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그것은 연례행사였다. 남자가 그 꽃을 받은 날은 자신의 여든두번째 생일이었다. 그는 소포를 풀고 선물 포장지를 뜯었다. - P9

매년 11월 1일이면 솜으로 속을 채운 커다란 우편봉투 하나가 어김없이 날아들었고, 그 안에는 마치 누가 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이렇게 꽃이 들어 있었다. - P12

재판은 완전히 종결되었다. 법정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남김없이 말한 셈이다. 사실 그는 지금껏 한순간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유죄를 선고받으리라는 것을. 판결은 오전 10시에 내려졌다. - P17

판사는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금융인 한스에리크 벤네르스트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결했다. 재판은 종결되었고 미카엘은 항소할 뜻이 없었다. - P21

<밀레니엄>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금요일 오늘 아침, 금융인 한스에리크 벤네르스트룀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징역 3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 P24

리스베트가 가져오는 결과물은 오히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막힌 것뿐이었다. 드라간은 그녀를 유일무이한 재능의 소유자라고 확신했다. - P48

그녀를 채용한 것은 순전히 홀게르 팔름그렌 때문이었다. 과거 요한 프레드리크 밀톤의 개인적인 일들을 관리했었고 지금은 조기 은퇴한 변호사다. 그는 행동에는 약간 문제가 있지만 통찰력이 뛰어난 아가씨라고 리스베트를 소개했다. - P51

그는 곧 깨달았다. 리스베트는 밀톤의 관습적인 틀에 자신을 맞출 의사가 전혀 없음을. 앞으로 경력을 쌓기 위해 상담도 해보고 사내교육도 받아보라고 제안하면서 백방으로 그녀를 설득하려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복잡한 딜레마에 빠졌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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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가와서 내 옆에 앉았다. "미안해, 다나."
미안하다고 자기가 저지를 뻔한 짓에 대해서 말인가, 아니면 앞으로 저지를 짓에 대해서 말인가? 미안하다니. 그는 전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번 나에게 사과했지만, 그의 사과방식은 언제나 애매모호했다. - P502

"당신은 나를 미워한 적이 없어. 그렇지?" 루퍼스가 물었다.
"오랫동안 미워한 적은 없었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어. 넌 내 미움을 사려고 참 열심이었는데 말이야, 루피." - P505

노예는 노예일 뿐이다. 노예에게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루퍼스는 루퍼스였다. 그는 변덕스러웠고, 관대하다가 잔인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를 나의 조상으로, 나의 남동생으로, 나의 친구로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나의 주인으로, 나의 연인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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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너무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너무 빨리 ‘성장‘하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오면 그녀의 삶은 너무나 지독하게 변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상처받을 것이고, 그상처는 대부분 루퍼스가 입힐 것이다. - P302

"엄마는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했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사는 편이 나아.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있는 한은." 나는 가방 속에 든 수면제를 생각하면서 내가 얼마나 대단한 위선자인가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고 살라고 충고하기는 참으로 쉬웠다. - P302

백인들은 내가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내가 멍청하거나, 백인 마음에 들고 싶어 열심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두려움과 의혹을 막고 비교적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P315

오 년이나 지났어! 당신은 편지를 한 통 더 쓰고 싶어하지. 혹시 케빈이 첫 번째 편지를 던져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케빈도 앨리스처럼 됐을지 모르지. 자기 동족과 함께 있고 싶어졌을지도 몰라. - P315

케빈은 예전에 당신들이 결혼한 지 사 년이 됐다고 했어. 그렇다면 당신과 함께한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여기에 혼자 있었다는 뜻이지. - P315

"내가 너한테 너무 물렀지." 루퍼스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고 험악해졌다. "보통 검둥이보다 나은 사람처럼 대했어. 이제보니 내가 실수했군!" - P316

앨리스는 드레스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일어나서 나를 붙잡았다. "안 돼, 다나! 가지 마!"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어깨를 늘어뜨렸다. "다 거짓말이야. 난 다시 도망칠 수 없어. 못해. 저 바깥에선 굶주리고 춥고 아프고, 지쳐서 걸을 수도 없게 돼. 그러면 놈들이 개를 풀어 찾아내겠지...... 주여, 그 개들은......." 앨리스는 잠시 침묵했다. - P325

"내가 보면 안 될 곳을 들여다봤거든. 루피 도련님의 침대 서랍 말이야. 그런데 거기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을 찾아냈어."
앨리스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편지 두 통을 꺼냈다. 두 통이었다. 밀봉이 뜯어져서 내 손글씨가 드러난 편지 두통. - P328

두 사람은 거의 내 바로 앞에 멈춰 섰다. 루퍼스는 평소에 타던 회색 말을 탔고, 톰 와일린은 그보다 색이 어두운 말을타고 있었다.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찾고 있었다. - P334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왜 아직도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나를 죽일 뻔한 남자의 노예로 남아 있을까? 왜 그러고도 또 채찍질을 당했을까? 그리고 왜...... 왜 나는 지금 이렇게 겁을 먹었을까. 왜 조만간 다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릴 만큼 겁이 날까? - P342

앨리스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젖은 눈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 본 적이 없는 고통이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내 남편은 결국 돌아왔지만, 그녀의 남편은 오지 않을 것이다. - P357

"여전히 더러운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려고 하는구나. 안그래, 루피?" 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네 아버지에게, 이제는 케빈에게. 너 같은 쓸모없는 인생을 구하려고 내 시간을 허비하다니!" - P364

루퍼스의 시대는 나에게 여태껏 요구받아본 적 없는 것들을 요구했고,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쉽사리 나를 죽일 수 있었다. - P370

"케빈, 가서 내 가방 가져와 침실에 두고 왔어."
"뭐라고? 왜......?"
"어서, 케빈!"
그는 겨우 상황을 이해하고 침실로 향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제발 케빈이 제시간에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이 느껴졌다. 이렇게 빨리, 이렇게 빨리. - P382

복도를 따라 천천히 계단으로 향하면서 왜 내가 자기변호에 나서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적어도 시도는 해보았어야 하지 않나. 나도 순종하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는 걸까? - P429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나는 자세를 바로잡는 루퍼스를 비난했다. "테스를…………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 재산일 뿐이야!"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그를 멍하니 응시했다. - P432

루퍼스가 나빠. 이젠 다 자라서 이체계의 일부가 되어버렸어. 아버지가 운영할 때는 우리를 불쌍히 여길 수 있었겠지. 자기도 완전히 자유의 몸이 아니었을때는 말이야. 하지만 이제는 책임자야. 그리고 당장 일을 벌여서 그 점을 증명해야 했겠지. - P434

"다나, 흑인이란 건 벗겨지지 않는 거래요. 당신보고 당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작자들 따위 알 게 뭐나는군요." - P436

우리는 꽤 비슷하게 생겼어."
"우리가 봐도 비슷하게 생겼지!"
"그렇겠지. 어쨌든 그건 우리가 같은 여자의 반쪽씩이라는 뜻이야. 적어도 루피의 미친 머릿속에서는." - P445

"도대체 어쩌다가 손목을 다쳤어? 출혈로 죽을 수도 있었어! 설마 직접 그은 거야?"
"응. 그래서 집에 올 수 있었어."
"더 안전한 방법이 있었을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손목을 문질렀다. "죽음 직전에 이르는 안전한 방법은 없어. - P468

"나는 생각했어. 나일 수도 있다고, 그 자리에서 목에 밧줄을 걸고 개처럼 끌려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고!" - P479

그는 내가 노예들을 풀어주기 위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믿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순수하게 내놓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루퍼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결국에는 내게도그런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다. -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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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아침마다 전철을 타고 서울에서 인천으로 출근한다. 소요시간은 장장 한시간 반. 저녁마다 인천에서 서울로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하루에만 왕복 세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는 셈이다. - P86

"집이 어디니? 여기서 얼마나 걸리지?"
"배 타고 이십사시간."
수는 흠칫 놀라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어디에 사는지를 물은 것인데 그는 중국의 진짜 집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00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 짜이지엔.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미의 인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은 진짜 작별의 인사를,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만나자는 기약의 인사를 한 것인지도. - P109

영어회화 강사가 이번에는 나를 지목했다. 그는 내게 한 번이라도 장례식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물론 영어로 말이다.
"노" - P114

올해는 정초부터 유난히 부고가 많았다. 푸른 이십대가 이미 지나가버렸음을 상기시켜 주듯 삶은 수시로 내게 검은 옷을 입을 것을 요구했다. 죽음은 겪고 또 겪어도 늘 갑작스러웠다. - P118

하기야 산자가 죽은 자를 어떻게 이해하랴. 뒷부분이 찢겨나간 책처럼 죽은 자의 이야기는 산 자에게 영영 미지의 페이지로 남기 마련인 것을. - P120

어떻게 안부를 단체로 물을 수 있는가. 잘 있느냐고, 잘 지내라고, 이런 말을 어떻게 다수에게 한꺼번에 건넬 수 있냔 말이다. - P123

생전에 가까운 사이였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대개 사람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는 점이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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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형이 편견을 가진 사람이야?"
"훌륭한 나치가 되고도 남았을 놈이지. 누나도 그걸 두고 농담을 하곤 했어. 매형이 있을 때는 절대 안 했지만." - P209

다 부질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아무 통제력이 없었다. 케빈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1819년에 버려졌으니 케빈은 죽은 셈이었다. 수십 년 전에, 어쩌면 한 세기 전에. - P214

흑인 남자는 루퍼스에게 맞아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고, 루퍼스를 때려죽이고 있었다. - P222

"어렸을 때는 친구였지." 루퍼스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어른이 됐어. 그 애가 내가 아니라 검둥이 수컷을 택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 P233

"그래, 확실히 너로군." 와일린은 마침내 말했다. "믿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넌 누구냐? 아니, 뭐냐?" 와린이 물었다.
나는 어떻게 답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와일린이 얼마나 아는지 몰라서였다. - P248

루퍼스의 아버지는 노예들에 대한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최악의 괴물이 아니었다. 전혀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가끔 그의 사회가 합법적이고 적절하다고 말하는 괴물 같은 짓을 하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었다. - P257

"앨리스를 살려줘!" 루퍼스가 다그쳤다.
나는 앨리스에게 도움이 필요해진 이유를 떠올리며 루퍼스를 쳐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몰라도 루퍼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살려주기나 해! 원한다면 얼마든지 날 비난해, 그렇지만 앨리스는 도와줘!" - P280

"네가 밭 일꾼은 아닐지 몰라도 그래 봐야 검둥이야. 루피 도련님이 열받으면 네 삶을 완전히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어." - P288

케빈은 편지를 받을 테고 나를 데리러 올 것이다. 도저히 루퍼스가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고 의심할 수 없었다. 내가 루퍼스의 선의를 잃고 싶지 않은 만큼 루퍼스도 나의 선의를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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