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알아서 할게요
박은지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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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걷다가 
내 행복을 놓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다.
-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 中에서 

세상은 '프로 오지라퍼'들 때문에 얼마나 피곤한가, 이 책을 읽으며 절절하게 깨달았습니다. 현대인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상을 꼼꼼하게 돌아보니 우리는 참 많이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직업, 취미, 식습관, 몸무게, 화장술, 육아, 연애, 심지어 결혼생활에까지 참견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남의 일에 이렇게까지 관심이 많았나 싶습니다. 

문제는 그 관심이 '상당히 가볍고 때로는 무례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취향이나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필요 이상의 지적과 참견, 건조한 질책, 일방적인 권유와 조언들. 누군가는 이런 오지랖을 '차가운 관심'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는 난무하는 훈수들이 얼마나 사람을 질리고 불편하게 하는지를 일깨우며, 그런 참견을 듣는 일에 지친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와 조언입니다. 


이 책은 인간관계에, 일에, 사랑에 지쳐 있는 이들을 위한
작은 위로와 조언이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데?' '조금 이기적으로 살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더 행복한데?'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 "여전히 선택하는 삶을 살고 싶은 당신을 위해" 中에서

이 책이 '세상의 오지랖에 맞서 진짜 나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조언이라면,
어떤 독자들은 "뭐야, 결국 이 책도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또 다른 훈수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아서 할게요>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설득하고 권하는 책이 아닙니다. 강요받은 삶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저자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며, 거기에서 얻은 지혜를 나누는 책입니다. 이 책에 담긴 따뜻한 조언은 세상의 평가에 쉽게 휘둘렸던 '우리'를 향한 다짐이기도 합니다. 나부터 변하자는, 용기를 내자는 다짐.


그러니까 남에게 조언을 건네기 전에
내가 선을 넘고 있는 건 아닌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선의로 건넨 말이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세상엔 내가 알고 있는 삶의 방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과한 걱정을 하기엔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中에서 

사실대로 말하면, 저에게 이 책은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꽤나 따끔한 질책이었습니다. '아닌 것 같은 직장'에서 자신을 소모하며 괴로워하는 청년에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반협박성 참견을 일삼으며,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못 견뎌내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냐는 뻔한 조언으로 청춘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던 '어른'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했습니다!

차근차근 자기의 생각을 참 잘 표현하는 저자는, 사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는 분인 듯합니다.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말'쯤은 가볍게(!) 무시하기도 하는 세상인데, 저자는 참 정중하게 그것을 거절하고 있으니까요. 저자처럼 자기 중심을 잘 잡고 살고 싶다는 바람도 생깁니다. 그 누가 아니라, 바로 내가 세상을 피곤하게 만드는 '프로 오지라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무섭게(!) 반성하며, 서로에 대한 예의, 나와 다른 인생에 대한 예의를 배웠습니다. 역설적이게도 프로 오지라퍼들이 먼저 읽으면 제일 좋겠지만, (세상, 특히 세상의 평가에 맞서서) 스스로 자기 내면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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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연필 일러스트 10000 일러스트 10000 3
페이러냐오 회화 스튜디오 지음, 권소현 옮김 / 글송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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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 색연필로 그리고 붓으로 칠하면 완성!

딱히 취미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며 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일기도 그림일기를 좋아했고요. 친구들은 스티커를 사서 다이어리를 꾸밀 때도 저는 손그림으로 일상이나 감정이나 날씨를 그려 넣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표현력이 뛰어났더라면 더 좋을 뻔하였지만, 솜씨는 별로 없어도 작은 일러스트로 사물을 그리는 시간이 제게는 나름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습니다. 




 


                                                                 


덕분에 요즘 꼬마 친구들과 친하지는 데도 그림이 좋은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좀처럼 차분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뛰어다니기 바쁜 녀석도 그림을 그리며 놀자고 하면 곧잘 따라옵니다. 아이들이 제일 즐거워하는 그림 놀이는 자기가 무엇을 그렸는지 어른들이 알아맞히는 것입니다. 늘 공주와 왕자님을 그리는 꼬마 친구도 그림 속 스토리는 매번 달라지니까요. 아이와 그림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과 관찰력에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림은 작은 디테일의 차이가 많은 이야기와 엄청난 변화를 담아내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며 놀다 보니, 그림의 표현력을 조금 더 발전시켜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사실적인 그림보다 디테일을 잡아내는 훈련을 하고 싶었던 제게 <색연필 일러스트 10000>이 눈에 띄었습니다. <색연필 일러스트 10000>은 수채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붓에 물을 묻혀 채색하는 색연필 일러스트입니다. 붓으로 채색하는 과정이 취미라고 하기에는 조금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 가볍게 색연필 일러스트를 배우려 했던 분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본격적인 취미를 가져보거나, 아니면 취미의 수준을 조금 더 전문적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분들에게 매우 좋은 교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더 연습을 해서 붓으로 채색하는 과정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엄청난 호기심을 보일 듯합니다. 그림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꼭 스티커를 직접 그리고 만드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책의 수준을 따라가려면 많은 연습과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책의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혼자 즐기며 놀기에도 좋은 참고 자료입니다. 아이들은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그림이 가득하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더라고요. 슈퍼 히어로나 공룡이 있었다면 더 좋아했겠지만, 남자아이들도 책장을 넘겨보며 즐거워합니다. 수채 색연필이나 붓이 없어도, 그림을 따라 그리며 놀기에 좋은 예쁜 일러스트가 가득합니다. 주제별(패션, 인물, 맛있는 음식, 아기자기한 물건, 귀여운 동물, 식물, 즐거운 여행)로 분류되어 있는 그림을 잘 조합하면 훌륭한 그림 이야기책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일상을 좀 더 즐겁게 보내는 비결, <색연필 일러스트 1000>와 함께해보기를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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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과 서쪽으로
베릴 마크햄 지음, 한유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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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돌아보지 말고 기억에 남은 시간들이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말 것. 그 시간은 이미 죽었으니까. 지나간 세월은 이미 정복돼 안전하게 보인다. 반면 미래는 만만찮게 보이는 구름 속에 살아있다. 미래로 걸어 들어가면 구름은 걷힌다. 나는 이 사실을 배웠다"(206).

현대 사회는 더없이 복잡하고 다양해진 것 같지만, 인간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무늬의 패턴이 보입니다. 보통은 나고, 자라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늙어가지요. 나고 자라는 그의 아이는 다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늙어갈 겁니다. 디테일의 차이가 있을 뿐, 큰 그림으로 보면 사는 모습이 모두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전에는 사는 지역에 따라 삶의 패턴에 나타나는 디테일이 차이 나게 달랐던 것도 같은데, 요즘은 그 경계마저도 지워놓고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면, 동양의 삶과 서양의 삶의 구분이 확고했으나, 지금은 과거만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일정한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벗어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홀로 간다는 것은, 무엇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모험'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매력적이고, 많은 이들에게 회한을 남기는 것은,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꿈꾸는 자에게 필요한 '커다란 용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뜻일 겁니다. 어째서 신은 우리에게 모험에 대한 욕구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주신 것일까요. 


"내가 아는 한 당시 아프리카에서 조종사가 직업인 여성은 내가 유일했다"(28).

<이 밤과 서쪽으로>는 30여 년간 아프리카에서 보낸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미지의 땅, 신비의 땅으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에서 한 여성이 그저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테지만, 베릴 마크햄이라는 여성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최초', '성공'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인생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여성 최초로 경주마 조련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많은 경마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1931년경) 아프리카에서 프리랜서 조종사로 일하는 유일한 여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서양을 사쪽으로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는 경이적인 기록도 그녀의 것입니다. 

아프리카를 날아다녔던 그녀는 홀로 비행하는 자유와 아름다움과 고독을 이렇게 당당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 행성은 비행기다. 그리고 나는 이 행성의 유일무이한 거주자다"(29). 그녀의 삶은, "딱 하나, 지루하다는 형용사만 빼고 어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다"는 아프리카를 쏙 빼닮았습니다. "런던으로 가서 1년간 지내고 나서야 나는 산다는 것의 지루함을 입에 올리는 지식인들을 이해하게 됐다"(27)고 고백할 만큼, 아프리카를 뛰어다니고, 날아다닌 그녀의 삶은, 독자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내게는 안장 가방 두 개와 페가수스가 있었다. 안장 가방에는 말 덮개와 솔, 대장장이용 칼, 잘게 부순 귀리 3킬로그램, 아프리카말병에 대비한 온도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보다 적게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213). 

<이 밤과 서쪽으로>는 내 인생에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될까를 자꾸 돌아보게 만듭니다. 나의 인생에 그녀의 인생이 대입될 때마다 초조한 시간의 그림자가 함께 덮쳐 왔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생애를 남겨두고 떠날 때, '불러'(사냥개)처럼 소리 없는 침묵으로 뜨거운 작별을 고할 수 있기를 꿈꾸어봅니다. "싸울 때마다 하나씩 새겨졌던 흉터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혼자서나 나와 함께 누렸던 즐거운 기억들, 맡았던 냄새들, 사소한 놀이, 사냥해서 잡은 혹멧돼지, 소리 없이 살금살금 다가왔던 표범의 발바닥에 대한 기억들을 한때 위대했으나 이제는 차갑게 식은 심장에 봉인한 채 끝을 맞이했다"(213-214).

<이 밤과 서쪽으로>는 참으로 아름다운 책입니다. '지혜로운 거인처럼 누워 있는' 아프리카 땅이,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이, 시간도 고통이 되는 죽음의 그림자조차 아름다운 언어로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어째서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 책을 읽고 작가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문장은 단순히 글쓰기 능력만으로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고독했던 시간들이 그녀에게 사색하는 힘도 길러주었던 것일까요. 질투나게도 그녀는 작가 못지않게 글까지 잘 씁니다. 번역자가 다시 보일 정도로 번역의 힘이 엄청나게 느껴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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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망 - 인생의 밤이 길고, 상처가 깊을 때
케이티 데이비스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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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상은 내 아이들과 그들이 살던 환경을 '절망'이라 불렀다. 양육의 양 자도 모르는 철부지 미국 처녀가 생판 모르는 우간다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나섰을 때도 세상은 '절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불러 아이들의 상처 난 부위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대언하는 특권을 허락하셨다(162).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를 생각합니다. "양육의 양 자도 모르는 철부지 미국 처녀가 생판 모르는 우간다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냥 시간을 쪼개어 아이를 돌보는 '사역'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식으로 입양해서 같이 사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녀의 삶 속으로 아이들이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둔 것이다. 아이들로 가득찬 집은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 피곤한 삶이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삶이 특권인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과 더 없이 친밀하고도 깊게 교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피곤하고 소란한 일상 가운데서 그녀를 은밀히 만나 주신 곳은 뜻밖의 장소였습니다. 그곳은 삶의 어두운 골짜기, 고통과 슬픔과 상실의 한복판이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딸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친엄마에게 내주어야 했던 자리, 딸의 빈 자리를 고통스럽게 바라보아야 했던 자리,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찾으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던 친구가 하나님이 꼭 살려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배신하고 죽음을 맞이한 자리, 속이 울렁거리고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줘야 했던 자리입니다. <그래도 소망>은 소망이 꺾이는 고통 속에 하나님과 씨름하며 몸부림을 쳤으나,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소망'이 아니라 '내 뜻'이 꺾이는 과정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을 소망하는 자는 그 고통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기쁨과 평안"을 맛볼 수 있는지도 말입니다. 

"한때 서구의 기독교는 사생활과 사역, 집과 일을 구분했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힘들지만 우리만큼이나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다 보니 이런 구분이 점점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느껴진다. 우리의 경우 삶과 사역을 구분할 수 없다. 삶 자체가 사역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집으로, 그리고 우리 삶에 보내 주신 사람들을 그분의 눈으로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할수록 그분은 누구도 사역 대상이나 전도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 보였다. … 하나님은 내 눈을 열어 우리가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을 때 그분의 아름다움을 가장 깊이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해 주셨다"(98).

<그래도 소망>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방해받는 삶의 아름다움, 절망뿐이라고 생각했던 일상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 성경 말씀이 실제가 되는 현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진 소망의 실체! 이 모든 이야기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한 저에게는 두려움과 부담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 아름다우나 그럴 용기가 없고, 서로 사랑하는 삶이 마땅하나 막상 부딪치면 그거야 말로 죽을 맛이고, 하나님은 성과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성과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소망>을 읽으며 하나님을 묵상할수록 영혼 안에 차오르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래도 소망>은 하나님께 답을 구할 것이 아니라, 답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뜻을 고집하며 하나님께 길을 묻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씨름들이 우리의 참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붙들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꼭 붙들기 위해 씨름했는데, 사실은 모든 순간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책입니다. 밑줄긋기를 포기한 책이기도 합니다. 감동적인 문구에 모두 밑줄을 긋다가는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요셉을 떠올렸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 도저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인데도,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셨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시는 것 같은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래도 소망> 되심을 이 책이 강력하게 증언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소망)은 어떻게 세상의 것과 다른지 확인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영원을 바라보는 소망은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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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새근새근 잠든 아기,
빨랫줄 위에서 펄럭거리는 분홍 옷가지들,
친구의 격려,
충분히 일용할 양식,
입구에 쌓여 있는 샌들들, 
수박 주스를 서로 먹겠다고 달려드는 입들,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주는 아픔,
생판 모르던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는 집.

-케이티 데이비스 메이저스, 그래도 소망, p. 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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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어둠 속에서 주님을 만날 뿐 아니라
심지어 어두운 시간도
선물임을 깨달은
모든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 케이티 데이비스 메이저스, 그래도 소망, p.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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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눈 April Snow K-픽션 21
손원평 지음, 제이미 챙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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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봄옷 위에 두꺼운 외투를 걸친 젊은이들이 눈싸움을 하며 이 이상한 계절을 만끽하고 있었다"(47-48).

어릴 적, 교과서는 이렇게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살기 좋은 나라라고요. 어떤 나라는 눈을 모르고, 또 어떤 나라는 1년 내내 따뜻하기만 한다는데, 한 곳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경험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당연하게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니, 사계절도 때로 지루해집니다. 여름이 오겠지 하면 여름이 오고, 이제 가을이네 하면 어느 새 가을이 와있고, 유난히 추운 겨울을 지나며 봄이 올까 싶을 때에도 거짓말처럼 당연하게 봄이 오는, 작년도, 올해도, 내년도 똑같을 그런 예측 가능한 날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월에 내리는 눈은 특별하지요. "4월에 눈이 내리는 게 이례적인 현상임엔 분명했지만 최근 몇 년간 봄눈이 여러 번 왔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30)라 해도 말입니다.
4월의 눈은, 똑같은 악몽이 영원토록 되풀이 되는 것 같은 당연한 반복에 생기는 작은 균열과 같은 사건입니다. 4월에 내리는 눈은 "익숙한 모든 것들을 전혀 다른 형체로 바꿔놓고", "그래서 모든 게 특별해 보"이게 만드니까요(40).

<4월의 눈>은 4월의 눈처럼, 례적이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닌, 어떤 사건을 겪어내고 있는 부부의 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의 주장에 따라 양수 검사를 받게 된 아내는 "그 거대한 바늘이 배 속을 뚫고 들어갈 때", "아이가 움찔하는 걸 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검사 때문에 죽어버린 아이를 낳게 된 그 가정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또 전혀 없는 일도 아닌, 그 고통으로 당연하게 반복되었던 일상은 서서히 비틀어져갔습니다. 남편은 "우리에게 닥친 일이 잠깐 내린 비라고 생각했었"고, "다시 꽃이 피어날 거라고, 발리에서처럼 근심 없는 날들이 올 거라고"(50) 믿었지만, 나아지는 것 같은 순간에도 모든 것은 금세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고, 영원토록 되풀이되는 똑같은 악몽에 갇혀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들의 일상에 다시 <4월의 눈> 같은 이례적인 일상이 끼어듭니다. 여행자를 위한 홈스테이 교환 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고, "일 년의 절반 이상이 눈으로 뒤덮여"(34) 있는 핀란드에서 온 한 여성이 부부의 집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4월의 눈>은 친절한 소설은 아닙니다. 그 핀란드 여성은 원래 1월에 오기로 했었는데, 어째서 그때 돌연 여행을 취소했었는지, 왜 4월에야 다시 오게 되었는지, 이혼을 결심했다 '4월의 눈'처럼 갑자기 찾아온 손님 때문에 잠시 예전으로 돌아갔던 이 부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이야기는 돌연 끝이 납니다. 그러나 독자는 느끼고 있습니다. 핀란드 여성에게 카레를 대접하고, 둘은 어떻게 만나 부부가 되었는지를 들려주고, 부부싸움을 들키고, 그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흐느껴 울었던, 아주 잠깐이지만 낯선 존재와 함께하며 맞이했던 그 낯선 풍경으로 인해, 전혀 달라진 것 없어 보이는 그들의 일상이 "무언가는 아주 천천히 바뀌고"(76)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날 나는 가이드에게, 발리에서는 꽃이 지는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이상한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발리엔 언제나 꽃이 피어 있답니다"(48).

우리는 언제나 꽃이 피어 있는 발리 같은 행복을
소망하지만, 인생은 4월에 내리는 눈이 있어 오히려 소망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망할 필요가 없는 인생보다, 소망할 수 없는 것을 소망할 수 있는 인생이 훨씬 살아볼만 하다고 말입니다.

<K-픽션> 시리즈는 "최근 발표된 가장 우수하고 흥로운 작품을 엄선하여 출간"한다는 취지를 담아 한영대역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4월의 눈>은 '창작노트'와 '해설'고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영대역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창작노트와 해설을 참고하여, 책을 한 번 더 읽어보는 것도 이 시리즈를 감상하는 한 방법이 되겠습니다. 창작노트와 해설을 읽고 작품을 다시 보니, 소설(문학)이란 깊은 우물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의 샘에서 물을 길어내듯, 음미할수록 마음에서 계속 솟아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읽어낼 수 있는 소설입니다. 문학과 친해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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