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내 알려줌세! 강호에는 이런 말이 돌고 있네. 흑목애의 임 대소저가 몸소 자네를 업고 소림사로 찾아가, 방증 대사에게 자네를 구해주기만 하면 자신은 소림파의 처분을 달게 받겠노라고, 찢어 죽이든 삶아 죽이든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애원했다는 것일세."
영호충은 신음을 터뜨리며 벌떡 일어섰다. - P332

"도곡육선, 이제 승복하겠소?"
도근선이 나서서 대답했다.
"영호충은 우리 형제의 친구라고, 영호충이 곧 도곡육선이고, 도곡육선이 곧 영호충이지. 영호충이 맹주가 되면 우리 도곡육선이 맹주가 되는 것과 매한가지인데 승복하지 못할 것도 없잖아?"
도화선도 옆에서 퉁을 주었다.
"세상에 자기가 자기에게 승복하는 법이 어디 있어?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다니."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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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자가 계속 말했다.
"소생이 두 달에 한 번씩 찾아와 여쭤보는 말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오늘이 7월 초하루라 이번에도 그것을 여쭈러 왔습니다. 선생의 뜻은 어떠십니까?"
공손하기 짝이 없는 그의 말투를 들으며 영호충은 속으로 비웃었다. - P34

그는 철판에 새겨진 글자를 더듬으며 천천히 그 뜻을 풀어나갔다. 앞부분이 설명하는 것은 내공을 분산시키는 법과 몸속의 진기를 없애는 법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세상에 어느 누가 평생 동안 고생을 마다 않고 수련한 내공을 없애는 어리석은 짓을 할까? 자결할 생각이라면 또 모르지만, 자결을 하려면 검으로 목을 찌르면 그만인데 무엇 하러 이렇게 쓸데없는 수고를 한담? 내공을 흩뜨리는 것이 내공을 기르는 것보다 더 어려워 보이는데, 이런 것을 익혀서 어디에 쓰지?‘ - P41

‘내가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은 몸속에 도곡육선과 불계 화상의 진기가 들어와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야. 평 의원조차 치료하지 못한 병이고, 소림사 방장이신 방증 대사께서도 《역근경》의 무공을 익혀야만 그 진기를 해소할 수 있다고 하셨지. 그런데 이 철판에 새겨진 내공 심법은 바로 몸속의 진기를 제거하는 방법이 아닌가? 나는 정말 멍청이로구나. 남들은 진기를 잃는 것이 두렵겠지만, 나는 진기를 없애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니…. 이 신묘한 무공이야말로 내게 꼭맞는 심법이야.‘ - P43

그 순간까지도 영호충은 자신이 당세에 제일가는 무시무시한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도곡육선과 불계 화상의 진기와 소림사에서 요양하는 동안 얻은 방생 대사의 진기가 경혈經穴에 스며들어 고스란히 그의 힘이 되었을 뿐 아니라, 조금 전 흑백자에게서 빨아들인 필생의 내공까지 더해져 아홉 명에 이르는 고수의 내공을 흡수했으니, 힘이 솟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P60

영호충이 한참 넋을 놓고 듣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어깨를 툭툭 쳤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어진 일이라 영호충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검을 뽑았다. 눈앞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으나 달빛을 등지고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중 한 사람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속삭였다.
"형제, 안으로 들어가세..
바로 상문천의 목소리였다. 영호충은 몹시 기뻐 소리 죽여 외쳤다.
"상 형님!" - P74

"자네, 아직도 교주님의 신분을 모르고 있었군. 이분이 바로 일월신교의 교주로, 함자는 ‘아 자 ‘행‘ 자를 쓰신다네. 들어본 적 없나?"
영호충도 일월신교가 마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마교 사람들은 자신들 무리를 ‘일월신교‘라고 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들 마교라고 불렀다. 그 마교의 교주는 동방불패라고 알려져 있는데, 임아행이라는 교주는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 P77

임아행이 그에게 말했다.
"영호 형제, 나는 적에게는 몹시 잔혹하고 수하에게는 몹시 엄해서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서호 바닥에서 얼마나 오래 갇혀있었는지 생각해보아라. 너도 같은 경험을 했으니 어떤 기분인지 잘 알 터, 적이나 반역자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데 그런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마음이 들겠느냐?"
영호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P94

‘이 칼이 언제부터 이렇게 빨랐지? 팔을 뻗기만 했을 뿐인데 칼집이 목을 찌르다니….’
영호충은 어리둥절해하며 칼을 내려다보았다. 흡성대법을 익힌 덕택에 도곡육선과 불계 화상, 흑백자에게 받은 진기를 쓸 수 있게 되자 고강한 공력이 더해진 독고구검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 것이었지만, 그 자신은 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 - P179

"너는… 아주 잘했다. 네 사부가 어찌하여 너를 축출했는지 모르겠구나. 듣자니 네가 마교와 결탁했다던데?"
"제가 신중하지 못한 탓에 어쩌다 보니 마교의 인물 몇 사람을 알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정일 사태는 코웃음을 쳤다.
"숭산파같이 제 욕심만 챙기는 부류라면 마교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도 없다. 흥, 정파의 인물이라고 무조건 마교보다 낫다는 법도 없지." - P301

"자네는 매일 후미에 나가 옷을 입은 채 잠이 들고, 항산파의 제자들에게 무례한 짓은 커녕 말 한마디 건네지도 않더군, 자네는 무례한 방탕아가 아니라 예의 바른 군자일세. 묘령의 여승들과 아리따운 낭자들이 한 배에 타고 있는데도 흔들리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단 하루도 아니고 수십 일 동안 한결같이 그리하였으니, 자네같은 당당한 대장부는 고금을 통틀어 찾아보기 어려울 걸세. 이 막대, 크게 감탄했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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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겠습니다. 소생에게는 그만한 복이 없으니 감히 전수해 주십사 청하지 않겠습니다."
방증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소협은 인연이 있는 사람이오."
영호충은 놀라움과 기쁨에 휩싸여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방생 같은 소림의 고승조차 허락받지 못한 소림의 비술을 전수받을 수 있다니, 감히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 P182

영호충은 일어나서 공손히 말했다.
"방장 대사의 호의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허나 소생은 화산파 제자니 사문을 버리고 소림파에 들 수는 없습니다."
방증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빈승이 말한 큰 장애물이 바로 그것이오. 영호 소협, 소협은 이제 더 이상 화산파의 제자가 아니오.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려." - P184

영호충을 구해준 사람은 마교의 고수 상문천이었다. 상문천은 마교와 정파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 세상 두려운 줄 모르는 젊은이가 나타나 적을 물리쳐주자 크게 감격했다. - P213

"형님, 아우의 절을 받으십시오."
상문천은 몹시 기뻐했다.
"이 세상에 나와 의를 맺은 사람은 자네 한 사람밖에 없네. 꼭 기억하게나."
영호충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과분한 총애십니다." - P233

"비록 의형제를 맺었지만, 내 자네에게 목숨을 빚져 마음이 영 편치 않네. 반드시 자네를 살려놓아야만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줌세."
영호충이 생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이는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생각하고 포기한 탓이 컸기에 병을 치료해 주겠다는 상문천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 P239

"자네야말로 내 지기일세. 큰 형님과 셋째 형님은 고작 술을 얻자고중원의 절초를 서역에 전했다며 어찌나 나무라시던지! 둘째 형님은 웃기만 하셨지만, 필시 속으로는 고개를 저으셨을 거야. 내가 득을 본 장사라는 것을 알아준 사람은 자네뿐일세. 자자, 한 잔 더 들게." - P259

"우리가 매장에 찾아온 것은 부탁할 일이 있어서도, 원하는 물건이 있어서도 아니오. 다만 천하 무학의 최고봉인 이곳에서 당세의 고수들에게 풍 형제의 검법을 인정받으려는 것이오. 요행히 승리를 얻으면 우리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떠날 것이오." - P279

때문에 회심의 광초제도 여느 때기럼 반 필기다가 멈줘야 했고, 독필움은 울화가 쌓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만하세, 그만해!"
별안간 그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단정생에게서 술통을 빼앗아 돌탁자 위에 쓴더니 끝을 술에 적셔 허연 백에 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배장군시였다. 시를 이루는 스물세 글자는 한 획 한 회에 정기가 충만했고, 특히 ‘약‘자는 벽을 뚫고 날아갈 듯 시원시원했다. 시를 다 쓰고 나가 쌓였던 울분도 가셨는지, 그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껄껄 웃으며 연지처럼 벽을 붉게 물들인 글씨를 흐뭇하게 감상했다. - P296

황종공이 현을 퉁긴 까닭은 여유롭게 음악을 즐기려는 뜻이 아니라 금 소리에 상승의 내공을 실어 적의 마음을 어지럽히기 위함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적의 진기가 금 소리에 공명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연주에 조종을 당할 수 있었다. - P319

흑백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 .
"풍 소협, 여기 계신 임 노선생의 성함을 아시오? 무림동도들이 이분을 무어라 부르는지는 아시오? 이분이 본래 어느 파의 장문인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이곳에 갇히셨는지 아는 바가 있소? 풍 노선생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소?"
.
.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저는 잘 모릅니다."
영호충의 대답에 단청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모를 만도 하지. 내력을 알고서야 어찌 우리더러 이분을 놓아달라 할 수 있겠나? 이분이 이곳을 떠나면 온 무림이 발칵 뒤집어지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 손에 목숨을 잃을 걸세. 그리되면 강호에 더 이상 평화란 없다네." - P356

임 선생은 그가 화를 내는 진짜 이유를 모른 채 껄껄 웃었다.
"물론 화산파 놈들 중에도 노부가 존중하는 사람은 있지. 풍가가 그중 한 명이고, 너도 그렇다. 그리고 네 후배 가운데 그 무엇이더라, ‘화산옥녀’ 영, 영… 그렇지, 영중칙. 그 꼬마 낭자도 제법 기개가 있는 것이 인물은 인물이었지. 애석하게도 악불군에게 시집을 갔으니 고운 꽃을 소똥에 꽂은 격이다."
그가 사모를 ‘꼬마 낭자‘라 칭하자 영호충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다. - P358

임 선생은 검을 가로세우며 외쳤다.
"젊은 친구, 대체 네게 검법을 전수한 사람이 누구냐? 풍청양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영호충은 당황했다.
"풍 노선배님이 아니고서야 어느 고수가 이런 검법을 전수해 주셨겠습니까?"
"하긴 그렇군. 자, 받아라!" -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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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바로 남봉황藍鳳凰이에요. 말했잖아요? 나는 오선교 사람이 맞지만 남 교주의 부하는 아니라고요. 오선교 사람 중에 남봉황의 부하가 아닌 사람이 남봉황 말고 또 있겠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즐거운 듯이 까르르 웃었다. - P23

한참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맑디맑은 물 위에 두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자신의 뒷덜미를 붙잡고 있는 묘령의 여인을 보자 그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때 뒤에 있던 여인이 그의 목덜미에 뜨끈뜨끈한 피를 왜 토하며 힘없이 그의 등으로 쓰러졌다. - P139

"예, 알겠습니다. 한데 성고께서 누구의 목을 원하시는지요?"
영영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자의 성은 ‘영호‘고 이름은 ‘충‘이다. 바로 화산파의 수제자다."
그 말이 떨어지자 영호충은 물론이고 계무시, 조천추, 노두자도 크게 놀라 말문이 턱 막혔다. - P160

‘영영은 줄곧 강호인들에게 존중을 받던 사람이야. 그 많은 호걸들이 그녀를 존경하고 떠받들었으니 세상 부족한 것 없이 오만하게 자랐을 텐데,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었으니 견딜 수가 없었겠지. 노두자 일행에게 그런 말을 전하게 한 이유도 나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소문이 오해라는 걸 밝히기 위해서일 거야. 그녀 스스로 한 말이니 이제 그녀가 나와 함께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겠지.‘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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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육선은 진기를 운용해 자기 나름대로 영호충을 치료하는 한편, 쉬지 않고 말다툼을 해댔다. 그 치료 중에 영호충의 경맥이 뒤죽박죽 망가져버렸다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화산파의 상승 내공을 익혀온 영호충은 비록 그 내공은 깊지 않지만 기본은 튼튼해, 선무당 같은 도곡육선의 치료에도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 P49

도근선 등 다섯 형제는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도지선이 도실선을 안고 급히 물러났고, 나머지 네 사람은 우르르 달려가 눈 깜짝할 새 악 부인의 팔다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그들이 이대로 팔다리를 잡아당기면 악 부인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리라는 것을 잘 아는 악불군은 즉각 검을 뽑아 도근선과 도엽선을 찔러갔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침착을 유지하던 악불군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검을 든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 P61

악불군의 말이 이어졌다.
"봉불평과 같이 쫓겨난 검종뿐이라면 우려할 필요가 없으나 그들이 오악검파의 영기를 얻어 숭산파, 태산파, 형산파의 인물들과 손을 잡았으니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하여…."
그의 시선이 제자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다 함께 즉시 숭산으로 가서 좌 맹주를 만나 시비를 가리려 한다."
그 말에 제자들은 흠칫 놀랐다. - P75

육대유가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무슨 용기가 있어서 몰래 본 파의 지고무상한 내공 심법을 익히겠어? 마음 푹 놓으라고, 소사매, 사부님이 대사형을 구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비급까지 내주시다니… 이제 대사형은 살았어."
악영산이 소리를 죽였다.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 내가 아버지 몰래 훔친 비급이란 말이에요." - P79

"영호 형, 당신은 이 전백광의 친구요, 영호 형이 중상을 이기지 못해 먼저 죽는다면 나 또한 결코 혼자 살아남지 않겠소!"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말에 영호충도 마음이 흔들렸다.
‘저자는 역시 친구로 삼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결심을 하고 팔을 뻗어 전백광의 오른손을 꽉 쥐었다.
"전 형, 이렇게 함께 가면 저승길이 외롭지 않겠구려." - P100

의림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영호 사형, 저희 아버지 법명은 ‘불계不戒‘ 예요. 비록 불문에 계시지만 불문의 각종 계율들을 하나도 지키시지 않아 불계라는 법명을 얻으셨죠. - P105

"소사매, 놀라지 마. 내가 혈도를 짚어서 그래."
"깜짝 놀랐잖아요. 왜 육후아를 쓰러뜨렸어요?"
"내가 비급을 보지 않으려고 했더니 여섯째 사제가 비급의 경문을 읽어주기에 막기 위해서는 쓰러뜨릴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악불군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는 육대유의 코앞에 손을 대보고 맥을 짚더니 놀란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이미… 죽었다. 충아, 무슨 혈도를 짚었느냐?"
육대유가 죽었다는 말에 영호충은 충격에 빠져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 P125

도곡육선이 그를 치료한답시고 서로 다른 경맥을 통해 진기를 불어넣는 바람에 내상은 낫지 않고 도리어 여섯 갈래 진기가 몸속을 휘휘 돌며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그 후 내공이 깊고 성품은 거칠기 짝이 없는 불계 화상이 억지로 진기를 밀어넣어 도곡육선의 진기를 억누름으로써 일시적으로는 내상이 치료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몸속에 진기 두 갈래가 더해진 것에 불과했다. 서로 다른 진기들이 충돌하고 저항하는 동안 오랫동안 연마해온 화산파의 내공은 소리도 없이 사라져 그를 완전히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억울하고 괴로워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외치고 싶었다. - P138

"악 선생, 우리는 악 선생과 아무런 원한도 없소이다. 오늘 이렇게 결례를 범한 것도 단지 〈벽사검보〉를 한번 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오. 그 검보로 말하자면 본디 화산파의 것도 아닌데,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백방으로 술수를 부려 복위표국의 꼬마를 제자로 삼지 않았소? 결코 정정당당한 방법이라 할 수 없으니, 그 소식을 들은 무림동도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소. 이 늙은이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만 내놓으시오!" - P144

"저리 비켜라!"
총불기가 버럭 외치며 영호충의 목을 향해 검을 찔렀다. 검이 날아드는 것을 보자 영호충은 기운 없는 몸으로 검을 막아봤자 공연히 들고 있던 검만 날려버릴 뿐이라 여기고 막는 것을 포기한 채 똑같이 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밀었다. 동귀어진하려는 수법이었다. 그 움직임이 빠르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노리는 방향은 실로 교묘했다. 다름 아닌 독고구검 ‘파검식‘의 절초였기 때문이었다. - P158

"당연한 소리! 네 무공이 그 수준까지 진보했으니 어디 사부와 사모가 눈에 차겠느냐? 우리 화산파의 자질구레한 공력 따위로는 너의 그 대단한 신검神劍을 받아낼 수도 없을 터. 그 복면인들도 말하지 않더냐? 화산파의 장문 자리는 네가 차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 P177

"녹죽응, 그 서책이 정말 곡보입니까, 아니면 일부러 곡보처럼 기술한 무공 비급입니까?"
"무공 비급? 허허 우스꽝스러운 말씀 마시구려. 이 서책은 틀림없이 금의 곡보요. 어디 보자…."
곧이어 아취 있는 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호충이 귀 기울여 들어보니 지난날 유정풍과 곡양이 연주한 곡이 분명했다. 그들은 떠났는데 곡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절로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 P217

노파가 말했다.
"영호 공자, 떠나기 전에 공자에게 권할 말이 있네."
"예, 말씀하십시오. 반드시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영호충이 말했지만 노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아주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강호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일세. 공자는 성격이 선하고 인자하니 부디 어딜 가나 몸조심하게."
"예." - P240

"평일지라는 사람은 무림의 괴… 아니, 기인인데, 죽은 사람도 살려낼 만큼 고명한 의술 덕에 아무리 무거운 병을 앓는 사람도 그가 손을 대면 반드시 낫는다고들 한단다. 하지만 성격이 괴팍해서 세상 사람의 수는 하느님과 염라대왕이 정해 놓았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을 살려주어 죽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면 염라대왕의 눈 밖에 나서 훗날 죽어 저승에 갔을 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겁이 나기 시작한 거야." - P253

평일지가 말했다.
"영호 공자, 공자의 몸속에 있는 여덟 갈래 진기는 제거할 수도, 녹여 없앨 수도, 굴복시킬 수도, 억누를 수도 없어 몹시 까다롭소. 내 귀찮아서 대충 살핀 것이 아니라, 본디 이런 증상은 진기와 관계가 있어 침이나 뜸, 약은 아무 효험이 없소. 의술을 베푼 이래 이런 증상은 보다보다 처음이구려.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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