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바쁜 시즌이다.
남들은 요즘같을 때 일이라도 하고 있는게 어디냐며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청춘이 흘러가는게 아깝다는 내게 엄마는 청춘을 일하며 불태우지 뭘로 불태우고 싶냔다, 늙어서 일할 수 없을 때 놀라고 하심. 동생은 그냥 한국에서 안정적인 회사에서 일하고 가끔 여행이나 다니란다, 그곳은 너무 외롭다고. 한밤중에 울고있다며 문자까지 왔다. 백수인 친구들은 일하고 있는 당신이 부러우니 불평은 하지도 말란다.
나란 앤 남들의 말은 원래 잘 듣지도 않고, 내가 듣고싶은 말만 듣는 편협한 인간이다. 사실 나 자신을 이렇게 비하하는 것도 이젠 좀 부끄럽다. '난 원래 이런 애야.'라면서 합리화를 하고 그에 따른 실수나 잘못을 용납해달라고 은근히 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원래 편협해, 난 고지식해, 난 원래 이기적이야, 나 현실도피잘하잖아- 따위의 말들을 자주 해왔었는데 요즘 들어 이런 말을 해왔던게 좀 부끄럽기도 하다. 난 원래 그런 인간이니 내가 어떤 나쁜 인간이어도 당신들이 이해를 해야한다는 어투 아닌가. 합리화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무기라는데 그동안 난 이 무기를 너무 가차없이 휘둘러왔나 보다.
그래서 남들이 내게 불평말고 맡은 일이나 열심히 일하라고 했을 때, 더이상 '난 원래 이런 애가 아니야.'라며 모두 떨치고 떠나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합리화해버릴 용기가 없어졌다. 용기만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욕망도 사라진 것 처럼 보인다.
그래서 난 3월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 옛 기억을 들썩여도 차마 나서질 못한다. 물론 나가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어젠 은행에서 외환송금을 하는데, 처음 외국에서 계좌 틀 때의 기억이 휘몰아친다. 그런 쓸데없는 기억까지도 요즘은 다 난다. 지금까지 한번도 꾸지 않았던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의 꿈을 꾸고 바람 한줄기에 난 그곳의 푸른 잔디 위에 서있기도 한다. 요즘 날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는 기억이지만 난 이 모든 것을 떨치러 떠날 수가 없다.
이글을 토해내는 지금, 난 명치가 아프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기도 한다. 약간 역한 느낌도 들어서 진짜로 토하고 싶기도 한다. 왜일까. 당신이 너무도 그리워서? 아니면 이렇게 토해내도 쓰디쓴 위액뿐이라서? 이 글을 쓰는 지금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