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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야기 - 무신론자를 위한
조반니 파피니 지음, 음경훈 옮김, 윤종국 감수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만일 그리스도가 틀렸다면, 우리에겐 절대적인 부정과 자발적인 포기밖에는 남는 게 없을 것이다. 완벽하게 엄격한 무신론 - 오늘날 회의론자들이 취하는 뭔가 위선적이고 뒤틀린 무신론이 아닌 -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고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139).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사고로 허망하게 떠나버린 어린 생명들을 지켜보며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을 회의하게 된다고 합니다. 신에 대한 회의에 빠진 사람들은 신이 있다면 이럴 수 없다고 하고, 인생에 대한 회의에 빠진 사람들은 신앙을 갖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 조반니 파피니는 그의 명성만큼이나 유명한 무신론자였다고 합니다. 공공연하게 종교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며 무신론자임을 고백했던 그가 돌연 <예수 이야기>라는 책을 발표하며 "가톨릭으로의 회심"을 알린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이탈리아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고 합니다. 그토록 부정했던 것을 깊숙이 받아들이기까지 그의 내면 세계에서 일어난 소용돌이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의 영혼을 그의 삶을 삼켜버린 '예수'라는 한 사람(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한)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예수 이야기>는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의 행적을 연대기적으로 정리하여 그의 생애를 한 편의 드라마로 재구성한 책입니다. 예수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어졌던 예수 이야기는 총 4개의 복음서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4개의 복음서는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을 각각 4개의 망원경으로 4개의 다른 각도에서 조명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이야기>는 그 4개의 복음서를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해냈습니다. 그러나 연대기적 순서는 공관복음의 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나 짧은 공생애를 보내고 죄인의 몸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후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가기까지 전생애를 낱낱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노벨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명망있는 조반니 파피니는 예수의 행적, 가르침, 기적, 주변 인물들을 역사적으로 문학적 맥락 속에서의 해석을 시도하는데, 물론 유명 언론이지마 문학가로서 해석의 객관성을 담보하지만 일면 '파파니 개인의 입장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신앙고백이라고도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한 편의 역사소설 같은 분위기이지만, 어떤 부분은 주석인 듯 읽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동방박사가 찾아와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장면을 이렇게 풀어냅니다. 자연을 대표하는 동물들에 이어 백성을 대표하는 목동들이 찾아오고, 세 번째 힘이라 할 수 있는 지식을 상징하는 동방박사들이 그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25). (논란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세례 의식이 처음에는 익사 의식에서 비롯되었다든지 하는 흥미로운 주석들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86).
또 어떤 장면들은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성경구절에 숨은 뜻을 밝혀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소년 예수를 잃어버린 뒤 다시 찾았을 때,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49) 저자는 이 구절에 숨겨진 메시지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왜 나를 찾느냐? 너희는 내가 길을 잃지 않을 것을 모르느냐? 그 누구도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것은 누군가 나를 땅속에 파묻어둘지라도 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지 못할지라도 나를 믿는 자가 있는 곳에는 항상 내가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만일 돌아오는 길에 내가 숨거나, 혹은 죽는다 해도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며 부활할 것이다. 나를 잃었다면 나를 되찾으면 된다"(39).
조반니 파피니가 집중 조명하는 역사적 인물 예수는 역설적이고 급진적인 혁명가의 모습입니다. 예수의 사회적 신분은 미천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계급 간 경계가 분명했던 신분사회에서 예수는 높은 계급에 속하지 않았다. (...) 예수는 일반 백성 가운데서도 최하층 계급에 속했다. 떠돌이 부랑자, 사기꾼, 도망자, 노예. 죄수, 창녀와 같이 미천한 이들과 같은 부류에 있었다"(42). 예수가 하고자 한 일은 사회의 전복입니다. "예수는 기쁨으로 마무리한 참행복의 설교에서 인간의 계급을 뒤집어엎었다. 예수는 계속해서 삶의 가치를 바꿀 것이다. 예수를 재평가하는 그 어떤 말도 예수의 역설만큼 그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131).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역설가는 예수다. 그는 최고의 역설가이자 근본적이고 겁 없는 반전의 혁명가다. 예수의 위대함도, 예수의 영원한 새로움과 젊음도 거기에 있다. 빠르든 늦든 위대한 사람들이 복음에 끌리는 비밀 역시 예수의 역설에 있다. 예수는 죄악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들을 바로잡으려 한다. 그렇다면 죄악의 소굴인 세상의 원리를 뒤집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135).
그러나 예수가 뒤집어엎으려고 한 것을 보이는 세상이 아닙니다. 혁명은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첫 외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죄를 뉘우치는 수준이 아닙니다. 저자는 헬라어를 풀이하며 이것은 "정신을 바꾸라는 것", 즉 "예수는 우리에게 정신의 본질을 변화시키라고, 즉 영을 바꾸라고 말하고 있는 것"(105)이라고 설명합니다.
혁명가로서 예수 삶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 죽음입니다. 이 책은 십자가 앞에서 마주해야 했던 예수의 공포 등을 밀도있게 포착해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어떤 인물도 예수만큼 위대한 역설가이자 혁명가일 수 없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를 쓴 이탈리아 추기경 '엔니오 안토넬리'는 "이 책 <예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의 문학적 토양인 회의주의를 알아야 한다. 당시 회의주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더듬는 가운데 절대자의 빛을 발견하는 식으로 귀결되곤 했다"고 설명합니다. 가난한 인간의 실존을 고발하며 "결국 비관주의자들이 옳았다"고 토로하는 한 무신론자가 "석가모니는 인간이 처한 불행을 보고 삶이 억압당하고 있다고 가르쳤다. 반면 예수는 아주 황당해 보일 만큼 숭고한 희망을 전한다"(136)고 한 고백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예수 이야기>는 "무신론자를 위한 예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어디까지 소화할 수 있을지 조금 의문이 듭니다. 성경 지식은 물론 신학과 철학과 문학적 해석이 녹아 있으면서 때로는 개인의 입장에서 예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예수를 전혀 모르는 독자에게는 쉽지 않은 책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 묵직한 메시지가 신앙을 가진 독자들에게 더 빠르게 전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수를 따르는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를 위해 이 세상이 말하는 가치를 분토와 같이 버리겠다고 다짐하고서는, 어느 새 다시 세상의 가치를 좇고 있는 나를 봅니다. 나는 과연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물음 앞에 당당히 "예, 그렇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예수처럼 제가 역설적이고 혁명적인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아프게 뼈를 파고 들었습니다. 싫어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무시할 수 없는 단 사람이 "예수"라는 측면에서 한 번쯤 관심을 가지고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철학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권합니다.
"예수를 따르려면 배고픔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진실로 믿어야 한다. 곡식이 풍성한 밭도, 창고에 쌓인 많은 재물도 모두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호사스러운 여행 가방도 두둑한 노잣돈도 없이 초라한 외투 하나만 걸치고 예수와 함께 길을 떠날 각오가 돼야 한다. 들에서 이삭 껍질을 벗기고, 남의 집 문 앞에서 구걸할지라도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워야 한다"(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