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 동화전집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
그림 형제 지음, 아서 래컴 그림, 김열규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어릴 때 읽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었던 것 같다. 아마도 제목은 '그림 동화'였겠지. 어릴 때는 한 번 읽은 책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으니 '그림 동화'도 굉장히 여러 번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기억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수많은 동화 중에 어떤 것이 '그림 동화'이고 어떤 것이 '안데르센 동화'인지, 아니면 다른 이야기 책에서 읽은 건지 구별을 할 수가 없다. '헨젤과 그레텔'과 '라푼젤'이 '그림 동화'라는 건 확실히 기억을 하고 있다. '그림 동화'에 '신데렐라'와 '백설공주'가 있는 것도 몰랐고,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있는 것도 몰랐다. 어떤 동화가 있는지 기억하지 못한 채 읽기 시작한 <그림형제 동화전집>은 보물창고였다.

 

그림 형제의 동상. 형은 야코프 그림 (Jacob Grimme, 1785~1863) 동생은 빌헬름 그림 (Wilhelm Grimme, 1786~1859)이다. 독일의 법학자, 언어학자. 독일 문학과 옛 관습을 연구하던 중에 신화, 전설, 동화를 모아서 그림동화집을 발간한다.


윤리, 도덕, 개연성 따위는 기대도 하지 마라

<그림형제 동화전집>은 동화다. 나도 어릴 때, 아직 뭐가 뭔지도 전혀 모를 때 이 책을 읽었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버린 내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그랬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도 나처럼 그렇게 그림동화책을 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제목에 그림이 있으니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읽기 시작하겠지. 그런데 말이지... 이 책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 맞긴 맞는 건가? 어른이 되어서 다시 읽은 그림동화의 내용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동물들이 나오는 동화에서는 다른 동물들을 잡아 먹기 일쑤다. 공주는 금만 가지고 청혼을 하면 왕자와 사랑에 빠진다. 딸을 얻기 위해서 열두 명의 왕자를 죽이려고 하고, 아이고 어른이고 동물에게 잡아먹힌다. 왕은 아내를 모함한 자신의 어머니를 끓는 기름에 튀겨 죽이고는 왕비와 행복하게 산다. 여기저기서 피가 튀고 사지가 잘라져 나가는 등 끔찍한 장면이 펼쳐진다. 하지 말라는 건 꼭 해서 사고를 치고, 멍청하기 그지없는 주인공들이 주변에 엄청난 폐를 끼치기 일쑤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림형제 동화전집>은 동화다. 아이들 읽으라고 부모가 사주는 동화책에서 어른들이 보기에도 끔찍한 장면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왼쪽은 본책에 삽입되어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아서 래컴 (Arther Rackham 1867~1930, 영국)이 그린 라푼첼 삽화. 오른쪽은 디즈니에서 라푼첼을 소재로 만든 애니메이션. 라푼첼은 그림동화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에 하나이지만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아이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성적인 요소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동화책이라고 하기보다는 설화집

그림형제는 형 야코프 그림과 동생 빌헬름 그림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처음 그림 형제가 동화집을 펴낸 것은 1812년이라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법과대학을 졸업한 법관 지망생인데, 법률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역에 퍼져 있던 설화를 채집했다고 한다. 채집한 49편의 설화를 모아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이라는 제목을 붙서 책을 펴낸다. '그림 동화'의 첫 번째 버전이다. 첫 번째 책 이후 계속해서 판올림을 하고 1857년 제7판에는 모두 210 편의 이야기를 모아 책을 낸다. <그림형제 동화전집>에는 마지막 판에 실려 있던 210편의 동화가 모두 실려 있다.


그러니까 그림동화는 그림형제의 창작한 동화책이 아니고 당시에 떠돌던 설화들을 모아서 적당하게 변형을 해서 쓴 설화모음집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린다. 그런데 이 책이 아이가 읽기에는 너무 잔혹하고 내용 전개에 개연성이 없어서 동화라고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처음 그림동화가 출판되었을 때는 최종판보다 더 잔혹하고 성적인 코드가 많이 들어 있어서 판을 거듭하면서 수위를 낮췄다고 한다. (아마도) 어릴 때 이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을 나를 생각해 보면, 딱히 잔혹한 성인이 지는 않았으니 인격형성에 크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는 않은 것 같긴 하다. (내가 지금 범죄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영화 신데렐라(2015)의 메인 이미지. 신데렐라는 전세계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그림형제 동화전집>에서 등장하는 신데렐라는 굉장히 투박하면서도 언니들이 신발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잘라내는 것같은 끔찍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마녀도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동화의 원형인 듯한 투박한 이야기

210편의 동화가 담겨 있으니 정말 온갖 얘기가 다 들어 있다. 얼핏 생각나는 유명한 것들만 해도 위에 써 놓은 동화 이외에 '개구리 왕자', '엄지 공주', '작은 빨간 모자', '브레멘 음악대'같은 동화가 담겨 있다. 내용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것들은 굉장히 교훈적이면서도 권선징악을 제대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너무나도 잔혹하고 악인이 선한 사람들을 등쳐 먹는 이야기도 있다. 동물들이 주인공이 되는 우화도 있고, 정말 개연성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막나가는 스토리의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야기들이 내가 알고 있는 세련된 이야기들이 아니다. 굉장히 투박하다. 이전에 읽으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천일야화>에 비하면 이야기의 구성이 형편없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나무가 빽빽히 들어차서 하늘을 볼 수조차 없는 검푸른 독일의 숲 속을 걷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세련되지 않았다는 건, 아마도 많은 이야기들의 원형이 이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들이 교훈을 주기 위해서 가필하기 전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반드시 주류 사회에 바람직한 이야기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림형제 동화전집>을 읽다 보면 시장통에서 사람들이 수군수군대며 하는 얘기들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체면치레하지 않는 거리의 이야기꾼들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막말과 자극적인 표현을 섞어가면서 마구 씨부리는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현대 미디어에서는 훨씬 정교하고 멋진 이야기로 탄생해서 동화책이 되고 애니메이션이 되고 영화가 되겠지만 이대로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책 속의 제목은 <열두 왕자>, 영어 제목으로는 <The Wild Swans>라는 제목의 동화.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신한 왕자이자 오빠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 막내 공주는 7년 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서 오빠들의 옷을 짜야 한다. 왕비가 되어서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아 마녀로 몰려서 화형을 당하기 직전 백조들이 날아와 막 완성된 옷을 입고 왕자가 되는 모습은 어릴 때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 중에 하나다. 하지만 왕은 왕비를 모함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끓는 기름과 독뱀들로 가득한 통 속에 던져 넣어서 고통 속에 죽게 만든다.


★★★★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은 기억을 지니고 사는 건 즐거운 일이다. 어른이 되어서 어릴 때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어릴 때의 기분과 감정으로 되돌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형제 동화전집>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너무 오래전이라서 어렴풋이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건 정말 즐거웠다. 더불어서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아서 래컴의 삽화도 굉장히 멋지다. 그림동화니까 멋진 그림이 있는 건 당연하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유일한 문제는 책의 분량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종이 책 기준으로 1064페이지라서 읽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삽화가 200페이지 가까이 되니 분량이 좀 줄어들지만 그래도 900페이지 가까이 된다. 그래도 슥슥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까지 읽게 된다. 재미있으니까.


어릴 때 그림동화를 읽었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 다시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안 읽어 본 사람이라도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1/3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니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주기엔 좀 꺼려진다. 그런데.. 다들 읽고서도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읽으라고 줘도 큰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명 중 98명이 헷갈리는 우리 말 우리 문장
김남미 지음 / 나무의철학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글쓰기는 만만치 않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대화는 머릿속에서 바로 만들어낸 문장을 얘기하면 되고(물론 때때로 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뱉어내는 사람도 있긴 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반면에 글은 기록되는 것이고, 파기하거나 삭제하지 않는 한 남아서 다시 읽을 수 있다. 때로는 예전에 써 놓은 글을 읽고서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내가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감탄할 때도 있다. 글은 말과 다르게 기록으로 남는다. 말도 조심스레 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두고두고 읽을 수 있는 글도 잘 써야 한다. 남아서 두고두고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다. 어지러운 글이 되지 않도록 주제를 잘 잡아서 벗어나지 않게 써야 할 것이다. 단락도 적절하게 잘 나누어 놓아야 가독성이 좋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해 두면 글의 내용을 쓰는데 많은 훈련이 된다. 앞에서 쓴 것들이 내용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전에 먼저 익혀야 할 것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맞춤법이다. 맞춤법이 틀린 글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문장도 좋아야 한다. 문장이 좋다는 것은 필력이 좋다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건 내용의 측면에서 문장을 보는 것이다. 형식의 측면에서 보자면 정확한 문장을 써야 한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을 쓰면 내용을 전달할 때 뜻이 바뀔 수 밖에 없다. 글쓴이 김남미 교수는 이 책을 쓰기 전에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을 썼다. 이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책으로 올바른 문장을 쓰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 김남미,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졸엄. 현재 서강대학교 글쓰기센터 연구교수.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이 책은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은 후 서평을 남기든지, 다른 이유에서 쓰든지 항상 끊임없이 글을 쓰랴고 노력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참고할 것이 많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했다. 정상적으로 고등교육을 마쳤는데, 글의 주제나 구조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문장에서 고칠 것이 굉장히 많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그랬다. 하지만 항상 자만심은 깨지게 마련이다.

 

한국어는 참 어렵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어려운 것이 어찌 한국어 뿐일까? 모든 언어는 나름대로 어렵고 단순히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글을 쓰는 것은 더욱 어렵기 마련이다.


문장 구조로부터 시작..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첫 장을 문장 성분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좀 지루할 것 같은 주어, 목적어, 보어, 동사들을 다루는데 잘못 썼을 때 문장이 어떻게 비문이 되는지 찬찬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영어를 공부히고 영문장을 쓸 때는 수의 일치, 문장성분같은 문법적인 요소를 문장을 쓰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많이 따진다. 반면에 우리 말을 하고 우리 글을 쓸 때는 이미 모국어로서 체화되어 있는 우리 말의 문법적인 요소는 크게 신경쓰지 않게 마련이다. 비문은 여기서 발생한다. 너무 자신만만해서 소홀히 지나치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최대한 문장을 짧게 쓰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생략을 할 때가 많은데 너무 무리하게 생략하면 내용을 전달하는데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그외에도 글을 쓸 때 좋지 않은 몇가지 버릇이 있는데(주어부가 길어진다든지, '~것이다'라는 강조 표현을 많이 쓴다든지), 첫장이 나의 글쓰기 습관을 되돌아 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2장과 3장은 어휘를 다루고 4장에서는 중의적인 표현을 다룸으로써 우리가 일상적으로 글을 쓸 때에 아무 의식없이 사용하던 잘못된 표현을 예를 들어가면서 다양하게 설명한다. 거의 관용적으로 사용해 오던 말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생각해 보면 잘못된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런 표현들이 수두룩하게 나오고 글쓴이는 올바른 표현이 어떤 것인지를 친절하게 알려 준다. 첫 장이 총론이라면 나머지 부분은 각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글을 쓸 때 키보드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글씨체도 나빠지고 점점 글을 쓰는 법을 잊는 것 같아 최근에는 펜(특히 만년필)으로 종이에 글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전자책도 좋지만 종이책이 그립고, 키보드도 좋지만 종이에 쓰는 글씨도 그립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몇 개 배우고 가자

열차가 도착하고 있습니다(X) → 열차가 곧 도착합니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O)
잊혀진 계절(X) → 잊힌 계절, 잊어진 계절(O)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X)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줘(O)
절 받으세요(X) → 절 올리겠습니다(O)
피로회복제(X) → 피로해소제(O)
나도 이전에는 생각 못했던 표현들인데 책을 읽고 보니 잘못쓰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들이다.


★★★★

맨 처음에도 썼지만 글을 쓰는 건 참 어렵다. 내용도 생각해야 하고, 문장도 생각해야 하고, 단어도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은 그 중에서 문장과 표현에 대한 조언을 하는 책이다. 어려운 책은 아니다. 가볍게 읽으면서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써왔던 표현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책 하나 읽는다고 해서 문장이 순식간에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식없이 썼던 글들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토대로 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겠지. 다른 글을 쓸 때보다 이 글을 쓸 때 신경이 많이 쓰였다. 틀린 문장이 있으면.. 뭐.. 어쩔 수 없지. 기회가 되면 글쓴이가 쓴 다른 책도 읽어 보고 싶다. 그리고 생각만 하고 선뜻 손에 들지 못하고 있는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 글 바로쓰기> 세트도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가볍게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믿고 있는 아브라함 종교
2013년의 통계를 보면 세계 인구 71억명 가운데 기독교 33%, 이슬람교 23%, 유대교 0.23%로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세 개의 종교를 이야기할 때 나는 보통 이렇게 표현한다)를 믿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약 56%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힌두교도가 10억명, 불교도가 6억명 가량 있지만, 힌두교의 영향력은 사실상 인도에 국한되어 있고, 불교 역시 동아시아에서만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세계에 걸쳐 골고루 영향을 끼치는 종교는 아브라함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기독교는 우리나라에도 카톨릭과 개신교, 모두 많은 신자가 있지만, 이슬람교 신자는 많지 않고, 유대교도는 거의 없기 때문에 기독교 이외의 다른 두 종교에 대한 이해도가 그렇게 깊지는 않은 편이다. <세 종교 이야기>는 한 부모에게서 나온 세 명의 자식과 같은 세 개의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쓴 책이다.

 

홍익희 (1950 ~ ) 1978년 KOTRA에 입사한 경제 전문가. 경제의 관점에서 유대인 살펴폰 <유대인 이야기>를 써낸 대표적인 유대인 전문가이기도 하다.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 우르로부터 시작한다
아직은 유대교조차 생기지 않았을 무렵, 아브라함이 믿은 야훼 하느님은 수메르의 여러 신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따라서 초기 아브라함 종교는 다른 수메르의 종교와 신화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세 종교 이야기>는 아브라함 당시의 수메르의 사회상과 종교의 모습을 설명함으로써 초기 아브라함 종교가 수메르 문명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책을 앞 부분에 나오는 수메르 신화의 모습을 보면 유대교가 애초에 완전히 독립적으로 탄생한 종교는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읽은 많은 설화들은 수메르 신화에서 그 원형을 찾아 볼 수 있다.


<세 종교 이야기>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기원과 종교로 자리잡은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세 종교의 기원은 아브라함과 야훼 하느님의 계약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브라함은 원래 수메르 문명의 도시국가 중의 하나였던 칼데아의 우르에서 살고 있었다. 야훼 하느님은 우르에 살던 많은 사람들 중 아브라함을 선택하였고, 우르에 모든 생활터전이 있던 아브라함은 야훼의 뜻에 순종하여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인 가나안으로 아내 사라, 조카 롯 등 식솔들을 데리고 이동을 한다. 유대교의 기원이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Abraham on the Way To Canaan 가나안으로 가는 아브라함>, Pieter Lastman 그림, 1614년 작품, 아내 사라, 조카 롯 및 식솔들과 함께 칼데아의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이동하는 아브라함을 그리고 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세 종교를 설명한다
이후 책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면서 유대교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설명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은 가나안이 흉년에 접어들어서 굶주릴 때, 요셉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이집트로 이주하여 살도록 인도한다.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후, 야훼 하느님은 이번에는 모세를 통해서 노예와 다름없던 이스라엘 민족으로 가나안으로 다시 한 번 탈출시킨다. 이후 판관의 시대와 왕정의 시대를 지나 남북국 시대를 거친 후 북쪽의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멸망당하고 남쪽의 유다는 바빌론에게 멸망당한다. 유다의 지배층은 모두 바빌론의 포로가 되어 이스라엘 땅을 떠나게 되는데,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게 된다. 이 때 귀환을 주도한 두 명이 제사장이었던 에스라와 왕의 술을 맡은 고위관원이었던 느헤미야이다. 나는 유대교가 정확하게는 이 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기원전후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그 기원으로 본다. 바리새인과 가까운 설교자였던 예수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기존의 종교인들을 비판하다가 반역죄로 사형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부활을 한다.) 원래는 역사에 한 줄 정도 남을 사소한 사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를 직접 본 적도 없는 바울에 의해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예수의 사상이 전파되면서 급속하게 그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이후 수많은 박해에 시달리다가 로마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 국교로 지정된 후 유럽을 지배하는 종교로 자리잡게 된다.

이슬람교는 상인으로 성공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7세기 초에 알라의 계시를 받아서 탄생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아브라함의 정통성으로 사라의 아들인 이삭으로부터 찾는데 반해서,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의 정통성을 종이었던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로부터 정통성을 찾는다. 무함마드는 살아 있을 동안 이슬람교를 큰 세력으로 확장시켰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교는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서 갈등을 겪는 가운데서도, 아랍 지역에 계속해서 영향력을 넓혀 나가서 지금의 큰 종교가 되었다.


...고 책은 역사에 따라 세 종교의 기원과 확장과정을 설명한다.

 

다윗의 별과 메노라. 유대교의 상징이다. 메노라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타지않는 떨기나무에 나타난 하느님을 상징한다.


역사 속의 종교를 비교해서 잘 설명한다
종교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와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동의를 할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믿는 사람은 그 부분을 믿음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 부분을 넘어갈 수가 없다. 종교에 관한 책도 믿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세 종교 이야기>는 대체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쓴 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 개의 종교를 이성적으로 너무 깎아 내리지도 않는다. 세 종교의 역사를 설명할 때는 각 종교의 관점에서 담담하게 쓰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가잔 사람들도 거부감없이 세 종교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틈틈히 세 종교를 비교해 가면서 이해를 돕는 점 역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8장 '세 종교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에서는 세 종교가 공유하고 있는 점과 양보할 수 없는 각 종교의 특성에 대해서 비교,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유일신으로서의 하느님, 구약을 정경으로 삼은 점과 부활 및 최후의 심판을 믿는 것은 비슷한 점이다. 반면에 예수를 보는 관점, 구원과 원죄를 보는 관점 등은 세 종교를 나누는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Christ On the Cross Between Maria and St. John 십자가상의 예수를 지켜 보는 마리아 성 요한> Denys van Alsloot 그림, 기독교는 갈릴리에서 태어나 겨우 3년간 설교를 하고 떠난 예수 그리스도록부터 시작한다. 예수에 대한 관점은 세 종교의 중요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유대교에 편향되어 있는 관점
세 종교를 잘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세 종교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비해서 유대교의 관점에서 세 종교를 설명하고 있다. 수메르 문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유대교가 정착하는 과정까지는 유대교가 주인공이니 이해할 수 있고, 기독교가 발생하여 정착하는 단계 역시 아직은 이슬람교가 생기지 않았을 때이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슬람교가 생긴 이후 역시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차이점에 대해서 더 집중을 한다. 물론 유대교가 큰 영향을 미친 두 종교이긴 하지만 세력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가 주가 되어야 할 때도 유대교를 중심에 두고 설명을 한다.


책 전체를 통틀어서 유대인 박해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 큰 비중을 두고 다루고 있다. 특히 9장 '반목과 갈등의 역사'에서는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의 박해에 관해서만 한 장을 할애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한다. 반목과 갈등의 역사라고 하면 오히려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에서 할 얘기가 다 많을 것 같은데 너무 유대교에 편향된 점이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결국 이 책에서는 유대인 탄압의 역사를 자세하게 서술함으로써 현재 이스라엘이 국가 차원에서 행하는 비윤리적인 행태를 두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불편했다.


이슬람의 초기 역사를 다룰 때,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후 4대 칼리프인 알리가 무아위야에게 패배하고 암살당함으로써 수니파와 시아파가 나누어 지는 과정은 이슬람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설명이 없이 지나갔다. 역시 많이 아쉽다. 저자인 홍익희의 다른 책들 목록을 살펴 보니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 <유대인 이야기>같은 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유대인 쪽에 심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끼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꾸란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23년간 받은 계시를 받아 적은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토라와 복음서는 전승과정에서 변형되었지만 꾸란은 선지자 무함마드로부터 일점일획도 변형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라고 믿는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글을 몰랐으므로 꾸란은 선지자 무함마드가 구술한 것을 다른 신자가 받아 적었을 것이다.


★★★★
불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입문서로써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유대교가 영향을 받은 수메르의 종교로부터 시작해서 세 종교의 기원과 정착해 나가는 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거의 기독교인만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대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이 읽으면 세 종교를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순으로 세 종교를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어떻게 세 종교가 발생하고 관계를 맺어 나갔는지 이해를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교양으로 읽어 두면 좋을 것 같다. 어렵게 쓴 책이 아니라서 쉽게 읽히기 때문에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다.


단, 위에서 밝혔듯이 친유대적인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는 점은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세 종교에 대해서 좀더 깊이 있게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은 후에 다른 책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서 추천한다.

 

세종교이야기,홍익희,행성B출판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교황 성하께서 돌아가셨다
급작스러운 일이다. 어제 저녁만 해도 문제없이 미사를 집전하셨던 교황 성하께서 돌아가셨다. 추기경단의 단장인 야코포 로멜리 추기경의 마음은 바빠졌다. 교황의 선종을 둘러썬 쓸데없는 추문을 차단하면서 슬픈 소식을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전세계의 추기경들을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으로 불러 모아 추기경 중에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열고 주관해야 한다.

 

*콘클라베 Conclave : 라틴어.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 선출 의식을 말한다. 1268년 클레멘스 교황이 선종한 후 추기경들이 3년 동안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지 못하자 로마 시민들이 추기경들을 가두고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나오지 못하도록 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콘클라베의 절차는 교회법에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으며, 수석 추기경이 이 규정에 따라 진행한다. 교황의 후보는 따로 없이 모든 추기경들이 후보가 되고 한 표를 행사한다. 참석 추기경의 2/3 이상을 득표하면 교황에 선출된다. 원래의 뜻과는 달리 추기경들은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갇혀 지내지 않는다. 추기경들은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성 마르타의 집'이라는 숙소에 기거하고 투표할 때만 시스티나 성당으로 장소를 옮긴다. 투표는 무기명으로 진행되며, 투표용지는 확인 후 소각한다. 이 때 연기가 검은 색이면 교황이 선출되지 않은 것이고, 교황이 선출되면 흰 색 연기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알린다.

 

콘클라베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로마 카톨릭의 가장 중요한 회의이며, 시스티나 성당에서 진행된다.


교회의 절대권력은 누구에게?
교황의 선종으로 전세계의 잠정적인 교황 후부돌인 추기경들이 바티칸에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려낸 소설이며,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추기경단의 단장인 로멜리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교회내에서 절대권력을 갖는 유력한 교황 후보는 네 명, 네 명의 추기경들은 때로는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교황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력을 행사한다. 거룩한 의지에 의해 선출될 것 같은 교황의 자리는 지역, 성향 등에 따라 이합집산이 거듭되는 추기경들에 의해 쉽사리 결정이 나지 않는다.


무난하게 진행될 것 같던 콘클라베는 회를 거듭할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로멜리 추기경이 내심 밀고 있던 벨리니 추기경은 예상외로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교황의 자리에서 멀어진다. 최초의 흑인 교황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며, 두 차례의 투표에서 선두를 달리던 아데예미 추기경은 초보 신부시절 관계를 맺어 아이까지 낳은 수녀가 교황청에 나타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벨리니 추기경이 추천하고 나선 트랑블레 추기경은 전임 교황이 선종 직전에 모든 자격을 박탈한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어 선뜻 밀기가 힘들다. 전통주의자이면서 과격하기까지 한 테데스코 추기경도 강력한 후보이지만 어떻게든 막고 싶다.


심지어 교황의 자리에 뜻이 없는 로멜리 추기경 자신에게도 표가 모이고, 교황이 선종 직전에 아무도 모르게 추기경으로 임명한 필리핀 마닐라의 대주교였던 베니테스 추기경이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서 몇 표 되지는 않지만 득표를 하면서 신임 교황의 자리가 누구에게 돌아갈지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교회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주님의 뜻은 누구에게 있을까? 콘클라베는 주님의 뜻을 올바르게 드러낼 수 있을까?

 

로버트 해리스 Robert Harris (1957 ~ ), 영국의 소설가. 대표작으로 로마사 3부작인 <임페리움>, <루스트룸>, <딕타로트>가 있다.


거룩한 의식, 비루한 인간
콘클라베 중에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 볼 수 있는 심각한 음모에 의한 극적인 반전이 발생하는 사건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같은 콘클라베를 소재로 삼은 소설인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는 교황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한 인물의 음모가 소설 내내 흐르고 있는 반면에 <콘클라베>는 그렇지 않다. 종교공동체에서 있을 수 있는 세속적인 사건들이 이어진다. 추기경들은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 각기 파벌의 손익을 생각하여 표를 계산하고 계속되는 투표 사이마다 유불리를 따져 나간다.


가장 거룩할 것 같은 카톨릭 교회 최고의 지도자들이 교회의 수장을 선출하면서 가장 세속적인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이 소설의 포인트. 이 과정에서 교회의 가장 은밀한 의식인 콘클라베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이다. 가장 중요한 교회의식을 치르면서 가장 거룩한 교회의 지도자들의 감추어진 인간적인 욕망이 드러나면서 도대체 하느님의 뜻이라는게 있긴 한 건지 의심이 든다. 그 와중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로멜리 추기경의 노력도 눈물겹다.

 

현재 카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 프란치스코. 266대 교황이다. 다섯 차례의 투표 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며, 소탈한 품성과 소외되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포용하면서 세계적인 존경을 받고 있다.


결국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
인간의 욕망만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은 콘클라베, 소설의 9/10은 마치 교회를 비아냥거리는 것같이 진행된다. 정치적인 추기경단에서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쫓는 자는 몇 명 되지 않는 것 같고, 콘클라베 도중에 생기는 여러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가운데 로멜리 추기경은 뜻하지 않게 가장 유력한 교황 후보로 발돋움한다. 책을 읽으면서 로멜리 추기경의 사심없는 신실한 마음을 훔쳐본 나로서는 로멜리 추기경을 응원하게 되고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단 한 사람 눈에 띄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 사람이 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인간의 생각은 하느님이 준비해 놓은 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려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이 상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당한 길을 예비해 놓는다. 이 책의 결말 역시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끝을 맺는다.

 

콘클라베가 진행되는 시스티나 성당의 외관


★★★★
내용도 어렵지는 않고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는 반면 자극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뭔가 사건이 일어나는 건 책의 반 이상을 읽은 후다. 좀 심심한 느낌이 있지만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가려고 노력하는 로멜리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교황이 되는 사람은 수긍할 만하고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사실 소설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교황이 되는 사람을 부각시키는데 애써 외면하기도 했던 것 같다. 전임 교황의 선종부터 콘클라베를 준비하는 과정이 그려지는 1/3까지는 콘 좀 심심하다. 본격적으로 투표가 시작되면서 재미있어진다. 재미를 느끼려면 좀 참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읽을수록 별점의 갯수가 늘어났다.


책을 읽으면서 콘클라베 의식과 카톨릭 사제들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다. 재미있다. 추천한다.

 

--------------------------------------------


아니다! 이 악마야!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지막에 경악할 만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정말 그렇게 결말이 나도 괜찮은 거냐!!

 

콘클라베,로버트해리스,알에이치코리아,조영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범인 없는 살인의 밤 (개정판) -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평점 :
판매중지


일본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마음이 닿으면 어떤 책이든 읽지만 일본소설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동안 읽었던 일본소설의 경험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일본소설은..
1. 자극적이고 참신한 소재로 금세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2. 호흡이 짧아서 읽기는 쉬운데 밀도가 낮다.
3. 중반까지는 흥미진진하지만 결말 부분이 허술하다.
4. 글로 쓴 만화책같다.
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참신한 소재와 짧은 호흡으로 중반까지는 몰입해서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중후반으로 가면 결말에 대한 부담감으로 무너져 버린다'고 할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나의 일본소설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바꿔줄 수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장편이 아니네?
두번째로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다. 이전에 읽은 책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상당히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소설이고 특이한 소재를 옴니버스식으로 잘 풀어내서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한 작품이 괜찮았으면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신뢰가 생기기 때문에 큰 고민없이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책을 골랐다. 책을 고를 때, 일부러 찾아서 보는 책이 아니면 정보를 미리 보지 않는 편이라 <범인없는 살인의 밤>도 어떤 정보도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단편소설집이었다. 첫 단편인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날 때까지 몰랐다. 어.. 어.. 하는 순간 첫 번째 소설이 끝이 났다.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일곱 개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일곱 개의 살인사건을 다룬 단편소설집
정확히는 모두 살인사건은 아니고 일곱 개의 죽음을 다룬 단편소설집이다. 어느날 가까운 사람이 죽는다. 살인사건도 있지만, 자살로 죽은 사람도 있고, 사고사로 죽은 사람도 있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진다. 범인들은 살인사실을 감추려고 하지만 결국, 형사(또는 형사 역할을 하는 지인)에 의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죽음의 미스테리가 밝혀진다. 모든 개별 단편의 구성이 그렇다. 죽음 → 미스테리 → 반전 결말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이런 소설이라면 대체적으로 재미있을 것 같은데..

 

작가의 다른 작품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꽤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기 전에 기대가 컸다.
기대에 못 미친다


작가가 누구인지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예전에 멋진 아이디어로 소설을 쓰는 외국의 소설가의 단편집을 읽고서 굉장히 실망한 적이 있다. 장편소설은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단편소설은 재미도 없었고 충격적인 반전을 주려고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확실히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같은 소설이라고 해도 작품을 구성하는 솜씨가 다른 것 같다. <범인없는 살인의 밤> 역시 그렇다.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기 때문에 범인 또는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모든 개별 소설의 결말이다. 하지만 너무 헐겁다.


이 책은..
1. 추리가 너무 허술하다. 허술하다기보다는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엔 별로 추리가 없다. 그렇다고 추리소설이 아니라고 하기엔 모든 소설이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2. 반전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전개 내용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중요한 정보들을 숨기고 마지막에 모든 정보를 보여 주며 결말을 짓는다.
3. 내용에 긴박감이 전혀 없다. 그냥 잔잔하다. 그렇다고 일부러 잔잔하게 쓴 것 같지도 않다.

 

읽는 내내 <명탐정 코난>이 오버랩됐다.


★★☆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페이지도 굉장히 빠르게 넘어간다. 이 책의 굉장히 큰 장점이다. 평소에 책 읽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큰 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과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다른 작품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 같다. <명탐정 코난>의 재미없는 에피소드를 보는 느낌이다. <소년탐정 김전일>이 아니라 <명탐정 코난>이라고 하는 건 두 만화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프로필을 살펴 봤는데, 엄청난 다작을 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좋아서 하나 떠오르면 순식간에 한 권의 책을 써내는 작가일 것이다. 다작을 하는 작가는 개별 작품의 편차가 큰 경우가 많은데,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수작은 아닌 것 같다. 맨 처음에 적어 놓은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일본소설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지는 못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미리 평을 읽어 본 후 잘 골라서 읽어야 할 것 같다.


가볍게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을 사람이라면 말릴 생각은 없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재미는 별로 없다. 추천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