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평등'을 갈구함"
쏟아지는 분자생물학 관련 서적과 연일 매체를 장식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 몸 속의 유전자가 우리 삶을 자명하게 설명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 생물학의 화려한 성과들은 자칫 '이데올로기로서의 과학'이 가진 측면을 간과하게끔 하기 쉽다.

이 책은 현대의 생물학(분자생물학, 사회생물학, 유전공학 등)이 내포한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설계하는 장밋빛 미래에 거침없이 브레이크를 건다. 역시 유전학을 전공한 학자이면서 끊임없이 주류 학계를 비판해온 저자 리처드 르원틴은, 신랄한 어투로 '우리 유전자 안에 없'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발생과정과 환경에 따른 차이, 그것이 인간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 훨씬 유용하다는 것이다.

르원틴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의식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위험성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머리가 나쁜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고, 암 환자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마약 중독, 정신병, 내성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조차도 유전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유전자가 개인을 만들고, 개인이 사회를 만든다면, 유전자가 사회를 만드는 셈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건강한 사람과 아픈 사람,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는 것은 모두 DNA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설명할 수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잘못된 이데올로기로서의 생물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고, 그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특히 일부 학자들이 제기하는 '문화유전자(meme)'와 같은 개념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극단적인 형태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물학적 결정론은 <올리버 트위스트>나 <나나>와 같은 문학작품 속에도 적잖이 녹아 들어 있다.

저자가 휘두르는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는 또 다른 측면은 산업으로서의 생명 공학이다. 르원틴은 많은 저명 과학자들이 단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유로 생물과학의 '상업적 연관성'을 든다. 그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거대 과학과 거대 사업의 만남'이라 부르면서 오늘날 명성을 떨치는 생물과학자들이 거의 생물공학 벤처 업계의 설립자이거나 대주주라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반(反)과학'을 부르짖거나,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단지 현대 과학이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데 적용시키는 지배적인 주장들에 대해 '합리적인 회의주의(reasonable skepticism)'을 진작시키자고 말할 뿐이다.

하지만 어떠한 과학도 이데올로기의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사실 리차드 르원틴의 주장 가운데도 상당한 이데올로기 공세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이야기하며, "생산으로부터 얻는 이익의 극대화, 또는 중앙 계획된 생산에 관한 규범들이 전세계의 기업들을 움직이는 동기로 작용하는 한" 질병의 원인이 되는 오염 물질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또는 개인의 능력 차이가 당연스레 보상의 차이로 연결되는 현상을 이야기하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라는 언질에서 그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어디쯤 위치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방송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그대로 묶은 것이라, 정돈된 학술서로서의 면모는 없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비판의식만은 톡 쏘는 듯 긴장된 서술 속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의식의 근저에는 진정한 평등 - 그럴싸한 말로 부당한 사회구조를 온존시키는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y)'이나 '능력주의 사회(meritocracy)'가 아닌 - 을 갈구하는 그의 사상과 신념이 깊이 우러나고 있다. - 정선희(2001-03-12)


생물은 유전자라는 내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우리의 유전자와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 분자는 신의 은총의 현대판인 셈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유전자의 구성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창조하지 않으며, 오직 대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이다. 그 문제들이란 짝을 찾고, 먹이를 구하고, 다른 개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세계에 존재하는 자원 중에서 보다 많은 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견해에 의하면, 우리는 단지 유전자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고, 우리를 통해 세계에 스스로를 전파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하기도 하는 자기-복제 분자들의 일시적인 운반 수단일 뿐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견해를 가장 열렬하게 지지하는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유전자가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창조한 아둔한 로봇'인 것이다.
1장 합리적인 회의주의 중에서



리처드 르원틴 (Richard Lewontin) - 1929년 출생하여 하버드 대학에서 생물학, 컬럼비아 대학에서 통계학과 유전학을 공부했다. 현재 하버드 대학 비교동물학 박물관 내 알렉산더 아가시(Alexander Agassiz) 좌 연구교수로 있다.

학문적으로 뛰어난 성과가 있어야만 뽑힐 수 있는 미국 과학아카데미(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NAS) 회원으로 선출되었지만 과학아카데미의 명성이 극비 전쟁연구 지원에 이용되는 등 정치성에 문제를 제기하여 사임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와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 많은 우려와 강한 거부감을 갖고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비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The Genetic Basis of Evolutionary Change〉, 〈An Introduction to Genetic Analysis〉, 〈The Dialectical Biologist〉, 〈Human Diversity〉, 〈It Ain't Necessarily So〉, 〈Not in Our Genes〉등이 있다.

김동광 - 1957년생. 과학 전문번역가이자 저술가로 고려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과학기술학 협동과정과 과학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04년 현재 고려대학교, 성공회대학교 강사로 재직 중이다. 인간을 위한 과학을 목표로 하는 출판기획사 '과학세대' 대표이다.

옮긴책으로 <비주얼 박물관>, <윈도우 시리즈> <기술의 진화>, <스티븐 호킹의 삶과 사랑>, <과학, 인간을 만나다>, <세계 과학 문명사>, <우주의 역사>,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마틴 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 <인류의 기원>, <과학의 종말>, <호두껍질 속의 우주>, <만물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외 50여 권이 있고, '첨단과학시리즈', '웅진 과학 탐험: 발명편' 등 많은 과학책을 썼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되는 게놈 관련 보도들은 사람들에게 유전자가 곧 생명이라는 유전자 결정론을 유포시키면서, 유전자를 조작하면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특성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조작적 생명관을 조장시킨다. 이렇듯 우리의 정체성은 모든 측면에서 과학기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생물공학(biotechnology)의 경우에서 잘 드러나듯, 현대의 과학기술은 정치경제학의 거센 입김을 쐬며 자라났다.

르원틴의 은 생물공학의 시대, 또는 DNA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사회와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시각을 준다. 그의 성찰은 '이데올로기로서의 생물학'이라는 부제가 잘 말해주듯이 게놈 프로젝트의 정치경제적 동기를 들추어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근대과학의 방법론적 뿌리에 해당하는 인과적(因果的) 세계관이라는 인식론의 문제에까지 닿아있다.

또한 르원틴은 생물학적 결정론이 문학을 비롯한 서구 문화 일반에 얼마나 끈질긴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 파헤치고, 오늘날 분자생물학의 뒷받침으로 그 위세를 더하고 있는 유전자 결정론의 역사적 토대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르원틴의 폭넓은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과 생명 현상이 유전자로 환원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 김동광(옮긴이)




국민일보 :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해온 모든 유전자 연구의 성과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하지만 유전자 연구가 잘못된 믿음을 유포하고 그 믿음이 사회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순수한 과학과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인 양 비춰지는 신비스러운 치장 아래쪽에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 남도영 기자 ( 2001-03-13 )

대한매일 : 르원틴은 인간게놈 프로젝트라는 거대과학 뒤에 숨어있는 환원주의와 생물학적 결정론, 상업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파헤쳤다. 부분을 알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고, 유전자를 알면 개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환원주의는 생물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고 오로지 적응할 뿐이라는 잘못된 사고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 김주혁 기자 ( 2001-03-14 )

문화일보 : 7~8년을 뛰어넘는 혜안을 발휘한 대목을 들자면, 한 인간의 유전정보를 알면 당사자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그를 개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발상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나아가 동시대의 과학이 이 세계의 참인 사실들의 집합일 뿐 아니라 과학자로 불리는 이들의 주장과 이론 집합이기도 하다고 일깨운다. - 정동근 기자 ( 2001-03-14 )

조선일보 :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본인이 인식하든 아니하든 사회생물학자들의 유전자 우위론은 결국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이용될 것이며, 더구나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올바르지 않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회생물학에 맹공을 펼친 인문학자들의 언어적 공세와는 다르게 오랫동안 유전학과 생물통계학에 몰두해온 저자의 공격은 매우 사실적이며 구체적이다. - 조환규(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부 교수) ( 2001-03-10 )

중앙일보 : 신간 은 인간 지놈 프로젝트에 관한 기존의 통념과 상식을 뒤엎는 '딴지걸기'로 시종하고 있다. 지놈 프로젝트가 최종 완성될 경우 사회폭력과 알콜, 마약 중독 같은 것도 없어지고 무병장수의 원더랜드가 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냅다 찬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 조우석 기자 ( 2001-03-10 )

한겨레신문 : 날로 힘을 더해가는 분자생물학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제기해온 생물학자 리처드 르원틴 교수(하버드대학 동물학과)의 <디엔에이 독트린>은 유전자 만능주의의 거품현상을 지적하면서 “인간과 생명 현상은 유전자로 환원될 수 없다”며 강한 비판을 내놓고 있다.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성장하는 생명공학의 그릇된 신화에 대한 정면반박이다. - 오철우 기자 ( 2001-03-12 )




저자 서문

1. 합리적인 회의주의
2. 모든 것이 유전자 속에 있다?
3. 원인과 결과
4. 인간게놈의 꿈
5. 사회생물학 비판
6. 사회적 행위로서의 과학

주석
옮긴이 후기

부록 1.
DNA 독트린 -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이데올로기 - 김동광

부록 2.
생명소외로서의 복제 - 김동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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