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육선은 진기를 운용해 자기 나름대로 영호충을 치료하는 한편, 쉬지 않고 말다툼을 해댔다. 그 치료 중에 영호충의 경맥이 뒤죽박죽 망가져버렸다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화산파의 상승 내공을 익혀온 영호충은 비록 그 내공은 깊지 않지만 기본은 튼튼해, 선무당 같은 도곡육선의 치료에도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 P49
도근선 등 다섯 형제는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도지선이 도실선을 안고 급히 물러났고, 나머지 네 사람은 우르르 달려가 눈 깜짝할 새 악 부인의 팔다리를 잡고 들어올렸다. 그들이 이대로 팔다리를 잡아당기면 악 부인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리라는 것을 잘 아는 악불군은 즉각 검을 뽑아 도근선과 도엽선을 찔러갔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침착을 유지하던 악불군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검을 든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 P61
악불군의 말이 이어졌다. "봉불평과 같이 쫓겨난 검종뿐이라면 우려할 필요가 없으나 그들이 오악검파의 영기를 얻어 숭산파, 태산파, 형산파의 인물들과 손을 잡았으니 이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하여…." 그의 시선이 제자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다 함께 즉시 숭산으로 가서 좌 맹주를 만나 시비를 가리려 한다." 그 말에 제자들은 흠칫 놀랐다. - P75
육대유가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무슨 용기가 있어서 몰래 본 파의 지고무상한 내공 심법을 익히겠어? 마음 푹 놓으라고, 소사매, 사부님이 대사형을 구하기 위해 파격적으로 비급까지 내주시다니… 이제 대사형은 살았어." 악영산이 소리를 죽였다.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 내가 아버지 몰래 훔친 비급이란 말이에요." - P79
"영호 형, 당신은 이 전백광의 친구요, 영호 형이 중상을 이기지 못해 먼저 죽는다면 나 또한 결코 혼자 살아남지 않겠소!"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말에 영호충도 마음이 흔들렸다. ‘저자는 역시 친구로 삼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결심을 하고 팔을 뻗어 전백광의 오른손을 꽉 쥐었다. "전 형, 이렇게 함께 가면 저승길이 외롭지 않겠구려." - P100
의림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영호 사형, 저희 아버지 법명은 ‘불계不戒‘ 예요. 비록 불문에 계시지만 불문의 각종 계율들을 하나도 지키시지 않아 불계라는 법명을 얻으셨죠. - P105
"소사매, 놀라지 마. 내가 혈도를 짚어서 그래." "깜짝 놀랐잖아요. 왜 육후아를 쓰러뜨렸어요?" "내가 비급을 보지 않으려고 했더니 여섯째 사제가 비급의 경문을 읽어주기에 막기 위해서는 쓰러뜨릴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악불군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는 육대유의 코앞에 손을 대보고 맥을 짚더니 놀란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이미… 죽었다. 충아, 무슨 혈도를 짚었느냐?" 육대유가 죽었다는 말에 영호충은 충격에 빠져 넘어질 듯 휘청거렸다. - P125
도곡육선이 그를 치료한답시고 서로 다른 경맥을 통해 진기를 불어넣는 바람에 내상은 낫지 않고 도리어 여섯 갈래 진기가 몸속을 휘휘 돌며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그 후 내공이 깊고 성품은 거칠기 짝이 없는 불계 화상이 억지로 진기를 밀어넣어 도곡육선의 진기를 억누름으로써 일시적으로는 내상이 치료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몸속에 진기 두 갈래가 더해진 것에 불과했다. 서로 다른 진기들이 충돌하고 저항하는 동안 오랫동안 연마해온 화산파의 내공은 소리도 없이 사라져 그를 완전히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억울하고 괴로워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외치고 싶었다. - P138
"악 선생, 우리는 악 선생과 아무런 원한도 없소이다. 오늘 이렇게 결례를 범한 것도 단지 〈벽사검보〉를 한번 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오. 그 검보로 말하자면 본디 화산파의 것도 아닌데,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백방으로 술수를 부려 복위표국의 꼬마를 제자로 삼지 않았소? 결코 정정당당한 방법이라 할 수 없으니, 그 소식을 들은 무림동도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소. 이 늙은이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만 내놓으시오!" - P144
"저리 비켜라!" 총불기가 버럭 외치며 영호충의 목을 향해 검을 찔렀다. 검이 날아드는 것을 보자 영호충은 기운 없는 몸으로 검을 막아봤자 공연히 들고 있던 검만 날려버릴 뿐이라 여기고 막는 것을 포기한 채 똑같이 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밀었다. 동귀어진하려는 수법이었다. 그 움직임이 빠르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노리는 방향은 실로 교묘했다. 다름 아닌 독고구검 ‘파검식‘의 절초였기 때문이었다. - P158
"당연한 소리! 네 무공이 그 수준까지 진보했으니 어디 사부와 사모가 눈에 차겠느냐? 우리 화산파의 자질구레한 공력 따위로는 너의 그 대단한 신검神劍을 받아낼 수도 없을 터. 그 복면인들도 말하지 않더냐? 화산파의 장문 자리는 네가 차지해야 한다고 말이다." - P177
"녹죽응, 그 서책이 정말 곡보입니까, 아니면 일부러 곡보처럼 기술한 무공 비급입니까?" "무공 비급? 허허 우스꽝스러운 말씀 마시구려. 이 서책은 틀림없이 금의 곡보요. 어디 보자…." 곧이어 아취 있는 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호충이 귀 기울여 들어보니 지난날 유정풍과 곡양이 연주한 곡이 분명했다. 그들은 떠났는데 곡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절로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 P217
노파가 말했다. "영호 공자, 떠나기 전에 공자에게 권할 말이 있네." "예, 말씀하십시오. 반드시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영호충이 말했지만 노파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아주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강호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일세. 공자는 성격이 선하고 인자하니 부디 어딜 가나 몸조심하게." "예." - P240
"평일지라는 사람은 무림의 괴… 아니, 기인인데, 죽은 사람도 살려낼 만큼 고명한 의술 덕에 아무리 무거운 병을 앓는 사람도 그가 손을 대면 반드시 낫는다고들 한단다. 하지만 성격이 괴팍해서 세상 사람의 수는 하느님과 염라대왕이 정해 놓았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을 살려주어 죽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면 염라대왕의 눈 밖에 나서 훗날 죽어 저승에 갔을 때 괴롭힘을 당할까 봐 겁이 나기 시작한 거야." - P253
평일지가 말했다. "영호 공자, 공자의 몸속에 있는 여덟 갈래 진기는 제거할 수도, 녹여 없앨 수도, 굴복시킬 수도, 억누를 수도 없어 몹시 까다롭소. 내 귀찮아서 대충 살핀 것이 아니라, 본디 이런 증상은 진기와 관계가 있어 침이나 뜸, 약은 아무 효험이 없소. 의술을 베푼 이래 이런 증상은 보다보다 처음이구려.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뿐이오." - P2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