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평등'을 갈구함"
쏟아지는 분자생물학 관련 서적과 연일 매체를 장식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 몸 속의 유전자가 우리 삶을 자명하게 설명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 생물학의 화려한 성과들은 자칫 '이데올로기로서의 과학'이 가진 측면을 간과하게끔 하기 쉽다.
이 책은 현대의 생물학(분자생물학, 사회생물학, 유전공학 등)이 내포한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설계하는 장밋빛 미래에 거침없이 브레이크를 건다. 역시 유전학을 전공한 학자이면서 끊임없이 주류 학계를 비판해온 저자 리처드 르원틴은, 신랄한 어투로 '우리 유전자 안에 없'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발생과정과 환경에 따른 차이, 그것이 인간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 훨씬 유용하다는 것이다.
르원틴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의식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위험성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머리가 나쁜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고, 암 환자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마약 중독, 정신병, 내성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조차도 유전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유전자가 개인을 만들고, 개인이 사회를 만든다면, 유전자가 사회를 만드는 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는 것은 모두 DNA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잘못된 이데올로기로서의 생물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 그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특히 일부 학자들이 제기하는 '문화유전자(meme)'와 같은 개념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극단적인 형태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물학적 결정론은 <올리버 트위스트>나 <나나>와 같은 문학작품 속에도 적잖이 녹아 들어 있다.
저자가 휘두르는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측면은 산업으로서의 생명 공학이다. 르원틴은 많은 저명 과학자들이 단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유로 생물과학의 '상업적 연관성'을 든다. 그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거대 과학과 거대 사업의 만남'이라 부르면서 오늘날 명성을 떨치는 생물과학자들이 거의 생물공학 벤처 업계의 설립자이거나 대주주라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반(反)과학'을 부르짖거나,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단지 현대 과학이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데 적용시키는 지배적인 주장들에 대해 '합리적인 회의주의(reasonable skepticism)'을 진작시키자고 말할 뿐이다.
하지만 어떠한 과학도 이데올로기의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사실 리차드 르원틴의 주장 가운데도 상당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이야기하며, "생산으로부터 얻는 이익의 극대화, 또는 중앙 계획된 생산에 관한 규범들이 전세계의 기업들을 움직이는 동기로 작용하는 한" 질병의 원인이 되는 오염 물질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또는 개인의 능력 차이가 당연스레 보상의 차이로 연결되는 현상을 이야기하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라는 언질에서 그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어디쯤 위치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방송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그대로 묶은 것이라, 정돈된 학술서로서의 면모는 없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비판의식만은 톡 쏘는 듯 긴장된 서술 속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의식의 근저에는 진정한 평등 - 그럴싸한 말로 부당한 사회구조를 온존시키는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y)'이나 '능력주의 사회(meritocracy)'가 아닌 - 을 갈구하는 그의 사상과 신념이 깊이 우러나고 있다. - 정선희(2001-03-12)

생물은 유전자라는 내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우리의 유전자와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 분자는 신의 은총의 현대판인 셈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유전자의 구성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창조하지 않으며, 오직 대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이다. 그 문제들이란 짝을 찾고, 먹이를 구하고, 다른 개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세계에 존재하는 자원 중에서 보다 많은 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견해에 의하면, 우리는 단지 유전자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고, 우리를 통해 세계에 스스로를 전파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하기도 하는 자기-복제 분자들의 일시적인 운반 수단일 뿐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견해를 가장 열렬하게 지지하는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유전자가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창조한 아둔한 로봇'인 것이다.
1장 합리적인 회의주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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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르원틴 (Richard Lewontin) - 1929년 출생하여 하버드 대학에서 생물학, 컬럼비아 대학에서 통계학과 유전학을 공부했다. 현재 하버드 대학 비교동물학 박물관 내 알렉산더 아가시(Alexander Agassiz) 좌 연구교수로 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성과가 있어야만 뽑힐 수 있는 미국 과학아카데미(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NAS) 회원으로 선출되었지만 과학아카데미의 명성이 극비 전쟁연구 지원에 이용되는 등 정치성에 문제를 제기하여 사임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와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 많은 우려와 강한 거부감을 갖고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비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The Genetic Basis of Evolutionary Change〉, 〈An Introduction to Genetic Analysis〉, 〈The Dialectical Biologist〉, 〈Human Diversity〉, 〈It Ain't Necessarily So〉, 〈Not in Our Genes〉등이 있다.
김동광 - 1957년생. 과학 전문번역가이자 저술가로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과학기술학 협동과정과 과학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04년 현재 고려대학교, 성공회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인간을 위한 과학을 목표로 하는 출판기획사 '과학세대' 대표이다.
옮긴책으로 <비주얼 박물관>, <윈도우 시리즈> <기술의 진화>, <스티븐 호킹의 삶과 사랑>, <과학, 인간을 만나다>, <세계 과학 문명사>, <우주의 역사>,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마틴 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 <인류의 기원>, <과학의 종말>, <호두껍질 속의 우주>, <만물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외 50여 권이 있고, '첨단과학시리즈', '웅진 과학 탐험: 발명편' 등 많은 과학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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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되는 게놈 관련 보도들은 사람들에게 유전자가 곧 생명이라는 유전자 결정론을 유포시키면서, 유전자를 조작하면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특성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조작적 생명관을 조장시킨다. 이렇듯 우리의 정체성은 모든 측면에서 과학기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생물공학(biotechnology)의 경우에서 잘 드러나듯, 현대의 과학기술은 정치경제학의 거센 입김을 쐬며 자라났다.
르원틴의 은 생물공학의 시대, 또는 DNA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회와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시각을 준다. 그의 성찰은 '이데올로기로서의 생물학'이라는 부제가 잘 말해주듯이 게놈 프로젝트의 정치경제적 동기를 들추어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근대과학의 방법론적 뿌리에 해당하는 인과적(因果的) 세계관이라는 인식론의 문제에까지 닿아있다.
또한 르원틴은 생물학적 결정론이 문학을 비롯한 서구 문화 일반에 얼마나 끈질긴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 파헤치고, 오늘날 분자생물학의 뒷받침으로 그 위세를 더하고 있는 유전자 결정론의 역사적 토대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르원틴의 폭넓은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과 생명 현상이 유전자로 환원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 김동광(옮긴이) | | |



국민일보 : 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몇가지 ‘진리’에 반기를 든 책이다.
그 진리는 다음과 같다.‘유전자를 알면 모든 생명의 비밀을 알 수 있다’‘인간은 유전자 해독을 통해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이같은 진리를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 리처드 르원틴은 ‘환원주의’ 혹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고 비판한다.환원주의란 부분을 알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다.개인을 알면 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유전자를 알면 개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가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사회의 불평등을 합리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는 점이다.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한 근거를 어디에서 찾았으며, 미국 사회에 뿌리깊은 인종차별주의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상기하면 이해가 빠르다.‘모든 개인적인 차이는 유전자에 근거한다’는 논리는 결국 사회적 빈부차나 IQ차이를 유전자 때문이라고 설명하게 된다.남은 것은 그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저자는 ‘쌍둥이 연구’‘유전자 옥수수연구’‘인종별 IQ 연구’ 등 생물학적 결정론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각종 연구결과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예를 들어, 암을 발생시키는 유전자 구조를 밝혀내면 암을 치유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허구이다.사람의 유전자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약 60만개의 뉴클레오티가 다르다.그렇다면 정상인 사람과 암환자의 DNA 구조의 차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암이란 단순히 DNA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암을 유발하는 각종 환경과 이로인한 인체의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해온 모든 유전자 연구의 성과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하지만 유전자 연구가 잘못된 믿음을 유포하고 그 믿음이 사회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순수한 과학과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인 양 비춰지는 신비스러운 치장 아래쪽에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 남도영 기자 ( 2001-03-13 )
대한매일 : 인간게놈 프로젝트와 인터넷혁명. 마치 모든 질병을 없애주고 무한한 세계를 열어 유토피아를 가져다줄 것처럼 현대인을 혹하게 만드는 기대주들이다. 과연 그럴까. 'DNA 독트린'(리터드 르원틴 지음, 궁리)과 '2001 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홍성욱·백욱인 엮음, 창작과비평사)는 이같은 장밋빛 환상에 일침을 가한다.
르원틴은 인간게놈 프로젝트라는 거대과학 뒤에 숨어있는 환원주의와 생물학적 결정론, 상업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파헤쳤다. 부분을 알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고, 유전자를 알면 개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환원주의는 생물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고 오로지 적응할 뿐이라는 잘못된 사고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생명 현상이 유전자로 환원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거대과학과 거대사업의 상업적 만남으로 규정한다. 이 책이 나온 지 10년이 지난 올해 초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됐고 인간의 유전자 수는 초파리의 2배에 불과한 3만개 정도여서 생물학적 결정론을 뒷받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됐다. - 김주혁 기자 ( 2001-03-14 )
문화일보 : 책은 생물 형성에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는 염기(DNA)서열의 한 부분을 일컫는 유전자가 담고 있는 정치·사회·경제적 함의를 진단한다. 예를 들면 최근 인간 염색체의 염기서열까지 완전히 해독했다는 발표의 이면에는 유전자 결정론에 바탕을 둔 유전공학 관련 거대기업의 유전정보 장사와 이를 편드는 미국 등 선진국의 국익 창출 의도가 분명히 도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거대한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하는 과학 행사의 필요성을 끈질기게 요구한 특정 과학자 그룹의 세속적인 이해관계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국 등에서는 이미 밝혀진 게놈 정보를 통제하는 주체, 분배의 기준, 값어치에 대한 치열한 다툼이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책은 1993년 출간된 것으로, 당시 저자가 예측한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성과와 우려할 만한 대상을 거론한 부분은 여전히 돋보이는 지적이다. 7~8년을 뛰어넘는 혜안을 발휘한 대목을 들자면, 한 인간의 유전정보를 알면 당사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그를 개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발상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나아가 동시대의 과학이 이 세계의 참인 사실들의 집합일 뿐 아니라 과학자로 불리는 이들의 주장과 이론 집합이기도 하다고 일깨운다. (전문성 ★★★★ 대중성 ★★★ 완성도 ★★★★) - 정동근 기자 ( 2001-03-14 )
조선일보 : 요즘은 유전자 전성시대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는 인간 염색체의 염기서열을 완전히 밝힌 역사적인 발표가 있었다. 유전자는 인간 형성에 특정한 기능을 하는 염기(DNA)서열의 한 부분을 말한다. 염기서열을 하나의 긴 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중 유전자는 그 끈 위에 아주 드문드문 뿌려져 있는 셈이다. 그 각각의 유전자는 우리들의 피부색과 얼굴모양 등을 결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전자가 이러한 외형적인 형상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현상까지 담당하고 있는가 이다. 예를 들어 '수학을 잘하는 유전자'라든지 '외국어를 빨리 습득케 하는 유전자'와 같은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는 크게 두 개의 대립적인 입장이 있다. 하나는 유전자로부터 인간의 행동양식, 나아가서 사회현상과 문화까지 통일적으로 설명하려는 사회생물학적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사회학적 입장이 있다.
이 책은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를 비판하는 논쟁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는 식의 해석은 유전자라는 실체의 존재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확신은 소위 분석적인 분자생물학적 '확실한 데이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데는 반드시 이데올로기나 동시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우리사회에서도 급격하게 퍼지고 있는 유전자 결정론은 상당히 우려할 만 하다. 한 인간의 유전정보를 알면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고,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는 식의 무책임 보도가 자주 나오고 있다. 물론 윌슨으로부터 시작된 사회생물학의 주장도 이렇게 "유전자가 인간을 결정한다"라는 식의 우악스런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이전의 역사에서 보여주었듯이 인종청소나 열등한 인간의 강제적 도태에 사용된 사악한 반인륜적인 과학이론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본인이 인식하든 아니하든 사회생물학자들의 유전자 우위론은 결국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이용될 것이며, 더구나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올바르지 않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회생물학에 맹공을 펼친 인문학자들의 언어적 공세와는 다르게 오랫동안 유전학과 생물통계학에 몰두해온 저자의 공격은 매우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인간을 유전자의 발현 활동으로 해석하는 환원주의에 대하여 저자가 공격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과학적 이론도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문화라고 볼 때 그것이 만들어 낼 비윤리성, 비합리성이다.
예를 들어 정말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다수의 안전을 위하여 그 유전인자를 가진 이들을 일찍이 격리시키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금까지 유전자라고 밝혀진 것 중에서는 엄밀히 조사해 볼 때 알려진 사실과 판이하게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감탄스러운 것은 출간된 1993년 당시 저자의 예측이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일차 마감된 지금의 상황과 잘 합치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전자들은 몇 개의 유전인자가 모여서 하나의 기능을, 또는 하나의 유전자가 몇 개의 기능을 동시에 보여주는 매우 복잡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소개된 생물학적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면 유전자는 더욱 모호한 개체가 되어버렸다.
즉 어떤 유전자를 이해하려고 조작을 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조작하기 전의 개체에서 다른 것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기계론적인 해석은 앞으로 비약과 우연이 혼재하는 양자역학적 해석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될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에 바탕을 둔 유전공학은 결국 거대기업들의 유전정보 장사와 그에 편승한 선진 제국의 국익창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러한 거대과학의 필요성을 끈질기게 요구한 특정 과학자 그룹들의 세속적인 이해관계와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는 게놈정보를 누가, 얼마를 주고, 어떻게, 얼마나 가져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있을 때 '도망병'이라는 것이 있었다. 따라서 도망병에 걸린 노예는 싼 값에 거래되었으며, 치료를 위해서 흠씬 두들겨 맞았다. 만일 아직도 노예제도가 유지되고 있다면 이러한 도망병의 감염경로와, 증세와 그 종류에 대한 수많은 논문이 발표되었을 것이다. 이 도망병이야말로 이데올로기와 편견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허구의 개체인 것이다. 지금도 이 도망병과 같은 날조된 유전자로 우리를 간편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는 없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유전자인가, 문화인가'라는 이 논쟁은 객관적 과학의 존재를 둘러싼 거대한 논쟁의 한 변주곡이다. 불행히도 우리사회에는 과학지식의 사회적 구성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그저 과학은 가치중립적인 생산 도구로만 인식되고 있다. 그러한 균형을 맞춘다는 면에서 이 책의 의미는 크다. 끝으로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두어 페이지 분량의 생색내기용 역자후기가 아닌 역자가 쓴 상당한 분량의 싱싱한 두 편의 글이 따로 실려있다는 점이다.
역자가 이 책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음이 믿음직하다. 여하간 오늘 저녁에도 또 술이 "땡긴"다면 그 원인이 염색체 어딘가에 새겨진 "술꾼 유전자"의 엄중한 명령인지 아니면, 그 허구의 유전자를 핑계삼는 본인의 나약함 때문인지 이 책에서 해답을 한번 찾아보자. - 조환규(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 ( 2001-03-10 )
중앙일보 : 신간 은 인간 지놈 프로젝트에 관한 기존의 통념과 상식을 뒤엎는 '딴지걸기'로 시종하고 있다. 지놈 프로젝트가 최종 완성될 경우 사회폭력과 알콜, 마약 중독 같은 것도 없어지고 무병장수의 원더랜드가 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냅다 찬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왕의 그런 약속이 '과장광고'이자, 심지어 학문적 허구 내지 서구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지놈 프로젝트는 '과장광고'였다〓실제로 이 책의 원제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생물학(Biology As Ideology)>이다. 드러내놓고 기존 생물학의 논의에 융단폭격을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쯤되면 책 읽는 이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대뜸 이런 의문부터 들 것이다. "아니 천문학적 재원 투자가 이미 결정됐고, 그 많은 유명 과학자들이 그 연구의 효율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마당에 이 무슨 뚱딴지 소리인가."
저자 르원틴(72, 하버드대 교수)부터 소개하자. '뉴욕 타임스 북리뷰'의 고정 필자인 그는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원에 뽑혔으나 아카데미의 보수, 정치적 입장에 반대해 사퇴했던 인물. 즉 미국에서의 자연과학 논의에 충분한 대표성을 가진 과학자임이 분명하며, 그의 저술로는 국내에 소개됐던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한울, 1993)가 있다.
이번 저술은 본래 CBS방송에서의 강연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구어체다. 읽기에 부담되는 글이 아닌데다 생물학은 물론 정치경제학, 문학 등에 대한 교양까지 곁들이고 있어 자연과학 분야의 대중저술로 추천할 만하다.
아쉬운 점은 원서가 1991년에 발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지난해 말 그의 저서에서도 재확인되고 있고, 책에서의 예견이 최근에 들어맞는 대목이 있어 외려 흥미롭다.
또 저자가 거물급이어서 시야도 다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내가 알고 있기에 지놈프로젝트에 참가한 저명 생물학자 중 생명공학 기업의 이사 직책을 갖는 등 자신의 연구에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생명공학은 학문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자원이고, 그 위력은 프로농구에 필적한다."
▶유전연구는 학문적 허구〓그러면 이책은 생물학계 내부 고발자의 폭로서인가. 아니다. 설득력 있는 과학적 진실 제시는 읽는 이들을 공감케 한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를 규명하면 인간 본질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판단 자체가 잘못이다.
저자는 이것을 아예 '오류' '허구'라고 못박는다. 즉 '인간은 유전자에 영향을 받을 뿐이며, 유전자에 결정되는 존재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유전자+환경+개체의 특수성'이라는 3박자가 동시에 상호 작용해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종(種)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물학계는 인간은 위대한 종(種)이며, 따라서 유전자 숫자도 10만개가 넘을 것이라고 봤으나 르원틴의 예견대로 3만개 내외로 밝혀진 것이 최근의 일이다. 곤충같은 하등동물의 유전자 수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왜 이 야단법석이었나〓르원틴의 주장에 따르면 지놈 프로젝트란 '정신이 나간 연구'다. 여기에는 복잡한 이유가 동시에 자리잡고 있다. 우선 '단순하고 용감한' 자연과학자들의 맹신이 문제다.
저자는 생물학자들이 '인간 이해에 복잡한 물음을 제기하지 않으려는 생물학 이데올로기'(96쪽)에 스스로 취해 있다고 주장한다. 또 천문학적 연구비를 나눠쓸 수 있다는 '당근'의 요인도 무시못한다.
저자의 결론은 음울한 전망으로 이어진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지놈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들의 끔찍한 환멸에 대해 경고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병으로 죽어가는 와중에 생물학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과학에 품는 냉소적 태도도 커질 것이다." - 조우석 기자 ( 2001-03-10 )
한겨레신문 : 아이한테서 부모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생명 유전의 신비함에 경외감마저 일으킨다. 지난 2월12일 미국의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10여년 연구 끝에 그 생명의 비밀을 비춰주는 인간 유전자 지도를 밝혀 공개한 것은 생명관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만한 충격이었다. `디엔에이의 시대'는 인류의 오랜 불치병을 치유하는 치료제 개발의 꿈을 더욱 부풀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유전자를 조작하면 사람의 육체와 정신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조작적 생명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날로 힘을 더해가는 분자생물학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제기해온 생물학자 리처드 르원틴 교수(하버드대학 동물학과)의 <디엔에이 독트린>은 유전자 만능주의의 거품현상을 지적하면서 “인간과 생명 현상은 유전자로 환원될 수 없다”며 강한 비판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성장하는 생명공학의 그릇된 신화에 대한 정면반박이다.
그의 비판적 시각은 인간게놈 프로젝트에서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 인간 유전자 수가 10만개에 이를 것이라는 애초 예상과 달리 초파리의 두 배인 3만~4만개에 불과한 것이 밝혀지면서, 사람의 질병이 한두개의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의 복합작용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 프로젝트 연구자들에 의해 인정됐다. 3만~4만개 유전자로는 인간의 복잡성을 모두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사람=유전자'라는 유전자 결정론의 위세는 한풀 꺾이는 형국이다.
하지만 자본과 국가의 지원을 받아 급성장해온 유전자 정보는 알게 모르게 점차 `사회적 권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은이는 유전자 결정론자들이 그 동안 인종과 지위, 빈부의 문제 등을 유전자 해석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개인의 유전적 특성 탓으로 환원하는 데 기여해왔다고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유전자 결정론의 뼈대는 `인간은 유전자로 해석될 수 있으며 생명은 조작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앙심에 관여하는 유전자, 사업가 기질과 연관된 유전자 그리고 모든 특성에 대한 유전자들이 인간의 영혼과 사회조직 속에 미리 `기록'되어 있다는 식의 위험한 논리를 펴고 있다고 지은이는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 결정론의 위험성은 잠재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이다. “지식인은 이런(=유전자 정보) 지식이 힘이라고 말하지만, 오히려 지식은 그 지식을 가진 자, 그리고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에게만 권력을 부여할 뿐이라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그의 말에 좀더 귀를 기울여보자. 디엔에이의 시대에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질병 소질 검사를 무료 제공함으로써, 작업장 환경에 덜 위험하고 적합한 노동자를 마음대로 고용할 수 있다. 또 유전자 정보는 개인에 대한 `제도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다. 보건당국과 개인, 학교와 개인, 법원과 개인, 나아가 국가권력과 개인의 관계는 개인의 유전자 정보에 의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해 “우리는 유전자 안에 없다”고 주장해온 지은이는, 한 과학저널리스트의 말을 빌려 이번엔 “실업과 홈리스는 유전자 안에 들어있는 셈이다”라는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인간게놈은 거대한 자본 창출의 원천이 되고 있다. 디엔에이는 이미 산업과 문화의 상품이 되고 있고, 디엔에이 특허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향후 생명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디엔에이 자본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인간게놈 프로젝트에 숨은 정치경제적 동기와 관련해 “이 프로젝트는 국립보건원(NIH)과 에너지성에 의해 획득될 수억달러의 공공자금을 누가 좌지우지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적인 담합의 결과 공동으로 수행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눈길을 끈다.
`과학을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지 말자'고 강조하는 르원틴의 비판은, 21세기 디엔에이 권력 시대를 읽어내는 또하나의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 오철우 기자 ( 2001-03-12 ) |


저자 서문
1. 합리적인 회의주의 2. 모든 것이 유전자 속에 있다? 3. 원인과 결과 4. 인간게놈의 꿈 5. 사회생물학 비판 6. 사회적 행위로서의 과학
주석 옮긴이 후기
부록 1. DNA 독트린 -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이데올로기 - 김동광
부록 2. 생명소외로서의 복제 - 김동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