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소보는 두 여인을 살펴보았다. 한 사람은 스무 살가량에 남색 옷을 입었는데 용모가 수려했다. 그리고 또 한 여인은 나이가 열예닐곱에 불과한 듯싶은데 엷은 녹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이 소녀를 보는 순간, 마치 보이지 않는 철퇴에 가슴을 가격당한 듯 심장이 쿵쾅거렸다. 입술이 바싹 타고 눈이 휘둥그레진 채 입이 딱 벌어졌다. - P138
"사제, 그 정도면 충분하네." 주위의 승려들은 그제야 녹의 소녀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위소보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었다. 한편 위소보는 칼자국이 증명하듯이 그 당시에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손을 뒤로 뻗어 마구 휘젓다가 상대의 몸 어느 부위를 건드렸을 수도 있다. 그건 결코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 P154
위소보는 놀랍고도 의아했다. "아니... 방금 말한 그 많은 문파의 무공을 하나하나 다 내력까지 알고 있다는 건가요?" 그는 징관에 대해 잘 모르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징관은 여덟 살때 소림에 출가해 70년 넘게 산문 밖으로 나간 적이 없고, 오로지 무학 연구에만 몰두해왔다. 모든 무학에 관한 서적을 거의 다 섭렵해 아는 것이 광박했다. - P156
징관 선사는 오로지 무학에만 전념해 세속의 일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인지 좀 융통성이 없어 보이지만, 각 문파의 무공에 대한 분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리만치 정통했다. 문인들이 공부에만 열중하다 보면 융통성이 없고 약간 어벙해 보이는 ‘책벌레‘가 되는 것처럼, 이 정관 선사는 평생 오직 무학만 파고들어 ‘무학벌레‘가 되고 말았다. - P157
그런데 여시주의 공격은 더욱 어지러워져 걷잡을 수 없었다. ‘옛날 고수들의 말에 의하면, 무공이 절정에 이르면 아무 흔적도 없다고 했어. 명나라 때에 독고구패 대협도 그랬고, 또 영호충 대협도 역시 무 초식으로 모든 초식을 꺾어 천하무적이 됐지. - P231
표창 아홉 개가 동시에 발출되었기 때문에 회총과 징관이 위소보를 도와주기엔 이미 때가 늦었다. 그들이 대경실색하는 가운데 암기 세개가 금속성을 내며 다 바닥에 떨어졌다. 위소보는 보의를 입고 있어 그 암기에 별로 손상을 입지 않은 것이다. 사수용대전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어린 화상이 소림 무공 중에서도 최고의 내공으로 알려진 금강호체신공金剛護體神功을 터득했을 줄이야,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쩐지... 이 어린 화상이 소림의 회자 항렬로, 방장이신 회총 선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유가 다 있었군.’ - P249
"이런 고약한 것! 그날 그날 기루에서 그 나쁜 여자들하고 놀아나더니.… 나의 사매가 예쁘게 생겨 엉뚱한 마음을 품고 강제로.… 결국 사매를 죽이고 말았군! 기루에 가서 그런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이니 무슨 짓인들 못하겠어?" 회총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빙긋이 웃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P255
위소보는 잠시 멍해 있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보니, 소황제는 아주 주도면밀했다. 애당초 자기를 소림으로 보낸 것도 오늘의 일을 예상한 안배였던 것이다. 일단 소림에 가 반년쯤 지내면서 승려들과 친숙해지도록 한 후, 마음에 맞는 승려들을 선발해 함께 청량사로 가라는 의도였다. - P264
사미승이 통보를 하자 옥림 등은 주지가 온 것을 알고 직접 문밖으로 나와 맞이했다. 위소보를 보자 옥림과 행치, 행전은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세 사람은 신임 방장이 소림사 회총선사의 사제인 회명 선사이며 나이가 젊은 고승이라는 것은 전해들었지만, 그게 바로 위소보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옥림과 행치는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는 황제가 부황을 보호하기 위해 안배한 일임이 분명했다. - P285
삐걱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행치가 강희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왔다. 부자는 서로 잠시 마주 보았다. 강희는 부친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행치가 말했다. "넌 아주 훌륭해. 나보다 훨씬 낫다. 아무 걱정 안 할 테니, 너도 걱정하지 마라." - P311
이때 난데없이 꽝 하는 폭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흙먼지가 흩날리며 대웅보전 지붕에 큰 구멍이 하나 뻥 뚫렸다. 그와 동시에 흰 그림자가 번뜩이며 커다란 물체 하나가 떨어져내렸는데, 바로 흰 옷을 입은 승려였다. 그는 장검을 쥐고 전광석화처럼 강희에게 덮쳐가며 소리쳤다. 대명 천자를 위해 복수하겠다!" 강희는 황급히 뒤로 피했다. - P335
‘네가 검으로 찌른 데가 아직도 아파. 그 복수로 엄마라고 몇 번 불렀으니 이젠 서로 밑진 것 없이 퉁친 거야!‘ 그가 남을 ‘엄마‘라고 부르는 건, ‘기녀‘라고 욕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속으로 우쭐대며 여승을 힐끗 쳐다보는 순간, 그녀의 고귀한 모습에 그만 자신도 모르게 존경심이 우러났다. ‘엄마‘라고 부른 게 약간 후회됐다. - P351
"난 가짜 태후예요! 난… 태후가 아니란 말예요!" 그 말에 백의 여승은 물론 의아해했지만, 침상 뒤에 숨어 있는 위소보는 더욱 깜짝 놀랐다. 여승이 천천히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 P382
"네, 그건・・・ 만주 오랑캐의 흥망성쇠를 결정할 수 있는 아주 중대한 비밀입니다. 그들이 요동에서 흥성해 우리 대명 천하를 차지한 것은 조상들의 풍수가 아주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요동 장백산에 황족의 선조인 애신각라씨의 용맥이 있습니다. 그 용맥만 파괴하면 우리 한인들의 강산을 수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랑캐들을 모조리 섬멸시킬 수 있습니다." - P390
"왜 그게 아니라는 것이냐? 네가 남의 속마음을 어떻게 알아? 물론 강호는 워낙 험악한 곳이라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전에 내가 말한 적이 있지만, 이 아이는 나랑 여러 날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잘 안다. 아주 솔직하고 가식이 없으니 믿어도 된다. 아직 나이가 어려 순진한데 어떻게 일반 강호 사람들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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