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샹폴리옹은 표음문자인 상형문자 알파벳과 관련하여 다시에씨에게 올리는 글〉을 발표했다. 상형문자 해독의 기본 원리를 설명한 이 글을 통해 샹폴리옹의 이름은 만천하에게 알려졌으며, 그때까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해답을 갈망하던 사람들은 이제 피라미드와 이집트의 사원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 P156

로제타석을 해석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호라폴론의 해석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올바른 해석으로 가는 길은오직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호라폴론이 간 것과는 반대의 길이었고, 샹폴리옹만이 그 길을 갔다. - P160

위대한 발상도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그러나 샹폴리옹이 한 일은 14세기 동안 학자들의머리를 어지럽혀온 호라폴론의 전통을 깨는 것이었다. 위대한 발견 이후, 운 좋게 그 발견의타당성이 즉시 증명된다면 누구도 발견자의업적을 깎아내릴 수 없다. - P163

이 책은 고고학의 개요를 적은 글이다. 따라서 가장 위대한 업적만을 짚고 넘어갈 뿐, 연구실에서 수많은 자료를 정리 · 분류하고 때로는 대담한해석과 창조적인 가설로 학문적 결실의 토대를 마련한 성실한 학자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충분한 지면을 할애할 수 없다. - P172

오직 연구와 발굴에 모든 관심을 쏟던 마리에트는 고고학의 미래를 위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 한가지를 깨달았다. 바로 ‘보존‘이었다. 마리에트는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이집트에 눌러 앉기로 작정했다.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몇 년 후 자신이 세계 최대의 이집트 박물관을 건립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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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칼의 소년은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에 마음을 빼앗겼으며, 돌에 새겨진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에 넋을 잃었다.
"이거 읽을 수 있어요?" 푸리에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제가 읽을 거예요! 몇 년 후 제가 크면요!" 어린 샹폴리옹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훗날 샹폴리옹은 이 이야기를 자주 했다. - P137

샹폴리옹은 아랍의 정신에 푹 빠졌다. 그의 목소리는 변했다. 모임에서 만난 아랍인은 샹폴리옹이 자신과 같은 아랍인인 줄 알고 몸을 굽혀인사했다. 샹폴리옹의 이집트에 관한 지식은 온전히 학습을 통해 얻은 것이었음에도 당시 가장 유명한 아프리카 여행가 소미니 드 마넹쿠르가 놀랄 만큼 충분한 수준이었다. 샹폴리옹과 대화를 나누던 마넹쿠르는 "내가 아는 나라를 나만큼이나 잘 알잖아!"라고 외쳤다. - P144

게다가 이 젊은 역사학 교수가 표방하는 이상이라니! 샹폴리옹은 역사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진실을 향한 갈망이라고 천명했다. 그가 말하는진실이란 나폴레옹식 진실이나 부르봉 왕조식 진실이 아닌 절대적 진실이었다. 그는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학문의 자유를 요구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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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만은 일에 착수했다. 일개 상업 견습생에서 백만장자로 성공하기까지 쏟았던 열정을 이제 꿈을 실현시키는 것에 쏟아부을 차례였다. 그는신들린 듯 일에 몰입했고, 물자 또한 아낌없이 투입했다. - P70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가 말했듯이 빙켈만이 그리스의 비밀을 멀리서보여주었다면, 슐리만은 그 태고의 세계를 직접 열어서 보여주었다. 슐리만은 고고학을 연구실의 석유등 불빛 아래에서 과감히 그리스 하늘의태양 아래로 끌어냈다. 전통 문헌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선사시대로 한 발을 내디뎠고, 전통 학문에 선사시대를 추가해 학문의 영역을 넓혔다. - P88

슐리만의 초기 해석과 연대 확인이 거의 다 틀렸다는 사실은 비극적인실수였다. 그러나 아메리카를 발견했던 콜럼버스도 처음에는 인도를 발견한 줄 알았다. 그렇다고 그의 업적이 작아지는가? - P92

나폴레옹 1세와 비방 드농은 이집트를 최초로 고고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은 황제와 남작, 총사령관과 예술가로서 인생의 일정 구간을 동행했다. - P117

조각상은 대부분 일부가 잘려나간 단편(斷片)들이었다. 그 수집품 가운데는 매우 특이한 물건이 하나 있었다. 검은 빛이 반들반들한 현무암 석판이었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언어로 쓴 세 편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돌이 이집트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 유명한 ‘로제타의 3개 언어로 된 돌(로제타석)‘이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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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8월 중순, 베수비오 화산은 폭발의 조짐을 보였다. 그전에도 이미 여러 번 있었던 일이었지만 8월 24일 오전에 시작된 파국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 P31

주위가 온통 파멸되어 가는 동안 노예의 족쇄를 찬 채 사슬에 묶여 있는 두 다리의 유골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역시 사슬에 묶인 채 어느 집 천장 아래에서 발견된 개의 죽음 뒤에는 어떤 고통이 있었을까? - P34

이 두 가지 관점이 통합되기까지는 한 학자의 출현을 기다려야 했다.
고대의 예술에 대한 애정에 학문적 연구와 비평을 도입한 사람은 폼페이발굴이 시작되던 시기에 갓 서른이 된 청년이었는데, 드레스덴 근교 어느백작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던 그 사람에게 예술과 학문의 결합은 평생의 과업이 되었다. 21년이지난 후 그의 죽음을 접했을 때 독일의 위대한 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레싱은 다음과 같은 글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내 수명에서 기꺼이 몇 년은 떼어주었을 텐데!" - P36

그리스의 조각과 조소는 원래 채색되어 있었다. 아테네 신전에 있는대리석 여인상은 빨강, 녹색, 파랑,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붉게 칠한 입술은 물론이고, 눈에 번쩍이는 보석을 박기도 했으며, 인조 속눈썹을 붙인 조각상들도 적지 않았다. - P43

고고학자는 역사의흔적을 찾는 사람이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결론을 얻을 때까지 수사관과도 같이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해 퍼즐을 짜 맞추듯 돌멩이 한 조각 한 조각을 짜 맞추어 간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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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탱 씨는 주방의 식탁에 모여 앉은 식구들을 둘러보았다. 천장에길게 매달린 전등의 환한 불빛을 받으며 식구들은 음식 위로 몸을 구부린 채 그를 힐끗거리고 있었다. 가장의 기분이 상할까봐 저어하는 눈치였다. - P75

자코탱 씨는 문득 자기 재산을 도둑맞고 있다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흘린 땀의결실은 남이 가져가고 자기는 그저 우스꽝스러운 봉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 P76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코탱 씨는 이 숙제가 아주 쉬운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쉬워서 코웃음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숙제에 대한 책임을 떠맡고 보니, 이게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 P90

제르멘 뷔주는 독신녀 라리송의 아파트를 떠났다. 그녀의 따가운 눈길을 받으며 두 시간에 걸친 ‘대청소를 막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시각은 오후 네시, 이틀 전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12월의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 P103

여섯 아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진열창 안의 한 물건에만 쏠려 있었다. 그것은 한 켤레의 장화였다. 다른물건들과 마찬가지로 표찰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냥 ‘칠십리 장화‘ 라고만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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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장화를 신기만 하면 한 걸음에 칠십 리를 갈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곧이곧대로 믿었던 건 아니었다. - P112

프랑스의 한 자그마한 도시에 말리코른이라는 집달리가 살고 있었다.
집달리의 일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슬픔을 주기 십상이었지만, 그는 자기 직무를 너무나 꼼꼼하고 성실하게 수행했다. 설령 자기 자신의 동산을 압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그 일을 주저없이 해낼 사람이었다. - P157

"너는 못된 놈이다. 하지만 성 베드로의 실수가 너를 살렸다. 지옥에 가는 것을 모면한 너를 다시 지옥에 떨어뜨리지는 않겠다. 그렇다고 네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너를 다시 땅으로 내려보내겠다. 계속 집달리로 살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선행을 쌓도록노력하거라. 자아, 가서 네게 허락된 이 유예를 유익하게 활용하도록해라." - P162

말리코른은 자기 생각을 다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후의 심판에관한 생각이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자기의 선행을 증언하는소문이 온 도시에 자자하게 되면 나중에 하느님의 법정에 섰을 때 참으로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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