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아들의 집에서 토끼는 더 이상 종이를 갉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갉아 먹기 시작했다. - P26
어느 날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막 나오려 할 때였다. "어머니."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변기 속에서 머리가 하나 튀어나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 P41
이제는 ‘머리‘가 아니게 된 ‘머리‘는 그녀의 등 뒤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젊은 날의 그녀와 똑같은 얼굴이 정말로그녀를 향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머니." - P58
그녀는 눈을 떴다. 어둡다. 깜깜하다. 검은 천으로 눈앞을 가려놓은 것 같다. 작은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눈이 먼 것일까? - P67
"왜요? 저, 어떻게 된 거예요? 여긴 어디예요?" 가느다란 목소리가 차분하게 말한다. "습지라서, 차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어요. 빨리 나오시는게 좋아요." - P69
피가 멈추지 않는다. 생리 12일째. 보통 3일째를 고비로 양이 줄기 시작하여 5, 6일쯤 끝나곤 했는데 이번에는 2주가 다 돼가는데도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저녁이되면 양이 줄어들어 드디어 그치려나 싶다가도 아침이 되면 다시 슬금슬금 흘러나온다. - P93
"몸이 정상이 아닐 때 피임약을 그렇게 오래 먹으면 부작용으로 임신이 되는 수가 있어요." - P96
S12878호는 전원을 넣자마자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 P133
1호는 말 그대로 1호다. 그러니까 내가 ‘인공 반려자‘를 개발하고 시험 작동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맡은 기계다. - P138
옛날에 어떤 남자가 겨울에 눈 덮인 산길을 가다가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여우를 보았다. 여우의 털가죽은 돈이 되므로 남자는 여우를 죽여서 그 가죽을 가져가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여우가 고개를 들고 마치 사람처럼 남자에게 말했다. "나를 풀어주시오." - P161
소년은 동굴 안으로 끌려갔다. 이유는 모른다. 자신을 끌고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사실 소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몰랐다. 벌판을 배회하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그대로 끌려간 곳이 산속의 동굴이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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