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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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올 새로운 생명들, 새로운 세계들에 비록 나는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몇 가지 나의 글, 나의 언어들이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그들의 마음속에서 씨앗이 되고, 불씨가 되고,

그리고 작은 터널 속 빛과 같은 것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떠날 때의 모든 절망 속에서 남기고 가는 희망으로

오늘 이별을 얘기합니다(52).

 

이어령 선생님의 유고집 <작별>은, 이어령 선생님께서 "내가 없는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쾌하고, 기발하고, 뜨거운 <작별>이라니요! 역시 이어령 선생님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없는 세상에 내가 남길 것은 무엇인가?"를 얼마나 뜨겁게 고심하셨을까요? 그런데 그 귀중한 시간을 하는 이별 얘기를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노래로 시작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집합 기억'이라는 말을 설명하시며, 선생님이 "평생 겪은 것을 담아낼 가장 중요한 DNA 같은 말"(11)을 찾아내셨습니다. 그것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여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를 걸쳐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어린 시절의 노래였습니다. <작별>은 선생님의 80년 동안의 경험을 이 다섯 가지 키워드(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로 정리하며, 그것이 어떻게 '백두산'과 이어지는 지를 들려줍니다. 재밌는 것은 '백두산'을 제외하고는 다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 낯선 외국인, 그게 "원숭이"입니다. 그런데 '원숭이 엉덩이'이 숨겨진 우리네 정서는 잘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업신여기는, 일종의 오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오기가 그 많은 외압과 외래 문화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온, 한국 사람들의 단점이기도 하면서, 오늘 우리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원동력이라고 설명합니다.

 

외국 문화와 우리 문화가 접촉할 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먹거리'인데, "사과"는 바로 그것을 상징합니다. '복숭아'가 우리의 것이라면, '사과'는 서양 문화를 상징하는데, 아담의 사과(선악과)로부터 시작하여, 파리스의 사과, 뉴턴의 사과, 윌리엄 텔의 사과, 스티브 잡스의 사과, 튜링의 사과까지, 서양 문화는 '사과' 하나로 다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과의 특징은 '접목'이라는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바나나"는 그 수많은 과일 중에서도 우리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그 무엇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좁은 환경에서는 체험할 수 없었던, 씨가 없는 바나나! 바나나는 겉은 노랗지만, 껍질을 벗기면 속은 하얗게 서양인이 되어가는 우리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먹거리는 문명으로 이어집니다. "기차"는 모든 문명을 상징하는데, 개화기의 기차는 우리에게 이별의 상징이었고, 빼앗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기차는 우리의 희망을 꺾은 역사로부터 출발하지만,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가 나누었던 '삶은 계란'의 정이 우리를 다시 살게 했노라고 일러줍니다.

 

원숭이와 먹거리와 문명,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는 문명 단계의 제일 마지막은 "비행기"입니다. 우리는 날개가 없지만 날고 싶어하는 꿈을 꾸지 못했고, 비행 실험을 하다 떨어져 죽은 모험가도 없지만, 종이비행기를 만들고 그글 띄우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요즘 뜨는 사람이 많은데, 뜬다와 난다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난다는 것은 자기 날개를 달고 자지가 가고 싶은 데를 향해서, 목표를 향해서 가는 것인데, 자기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떴어도 금세 고꾸라진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향해서, 자기가 가고 싶은 데를 향해서 가려면 자기만의 튼튼의 엔진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죠.

 

 

내가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키워드들이 만들어지려면

지나간 나의 이야기, 다섯 개의 키워드, 역전의 드라마로서,

우리가 이제는 세계를 향한 발신자로서 세계와 친구가 되고,

외국인이 더 이상 원숭이가 아니고, 더 이상 사과나 바나나나 기차나 비행기가 남의 것이 아닌

우리 것이 되어버린 이 근대화 100년 속의 그 슬기가 필요해요(66).

 

<작별>은 이렇게 우리 것이 아니었던 개화기의 다섯 가지 키워드가를 통해 이제 다음 세대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키워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백두산부터는 우리가 다섯 개의 키워드가 아닌 새로운 키워드를 만들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시대가 온 것예요"(65).

 

그리고 선생님은 "내가 없는 세상의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백두산'에서 생겨난 "반도 삼천리"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가셨습니다. 지금은 대륙과 바다 사이에 끼어 반도성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앞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반도성의 회복'이라는 것입니다.

 

이 '반도성의 회복'은, 지고 이기는 것밖에 없는 서양의 양자택일 방식이 아닌, 우리의 가위바위보의 지혜와, 남들은 못 쓴다고 내다 버리는 것들을 그냥 '버려둠'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5G, 누릉지, 묵은지, 우거지, 콩비지, 짠지) 우리의 '버려둬'의 철학과, 그리고 선생님이 계속 강조해왔던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하나되는 디지로그의 세계,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어울리는 눈물 한 방울의 세계, 바로 생명자본의 세계 속에서 꽃피게 될 것이라고 예언 같은 지혜를 남겨주십니다.

 

 

잘 있어라, 하는 '잘'은 디지로그의 생명자본, 눈물 한 방울입니다.

이걸 여러분에게 남겨놓고 가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 가, 하고 손을 흔들 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잘 있어, 틀림없이 너희들은 잘 있을 거야, 잘 있어, 하고

떠날 수 있는 것입니다(142).

 

이 시대의 지성이라 불린 이어령 선생님은 <작별>을 통해 어쩌면 평생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일깨우기 원하셨던 바로 그 지혜를 우리의 기억 속에 새겨주고 가셨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고향은 오스트리아였는데, 이를 오스트레일리아로 잘 못 알고, '호주댁'이라고 부르며,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6.25 전쟁 때 제트 비행기를 '호주 비행기'라고 불렀던, 그렇게 '어리숙했던' 우리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어령 선생님의 노고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의 언어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이야기로,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주셨던 것이지요.

 

<작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어서, 앉은 자리에서 내리 읽었습니다. 잘 읽히고, 재밌습니다. 정말 탁월한 이야기꾼이시며, 그 지혜는 끝을 모르겠습니다. 잘 가, 잘 있어요, 라는 우리의 인사말이 이렇게 뜨거운 인사였던가요. 이어령 선생님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슬퍼집니다. 이제 선생님이 남겨주신 '슬기'로 새롭게 열어가야 할 세상, 여기 그 새로운 세상을 주도할 강력한 키워드가 이 책 속에 들어있습니다. 특별히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비밀스럽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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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영어 필사 낭독 BOOK 2 : King Solomon’s Wise Words 솔로몬 영어 필사 낭독 BOOK 2
박광희 지음 / 가나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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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3 Love erases all sins

 

10 An evil wink / gets you into trouble.

And foolish chattering / destroys you.

사악한 윙크는 너를 곤경에 빠뜨린다.

그리고 어리석은 잡담은 너를 멸망시키리라.

 

11 The mouths / of those who do right / are a fountain of life.

But the trouble / caused by what sinners say / destroys them.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입은 생명의 샘이다.

그러나 악인들의 말로 인한 고난은 그들을 멸망시키리라.

 

12 Hate / stirs up fights.

But love / erases all sins / by forgiving them.

미움은 싸움을 일으킨다.

그러나 사랑은 용서함으로써 모든 죄를 지운다.

 

13 Wisdom is found / on the lips / of those who understand / what is right.

But those who have no sense / are punished.

무엇이 옳은지를 깨달아 아는 사람들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다.

그러나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벌을 받으리라.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솔로몬 필사 낭독>입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영어하고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영어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성인들에게도, 영어 울렁증이 있다는 대학원생에게도, 외국인 손님이 자주 찾아와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직장인들에게도, 그리고 교회 청년부 목장 나눔 교재로 <솔로몬 필사 낭독>을 적극 추천 중입니다. <솔로몬 필사 낭독>은 오랫동안 영어를 손에서 놓았던 분들도 영어 공부를 '부담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좋은 교재이면서, 동시에 <잠언> 말씀을 묵상하기에도 좋은 교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영어로 읽다 보면, 한글 성경만 읽었을 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은혜를 발견할 수도 있답니다!

 

<솔로몬 필사 낭독>은 구약성경 <잠언> 말씀을 '필사'하고, '낭독'하는 방법으로 '영어'를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잠언>은 격언과 금언처럼 간결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비교적 필사하기도 쉽고, 또 암송하기에도 좋은 운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량도 적당하기 때문에 매일 공부하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특히 바로 바로 영어 낭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영어 말문을 틔우는 훈련을 하기에도 편리하답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분들은 '스터디'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함께하는 제자들과 매일 아침 출근 전까지 <솔로몬 필사 낭독>을 한 챕터씩 공부하고 단톡에 필사 인증샷 또는 낭독녹음파일을 공유하는 스터디를 구성해볼까 합니다. 큐티 형식으로 잠언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내용을 나누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솔로몬 필사 낭독>으로 잠언 말씀을 필사하고 낭독하다 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영어 공부만을 목적으로 하다 보면, 성경의 지혜를 얻는 일은 놓치기 쉬울 수도 있으니 <솔로몬 필사 낭독>은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한 권을 가지고 여러 번 반복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필사하고 낭독하며 여유롭게 공부하다 보면, 영어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만날 수 있을테니까요.

 

<솔로몬 필사 낭독>으로 만난 <잠언 10:10-13> 말씀을 개역개정 성경으로 읽으면,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느니라 /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리라 /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 채찍이 있느니라"로 번역됩니다.

 

12절 말씀 중에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르느니라"는 구절을 <솔로몬 필사 낭독>으로 읽으면, "But love / erases all sins / by forgiving them."입니다. "사랑은 용서함으로써 모든 죄를 지운다"라고 번역됩니다. '용서'가 죄를 지워버린다는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죄를 없앨 수 있는 방법(권세)이 우리에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도요.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하셨으니, 오늘 이 말씀을 제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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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게리 토마스의 일상영성 3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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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교회는 교인들에게

기도의 방법도 하나, 예배의 방법도 하나, 성경 공부의 방법도 하나라고 말해 왔다.

구원의 길이야 당연히 하나(예수 그리스도)지만,

우리의 복된 구주를 예배하고 사모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 한국어판 서문 中에서

 

 

한국 교회는 '영성'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분들 중에 자기 '영성'을 자랑하는 분들이 많음을 봅니다. '영성'을 신령한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은 기도 중에 주님의 특별한 음성을 들었다거나, 성령께서 무엇인가를 은밀히 보여주었다는 것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간혹 교회 안에서 영성 배틀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나도 모르게 주님을 향한 열정을 다른 성도와 비교하여 '계급화' 하고 있다면 우리 신앙이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신호가 아닐까요.

 

게리 토마스의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는 영성의 개념을 바로 일깨우며, 참된 영성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도해줍니다. 먼저, 게리 토마스는 '영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간단히 말해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 그분과 가까워지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35). 그러니까 영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신령한' 것을 나타내는 어떤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방식'이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게리 토마스가 주목하는 문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데, 그동안 교회는 이것을 획일적으로 교육해왔다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듯, 영성에도 다양한 '영적 기질'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획일적인 방법 안에 가두어두다 보니, 교회 안에서조차 영적 공허로 고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을 좁히지 말라(27).

 

게리 토마스는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를 통해, 각자의 영적 기질에 따라 우리 가운데 크게 아홉 가지 영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예배당 안에서보다 피조 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예배하게 되는 '자연주의 영성', 엄숙하고 장엄한 예배 의식이나 아름다운 음악과 그림 속에서 하나님을 더 친숙하게 경험하는 '감각주의 영성', 훈련된 신앙 생활을 추구하며 전통(의식, 상징, 성례 등) 속에서 믿음이 더 깊어지는 '전통주의 영성', 주의를 산말하게 하는 모든 것을 치우고 고독과 침묵과 단순성 속에서 하나님을 더 친밀히 경험할 수 있는 '금욕주의 영성', 악에 맞서고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예배라고 믿는 '행동주의 영성', 테레사 수녀와 같이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박애주의 영성', 마음껏 손뼉치며 '아멘'을 외치고, 흥겹게 춤추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열정주의 영성', 베다니의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의 발치에 앉아 하나님과 가장 순결하고 깊은 사랑을 나누기 원하는 '묵상주의 영성',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때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느끼며, 힘써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지성주의 영성' 등이 그것입니다.

 

게리 토마스는 자신의 가장 두드러진 영적 기질을 분별하기 원한다면, "자신이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라"(48)고 조언하며, 아홉 가지 영성을 각각 대표하는 인물들을 소개해줍니다.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를 읽으며, 자기 기질을 분별하다 보면, 특정 유형에 강하게 공감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기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전쟁에 능한 용사요, 통치권을 행사한 왕이요, 음악가이자 시인이었던 것처럼, 한 사람 안에 여러 가지 기질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기질을 통합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가진 특정한 영적 기질 안에서 하나님을 마음껏 예배할 수도 있지만, 다른 영적 기질도 얼마든지 개발 가능하다는 것에 우리 마음이 열려 있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특정 영적 기질만 고집하는 것도,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을 좁히는 결과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를 읽으며, 자가 진단을 해보자면, 저는 '자연주의 영성'과 '감각적의 영성', '지성주의 영성'의 기질을 가진 듯 합니다. 자연주의 영성 기질 때문에, 교회 안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도 있지만, 하나님의 피조 세계 안에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라는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과 만나는 일이 즐겁습니다. 아름답고 장엄한 예술이나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될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터치해주시는 것을 느끼며 하나님께 더 친밀히 나아가는 것을 즐기기도 합니다. 가장 약한 것은 '전통주의 영성'이며, 나에게 부족하나 갈망하고 있는 영성은 '행동주의 열성', '박애주의 영성'이라고 진단해보았습니다.

 

게리 토마스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위대한 추구라고 단언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니,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아버지 하나님께 친밀히 나아가는 방법,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방법을 몰랐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다양하고 고유하게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풍성히 예배 받으시기를 소원해봅니다.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를 통해 크게 아홉 가지 영적 기질이 있음을 알게 되어 크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저는 '지성주의 영성'을 가진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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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영성학교 : 자녀 양육의 영적 역동성을 회복하라 - 부모학교 실천편 게리 토마스의 인생학교 6
게리 토마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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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들 형제가 마당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화가 나서 푸념을 했다.

"너희들 때문에 잔디가 망가지잖아!"

그러자 하먼이 아버지가 이렇게 되받았다.

"우리가 키우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지 잔디가 아니오"(54-55).

자격이 있는 사람들, 준비된 사람들만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부모'의 가장 큰 어려움은, 막상 부모가 되어보고 나서야 우리가 얼마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부모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같습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부모도 미성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자녀를 사랑하지만 자녀와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부모, 자녀인데도 사랑을 느끼기보다 버겁기만 한 감정 때문에 당황스럽고 죄책감 때문에 괴로운 부모, 누구보다 사랑으로 잘 키우고 싶었는데 자꾸만 엇나가는 듯한 자녀 때문에 속상한 부모, 진심으로 그럴 수만 있다면 자녀를 내다 버리고 싶다고 절망하는 부모님들을 자주 만납니다. 특히 요즘은 자녀 양육에 있어서 미디어를 비롯한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히 큰 상황으로 보이는데, 자녀가 잘못되면 모든 것이 오롯이 부모 탓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도 부모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부모영성학교>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자녀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부모님들을 돕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게리 토마스는 아주 분명하게 그 모든 것의 기준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기준이 '하나님'이 될 때에만, 우리가 스스로 '부족한 부모'라는 쓰라진 좌절 속에서도 부모로서 소명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자녀를 키우는 데 필요한 수완과 지혜와 에너지가 내게 없을지라도 결국은 나의 자녀를 나에게 맡기신 하나님께서 나를 기꺼이 도우신다는 사실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이 기준이 될 때, 때로 실수할지라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자녀양육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기준이 되면, 자녀 양육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자, 특권이자, 은총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인 우리들은 마치 나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이미 다 되었으니 아이들만 잘 따라오면 가정생활이 한결 잘 풀릴 것처럼 행동하기가 너무 쉽다. 바울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자신을 깨끗케' 하는 데 주력하는 대신에 아이들만 깨끗케 하려 든다"(119).

<부모영성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부모도 자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눈뜨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에만 집중하기 쉬운데, <부모영성학교>는 먼저 자라야 할 것은 자녀가 아니라, 부모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자녀들의 부족한 점만 보는 것을 그만두고, 부모로서 깨끗해져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갈고 닦아야 할 성품이 무엇인지, 자녀를 어디로 이끄는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끝까지 이 일을 잘 감당해낼 수 있도록 전심으로 도우신다. 결국 우리는 그것만 알면 된다"(24).

<부모영성학교>는 "1년 52주 동안 매주 한 편씩"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정독한 후에, 매년 한 번씩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합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부모로서 깊이 묵상해야 할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부모영성학교>는 부모가 될 준비를 하는 예비 부모님들과, 특별히 '스스로 부족한 부모'라는 감정과 싸우고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부모가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일러주고, 특별히 다시 일어설 힘과 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부모'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는 이 사명은 완전히 완수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녀 양육, 너무 너무 어렵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신 아주 특별한 선물임은 확실합니다. 하나님과 협력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약속이자, 좋은 부모가 되기를 기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위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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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기독교 역사 - 악당인가 성자인가, 회복을 위해 마주해야 할 역사 속 기독교
존 딕슨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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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교회사에 대해 지킬과 하이드 같은

상반된 두 얼굴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의연하게 고통을 견디는

겸손한 종의 얼굴과

의로움이라는 명분 아래 사회를 괴롭히려고 안달하는

도덕 경찰의 얼굴이다(95).

'여성학' 수업을 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여성 인권을 위해 일하는 분이 계셨는데, 제가 교회 안에서 일한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적대적으로 대하는지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의 주장에 의하면, 모든 가부장적인 여성 차별은,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인류가 타락했다고 가르치는 교회에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이 세상에 만연한 '인간관'과 비교해볼 때, 예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것인지, 예수님의 제자들이 로마의 인간관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설명해보고 싶었지만, 입도 떼어보지 못했습니다. (외부 세계에 대한 악영향은 둘째치고) 교회의 조직 안에서조차 어떻게 여성 차별이 자행되어 왔는지 나름의 증거(?)를 끊임없이 제시하는 그분을 말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존 딕슨의 이 책,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를 함께 읽고, 제대로 된 토론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사람들은 선하게 행할 수 있고 악한 사람들은 악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이 악을 행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종교다(465).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교회'를 사회악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합니다. 악플러들의 주장처럼, 종교가 없으면 세상은 더 좋아질까요?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는 이 문제에 답하고자 2천 년간 교회가 걸어온 길을 추적합니다. 기독교가 인류에 기여한 부분도 크지만, 사실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답게 사는 데 꾸준히 실패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직시합니다. 역사 속에서 십자군 원정, 종교재판소, 노예제 옹호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음을 시인합니다. 이것은 분명 기독교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마 7:3-5)입니다. 그러나 공정한 평가를 하려면, 어두운 면을 가려서는 안 되겠지만, 어두운 면만 보아서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름다운 곡을 썼는데 때로 교회는 그 곡을 잘 연주했고, 때로는 엉망으로 연주했다"(25).

존 딕슨의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는 교회의 자기비판과 같은 책입니다. 그리고 그 솔직한 자기비판을 통해 '작품'(원곡)과 '연주'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존 딕슨은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어두운 측면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예수님은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을 작곡하셨는데, 기독교인들이 그 곡을 항상 잘 연주한 것은 아니었다"(63).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아름다운 작품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때도 있었고, 전혀 다른 곡으로 연주할 때도 분명 있었지만, 그 원 곡조를 제대로 연주할 때는 세상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교회는 그 설립 문서들에 담긴 이 두 멜로디 라인을 연주할 때

역사 속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였고,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82).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는 그리스도의 가장 독특한 두 멜로디 라인을 짚어주는데, 하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산상설교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존재로 생각하는 혁명을 가져온 장본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존 딕슨은 이 두 멜로디 라인이야말로 예수님이 세상에 남기신 특별한 유산이며,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숭고한 가르침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공정하게 역사를 해석하고자 한다면, 이것이 세상을 급진적으로 바꿔놓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이미 승리했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기독교인들은 훌륭한 패배자, 심지어 즐거운 패배자가 될 수 있었다(107).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슴 뜨거워지는 교훈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힘센 근육질의 기독교"가 아니라, "즐거운 패배자"가 되었을 때, 예수님이 남겨주신 아름다운 원곡을 원곡답게 연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죽은 사람들의 시선을 묻어 주고, 자선 단체와 교육 기관과 병원을 세우고, 노예들을 해방시킬 수 있었던 것은, 힘센 근육질을 가졌을 때가 아니라, 기꺼이 훌륭한 패배자가 되기로 선택했을 때라는 것입니다. 그 뜨겁고 훌륭한 패배의 순간들을 통해 예수님의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은 세상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모든 개인의 평등성 개념을 도입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지만, 그 개념의 발전을 방해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73).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없이 아름다운 곡조를 지으셨다는 것만큼은 분명하지만, 기독교인들이 그 곡조를 잘 연주하지 못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특징이 '사랑'이라고 하셨는데,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는 그 특징이 증오와 편견과 폭력일 때가 많았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문제는 기독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은 연주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곡조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폭력은 인류사에서 보편적 요소였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독보적입니다. 인간에 대한 구분과 차별은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는 윤리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기독교 윤리야말로 인류 역사에 독보적인 자산임이 분명합니다. 만인에 대한 사랑과 평등 개념이 '예루살렘'에서 나온 것일 수밖에 없음을 안다면,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마가 4:2) 예언한 선지자의 노래에 절로 가슴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거룩한 교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가?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는 기독교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기꺼이 들여다보며 공정한 설명을 제시합니다. 교회 역사 속에 뒤얽힌 수치와 영광, 즉 교회가 보여준 최고의 모습과 최악의 모습을 동시에 다루며, 교회가 먼저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들여다보고 인정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종교나, 비종교가 아니라, (잘못된 열정에 사로잡힌) 인간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해줍니다(471). 결국 우리 모두의 눈 속에 들보가 있음을 인정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가 아니라,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에 초점을 맞출 때,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 있다면, 죄인이라는 사실에 겸손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에 우리의 자존감이 훼손되지 않는 것처럼,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는 예수님의 원곡를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교회의 부끄러운 실력에 애통할 수밖에 없으나, 교회가 가진 원곡의 독보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거룩한 교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뜨거운 소망을 불어넣어줍니다.

존 딕슨의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를 읽으며, 진정한 교양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를 믿은 안 믿든, 종교인이든 무신론자이든, 기독교 신앙의 옹호자이든 비판자이든, 인류가 정직하게 가르쳐야 할 역사요, 지식이라 확신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힘센 근육질의 권력을 거머쥐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패배자가 되기를 선택하는 길임을 아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자이든, 따르지 않는 자이든), 모두에게 가장 숭고한 지식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지식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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