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에 쓴 아메리카노를 첫 한 모금 꼴깍하면서 쓰다! 라며 묘한 쾌감을 느낀다. 왠지 행복하달까. 난 이게 카페인 때문이 아니라 쓴 맛에서 오는 거라 괜시리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이 낭만적인 쓴맛의 달콤함은 한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해서 커피만의 고유한 성질이 아니다.
[도그빌]
바로 이 영화. [도그빌]에서 나는 헤어나올 수 없는 쓰디쓴 쾌감을 인생 처음으로 발견했더랬다. 내가 생각하는 서양 최고의 미녀 니콜 키드먼이 대굴욕을 겪는데, 참 쓴게 아마 나라도 저랬을(괴롭혔을 수도, 괴롭힘에 복종했을 수도, 둘다-) 것이라 생각되어서였다.
이런건 언제나 힘들다.
내가 경멸해 마지 않는 인간들의 행태를 지켜보는것.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별로 힘들지 않지만 내부에서 내가 막상 저 상황이 되었을 때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저 정도(과도한 업무 부과, 강간, 노리개, 화풀이 대상, 목에 개줄 묶기) 까지는 물론 하지 않겠지만 내가 다수의 입장에 안주하고 그것을 편하게 여기고 있다면 침묵 정도는 껌이고 은근한 동조도 기꺼이 해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몰살당해도 괜찮은가?! 그녀는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하며 다 몰살해 버린다. 내가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봤던지간에 다수의 가해자가 단 한명의 피해자에게 복수당하는 장면은 그 정당성에 상관없이 약간 통쾌하다. 그런데 이 통쾌한 내 자신을 보면서 난 또 씁쓸해지는 것이다. 이 모순.
괴롭다. 그러나 마조히즘의 경향이 있는건지, 나의 쪼잔하게 엄격한 도덕성에 이율배반하는 나의 감정이 유린당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영화는 은근히 달다.
[워터드롭스 온 버닝락]
이것도 비슷한 종류다.
매력적인 중년 남자
중년 남자의 노리개이면서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 젊은 남자
매력적인 중년 남자의 전 여자친구
중년 남자의 노리개이면서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 젊은 남자의 예쁜 전 여자친구
이 중 어느 누구에게 몰입하든.. 슬프다. 왜?
예쁜 젊은 여자가 부러워서? 혹은 노리개였단 걸 알게 된 젊은 남자가 불쌍해서? 혹은 버려진 중년 여자가 비참해서? 혹은 누구에게도 섹스를 넘어선 감정을 가질 기미가 안보이는 중년 남자가 내 남자 같아서?
너무나도 나의 현실인 이 영화가 너무 쓰고 괴로웠음에도,
결국에는 그래도 알 수 없는 쾌감으로 마무리. 난 정말 괴롭힘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브레이킹 더 웨이브]
[도그빌]에 이어 또 관객 괴롭히기로 유명한 라스 폰 트리에의 작품이다.
이 영화가 힘들었던 건 여주인공의 비참한 인생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대로 모두 일어나버린다는 점이었다. 앞서 언급한 두 영화와 같은 맥락으로 너무나 현실같은 현실이어서 괴로웠다.
이하는 그외 기억나는 쓴맛의 왕달콤함 리스트-







[레볼루셔너리 로드]
이건 아직 안읽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음. 사고싶다.!
물론,
벼락치기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냐, 머리가 좋아서 해도 별 탈이 없으니까! 라는 우쭐거림에
그래 니가 참 머리가 좋지, 어렸을 땐 시도 너무 잘짓고 똑똑했는데
엄마가 뭘 몰라서 다른 애들이랑 똑같이 키웠더니 이렇게 평범해져서 문제지.
라는 엄마의 자조섞인 대답에서까지 달콤함을 느끼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