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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나의 교육철학
마하트마 K. 간디 지음, 고병헌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3월
평점 :
교육철학의 부재로 인해 이 나라 교육은 늘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가진 교육관이 삽질교육관이다 보니 그저 빨리빨리 마치 콩나물 시루에 콩나물을 키우듯이 대책없는 물붓기를 하고 있다. 이런 실상이다 보니 초등 아니 초등 입학전 부터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는 어디에다 내 아이를 맡겨야 제대로 된 교육을 할 것인가? 늘 고민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아이들은 심지 굳은 교육관을 가지지 못한 대부분의 부모에 의해 다람쥐 체 바퀴 돌듯이 학교에서 학원으로 목적과 이상이 없이 그저 왔다갔다 하다가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로 인해 글로벌화 된 시각을 가지지 못하고 짧은 시각에 머물다 보니 인성이 결여되고, 세계화에 뒤쳐지게되고, 오직 경쟁에만 매몰되어 있다보니 나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보지 못하는 외눈박이와 같은 삶으로 살다가 더 이상 자본주의 구조에 쓸모가 없어져 폐기처분되는 도구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
이런 세태에 인도의 마하트마로 불려진 간디의 교육철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어쩌면 지금 우리 시대가 겪는 교육의 아픔과 유사한 인도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간디가 자신의 교육철학을 인도 민중들과 교육자들에게 던지는 교훈이라 하겠다.
그는 교육을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잘못된 정신 상태를 이렇게 비유하고 있다. "만약 학교를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면, 그것은 조그마한 가죽 한 조각을 얻기 위해서 버팔로 소 한마리를 죽인는 꼴이다" 라고 말이다. 또한 교육의 가치를 땅값을 매기듯이 주식 시장에서 주가를 결정하듯이 평가하는 이런 천박한 생각이 지속되는 한 교육의 참 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요원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의 교육관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교육이란 어린이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 속에서 최고의 것을 이끌어내려는 일체의 노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혹자들은 이런 교육관은 우리 현실세계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며, 각박하게 살아가는 적자 생존 시장으로 변한 한국 사회의 교육으로는 너무 이상적인 것이라 치부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아이들은 더 이상 자본의 노예화되고, 자신의 가치를 상품화되어가는 현실을 그대로 복종하며 살아가는 굴종적 삶을 후세에게 물려주는 불행함이라 할 수 있다.
간디는 또한 지금처럼 도농간의 격차가 극심해져 있는 상황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은 "도시와 시골이 도덕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인데 도시가 시골로부터 빼앗아온 활력과 자양분을 다시 시골지역으로 적절하게 되돌려 주는 것을 도시의 책임으로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10여년 육아부터 중등 대안교육의 과정에 우리 아이들 보낸 지금 이 시점에 이 책을 보면서 간디의 교육철학이 얼마나 앞서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아니 그가 가지고 있는 초등교육에 대한 생각을 볼 때 우리 나라 대안교육의 시발점을 간디의 교육철학에서 본 딴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례로 글쓰기 교육 보다는 우선 선행될 아이들의 생각키우기, 손끝활동들 현재 대안초등교육의 교과과정 속에 녹아 든 많은 예들 속에서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마치 간디가 지금의 mb정부의 영어몰입교육을 내다본 듯 영어 교육의 폐해와 그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간디는 외국어로 교육하기가 인도 교육 체제 중 가장 비극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어로 수업을 하게 됨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지불해야 할 대가는 서구 문명이라면 무조건 모방하는 쓸모없는 추종자가 되어 장차 맞닥치게될 갖가지 어려움을 떠맡고 나아갈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점과 독창적인 연구나 심오한 사상에 별 관심도 없게 되고, 용기와 인내, 모험심과 공정함 같은 자질 부족하게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어로 수업하는 것을 교육적 소외라고 정의하며 교육받는 사람과 일반 대중 사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폐악이며, 우리 아이들을 인도에 사는 '이방인'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현행 교육체제가 낳은 가장 큰 비극이며, 또한 외국어로 하는 교육은 모국어의 발달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 됨을 강변하고 있다.
오렌지냐? 어륀지냐? 라는 어리석은 궤변을 펼치는 사이에 우리교육은 붕괴되고, 그런 정치인을 우리의 위정자로 삼은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가슴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간디는 말하고 있다.
"나는 그때 씌어진 대로 발음되지 않는 언어를 배워야만 하는 것으로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비싼 대가를 깨닫게 되었고, 기하, 대수, 화학, 천문, 역사, 지리등 모든 과목을 영어로 배워야만 했던 그 시절 학생들은 배운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채 무조건 외워야만 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기하학을 이해시키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나는 오히려 현기증만 났다."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간디의 교육관은 철저히 남을 배려하고, 가족을 배려하고, 이웃을 배려하고, 사회를 배려하고, 국가를 배려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간디를 통해서 배운 것을 나누는 삶이며, 교육이라는 것, 그런 교육을 통해 서로 소통을 하며, 어깨동무하며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교육에 지루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작업을 하든 읽기, 쓰기, 셈하기와 같은 기초 지식을 배우든 교육은 늘 재미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작업이든 읽고 쓰기든 학생이 싫증을 느낀다면 그 잘못은 학생이 아니라 교사나 교육 방법에 있는 것입니다.] 본문 p.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