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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책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존 코널리 지음, 이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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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이 책을 산건 순전히 표지와 'lost'라는 단어에 대한 이끌림때문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여행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상상해왔지만 결코 지겹지 않았기에 기본은 하겠지-란 생각에 이 책을 구입했다.

 아 근데 이게 왠걸, 대충 흘겨보는 내 눈에까지 캐치된 오탈자며, 말도 안되는 번역- (사실 말이 되긴 하지만 읽는 내내 영어문이 떠올라서 도저히 집중할래야 집중이 안된다.) 때문에 보관함에 담아둔 원서가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게다가 은근히 멋부리는 듯한 작가의 말투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음.

 솔직히 말하면 내가 써도 이정도는 되겠다 싶었다. ㅎㅎ

 그렇지만 아마 쓰려 하지도 않을테고 쓰지도 못할걸 알고 있다. 여튼 이 돈내고 사서 볼 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좀 더 할인해주면 약간 더 기꺼운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만,

 원래 재미없었던 책의 리뷰는 쓰지 않는 편인데 지금 이렇게 툴툴대며 적이고 있는건 그래도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의 흡입력은 있었다는 것이다. 번역이 엉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가끔씩 잊어버릴 정도의 재미는 있다.

 그치만 문제는,동화 속의 환상적인 세계는 가서 살고 싶어야 맛인데, 이건 뭐 환상을 깨뜨려 놓는데다가 절대 들어가서 살고 싶지 않은 세계를 막 멋대로 그려놓으니 어린이를 위한 동화도 아니고 어른을 위한 동화도 아닌거다. 보는 내내 기분만 상했다. (왜일까?)

 여튼 난 뭔가 신기한 환상의 나라를 기대했는데 우중충한 어둠의 세계를 보고 나온 기분이다.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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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재직 중인 오슬로대에서 3년 전에 기분 나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5년 동안이나 거기서 한국어를 가르쳐 왔는데, 그동안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원서를 낸 학생들이 고작 네 명뿐이었기에 학과장이 드디어 한국어 강좌를 폐강시키자고 말을 꺼냈다. 한국계 입양인들이 6천명이나 되는 노르웨이에서 한국어 과정이 꼭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해 봤지만 연례 지원자가 150여명씩이나 되는 중국·일본어 과정에 예산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학과장의 의견이 결국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아, 소속 학과의 교수와 학생, 교직원 대표자 회의에서 한국어 폐강을 결정하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오슬로를 떠나고 싶을 만큼 기분이 나빴지만 한 가지 생각 때문에 결국 ‘잔류’를 결심했다. 필자에게 불리한 결정이었다 해도 그 결정을 내릴 때 오슬로대가 지킬 것을 다 지켰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담당 교수인 필자와 먼저 협의부터 했다는 점이나 한국어 공부를 막 시작한 재학생들에게 졸업 기회를 보장해 주었던 점, 그리고 어학 이외의 필자의 한국 관련 강의를 다 그대로 살려주는 등 한국학의 여맥을 잇게 해준 점 등은 필자에게 호소력이 높았다. 게다가 오슬로대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게 가까운 스톡홀름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올 경우 학점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등 한국어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해 주었기에 필자로서 아무리 개인적으로 불쾌해도 “기본을 지켰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 과연 국내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때 그 처리가 어떻게 되는가? 요즘 건국대의 히브리중동학과 등 이른바 ‘비인기 학과’들의 폐과 결정에 대한 보도를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오슬로대에서 가까운 스톡홀름과 코펜하겐, 헬싱키 등 여러 북구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서 한국어 과목을 폐강시켰지만, 건국대는 국내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에서 비교 대상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유일한 학과를 그 희소성에 대한 하등의 고려 없이 없애려고 한다. 오슬로대에서는 졸업생이 2명, 재학생이 2명뿐인 전공을 폐강시키는 일에 약 석 달 동안 당사자와 소속 학과, 학부 교수, 학생들과의 협의 과정을 진행했지만, 건국대는 당사자와의 협의 과정을 생략해 교수·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보도된다. 지금 히브리중동학과 재학생들로 하여금 될수록 히브리어와 무관한 다른 학과로 전과하도록 하는 것이 학교의 방침이라는 보도도 나와 있는데, 이 대목은 학교가 학생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북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쪽에서는 만약 대학이 입학을 지원했던 그 당시에 학생에게 약속했던 학습과정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면 학생 학습권의 심각한 유린과 학교로서의 고유 임무 유기로 간주돼 전국적 스캔들이 벌어질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시종일관 ‘시장성’만 거론하는 것으로 보니 오로지 시장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면 대학과 기업의 차이는 무엇인가?

국내 대학들이 “세계적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 돈부터 필요하다”고 앞을 다투어 학생들에게 무리한 등록금 인상을 억지로 강요하지만 ‘세계적 대학’은 돈이 아닌 근본적인 학문적 상식과 민주적 절차, 학생들의 학습권에 대한 존중으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당사자와의 충분한 협의도 없이 폐과 조처를 내릴 수 있는 대학이라면 과연 외국의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이 몰려올 것인가? ‘세계성’이란 돈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학습자와 학문, 앎에 대한 존중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 아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전락했다고 토론하던 그 시간이 참 그립다. 답답해서 마음이 터질 뻔 했던, 하고 싶은 말이 터져나와서 목소리가 떨렸던, 그 때의 내가 그리운 지는 잘 모르겠다.

-- 히브리학과 없어진다고 하던데, 벌써 없어졌나? 짜증난다. 히브리학과 가고 싶어서 진짜 고민했었다. 이스라엘 친구들 만나면서 진짜 히브리학 전공안한거 땅을 치고 후회했었다. 나름 우리학교엔 히브리학과있다면서 엄청 자부심이었었는데, 없애고 뭐 원하는 과가 뭐든지 전과가 가능하도록 해주겠다는 이 처사는 정말 내 자부심에 상처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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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에 있을 전시회를 생전 처음 준비해보면서 꽤나 바쁜 하루들이다.

 퍽이나 재미있을 것만 같았던 학술행사와 전시회 준비는 생각보다 별로다. 조잡한 사무일과 신경써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나마 예술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면 조금은 행복했을까? 모를 일이지만 오히려 실망했을 수도 있겠다. 지금 일은 애초에 기대도 없이 시작했지만 문화와 관련된 일에는 왠지 엄청난 환상을 갖고 시작했을 것이니 그만큼 타격이 컸겠지. 어차피 좋아하는 일이든, 관심 없는 일이든 일은 일이니까.

 바쁜 와중에도 마음이 스산한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추워서 그런건지?!

 금요일에 오랜만에(사실 3주만이면 오랜만도 아닌가-) 또 학교에 가서 놀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끈적끈적해보이는 두명이 보이는가 하면 '여자는 남자의 능력!'이라고 자기 여친이 있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소리치는 마초맨(넌 불청객이었어- ) 감기에 걸렸다고 술을 안마시던 엄청나게 쓸쓸해보이던 후배(황야의 이리 읽어보라고 백번 말했다-_- ) 등 뭐 그닥 예전같지가 않아서.. 그랬다.

 예전엔 참 좋았었던 것 같은데- 내마음이 쓸쓸한건지, 아님 우리가 그날따라 좀 핀트가 엇나갔었던 것인지, 둘 중의 하나였음 좋겠다. 우리가 변하는 건 싫다. 안그래도 변하는게 너무 많아서 정착하기도 힘든데..

 변하는게 싫다니 나도 꽉 막힌 보수주의에 편협한 사람이 될 날이 얼마 안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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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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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누워서 뒹굴거리면서 봤어도 아마 내던졌으려나,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안가기로 유명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책을 보는 나로써는 읽는 내내 마음이 괴롭고 불편하여서 몇번이나 책을 접었다가 폈다가 했다. 아무리 괴로워도 이 책이라도 안보면 시간이 안가니까..

 그러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던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던가- 하는 리뷰를 상기했다.

 이런 책을 어떻게 그리 쉽게 볼 수 있는지?

 주제 사라마구의 [모든 이름들]을 꽤나 건조하게, 그러나 따뜻한 느낌으로 봤기 때문에 [눈먼자들의 도시]는 충격이었다. 주제 사라마구가 진정 [모든 이름들]의 작가가 맞는지 다시 확인해 봤을 정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사람들이 너무 싫어졌다. 지하철을 오가는 인간들이 싫었고, 내가 혐오스러웠고, 인간 자체가 한 덩어리로 느껴지면서 그냥 인간이라는 것이 끔찍한 존재였다.

 끝으로 갈수록 그 동안 감추고 있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고 약간(아주 조금) 훈훈한 분위기가 되면서, [황야의 이리]로 갈아타면서, 다시 마음이 쓰다듬어지긴 했다만 아직 끝을 내지 못하고 있다.. 괜히 줄거리를 읽는 바람에 스포에 공격당했기 때문인가?!

 (알라딘은 줄거리에 결말까지 다 써놓는 거 지양해주길 바래요!!)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만 난 책을 참 빨리 읽는 편에 속한다. 속도가 붙는 책은 몇시간이면 다 읽고, 그렇지 않은 책이라도 일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그런데 [눈먼자들의 도시]는 거의 3주를 넘게 붙잡고 있었으니, 3주 내내 우울해하며 자기파괴적인 심성으로 생활을 했다는 것이,,, 원래 책을 읽을 때 좀 심하게 몰입하기는 하지만 이 책만큼 깊이 빠져서(질척질척) 헤어나오기 힘들었던 책은 처음이다. 나름 색다르고 놀라운 경험!!   

 영화로 개봉되면서 너무 유명해졌기 때문에 일단 나의 리스트에서는 제외-

 레어아이템만 좋다는 이상한 이기주의 일지도 모르겠다?

 보는 내내 굉장히 힘들었다. 가독성 어쩌구를 떠나서 내용 자체가 받아들이기 괴로운 사실과 대화들의 나열- 혼자 회사가면서 5초 동안 눈감고 걸어봤는데 답답해서 토할 뻔 했다! 줄리안 무어가 나오는 영화지만. 아마 보지 않을 것이다. 힘들게 겨우 빠져나왔는데 어떻게 그 구덩이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 그치만 매혹적인 구덩이라 쪼금 유혹적인건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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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8-11-1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완전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보았어요. 그냥 소설이니깐 가볍게 넘겼던 기억이;;저도 영화는 별로 기대하지 않아요. 소설이 워낙 대단한 작품이어서 영화가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실제로 칸 개막작이었는데 평론가들 평이 별로 안 좋았다는 소문이;; 암튼 요새 들어 사람들 이 책 많이 읽으시더군요. 저는 한 고3때 정도에 친구 추천으로 읽었는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재미있게 보았어요. 지금은 대충 내용만 기억 나네요;

Forgettable. 2008-11-11 16:1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내용도 내용이지만 술술 읽히는 문장도 아닌데, 오래 지났는데도 재미있게 봤다고 기억하시니 진짜 신기하네요! 아 저 어제 이책 꿈꿨어요.. 나는 눈 언제 멀까,,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이 멀어가는 걸 보고 있는데 아예 악몽이던데요- (너무 책에 몰입하기ㅋㅋ)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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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다 들린 어느 분의 서재에서 [인간 실격]을 좀 더 어린 나이에 봤으면- 이라는 아쉬워하는 글귀를 만났다. 그런데 재미있는게 다시 리플에다가는 어렸을 때 봤으면 사단이 났을 것이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여기 너무 어릴 때 [인간실격]을 만나서 사단 난 사람 한 명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난 행복과 낙관주의로 가득찬 명랑한 아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내 인생에서 하나의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밝고 활기찬' 아이였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었던 내 안의 고통과 비애, 끔찍한 자기애와 동시에 자기혐오를 [인간실격]에서 낱낱이 확인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였는지, 이 책 때문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난 더 이상 따뜻하고 마냥 행복한 아이인 척 할 수 없었다. 이후로 외로운 유학생활을 하고, 엘 그레코의 그림들을 접하고, 시든 장미와 해골의 정물화를 만나고, 나쓰메 소세키와 헤르만 헤세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게 된 것의 연유가 [인간실격]에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꼭 '이상향'과 '아름다움'을 그려야 아름다운 예술이 아니라는 게 왜 그리도 감동적이고 꼭 내 이야기인 것 마냥 가슴이 저렸는지, [인간실격]을 보는 어린 마음도 그러했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아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야 하는 것인지,
 꼭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게으름을 피우고 사색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일인게 부끄러운 일인건지,
 의심해 보도록 도와준(?) 계기가 [인간실격]이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이유도 모를 불안을 묻어둔 채 행복하다, 여느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하면서 가끔씩 까닭 없는 고독과 불안을 모른척하고 살았을 지도 모른다.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면서도 아무 감정 없이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단단히 굳어진 후에야 [인간실격]을 보고 귀족이나 한량의 배부른 푸념으로 치부해버렸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다자이 오사무 덕에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생각하고, 의심하지 말아야만 하는 것들을 의심하며,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태생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아니라 사색하기 위해 태어났기에 인간실격임을 너무 어렸을 때 알아차린게 참 다행일 수도 있겠다. 그런가? 그래야 한다. 난 실패했기 때문에 특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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