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 1900년 독일식물학회지에 3편의 논문이 동시에 실렸다. 세 과학자는 40년전 멘델 수도사의 유전법칙에 대한 논문을 끄집어내서 유전학의 시작을 알렸다. 9년 뒤. 유전학에서 사용되던 판겐(pangen)이라는 단어의 뒷부분(―gen)을 떼어내서 '유전자'(gene)라는 더 심플한 단어로 만든 것은 빌헤름 요한센이었다.
그리고 꼭 100년이 지난 2000년 미 클린턴 대통령이 '인간 유전자 지도'가 완성됐음을 선언할 때까지 인류를 열광하게 만든 단어, 유전자는 그렇게 탄생을 알리는 첫 울음을 터뜨렸다.
하버드 물리학 박사로 MIT공대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켈러교수가 2000년 그 해에 쓴 이 책은 유전자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는 문제작이다.
그는 지난 100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해온 유전학에서 유전자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의미가 변했으며, 어떤 환상과 유전적 결정론이라는 위험한 사고를 인류에 불어넣었는지를 냉철하게 기술하고 있다.
켈러교수는 말한다. "유전자. 그것은 작은 단어일지 모르지만, 대단히 강한 힘을 가진 단어였다. 사실 이 작은 단어가 한 세기 동안 모든 유전학 연구를 이끌었던 강력한 요인이었으므로."
1990년 시작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10년만에 완성됐지만 "30억개의 염기 서열을 집어 넣은 CD 한장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이게 나라구!'라고 말할 수 있게 되리라"는 꿈은 사라졌다.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지도가 인간의 생물학적 기능을 이해하는 데에 아무 것도 기여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유전자지도는 비밀을 밝혀주는 로제타돌이 아니라 해독이 불가능한 파에스토스의 원반에 불과하다"는 윌리엄 젤버트(분자 유전학자)의 말처럼 A,T,C,G가 복잡하게 배열된 지도 앞에서 이제 '기능적 문맹'이 되었고 이 엄청난 염기서열 정보 앞에서 착잡함을 느끼며 21세기는 시작됐다.
20세기초 유전자 개념이 등장한 이후 유전학자들은 '유전학의 기본단위'로만 설정된 유전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물리학의 원자(atom)처럼 온갖 물질의 근원물질로 간주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한 물질의 특성을 잃지않는 최소 단위인 분자(molecule)로 생각하는 유전학자들도 있었다. 게다가 유전자의 얼굴은 야누스였다.
어떤 학자는 이 단위가 화학분자가 아니라 분자보다 작은 생물체라고 하는 것이 차리리 낫다고 말했다. 소설가 토마스 만조차 소설 <마의 산>에서 당시 생물학계의 화두였던 유전자에 대해 "이미 살아있으면서 원소인 무엇, 원소생명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며 이 개념의 애매모호성을 간파했다.
그런데도 유전자를 입자라고 하면서 '자기복제'를 속성으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깨닫는 고전유전학자는 없었다. 그런 가정이 돌에도, 흙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적 믿음과 같은 것임을 깨닫지 못한 이런 유전자 담론 때문에 그것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허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도대체 세대에 관통해 유전기억을 보존하고,개체의 발달 과정을 촉진하는 과중한 역할을 떠맡을 수 있는 '화학분자가 있을까.
20세기초 40년간 지지부진하던 유전자 연구는 1943년 유전자가 DNA(디옥시리보핵산)라는 물질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되고 '1유전자―1효소' 가설이 나오면서 '다시 유전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재규명이 시작됐고 마침내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가 이중 나선구조로 돼 있다는 그 유명한 선언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유전자의 존재여부는 '있음'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한 세기 노력의 결과인 인간게놈지도는 생물이 어떻게 발달하고, 작용하는지에 대한 좀더 복잡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 생명의 비밀에 대해 밝혀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에서 20세기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유전자에 대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유전자 같은 것은 없다." - 김현덕 기자 ( 2002-05-14 )
동아일보 : 가장 최근 번역 출간된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이블린 폭스 켈러·지호)는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것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생명공학의 한계를 지적한 책으로 관심을 모은다.
인간 염색체 서열이 모두 해독되었다는 사실은 약점 있는 '유전자'를 보다 나은 것으로 대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나? 선천적 불구에서부터 성인병에 이르는 다양한 질병유발인자를 '정상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까운 장래에 가능한가? 섭섭하게도 저자의 대답은 '노'다.
왜? 염색체는 한줄 한줄이 '새끼 손가락을 만들어라' '간(肝) 세포를 만들어라'와 같이 직독 직해되는 '생명의 책'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아낸 것은 GATTAGA... 등의 기호로 표시되는 DNA의 아미노산 조합 순서에 불과하다.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온 부위(인트론)도 조직 발생에 간여하며, 한 조직을 발생시키는 유전자도 여러 위치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다. 모든 세포에 공통적인 염색체가 들어있지만, 그 세포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염색체의 기능이 발현되는 스위치가 꺼지거나 켜진다. 그 메카니즘 역시 복잡하기 그지 없다.
그러므로 저자가 우리 앞에 제시하는 생명공학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염색체의 언어에 따라 개체가 발생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생명체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 보다 더 복잡하고, 결국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른다.'
어떤 질병을 없애기 위해 특정 부위의 염색체를 대체한다던가 하는 일은 결국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임의로 '대치된' 유전자가 예상치 못한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 유윤종 기자 ( 2002-05-11 )
문화일보 : 유전자(Gene), 신의 암호가 해독되고 있다. 유전자 지도, 인간복제 등 생명과학 용어가 유행어가 된 지 오래다. 몇 년후면 생명의 비밀이 모두 풀릴 것 같은 흥분에 인류는 휩싸여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과학사학자인 저자는 여기에 정면으로 맞서 `유전자는 실체가 아니다`란 미검증 논제를 생물학의 최전선에 있는 분자유전체학을 빌려 조심스레 던지고 있다. 유전자란 용어가 어떻게 탄생했고 그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달라졌는지 생물학의 최신 경향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저자는 또 결정론적 사고를 굳혀버린 남성위주의 과학 풍토에서 벗어나 과학을 환원적이 아닌 통합적으로 봐야한다는 또 다른 시각을 인용하기도 한다. (작품성 ★★★★ 대중성 ★★★) - 노성열 기자 ( 2002-05-10 )
중앙일보 : 2000년 6월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영국 블레어 총리는 인간 유전자 지도가 완성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전자 생물학이 장차 인류에게 영원 불멸의 삶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흥분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복제양 돌리가 탄생했지만 유전자의 비밀을 완전히 밝혔다고 보기 어렵다.
심장병.정신병 등 유전자와 관련이 깊다고 여겨지는 질병도 조만간 치료법을 발견해낼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어찌된 것인지 궁금하다. 유전자 지도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능을 이해하는 만능 열쇠가 아니었단 말인가.
미국의 과학철학가이자 페미니스트 과학자인 이블린 폭스 켈러는 신간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 에서 "생물학에 있어 인간 유전체 계획이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비유하자면 생물학자들이 숙제를 열심히 풀고 났더니 또다른 문제의 실마리를 잡은 것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로 이해된다.
하긴 생물학자 리처드 르원틴 하버드대 교수는 켈러를 "이미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들에 생채기를 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별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한 바도 있다. 그러나 켈러가 독자에게 줄 영향은 '가벼운 생채기'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유전자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던 장미빛깔의 상식을 뿌리째 흔드는 메가톤급 충격이다.
이를테면 책에서는 생물 책에서 배우던 "DNA는 RNA를 만들고, RNA는 단백질을 만들며, 단백질은 우리 인간을 만든다"는 공식부터 결함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분자 생물학자들은 생명의 비밀이 이런 공식보다 대단히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만도 유전자의 기능은 서열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유전적 맥락, 그것이 들어 있는 염색체 구조, 세포질과 핵의 환경에도 의존한다는 것 등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유전체 계획이 대서특필되고 오류가 있는 'DNA→RNA→단백질' 공식이 상식으로 자리잡아가는 동안 사려깊은 분자 생물학자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
생물학 전공자인 역자 이한음씨는 "켈러처럼 유전자의 개념을 역사적.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켈러의 역할은 이만큼 크다. 생물학자는 생각을 정리하고 독자는 상식을 바로잡을 기회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켈러는 영화 '쥬라기 공원'을 예로 들며 자신이 유전자의 대중적 이미지 바꾸기에 나선 이유를 설명한다.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포식자로 그려진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는 고생물학 증거들로 추측해 보자면 달릴 수도 없고 코 앞의 것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문제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스토리 구성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1992년까지 미국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됐던 모형 때문이었다. 꼬리를 땅에 대고 앞다리를 곧추세운 도마뱀 같은 모습이었는데 고생물학자들은 이런 표본이 되려면 목.등.꼬리가 군데군데 부러져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물론 스필버그는 1백년 가까이 대중이 가지고 있던 '왕 도마뱀' 렉스의 이미지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켈러는 유전자도 이대로라면 제2의 렉스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유전자가 생물의 활동과 발달뿐 아니라 번식까지 통제하는 신화에 가까운 존재로 여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유전자가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에 언론과 일반인은 유전자 지도 초안으로 그토록 흥분했으며, 이제 와서는 생물학자들이 굼뜨다고 탓하고 있다. 켈러의 저작은 어려운 전문용어가 많은 편이어서 대중적으로 읽히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의미는 크다. 상식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경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 홍수현 기자 ( 2002-05-11 )
한국일보 : 20세기는 '유전자의 세기'라 할 정도로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다. 그 결과 지난해 2월 미국은 인간 유전자 서열의 초안을 발표했고 사람들은 생명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를 시간문제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유전자 연구가 결코 생명의 비밀을 풀어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 또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MIT 과학사.과학철학 교수로 저명한 학자인 이블린 폭스 켈러(66)가 쓴 <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는 유전자 연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한편 유전자 이외 새로운 방식의 연구가 있어야 생명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우선 유전자(DNA)라는 단어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상세히 살펴보면서 그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어떻게 변하고 달라졌는지를 생물학의 발전에 비춰보면서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그 같은 논의를 통해 저자는 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을 이끈 핵심 개념이었던 유전자라는 용어가 이제는 생명 현상에 대한 우리 인식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는 염색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실체를 가리키는 반면 유전자는 무엇을 가리키는지조차 불분명한 용어라고 꼬집기도 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유전자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혁신적인 주장까지 은연중에 보여주려 하고 있다. 유전자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저자는 "유전자는 분명 생명 문제의 유일한 열쇠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입장은 유전자에 대한 맹신을 경계하고 생명 문제에 대한 새로운 사유 방식, 새로운 개념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 박광희 기자 ( 2002-05-1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