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하니 돈을 주고 벼슬을 샀구나. 순무의 추천서 한 장을 위해 황금을 얼마나 바쳤을꼬? 언제나 올곧던 유정풍이 늘그막에 벼슬 욕심에 사로잡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관직을 사들일 줄이야….’ - P30

"제자 유정풍, 사부님의 은혜로 문하에 들어 무예를 익혔으나 형산파의 이름을 빛내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여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막대 사형이 본문을 이끌어주시니, 평범하고 재주없는 이 몸 하나쯤 없어진들 무슨 대수겠습니까? 이제 제자는 금분세수하고 관직에 나아가나 벼슬길을 높이기 위해 사문의 무예를 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강호의 시비와 은원, 문파 사이의 논쟁 또한 다시는 귀에 담지 않겠습니다. 이 맹세를 어길 시에는 이 검처럼 될 것입니다." - P32

"이보시오, 사형. 숭산파에서 오신 것 같은데 대청에 동문들과 함께 계셔야 하지 않소?"
청년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대답했다.
"상관없소. 나는 유정풍의 식솔들이 단 한 사람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는 맹주의 명을 받았소."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으나 말투가 어찌나 거만한지, 대청에 있는 군웅들마저 안색이 싹 변했다. - P38

유 사형, 오늘 일은 형산파 장문인 막대 선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막대 선생을 끌어들일 필요 없소. 좌 맹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유 사형께 명확한 답을 받아오라는 것이었소. 유 사형은 어찌하여 마교 교주 동방불패와 남몰래 결탁하였소? 그와 함께 우리 오악검파와 무림동도들을 해치기 위해 무슨 음모를 꾸몄소?" - P46

비빈은 대답 대신 셋째 사형 육백을 바라보았다. 육백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유 사형, 온전히 사실만을 말씀하시지는 않은 것 같소이다. 마교에는 곡양曲洋이라는 호법 장로가 있는데, 혹 아시는지?"
그동안 평정을 유지하던 유정풍이었으나 ‘곡양‘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 안색이 싹 변해 입을 꾹 다물었다. - P47

한참이 지난 후에야 유정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나는 곡양 형님을 잘 아오. 단순히 아는 사이가 아니라 내 평생지기이자 가장 가까운 벗이오." - P47

"그 옛날 혜강(삼국시대 위나라의 유명한 사상가이자 음악가)은 형장에 올랐을 때 금을 쓰다듬으며 다시는 <광릉산(廣陵散)>이 세상에 울릴 일이 없다며 탄식했지. 허허, 〈광릉산>도 절묘하지만 우리가 만든 이〈소오강호곡>만 하겠나? 허나 그때 혜강의 심정은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거야." - P83

"유 사숙님, 저희 같은 강호의 협객은 협의를 중요시하여 사마외도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했습니다. 여기서 협의가 무슨 뜻입니까? 중상을 입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협의입니까? 무고한 어린아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협의입니까? 그런 짓을 저지르는 자가 사마외도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 P88

여기까지 말한 그는 품에서 서책 한 권을 꺼내 내밀었다.
"이것이 바로 <소오강호곡>의 금과 퉁소 곡보曲譜라네. 우리 두 사람이 쏟은 심혈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형제가 전승자를 찾아 이 곡보를 전해주게나."
유정풍도 말했다.
"이 <소오강호곡>이 세상에 전해질 수만 있다면 나와 곡 형님은 죽어서도 여한이 없네."
영호충은 허리를 숙이고 곡양의 손에서 곡보를 받아 품속 깊숙이 갈무리했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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