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히스토리 X - American History X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외국에서의 받아봤던 인종차별이란,  
성적으로 노리개감의 목표물이 된다는 것 정도- 아무래도 한국이나 일본 여성들의 이미지가 외국에선 좀 낮고, 호기심이 생긴단 걸 알기도 하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위험하지도 않았고 대놓고 섹스하자고 달겨들기보단 좀 더 신사다웠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인종차별에 비하면 귀여운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시아계 남자들의 경우 좀 더 심한 경우도 있었지만 영화에서의 폭력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에드워드노튼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면 말도안되는 인종차별이론이라도 진짜 설득력있다.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흑인들, 아시아인들이 굴러들어와서 백인들의 터전을 빼앗고, 일자리를 빼앗는다. 빌어먹을 평등정책때문에, 능력있어서가 아니라 흑인이기 때문에 원래 백인들의 것이었던 일자리를 얻고 더 나은 권리를 획득한다. 백인들이 낸 세금은 이주민들을 구제하는데 사용된다. 

아, 사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나 또한 백인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빈곤층이나 외국인노동자, 농민들을 위한 정책때문에 손해를 봤으면 봤지, 덕을 보는 입장은 아니다. 따라서 스킨헤드들의 이론과 분노에 쉽사리 휩쓸릴 뻔 했다. 사실 물밀듯 이주해오는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위한답시고 인권이나, 사랑,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이런 사상이 무슨 상관이야, 일단 내가 손해를 보는데!  

그러나 영화 중반부부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뀐다. 당당하게, 거리낌없이 흑인들을 살해하고 감옥으로 들어간 에드워드노튼은 소수의 입장에 선다. 감옥에선 백인보다 흑인이 훨씬 월등하다. 그 곳에서 말 한마디 섞고싶지 않았던 함께 일하는 흑인과 소통하게 되고, 그가 고작 TV를 훔친 죄로 6년형을 구형받았단 얘기를 듣고, 순진하게 백인우월주의를 외치다가 믿었던 백인집단에게 강간당하며 그 동안 그를 지탱하고 있던 온 세계가 흔들리게된다.   

결국 그를 보호해주던 백인집단에서 벗어나 흑인집단의 보복성 린치를 기다리지만 그에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무사히 출소하여 더 막강해진 스킨헤드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을 추앙하던 동생도 그 구렁텅이에서 꺼내온다. 그러나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말해졌던 것 처럼 그들은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대상이 흑인이나 아시아인이 될 수도 있고, 백인이 될 수도 있고,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기득권층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아니라면 누구든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쏟아냈을 때 댓가는 꼭 치루어야 한다. 물론 치루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서 문제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며 살자, 그 분노의 창 끝이 나를 향했을 때를 두려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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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3-2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가 너무 심해서 골골대느라 마음속에 있는 오만 동정심은 모두 나 자신을 향해있을 때 쓰는 리뷰니 고작 이따위-

그나저나 동생 역을 맡은 에드워드 펄롱은 터미네이터2에 나온 아이라는데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운 남성들이여, 난 당신들을 오래오래 찬양하리니- 그러나 마약에 절어 뚱뚱보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 찍은 영화들을 보니 모두 범죄, 스릴러, 공포 등등- 마약에 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린 이런 아름다운 아이를 망쳐버린 걸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곡선은 아직 그 골격에 내재하니, 다시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제목이 왠지 '분노의 달리기', '분노의 양치질'따위가 연상된다. 난 '분노'의 아이러니적인 성격을 말하고 싶은데..

거친아이 2009-03-2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전히 에드워드 노튼 보려고 본 영화였어요. ^^
연기도 영화도 정말 대단했지요? 인종차별이란 게 과연 뭘까 싶기도 했구요.
리뷰 덕분에 다시 한번 영화에 대해 떠올려봤어요~

Forgettable. 2009-03-2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친아이님, 오랜만! :)
저도 에드워드 노튼 좋다고 했더니 지인이 추천해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주말에 냉큼봤는데 영화를 보고 진짜 식은땀에 젖어 있었어요;; 아 정말 대박-
근데 전 진짜 에드워드노튼도 너무 다른 모습이라 놀라웠지만 저 에드워드 펄롱의 우수어린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호호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예기치않게 이 책을 받았을 때 선뜻 책을 빌려주는 그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니. 환상적이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책을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첫장을 피며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엄청 기대를 했다.
전 세계 각국의 사람들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뭐 여러나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스웨덴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를 못했다. 어디 붙어있는지도 잘 모르는 이 나라에서 우연히 발견된 책이라니, 게다가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옛날 민중들의 소소한 이야기라니(게다가 외국인이 본!), 사실 기대를 너무 했었나보다.  

분명 처음의 세 챕터, 코레아로 가는길-, 첫날 밤의 소동-, 공주에서 만난 봇짐장수들-, 까지는 나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주었다. 여행을 하며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들이나 외국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민중들의 모습이 너무 사실적이고 재미있어서 책에 푹 빠졌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여행하고, 게다가 첨부된 사진들은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작가는 자유롭고, 호기심이 많고, 제법 우쭐한 것 같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책의 2/3는 조선의 문화의 이런저런 설명으로 채워졌다. 한글도 모르는 외국인이 쓴 것이니 수박겉핥기식의 정보가 대부분이었고 국사 교과서, 혹은 한국인이 쓴 [중국문화의 이해]정도의 수준으로 조선의 모습이 그려졌다. 민담의 맛은 역시 사투리와 구어체일텐데 번역에 번역을 거듭하다보니 그 색이 바래어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의 구비문학이 얼마나 맛깔나는데, 민담부분은 차라리 책에 넣지 않았어도 되었겠다.  

그리고 한국의 민간신앙을 엄청나게 무시하고 있는데, 한국의 역사는 민간신앙에 뿌리를 두고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믿음, 그로 인해 살아지는 삶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고선 미개하다고 생각해버리고, 서양의 진보한 의학과 문화만을 맹신하는 태도는 약간 거슬렸다.

물론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묘사력은 빛을 발한다. 좋았던 부분은 굉장히 많았지만, 황태자비의 장례식을 묘사한 부분은 정말 좋았다. 내겐 전통적인 것이나 그에겐 이국적으로 비춰져서 묘사하는 것을 읽고있는 기분이 묘했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했던 것은 이 사람이 상두꾼, 대막대기, 상판대기, 탕약, 풍수지기, 줄행랑을 치다, 궁여지책, 악귀, 명정(!?)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사용했으며 옮긴이는 어떻게 번역을 했길래 이런 단어들이 100년 전을 살던 외국인의 글에서 등장하느냐!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굉장히 현대적인 표현과 너무도 한국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난 옮긴이가 작가의 책을 번역이라기보단 재창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책읽는 내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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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3-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말해서 난 옮긴이가 작가의 책을 번역이라기보단 재창조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책읽는 내내 했다.'

의심하실만 하시군요 ㅎㅎ

Forgettable. 2009-03-20 13:41   좋아요 0 | URL
네, 옮긴이가 스웨덴에 6년을 있었다고는 하는데 스웨덴의 100년전 고어를 이렇게 세련되게 번역하는 능력이라니. 정말로 번역만 한거라면 뛰어난 번역가일 거라고 계속 생각 ㅋㅋ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엄청 애국심이 솟아났답니다 ㅎㅎ

궁금 2009-06-0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외국인이 본 한국 이런 거 기획 자체가 싫어서 읽을 생각도 안했는데.. ㅋㅋ 님 글 읽고나니 재미있을 것 같네요. 궁금하기도 하궁 ㅋㅋㅋ

Forgettable. 2009-06-07 11: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ㅎㅎ
사실 반은 욕(?)이라서ㅡ 막 권해드리고 싶진 않아요
앞부분은 정말 괜찮은데 점점 국사교과서 분위기라 ㅡㅡ 소장용이라기 보단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훑어 보셔요 ^^

 

오래간만에 바쁜 시즌이다.
남들은 요즘같을 때 일이라도 하고 있는게 어디냐며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청춘이 흘러가는게 아깝다는 내게 엄마는 청춘을 일하며 불태우지 뭘로 불태우고 싶냔다, 늙어서 일할 수 없을 때 놀라고 하심. 동생은 그냥 한국에서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하고 가끔 여행이나 다니란다, 그곳은 너무 외롭다고. 한밤중에 울고있다며 문자까지 왔다. 백수인 친구들은 일하고 있는 당신이 부러우니 불평은 하지도 말란다. 

나란 앤 남들의 말은 원래 잘 듣지도 않고, 내가 듣고싶은 말만 듣는 편협한 인간이다. 사실 나 자신을 이렇게 비하하는 것도 이젠 좀 부끄럽다. '난 원래 이런 애야.'라면서 합리화를 하고 그에 따른 실수나 잘못을 용납해달라고 은근히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원래 편협해, 난 고지식해, 난 원래 이기적이야, 나 현실도피잘하잖아- 따위의 말들을 자주 해왔었는데 요즘 들어 이런 말을 해왔던게 좀 부끄럽기도 하다. 난 원래 그런 인간이니 내가 어떤 나쁜 인간이어도 당신들이 이해를 해야한다는 어투 아닌가. 합리화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무기라는데 그동안 난 이 무기를 너무 가차없이 휘둘러왔나 보다.

그래서 남들이 내게 불평말고 맡은 일이나 열심히 일하라고 했을 때, 더이상 '난 원래 이런 애가 아니야.'라며 모두 떨치고 떠나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합리화해버릴 용기가 없어졌다. 용기만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욕망도 사라진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난 3월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 옛 기억을 들썩여도 차마 나서질 못한다. 물론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어젠 은행에서 외환송금을 하는데, 처음 외국에서 계좌 틀 때의 기억이 휘몰아친다. 그런 쓸데없는 기억까지도 요즘은 다 난다. 지금까지 한번도 꾸지 않았던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의 꿈을 꾸고 바람 한줄기에 난 그곳의 푸른 잔디 위에 서있기도 한다. 요즘 날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는 기억이지만 난 이 모든 것을 떨치러 떠날 수가 없다.  

이글을 토해내는 지금, 난 명치가 아프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기도 한다. 약간 역한 느낌도 들어서 진짜로 토하고 싶기도 한다. 왜일까. 당신이 너무도 그리워서? 아니면 이렇게 토해내도 쓰디쓴 위액뿐이라서? 이 글을 쓰는 지금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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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전날 향락의 자취인 싸구려 양주 냄새를 풍기며 누워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미스터 몽크 에피소드와 [어려운 시절]을 뒤적였다. 허리아파, 이제 날도 따스하니 주말엔 등산도 좀 다니고 하며 허리근육을 강화해야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참 리뷰를 쓰고 싶지만, 쓸 게 없는 책이다. 보면서 낄낄대다가 또 어느 즈음에선 졸고 있고, 알 수 없는 용어와 수식들이 가득한 텍스트를 읽고 있는 꿈을 꾸다가 깬다. 웃으면서 졸고있는 것도 웃기고, 책읽다가 졸면서 또 그 책을 읽고 있는 꿈을 꾸는 것도 웃긴다. 귀여워. (?!!)

합본이라서 그런지 약간 지치는 기분이다.
엄마는 그렇게 두꺼운 책도 읽느냐며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지만 이 책의 내용이 이렇게나 황당하고 웃기고 쓸데없는 이야기란 걸 알아도 놀란 눈으로 바라볼까..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은 표지부터 엄청 우울한데, 굉장히 비싸다.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며 시간이 떠서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샀는데, 작은 책이 가격이.. ㄷㄷ

표지부터 엄청나게 우울한데, 좀 웃긴다. 어두운 내용이지만 알 수 없는 유머감각에 자꾸 웃었는데 이게 나 혼자 웃긴건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은 몇개 어렸을 적에 읽고선,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쓰는 작가란 편견이 생겨서 커서는 잘 읽지 않게되었는데 전혀 아니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보며 다시금 확신하는 중이다. 

원래는 책이나 영화같은거 왔다갔다하면서 보는 스타일 아닌데, 요즘들어 자꾸 왔다갔다하니까 집중하기도 힘들고 정도 더 안붙고 그런 것 같다. 뇌의 노화가 시작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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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3-1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킨스책은 왜 비쌀까요?

Forgettable. 2009-03-16 15:36   좋아요 0 | URL
ㅋㅋ저 지금 휘모리님 서재 갔다오는길인뎅 ㅎㅎ
디킨스 책이 보통 비싼 편인가요? 전 처음 사보는거에요, 그러고보니 완역된 작품도 잘 없는 것 같아요.
휘모리님은 오늘같은 황사의 월요일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전 죽겠어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09-03-16 16:03   좋아요 0 | URL
전 밖에 안나가고 버티는 중입니다.
아니 저 디킨스책이 왜 비쌀까 궁금해한겁니다.
고급양장본 뭐 그런건가요?

Forgettable. 2009-03-16 16:07   좋아요 0 | URL
아뇨 그냥 페이퍼백이에요- 크기도 작고 페이지수도 많은것도 아닌데.. 정말 이상하죠-
만삼천원이라니..!

아 오늘같은날 집에서 버텨야 하는데 ㅋㅋㅋ 목이 칼칼해요

무해한모리군 2009-03-17 08:15   좋아요 0 | URL
만삼천원!! 경악
전화해봐야겠군요 --;;

2009-03-16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6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6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물로 받은 도록이 책상 서랍 안에서 잠자고 있고, 주말에는 절대 갈 수 없다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결국 전시회 마지막 날에 가게 됐는데, 난 항상 평일에 서울로 산책나갈 때마다 평일에 왜이리 노는 사람이 많냐는 의문에 휩싸여서 어지러워 한다. 

어젠 정말로 공짜표 마지막날이어서였는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이 없는 그림을 피해다니며 보느라고 지그재그 역행도 서슴치 않는 엄격한 예의범절을 지키며 나름대로 그림과 소통을 하고 왔다. 몇달동안 도록을 열고 싶어서 무지 고민했는데, 역시 안보고 가길 잘했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림 자체로의 그림과의 이야기가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보다 더 좋아.  

어제 도록을 선물해주신 분이 어떤 그림을 좋아하냐고 하셔서 나는 이 그림들을 떠올리며, 어떤 그림은 튀어나올 것 같고 어떤 그림은 그림을 보다가 눈을 감고 싶다고 했다. 

    
글렌 브라운 [건축과 도덕]                                           피에르 보나르 [꽃이 핀 아몬드 나무] 

[건축과 도덕]은 첫번째 방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저 꽃들이 튀어나와 있어서 (시각적으로) 약간 놀랐다. 그래서 그림이 뚫어질 정도로 계속 보며 매직아이 놀이를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난 국화도 참 좋아하는데, 옆의 [꽃이 핀 아몬드 나무]까지 고려해본다면 아무래도 흰 꽃이면 다 좋아하는게 아닐까 싶다. 원제는 [Architecture and morality]인데, 건축과 도덕이라고 번역해놓은 건 너무 딱딱하지 않은가 싶다. 철학이나 미학을 공부할 때의 Architecture와 Morality는 건축이나 도덕보다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는데(예를 들면 형상, 만듦새, 윤리, 옳고 그름의 가치 기준 등등?? 이런 것도 사실 내겐 정의보다는 단어에 대한 느낌이 중요하다) , 그래서인지 원제가 더 좋았다.  

이 두 그림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건축과 도덕]은 사진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로 그림이 튀어나올 것 같다. 그에 반해서 [꽃이 핀 아몬드 나무]는 30초를 보니 멍해지면서 눈을 감고 싶었다. 하이힐을 신어서 눈을 감으면 비틀거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잠시 했지만 자세를 곧추세우고 눈을 감으니 하얀 꽃이 핀 나무가 서 있고 바닥에는 이름모를 노랑빨강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어떤 장소가 바로 떠오른다. 내가 도시락 싸서 돗자리와 책 몇권을 갖고 봄소풍 가고 싶은 장소라며 평생을 기다려 왔던 곳이랄까..   


발튀스 [나무가 있는 풍경] 

이 그림은 차가운 현실이 쫙쫙 금이 가며 깨지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괜히 두근거렸다. 저 배경의 무심한 직선들이며 로보트같아 보이는 사람, 쌀쌀한 날의 햇살 한줄기가 조각조각 깨지기 시작했다. 난 사진을 찍을 때 괜히 나무를 한 구석탱이에 집어 넣는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 불규칙한 이질감이 좋고, 사진에는 방해가 될지언정 자연 자체로는 방해는 커녕 조화로운 구성품의 일부이기 때문인데, 그런 내 마음이 이 그림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서 좋았다. 

 
라울 뒤피 [탈곡] 

라울 뒤피의 바이올린 그림은 화가되기 참 쉽다-라고 생각했던 작품 중의 하나였는데(유독 이번엔 그런 작품이 많았다. 그래서 더 좋았던 작품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현대작품을 볼 때는 진부하지 않기를 바라며 보기에 바이올린 그림은 좀..) 이 [탈곡]은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이 사람들의 활기찬 역동성, 하지만 존엄성이 전혀 부여되지 않은 흐릿하고 투명한 형체들,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사랑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노동의 아름다움만을 강조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게 너무 환상적이라 그림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란 앤 좀 나와 반대적 성향을 가진 것들에 더 매혹되기 마련이니.. 

      
모리스 키슬랭 [과일이 있는 정물]                                 조르주 브라크 [바니타스] 

철저하게 극과 극에 있는 이 두 작품이 정물 중에서 가장 좋았다. 퐁피두전에는 브라크의 작품이 무진장 많았는데 흐릿한 형체와 색깔, 모호한 느낌은 정말 별로인라고 생각해서 박효신이나 박화요비의 노래도 별로 안좋아하는데 브라크의 그림들이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사람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딱 한 작품, [바니타스]는 참 좋았다. 흐릿하고 모호한 기법으로 해골을 그리는 것만큼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 원래 해골 그림을 참 좋아하는데 이 그림은 브라크가 누군지도 모르고 좋아하던 그림이라 참 반가웠다. [과일이 있는 정물]은 참 청명한 기분이 들게하는 그림이었다. 거칠고 어두운 정물화들 사이에서 홀로 빛나고 있어서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 과일의 완벽한 구형과 빛, 환상적인 색감이 어두운 전시실에서 불타고 있다. 


피카소 [누워있는 여인] 

꺅, 럭셔리하다!!
난 그림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뭐 역사나 비평 이런것들에는 무지하기 때문에 모두가 극찬하는 피카소라도 무조건적인 존경을 보내지는 않아왔다. 사실 모니터나 책으로 보는 건 실제로 보는 거랑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너무나도 유명한 피카소의 그림이라도 그냥 그런갑다 했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엄청나게 고급스럽다. 처음 보는 그림이었는데 작은 캔버스에 담긴 여인의 모습이 나는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너무 높은 그곳에 있는 것 같아서 놀랐다. 지금 모니터로 보고 있으니 다시 그 감흥이 사라지려고 하는데, 여인의 속눈썹, 손가락, 꽃을 쥐고 있는 모양새 하나가 너무 고급스러워서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블라디미르 두보사르스키 & 알렉산더 비노그라도프 [풀밭 위의 점심식사] 

이 그림은 왠지 웃겨서 보면서 약간 피식거렸다. 벌거벗은 사람들과 사자(!), 사슴(!!), 기린(!!!) 그리고 저 알수 없는 왼쪽 아래의 고양이같은 여우라니, 아- 문명인처럼 생긴 원시인의 세상에 갑자기 쳐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이랄까, ㅋㅋ 가까이 가보니 유명한 화가들의 자화상이라고 표시를 한 그림이 있다. 그걸 보자마자 진짜 혼자서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이렇게 유쾌한 작품이라니!! 푸ㅏ하하니ㅏㅜ히이ㅏㅣ! 난 정말 러시아를 사랑하게 되버릴 것 같다. 

좋았던 그림도 많았고, 그저 그런 작품들도 많았지만 일단 여기까지-  

아참, [그늘을 들이마시다]는 내 평생 최고의 설치작품이었다. 난 사실 그 안에서 좀 눈물까지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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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03-14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뒤피, 피카소, 브라크의 바니타스, 글렌 브라운 좋았어요.
피카소의 <누워있는 여인>은 그야말로 자체발광이죠?ㅎㅎ

도록 두개 사서 표를 다 날려버린 게으른 하이드 ㅡㅜ
그나저나 날씨도 안 좋고 평일이라 사람 없을 줄 알았는데, 공짜표의 위력으로 많았나보군요. ㄷㄷㄷ

<그늘을 들이마시다> .... 고백합니다. 저, 월계수잎 kg단위로 파는 곳 찾아 놓았어요. ^^;;


Forgettable. 2009-03-14 16:09   좋아요 0 | URL
저도 진심으로 생각했어요. 집에다 놔두면 벌레생길까? 하이드님 서재에서 얼핏 본것 같은데 나도 알려달라고 할까? ㅠㅠ
[누워있는 여인]을 보면서 정말 괜히 이사람이 인기가 많은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평일인데 사람 많았어요. 교보에도 잠시 갔었는데 바글바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건지.. ㅎㅎ
그나저나 너무 아쉬워요- 데이트 기대했는데!

Kitty 2009-03-14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크의 작품은 대부분 팔레트 깨끗하게 씻지 않고 물감을 풀어서 좀 지저분해진 색같은 느낌이 나죠 ^^;;
그래서 저도 딱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작품이 많이 왔다니 궁금하네요.
좋은 시간 되신 것 같네요. 덕분에 저도 구경 잘 했습니다 ^^

Forgettable. 2009-03-14 16:03   좋아요 0 | URL
오 저 지금 키티님 서재에 댓글남기고 왔는데 신기해요 ㅋㅋㅋ
요기 정말 색감이 죽이는 작품들이 많아서 브라크의 작품은 눈에 잘 안들어와요... 어제 집에 와서 도록을 보니 그래서 더 매력이나 의미가 있다지만 역시 전 자극적인게 더..+_+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