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다시 보는 서양 조각 100 알수록 다시 보는 서양 100
차홍규.김성진 지음 / 미래타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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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다시 보는 서양 조각 100>은 "서양 예술사를 압축해놓은, 위대한 조각가의 예술혼으로 생명을 얻은 유럽의 찬란한 문화예술의 현장을 찾아가는 격조 높은 예술여행이다. … 책으로 떠나는 유럽 조각 여행은 조각보다 영롱한 역사의 순간들을 시대마다 다른 예술 양식으로 연출해낸 다채로운 건축과 조각, 개선문, 분수대, 기마상 등으로 변주해 보여준다"(6).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을 보고 왔습니다. 처음엔 생존하는 작가 중 최고의 경매가를 기록했다는 말을 듣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그린 생존 작가의 작품을 직접 관람하는 일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림 해설을 따라가다 보니, 그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어떻게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접근 방식으로 "보는 방식"과 "재현의 문제"에 관해 의문을 제기해온 예술가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지식, 학문, 예술은 우리가 사는 '세계'(나를 포함하고 있는)를 '설명'(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수록 다시 보는 서양 조각 100>은 서양 조각을 '읽어주는' 책입니다. '읽어준다' 함은 서양 예술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조각들을 통해" 인류는 무엇을 추구해왔으며, 신화와 영웅과 믿음(종교)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재현하며 그 이야기를 간직해왔는지, 조각이 품은 상징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역사를 대변하면서도 예술가들은 그것을 어떻게 섬세하고 신비롭고 화려하게 변주해왔는지를 "눈을 열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한 작품, 한 작품 작품 해설을 따라 가다 보면, 눈으로 보면서도 미처 보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던, 곳곳에 숨은 예술적 신비를 친절하게 일깨워줍니다. 예술이 세계를 설명(해석)하고자 했다면, 이 책은 세계를 설명(해석)하고자 했던 예술을 풀이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조각은 3차원적 입체형상을 조형하는 예술"입니다(16).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조각의 기원으로 구약성서 <창세기>를 주목합니다. 그것은 헤겔의 영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헤겔은,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의 형상을 만드시고 입김을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했던 장면에 주목하여, "조각은 물질적 성질을 초월하여 그 속에 인간의 정신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했다"(16)는 말로 조각을 멋지게 정의하고 있으니까요.

<알수록 다시 보는 서양조각 100>은 "조각이 독립된 장르로 발달"했다는 고대 그리스의 고절기부터 그리스-로마의 신화의 역사, 중세 고딕 교회사를 거쳐 르네상스의 인문학 부흥사, 바로크-로코코 양식사, 그리고 근대의 지성사까지 총 100개의 작품을 통해 서양조각사를 방대하면서도 총체적으로 훑습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고, 알게 되니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조각의 특징은 '생동감'이라는 사실입니다. '고졸기의 미소'라고 일컬어지는 조각상의 귀여운 미소에서부터, 조각이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주는 감동과 찬탄은 '유려한 움직임'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뭉클했던 작품은 로마의 공동묘지(칼리스토 카타콤베) 안에 있는 '성녀 체칠리아 석상'이었습니다. 순교자의 시신을 그대로 옮겨놓은 조각상인데, 목부분에 나타나는 참수의 흔적과 3개의 오른쪽 손가락과 하나의 왼손 가락을 통해 그녀의 믿음을 표현한 이 조각상이 마치 살아 있는 듯, 그렇게 성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이밖에도 미켈란젤로와 같이 워낙 유명한 작품들도 다시 보였지만, 베일을 쓴 여인(젖은 천 주름 기법), 로댕과 카미유 같이 너무나 생생해서 파격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작품들을 만나는 일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알수록 다시 보는 서양조각 100>은 '이야기'가 있는 예술사, 예술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각에 대한 깊은 조예 뿐 아니라, 서양문명사까지 재미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입니다. 이야기뿐 아니라 풍부한 사진 자료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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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정승원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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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개정판으로 다시 만난 <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

상상출판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 초판이 나왔을 때, 체첸(러시아 연방에 포함된 자치공화국)에서 2-3년 살다가 돌아온 후배는 이 책을 보더니 감탄에 감탄을 하며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체첸에 머무는 동안 한 번씩 러시아를 여행해보고 싶었는데, 정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흥분하여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의 베이스캠프 격이라는 이르쿠츠크까지 달려가는 꿈을 꾸었고 여행을 약속한 시간이 바로 올해 가을이었는데, 최신개정판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을 다시 만나니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은 원래도 러시아어를 하나도 몰라도 러시아를 두려움없이 자유여행할 수 있도록 꾸며진 꼼꼼한 가이드북이었는데, 개정판은 "지금 바로 이때" 시베리아 지역을 여행하려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실제 정보들이 한층 더 강화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구굴 맵스의 GPS 좌표가 새롭게 추가된 것이 감사합니다. 사실 '길찾기' 앱을 이용해도 헤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GPS 좌표를 입력하면 빠르게 위치를 체크할 수 있으며,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까지의 경로도 확인 가능하니까요. "이 책에 실린 모든 정보는 2019년 5월까지 취재한 내용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신 정보로 가격 변동이나 폐업 여부 때문에 여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였으니, 과연 '믿고 보는 해외여행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나에게 꼭 맞는 네바 페이스 크림은 뭐?

러시아 쪽으로 출장을 다녀오거나 여행을 다녀오는 지인들이 부쩍 늘면서 여행 선물도 종종 받고 있는데, 대부분 향이 좋은 '차' 종류 아니면, 일명 '당근 크림'이라고 하는 뷰티제품입니다. 그런데 다들, "러시아에서 유명하고 가장 인기 있는 뷰티 제품"이라는 말 한마디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골랐는데, 막상 어디에 좋은지는 모르겠다고 했던 지인들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핸드 크림이라고 하며 준 녀석도 있었는데, <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을 보니 페이스 크림이더라고요! 더 놀라운 사실은, '당근 크림'으로 유명하나, '당근'은 약 18가지 종류 중 하나라는 거! 게다가 성분에 따라 효능도 다 제각각 다르다는 것! 이렇게 믿고 볼 수 있는 가이드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떠도는 정보들을 검증해주고, 나에게 필요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맑고 가장 깊은 호수, 바이칼 호는 자연을 사랑하는 여행객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다. … 바이칼 호수의 베이스캠프 격인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릴 만큼 예쁜 건축물들을 자랑하는 만큼, 자연과 인류 문화가 선사하는 볼거리들은 어느 도시들 못지않게 쏠쏠하다고 할 수 있다"_(프롤로그 中에서)

가이드북의 최강자 상상출판의 <셀프트래블> 시리즈 중 <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의 가장 큰 강점은 러시아를 여행해야 할 이유에 묘하게 설득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세이도 아니고 여행 정보를 수록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가이드북인데도, 시베리아 극동지역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죽기 전에 꼭 이 지역을 여행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일으키는 힘이 있습니다.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를 산책하거나, 발레를 감상하거나, 킹크랩, 곰새우 같은 해산물을 마음껏 즐기며 휴식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2시간 반, 저렴한 물가, 아시아의 유럽, 이국적인 풍경, 시원한 날씨, 수준 높은 각종 공연들(발레, 서커스 등), 아름다운 자연, 시원하게 대륙을 가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의 매력을 따라가다 보면 안 가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셀프트래블>은 러시아도 안 되고, 영어도 안 통하는, 초보 자유여행자들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필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가이드북입니다.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효율적으로 여행하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이지 트래블 페어퍼'가 특별부록으로 제공되는데, 급하게 소통이 필요할 때, 여행자에게 필요한 단어가 그림 + 짧은 러시아어 + 영어와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방영되었던 '스페인 하숙'에서 배정남 씨가 직접 만들어갔던 단어장이 생각나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초보여행자들에게는 참으로 은인과 같은, 세심한 가이드북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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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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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몸에 열이 있었나?"

"체온이 38.2도였습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열이 납니다"(16).

매일같이 새벽만 되면 열이 38.2도까지 올라가는 건, 그처럼 새벽에 지속적인 고열이 있다는 건, 결핵균이 여전히 그의 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었고, 그가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경험 많은 의사가 그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25세의 미클로스는 헝가리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입니다. 그 악몽 같은 전쟁이 끝난 지 겨우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미클로스는 몸속에 침투한 결핵균 때문에 6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그에게 내려진 시한부 선고는, 그가 여전히 살아남는 일 말고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인생이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말입니다.

살아남는 것말고는 더 바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클로스는 모두의 상식을 깨뜨리는, 자신만의 작전을 세웁니다. "스웨덴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병원 막사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건강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는 여성들의 정보를 손에 넣은 것"입니다(13). 그것은 117명에 달하는 여성들의 이름과 주소였고, 미클로스는 그들 모두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신붓감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미클로스는 결혼이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미클로스에게 사랑이 필요했다는 것은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결혼을 꿈꿀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사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고, 그러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미래도 설계하며 산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다가옵니다.

<새벽의 열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매일 38.2도까지 올라갔던 그 새벽의 열기가 사랑의 열기로 바뀔 때, 우리 삶은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절망하는 것말고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입니다. 미클로스가 자주 했던 행동이 있습니다. "그는 꼭 말 안 듣는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체중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한 다음 의자의 뒤쪽다리 위에서 균형을 잡곤 했다"(59-60). 위태롭지만 자기 자신과의 내기이기도 했던 이 행동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되든 안 되든 일단은) 희망에 희망을 걸어보는 미클로스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책에 보면, 미클로스가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가 쓴 소설의 표지를 책받침 대신 사용하며 편지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클로스는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몇몇 노동자들이 가진 고요하면서도 거침없는 용기에 감탄했다"고 나옵니다(19). <새벽의 열기>를 읽으며, 저도 똑같은 고백을 해봅니다. 미클로스와 릴리의 고요하면서도 거침없는 용기와 사랑에 감탄하게 되는 실화라고요. "사랑해"라는 흔한 말, 그 고백을 믿지 않게 된지 오래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 믿어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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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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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투 중이다. 이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사고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안에 그분의 성품이자 방법인 사랑을 회복하려고 일하시는 중이다. 우리가 그분께 기회를 드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할을 치유의 신이 아니라 우주적 사형 집행자로 보는 그릇된 법 개념 때문에 그 치유의 사랑이 막혀 왔다"(116).

이 책은 <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의학박사'이자, '미국 최고의 정신과 의사'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신경과 의사가 쓴 책이지만, '신학'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인간의 '마음'을 '의학적'으로 탐구한 책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책의 진짜 주제는 '하나님에 관한 왜곡된 관점 바로잡기'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 어떤 책보다 '신학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의 취지는 삶을 변화시켜 해방을 가져다줄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위력에 사람들을 접속시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약속 - 마음이 새롭게 되어 진정한 평안과 자유를 누린다는 - 을 경험하도록 돕고, 또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다"(23).

이 책이 '신학적'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신학적으로 엄청난 논쟁을 불러올 수 있는, 과감한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적 논쟁으로 번진다면, 그야말로 혈투가 벌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실정법'으로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에 관해 심각하게 왜곡된 사고를 하고 있으며, 이처럼 왜곡된 하나님관이 기독교 전체에 편만해 있기 때문에 기독교가 마음을 치유하고, 성품을 새롭게 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참담하게 왜곡된 하나님관"이 어떻게 기독교 전체에 편만해 있는지를 여러 증거를 통해 예시해주며,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의 법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서구) 기독교 전체가 '실정법' 개념으로 병들어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하나님의 법을 실정법이 아니라 자연법으로 이해할 때,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탁월하게 설명합니다. "기독교를 병들게 한 실정법 개념은 거의 모든 가르침 속에 배어들어 교묘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 율법적 종교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은 나쁜 행실을 법적으로 회계하고, 천국 법정에서의 법적 신분을 조정하고, 전과 기록을 지울 법적 허가증을 얻어내는 등에 급급하다. 이런 법 개념은 경건의 모양을 낳을 뿐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고 사고를 치유하고 성품을 재창조하여 예수를 닮게 하는 능력은 없다"(108).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하나님의 법'에 관해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설교나 강의보다 최고였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삶의 원리는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법, 곧 하나님의 사랑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이보다 더 뜨겁게 반응하게 만들 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밑줄을 아주 많이 그으며 읽었는데,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읽는 일이 좀처럼 없는 저이지만) 몇 번이고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교회들에게 진심으로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복음적이며, 그만큼 위험합니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 교회가 먼저 읽고, 고민하고, 행동하기를 촉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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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를 읽다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 지음, 우리글발전소 옮김 / 오늘의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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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고향은 대지이지만 우리 고향은 관념이야. 너희에게 위험은 감성의 세게에 빠지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위험은 메마른 공간에서 질식하는 거야. 너는 예술가이고 나는 사상가이지. 너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잠을 자지만 나는 황야에서 깨어있다. 내게는 해가 비추고 있으나 네게는 달과 별이 비추고 있지. 네 꿈속에는 소녀가 보이지만 내 꿈속에는 소년이 보인다네"(57).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착한 것이야."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이야." "넌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해." 이렇게 일방적으로 주입된 삶의 방식이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어느 순간 그동안 알아왔고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뿌리째 흔들리는 진동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쌓아올렸던 삶의 조각들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충격이었습니다.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고,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옳은 것이 아니었고, 이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자각 때문에 몹시 혼란스러웠지만 그렇게 제 삶은 다시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헤르만 헤세를 읽다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이 책에도 알을 깨고 나오듯 잠에서 깨어나 삶을 다시 살기 시작하는 청춘이 등장합니다. 그 혼란과 방황은 지루하다 할 만큼 계속되고, 오래되지만, 그가 알을 깨고 나온 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데미안>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이라고 합니다. 작가연보를 보면, <데미안>이 발표된 것이 1919년이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출간된 것은 1930년인데, 저에게는 이 두 책이 쌍둥이처럼 읽힙니다. <데미안>에서, 부모님의 보호 속에 경험하지 못했던 바깥 세계와 맞닥뜨린 뒤, 눈이 먼 것처럼 헤매 다니며 피폐해져갔던 '싱클레어'는 '골드문트'와 닮아 보이고, 싱클레어에게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이 결합된 신성, 곧 아브락사스의 이름을 알려주었던 '데미안'은 잠자고 있는 나르치스를 깨워주었던 '나르치스'와 겹쳐보입니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헤르만 헤세' 자신을, 아브락사스의 존재를 알려준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에게 정신분석학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쳤던 '융'을 상징한다면, 이 책에서는 골드문트가 헤르만 헤세를, 인간과 그 인간의 운명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르치스는 융을 상징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듭니다.

아버지의 권고로 수도원에 들어오고 될 수만 있다면 수도원에 계속 남아 그의 일생을 하나님께 바칠 마음을 갖고 있었던 골드문트와, 그보다 두세 살 나이가 많을까 말까한 매우 젊은 수도원의 교사 나르치스는 모든 점에서 서로 반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나르치스가 사상가요 분석가라면 골드문트는 몽상가요 동신의 소유자였으며, 니르치스가 지성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골드문트는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혼란과 비애가 뒤섞인 묘한 우정을 형성해갑니다. 인간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던 나르치스는 잠자고 있는 골드문트를 깨우고 그를 껍질에서 해방시켜 본래의 성격을 되찾아주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 여겼고, 그런 나르치스에 의해 골드문트는 지금까지 자기 인생의 꿈도, 자신이 믿고 있던 일체도, 또 자신의 천명이요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일체도 위태로워집니다. 그러나 골드문트가 예술에 봉사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을 알았던 나르치스의 직관(?)대로 골드문트는 끝내 조각가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골드문트에게 이 우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이자 치유였습니다. "나는 네가 완전한 골드문트가 되기를 원할 뿐이야"(55).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사랑의 빛 속에 영혼과 영혼의 새로운 결합을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경건하고 금욕적인 동시에 남자다운 이상을 추구해오던 골드문트를 흔들어, 방탕한 생활이 성자로 가는 생활에 가장 가까운 길의 하나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나르치스와의 관계는, 싱클레어와 데미안, 헤르만 헤세와 융의 또다른 모형이라는 점에서 헤르만 헤세의 또다른 자전적 소설이요, 정신분석학적 요소(공허한 우상에 지나지 않은 아버지, 억압된 기억 속에 갇힌 어머니, 유년시대와 어머니의 꿈 등)가 짙은 작품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언젠가 <데미안>이 아름다운 청춘소설이 아니라, 자신의 이교도 신앙을 전파하기 위한 헤르만 헤세의 매우 사적인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던 후유증이 이 소설을 읽어내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데미안>보다 더 강렬하게 와닿았던 것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의 형상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신성한 것을 추구하면서도 악마적이고, 악마적이면서도 신성하고자 하는 우리 안의 두 모습말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헤르만 헤세를 읽다>라는 것이 새삼 흥미롭습니다. 헤르만 헤세라는 대문호의 내면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듯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사적인, 감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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