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아침마다 전철을 타고 서울에서 인천으로 출근한다. 소요시간은 장장 한시간 반. 저녁마다 인천에서 서울로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하루에만 왕복 세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는 셈이다. - P86

"집이 어디니? 여기서 얼마나 걸리지?"
"배 타고 이십사시간."
수는 흠칫 놀라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금 어디에 사는지를 물은 것인데 그는 중국의 진짜 집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00

헤어질 때 하는 인사말, 짜이지엔.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미의 인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은 진짜 작별의 인사를,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만나자는 기약의 인사를 한 것인지도. - P109

영어회화 강사가 이번에는 나를 지목했다. 그는 내게 한 번이라도 장례식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물론 영어로 말이다.
"노" - P114

올해는 정초부터 유난히 부고가 많았다. 푸른 이십대가 이미 지나가버렸음을 상기시켜 주듯 삶은 수시로 내게 검은 옷을 입을 것을 요구했다. 죽음은 겪고 또 겪어도 늘 갑작스러웠다. - P118

하기야 산자가 죽은 자를 어떻게 이해하랴. 뒷부분이 찢겨나간 책처럼 죽은 자의 이야기는 산 자에게 영영 미지의 페이지로 남기 마련인 것을. - P120

어떻게 안부를 단체로 물을 수 있는가. 잘 있느냐고, 잘 지내라고, 이런 말을 어떻게 다수에게 한꺼번에 건넬 수 있냔 말이다. - P123

생전에 가까운 사이였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대개 사람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는 점이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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