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은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가 입가에 미소가 스치기도 했고 눈에 눈물이 비치는 듯도 했다. 지금 그의 가슴을 죄어오는 고통은 지금껏 겪었던 어떤 악전고투보다도 힘겨운 것이었다. 자은은 망연히 누이를 바라보다가 사부를 돌아보고, 또 황용을 쳐다보았다. 하나는 피를 나눈 누이요, 하나는 자신을 새로운 인생으로 이끈 스승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은 형을 죽인 원수였다. - P33

"그 여자는 냉정하고 잔인하기가 독사보다 더합니다. 아주 악독하지요. 그러나 세상에는 예외가 있듯이 제 딸에게는 그렇지 못합니다. 딸을 무척 사랑하지요. 우리는 이 점을 이용해야 합니다. 제가 녹악을 꾀어낼 테니 당신이 붙잡아 정화 수풀에 던져버리시오. 이렇게 되면 그 여자도 어쩔 수 없이 영단을 꺼내 딸아이를 살리려 하지않겠소? 그때 우리가 기습해서 해독약을 빼앗으면 될 것이오. 그런데 절정단은 이제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니 당신에게 준다면 제딸의 목숨은 구할 수 없겠지요." - P52

‘아, 아, 그랬구나. 제 어미는 나에게 가짜 약을 가져다주라고 했지만, 과에게 마음을 빼앗긴 저 처자는 진짜 약을 집어 들었던 거야. 공손지가 빼앗아간 것이 바로 진짜 영단이다. 그러니 저렇게 놀랄 수밖에…’ - P71

주자류가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사형, 이 자가 사숙을 죽였어요. 반드시 ……."
주자류는 숨이 차서 말을 잇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천축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수양이 깊은 일등대사도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P91

양과는 그녀가 주는 반 알의 절정단을 받아들었다.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을 모두 구할 수 없는 바에야 그까짓 절정단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당신이 곁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에요!"
양과는 손에 든 절정단을 절벽 밑으로 던져버렸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양과의 체내에 쌓인 독을 해독시킬 수 있는 유일한 약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양과의 행동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 P105

"용이가 죽는데 저 혼자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약을 먹어요?"
"너무 걱정 마라. 용 낭자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만, 무공이 강한데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용 낭자가 죽긴 왜 죽어?"
황용의 말에 양과는 결국 참지 못하고 사실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백모님의 귀한 따님이 빙백은침으로 용이를 공격했을 때, 마침 경맥을 거꾸로 흐르게 해 치료를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순식간에 독이 단전과 내장에 퍼졌다구요. 그런데 무슨 수로 살 수 있겠어요. 용이는 곧 죽을 목숨이라구요." - P129

16년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나요. 부부의 정이 깊으니 약속 꼭 지켜야 해요.

다른 한 줄은 더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소용녀가 부군 양도령에게 부탁하오니 소중한 몸부터 보전한 뒤 다시 만나기로 해요.
양과는 멍하니 글씨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혼란해서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 P134

"과야. 다행이다. 다행이야."
양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뭐가 다행인데요?"
용 낭자가 남해신(南海神尼)를 만난 게 틀림없다. 정말 그런 우연한 인연이 없구나." - P136

"맞습니다. 그분이 바로 강호에서 유명한 신조협(神聘俠)입니다."
사천인이 물었다.
"신조협이라구요?"
"그래요. 그분은 신선처럼 용맹하고 의롭고,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로 유명하지요. 절대로 자기 이름을 밝히는 법이 없답니다. 항상 수리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냥 ‘신조협‘ 이라고 부르지요. 원래는 신조대협이라고 불렀는데 그분께서 대협(大俠)이라는 말은 너무 과분하다 하셔서 그냥 신조협이라고 부른답니다. 사실 그분의 정의로운 행적으로 봐서는 대협이라는 말이 전혀 과분하지 않지요. 그분이 대협이 아니면 누가 대협이겠습니까?" - P169

양과는 근 10여 분 동안 쉬지 않고 소리를 내질렀는데도 전혀 기력이 쇠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소리가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일등대사는 탄복해마지 않았다. 소리가 너무 거칠어 순양(純陽)의 정기는 아닌 듯했지만 자신이 한창때에도 이런 내공을 지니지 못했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 더욱 그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P274

양과는 주백통과 영고를 만나게 하여 평생의 한을 풀어주었고 자은은 죽음에 이르러 용서를 받고 내세의 윤회를 믿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양과는 약속한 대로 구미영호를 얻어 곽양과 수리를 데리고 만수산장으로 돌아왔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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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야, 사람은 하늘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아버지가 평소 너에게 엄하게 대하기는 했지만, 널 사랑하는 마음은 네 엄마와 다름없다."
곽정의 목소리는 준엄했다.
"저도 알아요."
"그래, 오른팔을 내놓아라. 네가 다른 사람의 팔을 베었으니, 너도 팔을 잃는 아픔을 알아야 하지 않겠니? 내가 너의 팔을 베어야겠다. 네 아비는 평생 바르게 살아왔다. 절대 사적인 일에 눈이 어두워 딸이라고 무조건 감싸는 일은 할 수가 없다." - P82

사실 이막수는 황용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 아기가 양과와 소용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라고 믿었다. 그런 이막수의 속내를 황용이 알 리가 없었다. - P93

"과야. 나….… 나는 구양봉에게 혈도를 찍히고 꼼짝도 못하고 있을 때 이 사람에게 순결을 잃었어. 그래서 부상을 치료한다고 해도 너와 혼인할 수가 없어. 하지만 이 사람…… 이 사람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날 구해줬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 사람을 괴롭히지 말아 줘. 다…… 다 내 운명이었나 봐." - P142

"원래 중양 조사와 고묘파의 조사님께서는 마땅히 부부의 연을 맺으셔야 했건만 무슨 예가 어떻고, 계율이 어떻고를 따지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어요. 선자, 우리 오늘 중양 조사님 앞에서 부부의 연을 맺어 두 분의 한을 풀어드립시다." - P147

"드디어 집에 돌아왔군요."
소용녀는 미소를 지으며 힘없이 겨우 한마디를 내뱉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양과는 상자를 짊어지고 고묘의 석실로 들어갔다. - P176

그러나 황용의 생각은 다른 데 가 있었다. 양과는 그토록 목숨을 걸고 딸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자신과 부는 오히려 양과를 의심한데다 심지어 부는 양과의 팔을 자르기까지 했으니 정말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 P202

곽부는 관 뚜껑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데다 그 틈으로 옷자락이 보이자 틀림없이 이막수가 숨어있는 것이라 확신했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그녀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당신이 해준 대로 갚아주겠어!"
곽부는 냉큼 관 뚜껑을 열어것히며 빙백은침을 꽂았다. 워낙 거리가 가까운데다 좁은 석관이라 어디 피할 데도 없었다.
"아악!"
양과와 소용녀는 그대로 오른쪽 다리와 왼쪽 어깨에 침을 맞고 말았다. - P256

"어머머! 아주 기세가 대단하시네! 설마 내가 일부러 두 분을 해치려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실수로 그랬다고……. 아무튼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잖아요. 그까짓 침이 뭐라고!"
곽부는 오히려 큰소리였다. - P258

"당신은, 당신은 개방의 장로로군. 이제 생각이 났어."
팽 장로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싹 가시더니 얼굴이 일그러졌다.
"철장방의 구 방주께서 어쩌다 출가를 하셨습니까?"
흰 눈썹의 노승은 바로 왕중양, 황약사, 구양봉, 홍칠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일등대사(一燈大師)였다. 그리고 검은 옷의 승려는 철장방의 방주 구천인이었다. - P292

그가 감탄하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매우 아름다운 용모의 젊은 여인이 아기를 품에 안고 문간에 서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조급해하거나 걱정하는 듯한 기색이 없었다.
‘저 여자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 싶군.‘
일등대사는 소용녀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자세히 보니 어딘지 모르게 허한 기색이 완연하고 양미간에 검은 기운이 감돌았다.
"이런!"
일등대사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 P301

이 젊은 부부는 정말로 한 쌍의 용과 봉황이로세. 남자는 저 젊은 나이에 놀랄만한 무공을 가졌고, 여자는 어린 나이에 이렇게 깊은 깨달음을 얻었으니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야. 수십 년 동안 도를 닦은 노승들에게도 어려운 일인 것을….…. 곽정과 황용 부부의 무공이나 사람됨도 저들 못지않게 훌륭하긴 하지만 하늘의 뜻을 깨닫고 생사를 초월한 저들만은 못하지.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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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득 양과의 오른팔을 보니 옷소매가 헐렁한 것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용녀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오른팔은?"
양과는 쓴웃음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눈을 감아요. 내가 기를 불어넣어 줄게요."
"아냐. 오른팔은? 어떻게 된 거야? 응?"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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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동굴 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목격했다. 국사 등 네 명이 소녀를 둘러싸고 싸우고 있었다. 다시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구처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큰일이군, 고묘파의 무공이 저 정도라면 우린 결코 그녀를 이길 수가 없겠구나."
그들이 만들어낸 초식은 모두 양과와 소용녀가 그들 앞에서 구사한 적이 있는 초식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소용녀가 사용하고 있는 검법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것이었다. 동작이 빨라 초식을 어떻게 구사하는지조차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찌 이를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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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는 전진교 도사들이 서로 싸우든 말든, 몽고의 무사들이 침입을 하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녹청독이 검을 들어 견지병을 찌르려는 것을 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견지병을 다른 사람의 손에 죽게 할 수는 없었다. 반드시 직접 원수를 갚아야 하니 즉시 앞으로 나서 녹청독의 검을 막았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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