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부사 박응천은 유연의 아내 이씨에게 "나 역시 유연이 억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백씨가 호소해 마지않으니, 형편상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국문이 끝나면 마땅히 바로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P127

채응규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 두려워 도주했으니, 실제 발생한 사건은 사기극과 사기꾼의 도망이었다. 춘수와 백씨는 그것을 형제 살해사건으로 바꾸려 했고 그 결과 유연은 대구부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대구부에서는 여전히 유유가 아니라 채응규가 달아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 P130

삼성교좌 추국은 의금부에서 사헌부와 사간원, 정승이 참여하는 재판이란 의미다. - P135

채응규가 유유가 아니라고 하거나 달아난 것이라고 하거나 유연이 채응규를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형제 살해범에게 동조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P141

형을 살해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 사형이 필연적이므로 유연은 사형 집행을 1, 2년 유예하여 유유의 생존 여부 확인과 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했다. 다른 대응책이 있을 수 없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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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응규가 춘수에게 자신이 유유라고 말한 것은, 1563년 봄, 서울로 가서 석 달을 머무르고 돌아온 뒤이다. 왜 채응규는 1563년 봄 서울에서 3개월을 머무른 뒤 자신이 유유라고 말했을까. 아마도 자신이 유유로 행세하는 데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 P77

채응규가 사 람들에게 반응하는 방식은 똑같았다. 사람들은 채응규가 진짜 유유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를 가짜라고 단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87

유연은 왜 대구 근처까지 와서 채응규를 결박해 대구부로 넘겼던 것인가. 서울에서 대구까지는 열흘 거리다. 유연은 그 10일 동안 채응규와 숙식을 같이하며 관찰과 대화를 통해 채응규가 가짜라는 결론을 얻었을 것이다. - P91

채응규가 첫날밤 이야기를 자신 있게 증거로 제출했던 것은, 그리고 백씨가 그 증거가 진실이라고 확인해주었던 것은 두 사람 사이에 공모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P103

남편이 죽은 것이 아니므로 재혼도 불가능하다. 이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재 적장자의 지위를 대리하고 있는 것은 유연이다. 유연은 앞으로 형망제급의 법과 관행에 의해 적장자의 지위는 물론 유유의 재산까지 차지할 것이다. 이것이 백씨가 처한 상황이었다. - P112

백씨는 유연이 유유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형을 가짜로 몰고 결박해 관에 고소하였고, 지키고 있던 자에게 뇌물을 주어 유유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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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응규를 찾아간 억종과 윤희가 대구 집으로 돌아가자고 요청하자, 채응규는 "아버지의 상에 달려가지 못했으니, 무슨 얼굴로 친구를 보겠는가?"라며 거절하고 따라나서지 않았다. - P68

유연은 백씨에게 유유의 편지를 보자고 하지만, 백씨는 잃어버렸다고 답한다. 집을 떠난 지 4년 만에 나타난 남편의 편지를 아내가 받고 잃어버렸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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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전>은 1562년 유연에게 ‘해주에 있는 채응규란 사람이 ‘유유‘
라고 전했던 최초의 인물이 이제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제 역시 직접 채응규를 만났던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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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년 어느 날, 대구의 사족 유유가 갑자기 집을 나가 종적을 감춘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562년 채응규라는 자가 사라진 유유를 자칭하고 나타났다. - P5

<유연전>은 유연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쓰인 글이므로 모든 자료는 이 의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되고 배치되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기억은 기억하고자 하는 주체, 곧 기억 주체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 P14

유예원의 삶은 당시 지방 사족의 전형이었다. 지방수령으로서 인근의 친한 사족에게 자잘한 선물을 보내고, 모임을 가져 음주가무를 즐기며, 가까운 벗에게 아들을 보내 공부를 시키는 등의 일이 사족의 일상이었다. 유연도 마찬가지였다. - P27

‘유유 사건‘은 지방의 안정된 사족가문의 맏아들로서 과거를 준비하던 유유가 1558년 33세의 나이에 집을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시작되었다. - P29

유유는 일찍이 산에 들어가 독서하다가 홀연 돌아오지 않았다. 유예원과 백씨는 "미쳐서 달아났다"고 하였다. 말이 집 밖으로 나갔지만, 이미 아버지와 아내의 증언이 있었으므로 향리의 사람들은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 P31

유유는 몸이 왜소하고, 수염이 없고, 음성이 부인과 같다. 이것은 유유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성을 강하게 갖고 태어났음을 시사한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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