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과 서쪽으로
베릴 마크햄 지음, 한유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절대로 돌아보지 말고 기억에 남은 시간들이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지 말 것. 그 시간은 이미 죽었으니까. 지나간 세월은 이미 정복돼 안전하게 보인다. 반면 미래는 만만찮게 보이는 구름 속에 살아있다. 미래로 걸어 들어가면 구름은 걷힌다. 나는 이 사실을 배웠다"(206).

현대 사회는 더없이 복잡하고 다양해진 것 같지만, 인간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무늬의 패턴이 보입니다. 보통은 나고, 자라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늙어가지요. 나고 자라는 그의 아이는 다시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늙어갈 겁니다. 디테일의 차이가 있을 뿐, 큰 그림으로 보면 사는 모습이 모두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전에는 사는 지역에 따라 삶의 패턴에 나타나는 디테일이 차이 나게 달랐던 것도 같은데, 요즘은 그 경계마저도 지워놓고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면, 동양의 삶과 서양의 삶의 구분이 확고했으나, 지금은 과거만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일정한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길에서 벗어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홀로 간다는 것은, 무엇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모험'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매력적이고, 많은 이들에게 회한을 남기는 것은,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꿈꾸는 자에게 필요한 '커다란 용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뜻일 겁니다. 어째서 신은 우리에게 모험에 대한 욕구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주신 것일까요. 


"내가 아는 한 당시 아프리카에서 조종사가 직업인 여성은 내가 유일했다"(28).

<이 밤과 서쪽으로>는 30여 년간 아프리카에서 보낸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미지의 땅, 신비의 땅으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에서 한 여성이 그저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테지만, 베릴 마크햄이라는 여성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최초', '성공'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인생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여성 최초로 경주마 조련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많은 경마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1931년경) 아프리카에서 프리랜서 조종사로 일하는 유일한 여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서양을 사쪽으로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라는 경이적인 기록도 그녀의 것입니다. 

아프리카를 날아다녔던 그녀는 홀로 비행하는 자유와 아름다움과 고독을 이렇게 당당하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 행성은 비행기다. 그리고 나는 이 행성의 유일무이한 거주자다"(29). 그녀의 삶은, "딱 하나, 지루하다는 형용사만 빼고 어떤 말이라도 붙일 수 있다"는 아프리카를 쏙 빼닮았습니다. "런던으로 가서 1년간 지내고 나서야 나는 산다는 것의 지루함을 입에 올리는 지식인들을 이해하게 됐다"(27)고 고백할 만큼, 아프리카를 뛰어다니고, 날아다닌 그녀의 삶은, 독자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내게는 안장 가방 두 개와 페가수스가 있었다. 안장 가방에는 말 덮개와 솔, 대장장이용 칼, 잘게 부순 귀리 3킬로그램, 아프리카말병에 대비한 온도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보다 적게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이상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213). 

<이 밤과 서쪽으로>는 내 인생에 남겨진 시간이 얼마나 될까를 자꾸 돌아보게 만듭니다. 나의 인생에 그녀의 인생이 대입될 때마다 초조한 시간의 그림자가 함께 덮쳐 왔기 때문입니다. 나의 모든 생애를 남겨두고 떠날 때, '불러'(사냥개)처럼 소리 없는 침묵으로 뜨거운 작별을 고할 수 있기를 꿈꾸어봅니다. "싸울 때마다 하나씩 새겨졌던 흉터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혼자서나 나와 함께 누렸던 즐거운 기억들, 맡았던 냄새들, 사소한 놀이, 사냥해서 잡은 혹멧돼지, 소리 없이 살금살금 다가왔던 표범의 발바닥에 대한 기억들을 한때 위대했으나 이제는 차갑게 식은 심장에 봉인한 채 끝을 맞이했다"(213-214).

<이 밤과 서쪽으로>는 참으로 아름다운 책입니다. '지혜로운 거인처럼 누워 있는' 아프리카 땅이,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이, 시간도 고통이 되는 죽음의 그림자조차 아름다운 언어로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어째서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 책을 읽고 작가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도 같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문장은 단순히 글쓰기 능력만으로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고독했던 시간들이 그녀에게 사색하는 힘도 길러주었던 것일까요. 질투나게도 그녀는 작가 못지않게 글까지 잘 씁니다. 번역자가 다시 보일 정도로 번역의 힘이 엄청나게 느껴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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