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얼음 조각과 산산이 분해된 화살 파편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 속에 우뚝 서 있다. 네 발 주위의 흙바닥 위로 50센티미터 크기의 하얀 얼음서리 원이 생겨난다. 피어오르는 바람을 타고 네 머리타래가 부드럽게 나부낀다. - P83

제국 오로진, 검은 옷, 죽여서는 안 되는 자들, 또는 그 외에 뭐라고 부르든간에, 펄크럼 오로진은 항상 깍듯하고 사무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일관해야 한다. 펄크럼 오로진은 남들 앞에서 반드시 굳건한 자신감과 전문성만을 내비쳐야 하며, 절대로 감정이나 분노를 표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둔치들이 불안해하니까. - P91

시엔은 소문을 들은 적이 있고, 드디어 그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열 반지는 건물의 한 층 전체를 독차지하고 있다. - P96

그제야 시엔은 이해한다. 펄크럼은 늘 애매모호한 여지를 남겨놓는다. 심지어 펠드스파마저 ‘네 임무는 그 남자와 1년 안에 아이를 생산하는 거야.‘라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 P100

펄크럼은 지켜야 할 명성과 평판이 있고, 오로진은그 일부다. 그래서 그들은 훈련을 받고, 제복을 입고, 끝없는 규칙을 준수한다. 번식도 그러한 책임 중 하나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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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을 명심하라. 한 이야기의 꿈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모든 일은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사람은 죽는다. 옛 질서는 무너진다.
새 사회가 탄생한다. "세상이 끝났다"는 말은 대개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행성은 변함없이 존재하기에
하지만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
완전히. - P7

먼저 세상의 종말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빨리 끝내고 더 재미있는 부분으로 넘어가야 하니까. - P11

여기 ‘고요‘가 있다. 평온하고 화창한 날에도 결코 고요하지 않은 땅.
땅이 들썩이며 파문이 일고, 굉음이 울리고, 대격변이 발발한다.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균열이 대륙의 적도를 따라 기이할 정도로 깔끔한 직선을 그리며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균열의 근원지는 유메네스다. - P19

너는 그녀다. 그녀는 너다. 너는 에쑨이다. 누군지 기억나지? 아들을 잃은 여인 말이다.
너는 지난 10년간 티리모라는 작은 마을에서 살아온 오로진(조산인, 造山人)이다. 이 마을에서 네 정체를 아는 사람은 단 세 명뿐이고 그중 둘이 네 배로 낳은 자식들이다. - P29

어쨌든 그것은 우체가 누워 있는 집을 무너뜨릴 수 있었고, 그래서 너는 그것을 가로막았다. 너의 의지와, 흔들 그 자체로부터 빌린 운동에너지를 결합해 일종의 방파제를 세웠다. 그런 일을 할 때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갓난아기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물론 어린애는 그렇게 깔끔하게 처리하지는 못하겠지. 흔들은 두 갈래로 갈라져 계곡을 피해 돌아 멀어져 갔다. - P36

"마을 사람 중 절반은 몸서리를 치고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지자가 잘했다고 생각해요. 왜냐고요? 겨우 세 살짜리 어린애라도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유메네스에서 강력한 흔들을 일으킬 힘을 갖고 있을 게 당연하거든요!" - P42

보육학교에서 다마야는 아주 먼 곳에 있는 기울어진 돌들의 도시에서 어린아이들을 사고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 P44

모든 향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때에도 가급적 많은 내항자를 보유하길원한다. 역병이 들거나 기근이 올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 P47

다마야는 이제껏 자신이 큰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남자를 올려다본다. 어머니는 다마야를 팔아넘기는 게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를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녀를 싫어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다마야를 두려워한다. - P53

"펄크럼 오로진은 세상을 위해 봉사한다. 지금부터 네게는 쓰임새명이 없다. 왜냐하면 너의 쓸모는 단순히 혈통으로 이어지는 적성이 아니라 네 존재의 본질에 달려 있으니까. 오로진은 태어나자마자 흔들을 멈출 수 있다. 너는 훈련을 받지 않아도 오로진이다. 향에 속해 있든 그렇지 않든, 너는 오로진이다. 하지만 훈련을 받고 다른 숙련된 펄크럼 오로진들의 지도를 받는다면 너는 하나의 향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유용한 존재가 될 수 있지."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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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엥겔만은 버림받았을 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체온은 28도로 떨어졌고 심장박동은 느리고 불규칙했다. 그녀의 귀에는 멀어져가는 발소리도, 울부짖는 폭풍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P330

그녀는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살아서 여기를 빠져나가면 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어." 얼마나 내려갔을까, 저쪽에 두 개의 실루엣이 보이자 그녀는 더욱 힘이 났다.
이제 난 안전해!
마침내 안전해졌어! - P333

"리스베트 당신이 순네르스타 외곽의 숲에 있는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를 산 채로 불태워 죽이겠대요! 그 일대에서 경찰이 한 명이라도 보이거나 당신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하면 그는 끔찍한 죽음을 맞을 테고 당신과 그의 주변 사람들도 가만두지 않을 거래요! 당신이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 이상 끝까지 그럴 거래요! 맙소사, 리스베트, 끔찍해요!" - P353

"대답해!" 카밀라가 소리쳤다.
"리스베트가 말했어…"
미카엘은 숨을 쉬기 위해 거칠게 헐떡거렸다.
"뭘?"
"살라가 밤마다 찾아와 널 데려간 이유를 깨달았어야 했는데 자신이 어머니를 보호하는 데만 몰두해서 그러지 못했다고." - P362

이반은 들것 위에 축 늘어져 있는 미카엘을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지독한 자였다. 이렇게 꿋꿋이 고통을 견뎌내는 자를 보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기자는 죽어야 했다. - P369

리스베트의 모습이 그녀가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카밀라는 완전히 박살나서 겁에 질린 리스베트를 보고 싶었다. 팔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그녀는 그지없이 더럽고 깡말랐지만 금방이라도 펄쩍 튀어오를 고양이처럼 느껴졌다. - P392

다리미로 한 남자에게 화상을 입힐 수도 있었고, 또다른 남자의 배에 거대한 문신을 새길 수도 있었고,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굴 수도 있었는데, 자신의 자매에게는 차마 총을 쏠 수 없었다. 거기에 자기 목숨이 달려 있는데도.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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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는 여전히 냉소적이고 위협적으로 보였지만 속으로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반에게 마저 대화를 마쳐달라고 부탁하고 방으로 들어가 악취나는 구정물같은 과거 속으로 잠겨들었다. - P293

친애하는 레베카, 당시 나와 요하네스는 에베레스트 사건 말고도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공통의 관심사로 묶여 있었어요."
"그게 뭔데요?"
"GRU에서 이탈한 자들과 첩자들. 실제로 밝혀진 인물과 추정되는 인물뿐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까지 포함되었고, 그들에 대처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팀을 이루었죠. 그 와중에 우리 팀은 스웨덴 안보기관 세포가 GRU 출신 거물 한 명을 확보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요. 최근 당신 부부가 관계를 맺게 된 누군가 때문에 사후에 유명세를 치른 인물이기도 하죠." - P299

"우리는 살라가 계속 러시아에 충성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즉 그는 죽는 순간까지 이중첩자였고, 세포에 가져다주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GRU에 바쳤다는 얘기였죠." - P300

"클라라가 빅토르에게 마음속 생각들을 털어놓게 했어요. 실은 서로를 격려했다고 할 수 있죠. 클라라는 그에게 자기 남편이 집안에서 얼마나 추악한 인간인지 얘기했고, 빅토르는 그녀에게 스탠이 즈베즈다 브라트바 내에서 어떤 짓들을 했는지 밝혔죠." - P306

빅토르가 이 사건에 우연히 연루된 등반 안내자, 어느 기혼 여성과 사랑에 빠져 산에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그 대가로 목숨을 잃은 불쌍한 남자가 아닌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 살펴보니 빅토르의 경력은 사실이라기엔 너무도 밋밋하고 특징이 없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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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높은 산인 초오유에 도전한 네덜란드 등반대에 참여했다가 거기서 크레바스에 추락한 거예요. 강풍에 눈사태까지 발생해 등반대는 서둘러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요. 루나를 크레바스 속에서 죽도록 놔둔 채 말이죠. 니마는 슬픔에 빠져 거의 미쳐버렸어요. 그녀를 버리고 온 사람들을 인종주의자라고 비난했죠. 백인이 조난당했다면 당장에 구하러 갔을 거라고 소리 치면서. - P178

빅토르와 클라라의 경우는 달랐다. 둘 다 다른 사람과 결혼한 상태였으므로 그들의 탈선행위는 훨씬 문제가 심각했다. - P185

거친 바람이 모든 소리를 묻어버렸고, 어차피 요하네스는 세상에 혼자였다. 활시위처럼 팽팽해진 근육들과 양팔로 올라오는 경련이 해방감처럼 느껴졌다. 그는 모든 힘을 소진하고 삶과 멀리 떨어진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쉬지 않고 수영하는 데만 집중했다. - P188

"이 사건에서 약간 불편한 구석이 느껴지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죠?"
"스웨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요하네스가 러시아를 비난하자 돌연 모두가 그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터무니없는 험담을 퍼뜨리면서 그를 절망에 빠뜨렸어. 그리고 지금은 죽은 셰르파가 마술처럼 나타나 그를 손가락으로 똑바로 가리키는 형국이야. 누군가가 요하네스를 궁지에 몰아넣으려 한다는 느낌이 들어."," - P194

"스반테가 내게 어떤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미카엘이 물었다.
‘자기에게 이롭게만 얘기하겠지.‘ 레베카는 생각했다.
"에베레스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겠죠." - P204

미카엘은 투덜거리며 집안을 불안하게 서성였다. 리스베트가 그를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러다 창문 아래로 벨만스가탄길을 무심히 내다보는데 저쪽 동네 술집 비숍스 암스 앞에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산드함에서 봤던 말총머리 남자. 미카엘은 명치를 한 방 얻어맞은 듯 소스라쳤다. 더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감시당하고 있었다. - P212

난 미행당하고 있어.
리스베트가 답장을 보냈다.
내 탓이에요. 그들을 따돌릴 수 있게 도와줄게요. - P212

키라는 MC 스바벨셰와의 관계를 당장에 끊고 싶었다. 징 박힌 우스꽝스러운 가죽재킷 차림에 괴상한 두건을 쓰고 몸뚱이에는 문신이 가득한 이 한심한 양아치들을 다 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 더 그들이 필요했으므로 돈을 듬뿍 먹였다. 그들이 알았던 살라첸코를 상기시키고 이 일이 그를 기리는 영웅적 행위임을 설명했다. - P213

"우리는 카밀라가 살라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했어요. 집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나와 엄마가 한편이고, 살라와 카밀라가 다른 한편이 되었다고 말이죠.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었어요. 카밀라는 혼자였어요."
"너희 모두가 혼자였지."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건 카밀라였어요. - P221

카밀라를 구하기 위해 엄마와 내가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 없다는 걸 난 깨달았어요. 그 사실이 날 주저하게 만들었고요. - P222

맘사힙…
그렇다! 맘사힙은 식민지시대 인도에서 백인을 일컫는 말이었던 사힙의 여성형 명사였다. 왜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셰르파들이 백인 등반가를 사힙이라는 말로 지칭하는 걸 자주 보지 않았던가.
난 요하네스를 잡았어. 그리고 맘사힙을 떠났지.
니마 리타는 분명 이렇게 말했을 터였다. - P233

빅토르는 그들 모두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었잖아요. 어느 한 명만을 위하면 안 됐죠. 그가 클라라에게만 온 정신을 집중한 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라 할 수 있어요. 모든 게 어그러진 이유가 부분적으로는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클라라를 정상에 세우려고 했죠. - P245

"빅토르와 클라라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걸 눈치채고 스반테가 동요했던 것 같아요."
"그가 왜 그랬다고 생각하죠?"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어요. 어쩌면 질투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빅토르가 스반테의 변화를 알아챘던 것 같아요. 빅토르가 점점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도 그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 P251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수상쩍은 점이 있어요. 한 특정 인물이 니마와 관련된 모든 정보에 우선적이고 독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듯한데, 병원측은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거물급 인사라는 느낌이 들어요. 병원 사람들을 겁먹게 할 만한 인물."
"예를 들면 국방부 차관 스반테?"
"아니면 국방부 장관 요하네스." - P260

리스베트가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난 널 죽여버릴 거고, 너희 그 거지같은 조직의 놈들도 모조리 죽일 거야. 날 원한다면 그냥 날 찾아오면 돼. 다른 사람은 건드리지 말라고, 알았어?"
"알았어." - P270

"지금 펜이랑 종이 가진 것 있어?" 그가 물었다.
"어… 있을 거야."
레베카는 가방 안을 뒤적여 펜 한 자루와 노란색 포스트잇 메모지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거기에 요하네스는 이렇게 썼다.
우린 여기서 나가야 해.
레베카는 그가 쓴 것을 읽은 뒤 겁먹은 눈빛으로 복도의 군인들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그들은 무료한지 핸드폰 화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글씨를 휘갈겨 쓰며 물었다.
지금? - P275

"어쨌든 그 악한 목소리가 뭐라고 했다고 썼나요?"
"그녀를 거기에 내버려두라고요."
"그녀?"
"네, 그렇게 썼던 것 같아요. 여자를 말하고 있었어요. ‘마담‘ 아니면 ‘맘‘이 산 위에 남아 있었다고요. 죽은 자들이 손을 내밀며 먹을 것을 구걸한다는 계곡, 그러니까 레인보우 밸리에 대해서도 말했고요. 아까 말했듯이 아주 이상한 글이었어요. - P279

스반테 린드베리는 병원 출입구를 지나 로비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하루만 해도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레베카가 그다지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병원을 다시 방문할 구실이 없었으나 요하네스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지금, 스반테는 그를 만나 얘기해야 했다…그런데 무엇을…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걸 그에게 반드시 이해시켜야 했다. 스반테는 만전을 기하기 위해 핸드폰까지 꺼버렸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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