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눈 April Snow K-픽션 21
손원평 지음, 제이미 챙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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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봄옷 위에 두꺼운 외투를 걸친 젊은이들이 눈싸움을 하며 이 이상한 계절을 만끽하고 있었다"(47-48).

어릴 적, 교과서는 이렇게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살기 좋은 나라라고요. 어떤 나라는 눈을 모르고, 또 어떤 나라는 1년 내내 따뜻하기만 한다는데, 한 곳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경험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당연하게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니, 사계절도 때로 지루해집니다. 여름이 오겠지 하면 여름이 오고, 이제 가을이네 하면 어느 새 가을이 와있고, 유난히 추운 겨울을 지나며 봄이 올까 싶을 때에도 거짓말처럼 당연하게 봄이 오는, 작년도, 올해도, 내년도 똑같을 그런 예측 가능한 날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월에 내리는 눈은 특별하지요. "4월에 눈이 내리는 게 이례적인 현상임엔 분명했지만 최근 몇 년간 봄눈이 여러 번 왔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30)라 해도 말입니다.
4월의 눈은, 똑같은 악몽이 영원토록 되풀이 되는 것 같은 당연한 반복에 생기는 작은 균열과 같은 사건입니다. 4월에 내리는 눈은 "익숙한 모든 것들을 전혀 다른 형체로 바꿔놓고", "그래서 모든 게 특별해 보"이게 만드니까요(40).

<4월의 눈>은 4월의 눈처럼, 례적이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닌, 어떤 사건을 겪어내고 있는 부부의 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남편의 주장에 따라 양수 검사를 받게 된 아내는 "그 거대한 바늘이 배 속을 뚫고 들어갈 때", "아이가 움찔하는 걸 봤"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검사 때문에 죽어버린 아이를 낳게 된 그 가정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또 전혀 없는 일도 아닌, 그 고통으로 당연하게 반복되었던 일상은 서서히 비틀어져갔습니다. 남편은 "우리에게 닥친 일이 잠깐 내린 비라고 생각했었"고, "다시 꽃이 피어날 거라고, 발리에서처럼 근심 없는 날들이 올 거라고"(50) 믿었지만, 나아지는 것 같은 순간에도 모든 것은 금세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고, 영원토록 되풀이되는 똑같은 악몽에 갇혀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들의 일상에 다시 <4월의 눈> 같은 이례적인 일상이 끼어듭니다. 여행자를 위한 홈스테이 교환 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고, "일 년의 절반 이상이 눈으로 뒤덮여"(34) 있는 핀란드에서 온 한 여성이 부부의 집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4월의 눈>은 친절한 소설은 아닙니다. 그 핀란드 여성은 원래 1월에 오기로 했었는데, 어째서 그때 돌연 여행을 취소했었는지, 왜 4월에야 다시 오게 되었는지, 이혼을 결심했다 '4월의 눈'처럼 갑자기 찾아온 손님 때문에 잠시 예전으로 돌아갔던 이 부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이야기는 돌연 끝이 납니다. 그러나 독자는 느끼고 있습니다. 핀란드 여성에게 카레를 대접하고, 둘은 어떻게 만나 부부가 되었는지를 들려주고, 부부싸움을 들키고, 그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흐느껴 울었던, 아주 잠깐이지만 낯선 존재와 함께하며 맞이했던 그 낯선 풍경으로 인해, 전혀 달라진 것 없어 보이는 그들의 일상이 "무언가는 아주 천천히 바뀌고"(76)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날 나는 가이드에게, 발리에서는 꽃이 지는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가이드는 이상한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발리엔 언제나 꽃이 피어 있답니다"(48).

우리는 언제나 꽃이 피어 있는 발리 같은 행복을
소망하지만, 인생은 4월에 내리는 눈이 있어 오히려 소망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망할 필요가 없는 인생보다, 소망할 수 없는 것을 소망할 수 있는 인생이 훨씬 살아볼만 하다고 말입니다.

<K-픽션> 시리즈는 "최근 발표된 가장 우수하고 흥로운 작품을 엄선하여 출간"한다는 취지를 담아 한영대역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4월의 눈>은 '창작노트'와 '해설'고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영대역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창작노트와 해설을 참고하여, 책을 한 번 더 읽어보는 것도 이 시리즈를 감상하는 한 방법이 되겠습니다. 창작노트와 해설을 읽고 작품을 다시 보니, 소설(문학)이란 깊은 우물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의 샘에서 물을 길어내듯, 음미할수록 마음에서 계속 솟아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읽어낼 수 있는 소설입니다. 문학과 친해지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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