살. 갑자기 어떤 생각이 뇌리를 치는 듯하여 그는 몸속 깊이에까지 동요를 느꼈다. 그 자신은 마흔 살이었다. 저 묘석 아래 묻힌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지만 그 자신보다 더 젊었다(33).

 

당혹스럽게도 죽은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은 아들이 자신보다 어린 아버지의 무덤에서 빠져 들었던 감정은,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그 무엇이 아니라, "억울하게 죽은 어린아이 앞에서 다 큰 어른이 느끼는 기막한 연민의 감정"(33)이었습니다. 아들은 불현듯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실 그에게 바로 그 삶을 주고 나서는 금방 바다 저 건너편의 낯선 땅으로 가서 죽어 버린 한 사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로서는 단 한 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채 그 삶은 송두리째 흘러간 것이었다(34).

 

그리하여 아들은 "한 낯모르는 사람으로만 여겨 왔던"(35)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그에게 더 가깝게 여겨지는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35) 알아보기로 합니다. 옮긴이는 이 아들의 여정을 "원천과 뿌리"를 "찾아가는 일종의 순례 행로"라고 표현합니다(370). <최초의 인간>은 아버지를 알고자 했던 아들이 서서히 복원해내는 과거와 고향과 가족들의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그 여정 속에서 결국 아들이 다시 찾은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그 자신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누구의 기억 속에도 아버지는 생생한 존재로 살아있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기억은 벌써 부자들의 기억만큼 풍요롭지 못하다. (...) 물론 가장 확실한 것은 마음의 기억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마음은 고통과 노동에 부대껴 닳아 버리고 피곤의 무게에 짓눌려 더 빨리 잊는다.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는 것은 오직 부자들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은 그저 죽음이 지나간 길의 희미한 자취를 표시할 뿐이다. 그리고 잘 견디려면 너무 많은 기억을 하면 못 쓴다. 매일매일, 시간시간의 현재에 바싹 붙어서 지내야 했다(90).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 그의 부조리한 죽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조국의 깃발 아래 집징당했을 때 아직 프랑스를 한번도 본 일이 없었다. 그는 프랑스를 보았고 그리고 죽었다. (나의 가족들처럼 보잘것없는 가족들이 프랑스에 바친 것)"(303, 부록2 '노트와 구상' 中에서).

 

어린 시절은 다시 찾지만 아버지는 되찾지 못한 아들이 마주한 진실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자신이 "최초의 인간"이었다는 것과,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 없이 혼자 자라며 혼자 세상과 마주하고 혼자 삶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 모두 최초의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 그가 오랜 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서는 저마다가 다 최초의 인간이었다. 또 그 땅에서는 그 역시 아버지 없이 혼자서 자랐을 뿐, (....) 그는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잠재적 능력만을 지닌 채 자라고, 혼자서 자신의 윤리와 진실을 발견해 내고 마침내 인간으로 태어난 다음 이번에는 더욱 어려운 탄생이라고 할, 타인들과 여자들에게로 또 새로이 눈뜨지 않으면 안 되었다(203).

 

어린 시절이 아니라, 마흔 살이나 된 아들이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게 된 것은, 앞을 향해 내달렸던 젊은 열정이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마흔 살이 되어, 그는 누군가 자기에게 갈 길을 가르쳐 주고 나무람이나 칭찬을 해줄 사람이, 어떤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권력이 아니라 권위가"(312).

 

<최최의 인간>은 일종의 아버지 찾기 있지만, 어린 시절과 고향과 가족을 따라 차례로 떠났던 순례의 행로를 가득 메우며 존재하는 것은 오히려 '어머니'였습니다. 카뮈의 노트를 보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에게 쓴 것"(316)일지도 모른다는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읽어주기를 원하지만,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들의 작품을 단 한 줄도 읽을 수 없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그 어머니에게 말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 즉 그의 어머니가 자기의 생명이요 살인 그 모든 것을 읽어 주었으면 하는 것,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사랑, 그의 유일한 사랑은 영원히 벙어리일 것이다"(316).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위험 속에서 자라서 말 없는 체념을 강요받으며 맹목적인 인내 속에서 말 한마디 없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저 견디는 삶을 살아온 어머니처럼 살 수 없었던 아들은, 넘쳐나는 광기로 " 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건설했고 창조했고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326)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모든 광기에 골고루 몸"을 던지며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온 아들은, 시대를 초월한 듯 몇 마디 말 없이 살아온 엄마의 침묵이 훨씬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최초의 인간>에는 어머니를 향한 카뮈의 사랑과 존경, 그리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 숨쉬고 있습니다. 탐욕스러울 정도로 인생을 사랑한, 살려는 광기, 그것이 바로 그가 그토록 부조리한 세상 앞에 절망해야 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을 꿈꿀수록 지독히 현실적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 그에게 삶의 이유들을 부여해 주던 그 지칠 줄 모르고 한결같은 너그러움으로 늙어 갈 이유와 반항하지 않고 죽을 이유 또한 그에게 제공하리라는 맹목적인 희망에만 자신을 맡긴 채, 오늘 삶이, 젊음이, 존재들이 어떻게 구해 볼 길도 없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290).

<최초의 인간>이 대작처럼 느껴지는 것은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카뮈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 먼저는 삶 전체를 조망하면서도 순간으로 지나치는 생의 어느 한 지점을 벅찬 환희로 다시 마주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호흡이 아주 긴 문장들이 많아 주어가 어디에서 시작되고 있는지 다시 문장의 첫 구절로 돌아가야 할 만큼 그의 문장들이 내달리고 있지만, 빨리 읽어내려갈 수가 없는 책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 어떤 감정들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 내 안에서 솟구쳐 올라 오래도록 내 마음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슬프고 아름답고 빛나는 이야기입니다.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영영 떠나버린 그가 새삼 몹시도 안타까워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