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헝거게임 개요
- 시기 : 미래의 어느 날, 13개 구역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을 당한지 74년째 되는 해
- 위치 : 판엠 대륙 (구 북미 대륙)
- 주최 : 캐피톨, 대륙의 독재지배 세력
- 선수 : 각 구역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12~18세의 소년·소녀 1명씩, 총 24명
- 방식 :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사냥하는 배틀 로얄
- 우승자 혜택 : 나머지 인생을 가족과 함께 편히 살 수 있는 부 + 1년간 출신 구역의 식량
- 생존확률 : 1/24

 

 

수잔 콜린스. 1962 ~. 미국의 소설가


판엠, 북미대륙의 디스토피아

아마도 현재로부터 100년 정도 지났을 미래의 이야기이다. 북미 대륙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멸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판엠 Panem이라는 국가를 만든다. 판엠은 모든 부와 권력이 집중된 캐피톨 지역과 캐피톨의 지배를 받는 1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각구역은 지역 특성에 따라 특산물을 생산해서 캐피톨에 공급하지만 구역의 민중들은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결국 쌓여있던 불만이 터지고 13개 구역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압도적인 캐피톨의 과학기술과 군사력에 의해서 진압되고, 그 와중에 13구역은 가루가 되어 멸망한다.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후 캐피톨은 피지배자의 반란을 상기시키고 또다른 반란을 막기 위한 기념(본보기)으로 남은 열두 개 구역의 소년·소녀 중에서 남녀 각 한 명씩을 제비로 뽑아 헝거게임을 개최한다. 매해 24명의 아이들은 캐피톨이 만들어 놓은 경기장에서 다른 참가자(조공인)를 모두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은 캐피톨이 12개 구역에 보내는 경고이다. 그리고 올해는 제74회 헝거게임이 열리는 해이다.

 

 

캣니스 에버딘. <헝거게임>의 주인공. 동생을 대신해서 헝거게임에 참가한다. 수렵, 채집 활동에 능하고 완벽에 가까운 활솜씨를 자랑한다.


확률의 배신

헝거게임의 참가자는 제비뽑기로 결정이 되는데, 좀 가슴아픈 룰이 있다. 각 구역의 모든 아이는 열두 살이 되면 추첨함에 제비를 하나 넣고, 이후 한 살씩 먹을 때마다 제비 한 개가 추가된다. 열여덟 살이 되면 아이 한 명당 이름이 적힌 제비 일곱 개가 추첨함에 들어 있다. 그런데 굶주림이 일상인 12구역에서는 제비 한 장을 추첨함에 추가하면 일 년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은 엄마와 동생 프림로즈를 부양하는 소녀가장이었고, 제비를 추가해서 가족을 부양할 수밖에 없었다. 추첨함에는 캣니스의 이름이 적힌 제비가 스무 장 들어 있다. 캣니스의 친구인 게일은 사정이 더 나빠서 마흔두 장이 들어 있다. 프림로즈는 이제 막 열두 살이 되어 이름이 적힌 제비가 딱 한 장뿐이다.


하지만 확률은 확률일 뿐. 수천 장의 제비 중에 뽑힐 확률이라고는 0.1%도 되지 않는 프림로즈의 이름이 뽑히고, 12구역의 헝거게임 대표로 프림로즈가 선발된다. 게임에 참가하자마자 바로 살해당할 것이 분명한 프림로즈를 보낼 수 없었던 캣니스는 동생 대신에 자원을 한다. 남자 대표는 피타 멜라크. 피타는 빵집 아들인데, 캣니스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엄마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무심한 척 캣니스에게 빵을 줘서 위기를 벗어나게 해 준 동네 소년이다. 캣니스는 피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후에 밝혀지지만 피타는 그때부터 캣니스를 좋아하고 있었다. 캣니스와 피타는 헤이미치 애버네시를 멘터(멘토)로 삼고 헝거게임에 참가하기 위해서 캐피톨로 출발한다. 헤이미치는 50주년 기념으로 24명의 두 배나 되는 48명이 참가한 헝거게임에서 우승했지만 지금은 술주정뱅이일 뿐이어서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피타 멜라크. 캣니스를 혼자서 짝사랑해 온 12구역 소년. 캣니스와 함께 헝거게임에 참가하게 되어 함께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그림과 은닉술이 뛰어 나고 힘이 세다.


오로지 생존하는 것이 정의

열여섯 살의 소녀와 소년이 주인공이다. 보통 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주인공이라면 주인공의 성장이 소설의 주요 주제일 수 있는데 <헝거게임>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캣니스와 피타는 소설을 통해서 별다른 성장을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캣니스는 12구역에서부터 살기 위해서 평화유지군 몰래 금지된 구역인 울타리 밖에서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살아왔고, 활은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명사수이기 때문에 헝거게임에 최적화되어 있는 인물이다. 피타 역시 빵집에서 익힌 그림 실력을 토대로 한 은신술에 능하며 힘은 모든 참가자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준다. 두 주인공은 백퍼센트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완성체로서 헝거게임에 참가하고 있다. 두 명은 헤이미치 이후 우승자를 내지 못한 12구역에서는 꽤 우승 확률이 높은 참가자들이고, 참가하기 전에 이미 완성체이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든지 캣니스는 살아남을 것이 분명한데, 연인이 되어버린 (정확히는 그런 척하는) 피타는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 시합을 시작하자마다 많은 아이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고, 참가자들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참가자를 죽이기 위해서 애쓴다. 캣니스와 피타는 협력을 해서 살아남는다. 중간에 캐피톨은 같은 구역에서 참가한 남녀가 모두 생존하면 두 명을 우승자로 정하여 살아남을 수 있도록 룰을 바꾼다. 캣니스와 피타는 우승하는데 성공하지만 캐피톨은 둘만이 남는 순간, 새로 만든 룰을 폐지하고 단 한 명만이 우승자가 될 수 있다고 룰을 번복한다. 이제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우승자가 되기 위해서 상대방을 죽일 수 있을까?

 

판엠의 국기. 판엠은 북미 대륙에 건설된 국가로 12개(이전에 13개) 구역과 하나의 캐피톨로 이루어져 있다.


처절한 경쟁이 펼쳐지는 디스토피아. 그 속에서 보이는 현대인의 자화상

배틀 로얄은 가장 잔혹한 경쟁방식이다. 경쟁에 참가한 모든 사람을 물리친 단 한 사람만이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헝거게임>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배틀 로얄을 묘사했지만 이게 과연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헝거게임>은 미래를 빌려와서 현재를 묘사한 알레고리 가득한 SF 판타지 소설이다. 나는 소설 속에서 무한경쟁에 내팽겨쳐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특히 최근의 이슈와 관련하여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구직자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었다.


헝거게임의 참가자들은 구직자들로 생각해 보자. 사실 1대 24라면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구직자들을 봤을 때 대단한 경쟁률도 아니다. 실제 구직자의 경쟁률은 <헝거게임> 경쟁률의 5~10배는 될테니까. 생존을 위해서 추첨함에 제비를 추가하는 것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땡겨서 쓴 학자금대출처럼 느껴진다. 경쟁을 시작하면서 어떤 친구들은 이미 페널티를 얹고 시작한다. 같은 구역의 시민들은 부모님의 모습이다. 어떻게든 자식들이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기를 바란다. 캐피톨에서 이 경기를 구경하는 관람인들은 기득권 세력이다. 흙수저들의 절실함을 즐기며 그 중에 생존한 사람들을 칭송하면서 자신들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아량을 베푼다. 때로는 흙수저에서 살아남은 그들의 팬이 되기도 한다.하지만 그 일원이 되는 것은 철저히 차단한다. 기득권에게 참가자들은 그저 구경거리일 뿐이며, 그들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헝거게임>에는 모든 경쟁 상황을 그대로 대입시켜서 읽을 수 있는 보편적인 플롯이 들어 있다. 읽다 보면 눈쌀이 찌푸릴 정도로 잔혹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보다 더 잔혹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다른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구조가 그대로라면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간접적으로 경쟁자를 죽이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고민을 해 볼 문제인 것 같다.

 

<헝거게임>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혁명을 기대하며..

<헝거게임>은 3부작 소설이다. 뒤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어떻게든지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캣니스와 피타, 결국은 캐피톨의 억압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열두 개 구역의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 사회 구조에 큰 변함이 없다. 하지만 캣니스가 헝거게임의 마지막에서 한 선택이 혁명이 일어날 것 같은 단초를 제공했다. 캣니스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사회를 바꿔나가는지, 아니면 사회를 바꾸는데 실패하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숨어 버리는지 살펴 보는 것도 앞으로 남은 두 권의 책을 읽는 재미가 될 것 같다.

 

판엠의 지도(팬픽). 오른쪽에 탄광이 주업인 12구역, 그 위에 멸망한 13구역이 보인다. 왼쪽 중앙에 스노우 대통령으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서 있는 곳이 캐피톨이다.


★★★★

굉장히 재미있고, 요즘같이 더운 여름에 몰입해서 읽을만한 소설이다. 영화는 못 봤기 때문에 영화를 본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소설의 설정이 흥미롭고 현대의 경쟁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딱히 느슨해 지는 부분이 없어서 작품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의외로 캐피톨의 관리가 허술한 부분이 꽤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통제가 완벽한 사회라고 해도 빈틈이 있기는 마련이니 문제가 되지는 않아 보인다. 번역된 문장도 좋아서 읽을 때 부담이 없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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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11 세트 - 전11권 춘추전국이야기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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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역사의 출발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역사를 읽기 시작할까? 나는 어릴 때 그리스 로마신화를 처음 읽고나서부터 각 나라의 신화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고, 각 나라의 신화를 읽다 보니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아직도 초등학교 때 처음 그리스신화를 읽고서,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 준 벌로 코카서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면서 죽지도 못하고 고통을 받는 것을 상상하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결국 내가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신화를 읽으면서부터였다. 거창할 것도 별로 없다. 그저 옛날 얘기 읽듯이 역사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사에 관한 책을 이것저것 읽다 보니 처음부터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 단계에서 역사를 여러 문명권별로 나눠서 초기 역사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이때 읽기 시작한 것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 중국의 역사였다. (이상하게 인도의 고대사는 크게 관심이 끌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화가 너무 복잡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네 지역의 역사 중에서 아무래도 제일 늦지만 우리나라와 가장 연관이 있는 중국의 역사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고, 귀동냥으로 들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가장 쉽기도 했다. 중국역사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읽어 왔지만 아무래도 지식은 파편화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춘추전국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한나라 이전 중국고대사를 총정리할 수 있는 책이었다.

 


공원국. 서울대 동양사학과 및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 현재 중국 푸단 대학에서 인류학 공부중.


자세하고 또 자세하다


저자인 공원국은 중국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학자이며, 지금도 중국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춘추전국이야기>는 정통 중국역사학자가 쓴 책답게 굉장히 자세하다. 물론 <사기>나 <후한서>, 또는 역사서라고 하긴 좀 거리가 있는 <동주열국지>같은 당시의 사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같이 원서를 접할 수 없는 아마츄어 역사 애호가가 접할 수 있는 책 중에서는 아마도 분량이 가장 많으면서도 가장 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무려 11권 한 세트가 최근에 완간되었다. 처음 다섯 권은 삼황오제로부터 춘추시대까지, 6권은 당시의 사상가들을 대화 형식으로 설명한 해설서, 7권에서 11권은 전국시대에서 진, 한 제국의 성립까지 다루고 있다. 따라서 열한 권을 모두 읽으면 중국의 고대사의 중요인물과 사건을 조망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관중, ? ~ BC. 645 이름은 이오이며 중은 자이다. 춘추오패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제환공 시대 명재상이며, 관포지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춘추전국이야기>는 춘추시대의 질서를 확립한 사람으로 관중을 꼽고 있다.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노력과 굳이 숨기지 않는 관점


저자는 엄청난 공부벌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춘추전국이야기>에서 인용한 책은 상당히 많은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책들 외에도 가장 최근에 발굴되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죽간까지 책 속에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최근의 발굴성과에 의해서 <사기>에 기재되어 있는 역사를 바로잡기도 한다. 그만큼 최대한 정확한 역사를 재현해 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쏟았다. 역사라는게 어차피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정도로 철저하게 당시 상황을 기술하지 않는 한 정확한 사건의 전후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수십년에서 수백년이 지난 후에 당시의 자료(라고 추정되는 자료)나 구전을 통해서 내려오는 내용들을 토대로 해서 씌이기 때문에 더욱 실제 역사를 알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그렇게 적었다고 하더라도 편집을 거쳐 정본이 나오는 사이에 편집 책임자의 의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왜곡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역사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자료를 당시 상황에 비추어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텐데, 그 점에서 저자는 책을 쓰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 책이 모두 열한 권이나 되고 페이지로 따지면 4,000페이지가 넘지만 중국의 고대사를 모두 기술하기에는 당연히 부족하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에 따라 인물, 사건이 선택되고 있다. 이 때 저자는 딱히 자신의 관점을 숨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설명하면서 취사선택의 이유를 밝힌다. 예를 들면 전국시대 초기 가장 스펙타클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은 손빈과 방연에 대한 내용은 굉장히 건조하게 몇가지 중요한 사건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좀 많이 아쉬웠다.) 대신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인물이 부각되는 경우도 있고, 부정적이었던 인물을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역사는 기술하는 사람의 철학이 깃들 수밖에 없으므로 크게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비판적으로 보기엔 많은 자료를 제시하면서 충분한 근거를 대기 때문이다. 공부 많이 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토를 다는게 아니다.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 BC ? ~ 195. <춘추전국이야기>는 유방의 한나라 건국으로 마무리된다.


이야기 책이 아니다.


<춘추전국이야기>를 읽을 때, 이 책을 원래부터 소설인 <삼국지>나 <열국지>, 소설로 많이 씌여진 <초한지>같은 책을 기대하면 좀 읽기 힘들다. 이 책은 본격적인 역사책이고, 저자는 각 권마다 머릿말에서 해당 권의 역사를 다루는 방향이 설명했고, 마지막 권에는 당시 시대에 대한 평가를 기술해 놓았다. 역사에 있었던 얘기를 많이 적어 놓으면서, 고전 사서를 인용한 부분도 많고,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 나름대로 논증도 해 놓았다. 그러니까 일반 아마츄어가 읽기에는 좀 어려운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도 읽으면서 이해는 했지만 몇 장 읽고 나면 앞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대략 뜻만 이해하고 잊어버리는 식으로 열한 권을 읽었다. 정독이라고는 할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체 역사를 훑어 보면서 끼워 맞추고 모르고 있던 사이사이의 지식을 이해하면서 읽었으니 완전히 책을 소화해냈다고 볼 수는 없다. 20%나 제대로 읽은 건지 잘 모를 정도다.

 


춘추시대의 지도. 진 晉은 아직 조, 위, 한으로 갈라지지 않았고, 진 秦도 전국시대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없다.초가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해서 남쪽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고, 오와 월은 춘추시대 후반기에 주인공의 위치를 차지하다 전국시대로 진입하기 전에 멸망해 버린다. 전통의 강자 제는 풍요로운 땅 산동을 차지하고 있고, 전국칠웅 중에 가장 약했던 연은 한반도와 맞붙어 있다.


★★★★☆


한 번 읽고 치워 둘 책이 아니다. 역사에 관한 책은 앞으로도 많이 읽게 될 것 같은데, <춘추전국이야기>는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나라 이전 시대 역사에 대한 길잡이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기본으로 삼아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살을 붙여 나가면 중국의 초기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는 앞으로 교과서와 같은 책이 될 것 같다.


전체 열한 권의 책 중에서 6권과 11권은 책을 쓴 방향이 좀 다르다. 6권은 춘추전국시대의 위대한 사상가인 제자백가, 그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강했던 맹자, 한비자, 묵자, 순자, 장자의 사상을 대화식으로 조망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좀 불만스럽다.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시의 다양한 제자백가 사상의 계통을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11권은 6권을 제외한 10권까지와는 다르게 진 멸망 후 항우와 유방의 투쟁을 이야기 식으로 썼다. 요약한 <초한지>를 보는 느낌이다. 좋게 평가하자면 앞부분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었고, 나쁘게 평가하자면 11권의 대단원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서 좀 급하게 쓴 것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11권은 이전권에서는 그다지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던 오타가 좀 많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사고 싶은 마음이 들 책이고, 열한 권의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뿌듯함과 함께 성취감도 든다. 세트로 살 때 함께 따라오는 <춘추전국이야기 길라잡이>는 책 속의 인물과 지도 중 중요한 것들을 담아 놓았지만 개별 책에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는 들춰볼 일이 없었는데, 다른 증정품인 춘추전국시대 지도는 책을 읽으면서 보면 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봤던 춘추전국시대 지도중에 가장 보기에 편했다.


엄청난 작업을 완료한 공원국 저자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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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12-1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산만했던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지식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어요. 위진남북조도 이렇게 정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ㅋ
 
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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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소매상, 유시민

시민이란 사람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한창 대학생일 때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고, 민주화가 된 이후에는 국회의원, 장관 등 정치인의 행보를 하면서 욕도 먹었지만 그만큼 뚜렷한 족적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는 '썰전'이라는 정치·시사 예능에서 어려운 시사를 쉽고 명확하게 풀어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풍부한 지식, 논리적이고 쉬운 설명,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정치관 때문에 많은 팬들은 유시민이 다시 정계에 복귀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미 절대로 정치는 다시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의견을 피력한 것을 보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화려한 사회·정치적 경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시민은 '작가'라는 호칭을 가장 좋아하여 방송 프로그램이나 미디어 매체에서는 '유시민 '작가'라고 소개를 받는다. 유시민은 청년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도 바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렇게 지식을 쌓았는지 인문학적 소양이 굉장히 뛰어나다. 게다가 논리적인데다가 전달력도 정말 좋고, 이전에 보였던 거부감을 일으키는 날카로운 이미지까지 누그러져서 대중을 위한 강연에 최적화되었다. 일단 유시민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시사교양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시청률이 보장이 된다. 유시민 작가는 이 시대, 우리나라 최고의 지식소매상 중 한 명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유시민(1959 ~ ) 대한민국의 작가, 전 16대, 17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이것은 '역사 서술의 역사'이다

처음 책의 제목인 <역사의 역사>를 봤을 때는 역사에 관한 책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는데, 책의 컨셉이 정확하게 와닿지 않았다. 책을 구매하기 전에 목차를 살펴 보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정체를 바로 파악할 수가 있다. <역사의 역사>는 멀리는 그리스 시대 최고의 역사가로 꼽히는 헤로도토스로부터 가깝게는 <사피엔스>를 지은 유발 하라리까지, 역사가들이 기술해 놓은 역사책에 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목차만 읽는 것으로도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역사'는 무엇인가? '인간과 사회의 과거에 대해 문자 텍스트로 서술하는 내용과 방법이 변화해 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이 책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역사책과 저자들이 역사를 쓰는 관점과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책의 처음은 서양 역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역사>의 저자 헤로도토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전통적인 역사기술 방식인 기전체를 고안해 낸 사마천의 <사기>, 그리고 이슬람 역사를 서술한 <역사서설>을 쓴 이븐 할둔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보통 예상할 수 있는 헤로도토스와 사마천 이외에 이븐 할둔을 처음 세 개의 장에 배치함으로써 균형을 맞추고 시작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세 명의 사가를 설명한 후에는 작가는 순식간의 시간을 건너 뛰어 19세기로 넘어와 랑케로부터 토인비 등 명성만 익히 들어 본 사람들이 왜 유명하고 그들이 어째서 뛰어난 역사학자들인지 안내한다. 그리고는 마지막은 <총·균·쇠>를 쓴 제레미 다이아몬드와 가장 최근에 <사피엔스>라는 책을 낸 유발 하라리까지를 다룬다.
시대에 따라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계속해서 발전해 왔다. <역사의 역사>는 그 '방식'을 유기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시대에 따라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계속해서 발전해 왔다. <역사의 역사>는 그 '방식'을 유기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풍부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쉽고 체계적으로 소개한다

유시민은 <역사의 역사>에서 모두 열다섯 명의 역사서 저자와 그들의 책,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에 대해서 설명한다. 저자가 워낙 인문학과 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기 때문에 읽으면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각 역사서의 기본적인 배경, 역사 서술의 방향, 저자의 의도, 장점과 한계 등 해당 역사서에 대해 일반인이 알고 있으면 충분하고도 넘칠만큼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열다섯 명의 책을 모두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라면 <역사의 역사>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보통 수준은 넘어가는 역사서에 대한 상식을 얻을 수 있다.


개별 역사서를 다루고 있지만 책을 읽는 중에 역사 서술의 흐름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더욱 뛰어난 점이다. 한 장에서 한 권의 역사서를 설명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앞과 뒤의 내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통사로서의 역사 서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것이 흔한 다이제스트 방식으로 나열된 책들에 비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역사를 다루는 책에서 신채호, 박은식, 백남운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로도 기억해 두는 것이 당연하다.

풍부한 지식을 쉽게 전달한다

<역사의 역사>는 정리하는 책이다. 유시민은 이 책에서 대단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 서술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그 배경이 되는 지식까지 적재적소에 배치해 놓았다. 우선 열다섯 명이 쓴 (두껍고 어려운) 책을 저자 나름대로 이해할만큼 충분히 읽고 소화해낸 것만 해도 내가 보기엔 대단하다. 더해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집필했던 만큼, 내용이 어려울 수는 있어도 문장이 조잡해서 읽기 짜증나는 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역사의 역사>를 읽으면서는 국어실력이 모자라 좋은 지식을 허접한 그릇에 담아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면에서 유시민은 최고의 지식소매상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세 권의 책. 헤로도토스의 <역사>,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역사의 역사>를 읽고 보니 이 책들에 대한 느낌이 새롭게 다가온다. 조만간 다시 한 번 정독을 해야 할 것 같다.


정리의 힘, 읽을 책이 늘었다

이 책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 흔히 말하는 역덕들을 위한 책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기에는 깊이 들어가는 면이 있다. 역사 그 자체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여러 면에서 좀 애매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데, 저자에 대한 믿음으로 이미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걸 보니 놀랍다. 굉장히 정리를 잘해 놓은 수험생의 노트를 빌려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현미로 지어 놓아서 좀 거칠겠지만 꼭고 씹어 보면 고소한 맛이 올라오고 건강에도 좋은 쌀밥같은 책이다.


어떤 책은 읽고 나면 그 책 한 권을 읽는 것으로 독서가 끝나는 책이 있다. 어떤 책은 읽고 나면 독서욕을 자극해서 다른 책을 구매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역사의 역사>는 전형적으로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소개된 책 중에서 1/3 정도는 읽은 것 같은데.. 읽을 책이 늘었다.


★★★★☆
랑케 이후 헌팅턴까지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 시기 역사학자들에 대해서 처음으로 생각해 본 점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것은 이 책에서 인용의 기준이 되는 책이 원서가 아니라 번역본이었다는 점이다. 역사에 관한 책을 보다 보면 반드시 원서를 읽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언어까지 공부하면서 책을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서를 읽은 것과 다름없는 좋은 번역본이 발간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원서를 인용하는 현학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역사에 관심이 있으면 당연히 추천한다.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전반적인 역사지식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하지만 역사 자체(동서양사라든지, 인류사나 문명사)를 알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역사>에서 소개한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면 한 번쯤 서점에서 살펴 보고 고민한 후 구매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책읽는 습관이 없는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은 아니다.

 


부록 <역사의 역사>에서 소개되어 있는 책 목록
<역사> 헤로도토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2009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키디데스, 천병희 옮김, 숲, 2011
<사기>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11
<역사서설> 이븐 할둔 지음, 김호동 옮김, 까치, 2003
<무깟디마 1·2> 이븐 칼둔 지음, 소명출판, 김정아 옮김, 2012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 레오폴트 폰 랑게 지음, 이상신 옮김, 신서원, 2011
<강대 세력들 · 정치 대담 · 자서전> 레오폴트 폰 랑게 지음, 이상신 옮김, 신서원, 2014
<공산당 선언> 독일어 원전 번역 인용
<조선상고사 / 한국통사> 신채호 · 박은식 지음, 윤재영 역해, 동서문화사, 2012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상) · (하)> 박은식 지음, 남만성 옮김, 서문당, 1999
<조선사회경제사> 백남운 지음, 박광순 옮김, 범우사, 1999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까치, 2015
<역사의 연구 Ⅰ · Ⅱ> 아놀드 J. 토인비 지음, 홍사중 옮김, 동서문화사, 2016
<서구의 몰락 1 · 2 · 3> 오스발트 A. G. 슈팽글러 지음, 박광순 옮김, 범우사, 1995
<문명의 충돌>, 새무얼 헌팅턴 지음, 이희재 옮김, 김영사, 2016
<총, 균, 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 2005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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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 정체성 정치를 넘어
마크 릴라 지음, 전대호 옮김 / 필로소픽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격동의 대한민국, 보수와 진보

2016년 말부터 2017년 전반기까지, 한국사회는 이전까지는 없었던 미증유의 경험을 했다.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정치적 태풍은 대한민국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 영향은 2018년 전반기가 하른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혼란스러움을 생각해 보면 현재 문재인 대통령은 70-80%라는 이전의 대통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경이적인 국정지지율을 누리며 놀라울만큼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많은 보수 인사들은 진보쪽으로 급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한탄하며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우리의 정치 지형이 진보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고 우리 시민들이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2016년에서 2017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은 단지 비상식이 상식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사회의 의식이 전환된 것 같지 않다. '상식 vs. 비상식'의 대결에서 비상식이 종말을 맞고 이제 상식 안에서 '보수 vs. 진보'의 대결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1년을 갓 지난 문재인 정부는 개혁적인 진보와 품격있는 보수의 자리를 차지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우측에 수구 세력이 아직까지 버티고 있고, 그 왼쪽에 이제 막 커 나가려고 하는 진보세력, 그리고 더 왼쪽에 극단적인 진보 세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크 릴라(1956 ~ ) 미국의 정치철학자. 컬럼비아 대학의 인문학교수. 정치와 종교의 관계, 근대 서구 계몽주의에 대해 주로 연구하는 정치철학자.


정체성 정치 identity politics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체제 분위기를 제대로 조성해 나가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큰 지지를 받고 있지만, 거의 전세계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을 당시에는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까지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우리나라에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되고 있지만 미국의 주류 사회,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일 수밖에 없다.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는 2016년 미국의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어 대통령이 된 이후 진보주의자들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해서 마크 릴라가 쓴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정체성 정치를 넘어 After Identity Politics>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마크 릴라가 지적하는 진보주의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체성 정치'이다. 정체성 정치는 '인종, 성별, 성적지향 등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세력을 구성해 그들의 이익과 관점을 대변하는 정치 (p.152)'를 말한다. 정체성 정치에서 대변하는 사람들은 주로 흑인, 여성, 성소수자이다. 각 나라마다 정체성 정치에 경도되어 있는 진보주의자들은 있을 것이고, 정체성 정치를 하는 진보주의자라고 하면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는 세력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마크 릴라는 정체성 정치를 펼치는 진보주의자들이 진보의 오히려 진보의 정권획득을 방해하고 보수주의자들, 심지어는 트럼프같은 사람에게 정권을 넘기고 있다고 설명한다.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1946 ~ ). 미국의 45대 대통령. 2016년 공화당 후보로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미국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든 아웃사이더 대통령.


무엇이 문제인가?

아빠 문제. 진보주의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통령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낸다. 대선에서 이긴 후에는 다른 모든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모든 요구사항이 다 관철된다면 이미 그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진보주의 세력은 대통령의 왼쪽에서 대통령을 끊임없이 저격한다.


X로서 말하는데.. 누군가 'X로서 말하는데, 네가 B라고 주장하는 것은 나를 모욕하는 거야'라고 말한다고 해 보자. 여기에 X에는 말하는 사람의 정체성이 들어갈 수 있고, B는 토론의 상대방이 X의 정체성에 대해 반대되는 주장을 넣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진보주의자와는 토론이 진행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자로서 말하는데, 네가 사람들은 반드시 육류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나를 모욕하는 거야.'라든지, '동성연애자로서 말하는데, 네가 동성연애자 때문에 에이즈가 퍼진다고 주장하는 건 나를 모욕하는 거야'라는 얘기가 나오는 순간, 대화는 끊어진다. 토론이 이뤄질 공간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위의 두가지 사례 외에도 책 속에는 여러가지 사례가 제시되어 있는데, 읽는 동안 우리나라의 진보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화법과 태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마크 릴라는 내용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있지만,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절박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일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아 놨더니 자신들의 기대와는 다른 결정을 내려서 실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수자로서 절박하게 살고 있는데 다수의 편견에 의해 나의 삶이 폄하당한다면 너무나도 억울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문재인(1953 ~ ).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 18대 대통령인 박근혜의 탄핵으로 갑자기 치뤄진 대선에서 혼준표, 안철수 후보 등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정치적인으로는 중도진보~중도보수의 성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분열


마크 릴라가 지적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저런 태도는 진보주의자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모든 사회구조가 원하는대로 변한다면 그 사회는 독재사회이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발언에 반대하는 것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는 어떠한 대화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연대를 얻어낼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더욱 심하게 분열이 되어 거꾸로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은 남자에게 '넌 여자가 아니니 나를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 레즈비언은 '넌 여자이긴 하지만 레즈비언은 아니니 나를 이해하는 척 하지 마.'라고 얘기한다. 둘 다 평등을 얘기하고 있지만 또 느낌이 달라져 버린다. 남녀평등주의자는 성소수자로부터 왼쪽으로부터 또 공격을 당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분열이 되고 사회적 연대를 위한 공감대가 파괴되어 버리면 진보에게 남는건  패배뿐이다.


평범한 민주 정치란 '자기 자신과 유사하지 않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설득하는 일을 의미한다 (p.116)'고 마크 릴라는 말한다. 정체성 정치를 하는 진보주의자들은 민주 정치를 외면하면서 높은 위치의 연단에서 (스스로만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럴 수 있는) 주제에 대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로 정의롭지 못한 대중에게 설교를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 독재정권에 대하여 나 자신을 포기하면서 쌓았던 정의로움, 너희들은 모르는 내 삶의 절박함은 소수의 열정적인 지지자들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사회운동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적당하게 정의롭고 그다지 절박하지 못하지만 진보가 옳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연대하지 못한다면 정치 권력을 얻을 수 없다. 사회를 바꾸는 것은 더더욱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민주주의에서 다양성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다양성에만 매몰되어서 자신의 특수성만을 주장하여 다른 세력을 도외시한다면 '운동'은 될 수 있어도 '정치'는 될 수 없다. 타협하기 싫고 순수성만을 지키고 싶다면 정치를 하지 않으면 된다.


★★★★☆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는 미국학자가 미국의 정치상황을 분석하여 쓴 책이기 때문에 미국 정치 현실의 맥락에서 읽고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현재의 미국사회를 설명하기 위해서 미국 정치의 역사를 루즈벨트 대통령으로 부터 시작해서 레이건, 클린턴, 트럼프까지 정치지형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체성 정치를 펼치는 진보는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진보주의자들, 좀더 특정을 짓는다면 민주당의 왼쪽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소수의 권익에(만) 신경을 쓰는 진보주의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고민해야 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진보주의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선민의식, 피해자의식의 폐해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놓은 책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동의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읽어 보고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책이 얇고 내용도 좋고 번역도 잘 되어 있어서 정치관련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을 수 있다. 두께에 비해 책값이 좀 비싼 감은 좀 있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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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래의 부산은 당연히 디스토피아이다..

가까운 미래에 부산에 엄청난 쓰나미가 밀려 들어 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부자들은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져서 안전한 높은 곳으로 옮겨 갔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서 물이 빠져 나간 후 땅이 드러난 곳에 집을 짓고 살 수밖에 없다. 쓰나미는 또다시 해안가를 덮치고, 또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부자들은 살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 남을 수 없다. 이제 돈은 '상징적 의미'로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적 의미'로서 삶의 조건이 되어 버렸다. 배경이 장황하지만 소설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그냥 미래에 부산의 풍경은 어둡다.


그렇게 수십년이 지난 2063년, 고아로 자란 40대 중반의 이우환은 식당 보조로 일을 하고 있다. 식당의 사장은 80이 넘은 노인인데, 어릴 때 먹어 봤던 곰탕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이우환에게 과거로 가서 곰탕 만드는 법과 곰탕 재료를 사서 오라고 한다. 40~50년 정도 지나면 타임머신이 있을 법도 하다. 어쨌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살아서 돌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우환은 과거로 가기로 결심을 하고 타임머신을 탔다.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은 운이 좋다. 그리고 또다른 운이 좋은 사람은 이우환과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간 이제 갓 성인이 된 것같은 김화영이다. 13명의 정원 중에 깨어난 것은 이우환 뿐이었는데, 김화영은 운좋게도 이우환이 깨워서 살 수 있었다. 이우환이 곰탕을 배우러 온 것에 비하면 김화영은 그래도 좀 이유가 그럴 듯하다.

 


사람 죽이러 왔어요.


이 정도는 되어야 목숨걸고 과거로 올 가치가 있지. 김화영은 미래에서 어떤 노인의 부탁을 받고 '열 둘'을 죽인 사람을 죽이러 왔다. 그게 누군지는 잘 모른다.

 

작가 김영탁,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곰탕집에 머슴으로 들어가고, 다른 곳에서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우환은 미래의 주방장이 준 약도에 의지해서 곰탕집을 찾고, 그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무뚝뚝한 주인, 고3이면서 말썽만 피우는 아들, 그리고 그 여자친구. 처음엔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 느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인과도 친해지고 주인 아들과 여자친구와는 더 친해진다. 아들의 이름은 이순희, 여자친구의 이름은 유강희. 자신을 버린 엄마와 아빠의 이름이다. 처음에는 설마설마했지만 자신을 고아로 자라게 한 부모가 맞다. (도대체 남자와 여자의 이름이 같은데, 부모가 아닐 확률이 얼마나 되지?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 부모라고 확신을 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된다.) 이순희도 그렇고, 유강희도 그렇고 모범생들은 아니다. 주요 교통수단이 오토바이 이고, 귀가 시간은 보통 새벽이다. 이순희는 더 심해서 학교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다. 어쩌면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막장 부모인 셈이다. 하지만 할아버지한테도 마음을 열지 않던 두 아이는 이우환에게는 마음을 열고 이우환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곰탕을 끓여 준다.


곰탕집은 이렇게 훈훈해 지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강력사건들이 자꾸 벌어지고 있다. 이순희의 학교에서는 둥근 구멍이 뚫리면서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시신의 머릿속에는 현대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칩이 꽂혀 있다. 용의자를 잡아 취조를 하던 경찰서에도 똑같은 둥근 구멍이 뚫리면 피의자가 사망을 한다. 한 아파트에서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변해 간다. 치매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할머니는 옆방에 있는 얼굴 가죽이 없어진 다른 환자를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아들은 아파트에 잘 살고 있다.

 

주인공 이우환은 겨우 곰탕 끓이는 법을 배우러 목숨을 걸고 미래에서 현재로 시간여행을 한다. 미래에서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었는데, 현재로 와서도 달라지는 건 없다.


타임머신은 등장하지만 SF판타지소설은 아니다

이 책 바로 전에 읽었던 <내가 보이니>도 그랬는데, 이 책도 장르를 배반하는 소설이다. 타임머신이라는 가장 SF에 어울리는 소재를 이용해서 내용을 전개해 나가지만 시간여행이 주는 장르적인 쾌감에 주력하지는 않는다. 타임머신 외에도 소설 속에서는 (굉장히 그럴듯한 설정과 함께) 공간이동도 등장하고 미래에서 왔을 수밖에 없는 무기도 등장한다. 하지만 읽는 동안 이 책이 SF소설이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빴다는 건 아니다. 단, 김화영이 죽이려고 했던 '열두명을 죽인 살인자'가 이우환임이 밝혀지는 부분은 충분히 예상가능하긴 했지만, 시간여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미를 잘 살린 설정이다.


미래에서 현재로 온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이 소설은 이런 궁금증에 상상력을 더해서 개연성을 부여해 준다. 미래에서 왔든 과거에서 왔든 사람이 살려면, 살 곳이 필요하고, 먹을 것도 필요하다. 미래에서 현재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면 살아가는데 딱히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도 없다. 오히려 불법체류자보다도 못한 신분으로 인해서 사는데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우환은 미래에서도 하층민이었고 현재로 왔다고 해서 팍팍했던 삶이 나아질 기미도 없다. 부모를 만났지만 밝힐 수도 없고 그들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건 곰탕을 끓여 주는 것밖에 없다.


최초의 시간여행자였던 박종대는 이후에 오는 시간여행자들이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와중에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되지만 그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 같기는 하다. 스포일러이긴 하지만 미래에서 온 사람들에게 신분을 주기 위해서 박종대는 얼굴을 바꿔쳐 버린다. 그리고 자신은 미래에 대통령이 될 유력한 정치인과 얼굴을 바꾸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주위에는 미래인들이 함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니 재미있다. 그러고 보니 우주인이 인간의 탈을 쓰고 지구인인 척 하고 사는 영화도 있었으니 비슷한 상상력인 것 같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타임머신인 <백 투 더 퓨처>의 드로리안. 이 책은 시간여행을 다루기는 하지만 시간여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타임패러독스는 정교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여행 SF소설에서 볼 수 있는 지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 힘들다.


몇가지 궁금한 점들..

책을 다 읽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곰탕>은 원래 카카오스토리에서 연재가 되었던 작품이다. 긴 기간 동안 연재를 하는 작품을 보면 설정에 구멍이 생기게 마련인데 끝까지 해결되지 못한 것들이 몇가지 있다. 내가 읽으면서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미래의 주방장은 이우환이 찾아가는 곰탕집 주인이 이우환의 할아버지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건 우연일 수도 있을 것 같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제일 궁금한 건 김화영을 보낸 사람은 누구이며, 왜 이우환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렸는지이다. 작가가 처음에 뭔가 설정을 해 놓았다가 나중에 잊은 것이 아닌가 싶다.


미래에서 오는 타임머신은 배의 형태로 바다에서 출발해서 바다에 도착한다. 제 때 깨어나지 않은 사람은 죽게 된다. 바다에 도착한 시간여행자들은 헤엄을 쳐서 육지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수영실력은 필수다. 묘한 곳에서 설정이 세세하다.

 


★★★☆

위에서도 썼지만 이 책은 SF적인 상상력으로 쓴 것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SF 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이 기대하는 즐거움을 주는 책은 아니다. 시간여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파라독스, 그로부터 발생하는 아슬아슬한 긴장감, 파라독스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쾌감같은 걸 기대하면 실망할 것 같다. 현재와 미래가 유기적으로 엮여서 치밀하게 생각을 해 가면서 읽어야 하는 지적인 즐거움에 치중한 소설도 아니다. <곰탕>은 주인공이 고아이고 현재로 와서 자신의 부모님을 만나서 사랑하게 된다는 가족애를 그리는 소설이고, 미래에 사는 사람들이 현재로 숨어 들어서 (불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SF라기보다는 기름때가 다 벗겨지지 않은 솥에 한참 끓여내는 <곰탕>같은 소설이다. SF에 현실을 설득력있게 접붙이려면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 같다.


본격 SF소설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으므로 추천할 만하다.
타임머신이라는 멋지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소재를 생각하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충분히 한 권으로 낼 수 있는 책을 폰트 키우고 판형 작게 해서 두 권으로 나눠서 낸 것은 좀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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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b 2018-08-07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래의 주방장은 이우환이 찾아가는 곰탕집 주인이 이우환의 할아버지라는 건 알고 있었겠지요 ㅎㅎ 그러니 어떤 이유로 보냈던 것일 테고요. (2권에서 충분히 밝혀졌다고 생각했는데, 한번 더 읽어보심 찾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화영을 보낸 사람, 왜 이우환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렸는지도 2권에 나와요. 그 이유와 관계가 밝혀지는 지점들이 이 책을 남다르게 하는 것이 아녔나 싶습니다. 저도 여러 번 읽으면서 숨겨둔 복선의 답을 찾았고 그러면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은 책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