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남송 말엽 무학의 명가요 도사의 한 분이던 구처기(丘處機)가 읊은 무속념<(無俗念)>이란 시구다. 구처기의 도호는 장춘자(長春子), 바로 ‘전진칠자(全眞七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진교(全眞敎) 출신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물이다. - P23
처녀의 성씨는 곽(郭), 이름은 양(襄), 바로 대협 곽정(郭靖)과 여협 황용(黃蓉) 사이에 태어난 둘째 따님으로, 외조부 동사(東邪) 황약사(黃藥師)의 별호를 따서 소동사(小東邪)‘란 별호를 얻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나귀 한 마리 단검 한 자루에 몸을 의탁하고 세상천지를 유람하는 중이었다. - P25
. 곽양은 화산 절정봉에서 양과 · 소용녀 부부와 헤어진 후로 3년동안 두 사람의 소식이 끊기자. 그들 부부에 대한 미련을 주체할 길이 없어 산수 좋은 명승지를 유람하겠다는 핑계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내고 양과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여행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녀는 양씨 부부가 여전히 종남산 고묘에 은거하고 있으려니 싶어 곧장 그리로 찾아갔다. 그러나 고묘 속에서 나온 사람은 몸종 둘뿐이었다. 그들은 양과 내외가 바깥세상으로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얘기와 함께 그녀를 무덤 안으로 맞아들여 사흘 동안 기다리게 해주었다. - P28
"이크!" 흠칫 놀란 무색선사가 번 몸을 기울여 피해냈다. 그 바람에 공력이 풀어지는가 싶더니 곽양은 어느새 단검을 집어들고 있었다. "호오! 기막힌 난화불혈수법(爛花柳穴手法)이군! 그럼 아가씨는도화도 주인을 어떻게 부르시는가?" 곽양은 까르르 웃으면서 한마디로 대꾸했다. "도화도 주인 말씀인가요? 난 그를 ‘늙은이 동사(老東邪)‘ 라고 부른답니다." - P50
지난 3년 동안 양과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이라면 세상천하 구석구석 안 찾아본 데가 없었지만, 얻은 것이라곤 그저 좌절감뿐이었다. 소용녀가 은거하던 종남산 고묘의 출입문은 깊이 닫혔고, 백화요(百花씨) 후미진 골짜기에는 꽃잎만 소리 없이 떨어졌다. 비련의 절정곡(絶情谷)은 주인 없이 적막강산으로 변한 지 오래였고, 풍릉도(風陵渡) 나루터에는 차가운 달빛만이 아득했었다. - P84
허나 곽양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도 나처럼 쓸쓸한 모양이다. 주인 없는 텅 빈 산중에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멧새들을 지음(知音)으로 삼고 있으니, 어디 그뿐이랴 바둑을 두는 데도 적수가 없어 혼자서 자신과 대국하고 있으니, 참으로 외로운 인생이로구나. - P89
"아가씨 사부님은 뉘신가?" 곽양은 열흘 전 소림사에서 부모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다 결국 무색선사의 입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오기가 발동해 곧이곧대로 이름을 밝히고 말았다. "내 아버님 성함은 곽정, 어머니 함자는 황용! 사부님은 아예 없고, 집안 어른들한테 되는 대로 주워 배웠을 뿐이죠!" 세 늙은이가 또 한차례 눈짓을 주고받았다. 서로 아느냐고 묻는 눈치였다. 얼굴 시퍼런 꺽다리 영감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중얼거렸다. "곽정이라? 황용이라……… 그 사람들, 어느 문파며 누구의 제자들인가?" 얘기가 이쯤 되니 곽양은 화가 나다 못해 복통이 터져 죽을 노릇이었다. - P101
그녀는 팔뚝에 차고 있던 금실 팔찌를 풀어 장군보에게 건네주었다. "이 팔찌를 가지고 양양성으로 가서 우리 부모님을 만나봐. 그분들이 잘 대해주실 테니까. 우리 부모님들과 함께 있기만 하면, 소림사 승려들이 제아무리 사납더라도 동생을 어쩌지 못할 거야." - P194
장군보는 도가의 학문에 전념한 탓으로 무당산 정상에 진무대제(眞武大帝)의 도관(道觀)을 세우고 마침내 도사가 되었다. 훗날 북방을 유람하던 중 보명(寶鳴)에 이르러 산봉우리 셋이 빼어난 자태로 구름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구친 기상을 보고 무학의 또다른 깨달음을 얻은 나머지, 스스로 삼봉(三羊)‘ 이란 호를 쓰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바로 중국 무학 사상 불세출의 기인이요 태극권의 창시자인 장삼봉(張三)이었다. - P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