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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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몸에 열이 있었나?"

"체온이 38.2도였습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열이 납니다"(16).

매일같이 새벽만 되면 열이 38.2도까지 올라가는 건, 그처럼 새벽에 지속적인 고열이 있다는 건, 결핵균이 여전히 그의 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었고, 그가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경험 많은 의사가 그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25세의 미클로스는 헝가리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입니다. 그 악몽 같은 전쟁이 끝난 지 겨우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미클로스는 몸속에 침투한 결핵균 때문에 6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그에게 내려진 시한부 선고는, 그가 여전히 살아남는 일 말고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인생이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말입니다.

살아남는 것말고는 더 바랄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클로스는 모두의 상식을 깨뜨리는, 자신만의 작전을 세웁니다. "스웨덴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병원 막사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건강을 되찾으려 애쓰고 있는 여성들의 정보를 손에 넣은 것"입니다(13). 그것은 117명에 달하는 여성들의 이름과 주소였고, 미클로스는 그들 모두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신붓감을 찾기 위해서 말입니다. 미클로스는 결혼이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미클로스에게 사랑이 필요했다는 것은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결혼을 꿈꿀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사실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고, 그러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미래도 설계하며 산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다가옵니다.

<새벽의 열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매일 38.2도까지 올라갔던 그 새벽의 열기가 사랑의 열기로 바뀔 때, 우리 삶은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절망하는 것말고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입니다. 미클로스가 자주 했던 행동이 있습니다. "그는 꼭 말 안 듣는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체중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한 다음 의자의 뒤쪽다리 위에서 균형을 잡곤 했다"(59-60). 위태롭지만 자기 자신과의 내기이기도 했던 이 행동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되든 안 되든 일단은) 희망에 희망을 걸어보는 미클로스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책에 보면, 미클로스가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가 쓴 소설의 표지를 책받침 대신 사용하며 편지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클로스는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몇몇 노동자들이 가진 고요하면서도 거침없는 용기에 감탄했다"고 나옵니다(19). <새벽의 열기>를 읽으며, 저도 똑같은 고백을 해봅니다. 미클로스와 릴리의 고요하면서도 거침없는 용기와 사랑에 감탄하게 되는 실화라고요. "사랑해"라는 흔한 말, 그 고백을 믿지 않게 된지 오래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 믿어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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