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리만은 일에 착수했다. 일개 상업 견습생에서 백만장자로 성공하기까지 쏟았던 열정을 이제 꿈을 실현시키는 것에 쏟아부을 차례였다. 그는신들린 듯 일에 몰입했고, 물자 또한 아낌없이 투입했다. - P70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가 말했듯이 빙켈만이 그리스의 비밀을 멀리서보여주었다면, 슐리만은 그 태고의 세계를 직접 열어서 보여주었다. 슐리만은 고고학을 연구실의 석유등 불빛 아래에서 과감히 그리스 하늘의태양 아래로 끌어냈다. 전통 문헌학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선사시대로 한 발을 내디뎠고, 전통 학문에 선사시대를 추가해 학문의 영역을 넓혔다. - P88
슐리만의 초기 해석과 연대 확인이 거의 다 틀렸다는 사실은 비극적인실수였다. 그러나 아메리카를 발견했던 콜럼버스도 처음에는 인도를 발견한 줄 알았다. 그렇다고 그의 업적이 작아지는가? - P92
나폴레옹 1세와 비방 드농은 이집트를 최초로 고고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은 황제와 남작, 총사령관과 예술가로서 인생의 일정 구간을 동행했다. - P117
조각상은 대부분 일부가 잘려나간 단편(斷片)들이었다. 그 수집품 가운데는 매우 특이한 물건이 하나 있었다. 검은 빛이 반들반들한 현무암 석판이었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언어로 쓴 세 편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돌이 이집트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 유명한 ‘로제타의 3개 언어로 된 돌(로제타석)‘이다. - P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