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의 성은 장(張), 보잘것없는 이름은 취산(翠山)이라 부릅니다. 평소 용문표국 도총표두님의 크신 명성을 흠모해왔으나, 아직 뵈올 인연은 없었지요." 스스로 ‘장취산‘이라 신분을 밝히는 청년의 말에, 도대금과 축표두, 사표두 세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장취산이라면 무당칠협 가운데 다섯 번째로, 지난 몇 해 동안 강호무림계 인사들의 칭송을 통해 그 무공 실력이 어떠한지 세 사람 모두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 유명한 인물이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젊은이라니! 바람 한 번 불면 날아갈 것처럼 호리호리한 체구에 문약해 보이는 이 청년이 장취산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 P290
"그렇다면 뺨에 커다란 흑사마귀가 달리고, 또 그 사마귀에 긴 터럭이 세 가닥 난 그 사람이 송대협이 아니란 말이오?" 장취산은 이 말에 또 한 번 멍해지더니, 이내 딱 부러지게 고개를 흔들었다. "저희 일곱 형제 가운데 뺨에 사마귀가 달린 사람은 없습니다. 사마귀에 털 난 사람도 없고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도대금은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한 줄기 써늘한 기운이 확 치밀어 올랐다. 이날 이때껏 무언가 모르게 막연히 느껴왔던 불안감이 한꺼번에 솟구쳤던 것이다. - P293
결국 네 명의 승려들은 자기네 동료 두 사람과 용문표국 일가족이 몰살당한 모든 누명을 자기 머리 위에 덮어씌워놓은 셈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장취산은 제 입으로 이름 석 자를 밝혔을 뿐만 아니라 강호상에 명성을 떨쳐오던 ‘은구철획‘의 병기마저 꺼내 보여주지 않았던가? - P355
"똑똑히 보고 다시 말해보시오! 살인범이 딴 자가 아니라, 이 장취산! 바로 나였단 말이오?"" 높이 쳐들린 화접자 불빛 아래 비친 장취산의 얼굴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던 혜풍의 두 눈에 갑작스레 이상야릇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장취산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너…… 너는…… 당신……… 아니…… 당신은….." 흥분에 들떠 몇 마디 말을 더듬는가 싶더니, 말끝을 다 맺기도 전에 갑자기 몸뚱이가 뒤로 벌렁 넘어갔다. 그런 뒤 땅바닥에 가로누운 채 두 번 다시 일어날 줄 몰랐다. - P366
"제 성은 은(殷)씨예요…… 언젠가 연분이 닿으면, 장상공께 다시 가르침을 청하겠어요!" ‘성이 은씨……‘ 란 첫 마디에, 정취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대금이 뭐라고 했던가? 셋째 형님 유대암의 호송을 부탁한 사람은 서생 차림에 용모가 준수하고 아리따운 여자라고 했다. 그가 스스로 은씨라고 일컬었다고 했는데, 혹시 저 처녀가 변장을 하고 나타났던 것은 아닐까? - P395
이 말을 듣는 순간, 장취산은 가슴이 써늘해졌다. "그렇다면, 표국 안의 그 숱한 목숨은 모두…… 모두……?" "모두 내가 죽였어요!" 장취산은 귓속에서 ‘위잉!‘ 하는 이명(耳鳴)이 울렸다. 저 꽃같이 아리따운 처녀가 외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숱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간 범인이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 P397
"그런데 이 장취산이 당신과 무슨 원수를 졌기에 날 그토록 함정에 빠뜨린 거요?" 장취산이 분노로 가슴이 꽉 메어져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은소소는 빙그레 웃으면서 응수했다. "저 역시 당신을 함정에 몰아넣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소림파와 무당파, 소위 당세 무학의 양대 종파라고 일컫는 두 세력이 충돌한다면, 과연 어느 편이 이기고 질 것인지 보고 싶어서 싸움을 붙여보려는 거였죠." 이 말에 흠칫 놀란 장취산은 가슴속 그득히 들끓던 분노의 불길이 단번에 수그러들고 그 대신 두려움과 경계심이 부쩍 늘었다. - P426
상금붕을 도로 주저앉힌 백귀수가 서둘러 포구 쪽으로 달려 가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헛기침을 하면서 나무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가볼 것 없네! 금모사왕은 진작 여기 와 있으니까." 착 가라앉으면서도 무게가 있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백귀수는 고막에서 윙윙!‘ 하고 귀 울음까지 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 P479
"법왕이라니 지나친 말씀이오. 소인의 성은 사(謝)씨, 이름은 외자로 손(遷), 자(字)를 퇴사(退思)‘라 부르오. 그리고 친구들이 보잘것 없는 내게 금모사왕(金毛獅王)‘이란 별호를 붙여주었기에 그대로 쓰고 있소. - P480
"그렇겠지! 여러분더러 그냥 죽으라고 하면 억울해서 죽을 때까지 불복하실 거요. 내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하리다. 여러분이 각자 평생토록 갈고 닦아온 절기를 내 앞에 펼쳐보도록 하시오. 만에 하나, 그 장기로 ‘나를 이길 수만 있다면 그분의 목숨만큼은 살려드리리다" - P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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