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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이나미.이영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새로운 책을 시도했을 때, 그 책이 사랑스럽기까지 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물렁하던 뇌는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딱딱해져서 편견과 고집으로 똘똘뭉쳐지게 되어 책을 평가하는 가혹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어느 정도는 '핀트가 어디에서 어긋나려나'라는 이상망측한 바닥위에 앉아서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막상 책에 빠져들게 되면 핀트가 어긋나든 말든 작품의 편에 서서 옹호하는 쉬운여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서재는 도전을 망설이는 내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신세계라 할 수 있다.
좋아하는 타입의 글이 적힌 서재의 주인들이 읽는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보다는 아니지만 그나마 안전빵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그 분들 덕에 난 새로이 좋아하는 작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난 일본문학을 굉장히 싫어라 하는 편인데 좋아하는 서재지기님들 덕분에 일본문학에 손을 뻗치고 있는 실정이기까지 하다.) [펭귄의 우울]도 서재에서 새로 알게된 한 작품인데, 최근 들어 이만큼 사랑스럽고 귀여운 작품을 만난적이 없어서 행복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아직 읽을 책을 주문하지도 않았는데도 책을 끝내버리기도 했거니와, 재미있는 책은 좀 심하게 빨리 읽어버리는 버릇에 용서라도 구할겸 다시 찬찬히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놓친 부분이 더 반짝인다. 이런 책이 더 좋아.
우울증에 걸려 항상 슬픈 눈빛을 하고 있고, 서서 자는 통에 가만히 서있는건지 자는 건지 잘 구별이 안가고, 가끔씩 뜬금없이 나타나 부비적대며 주인공을 놀래키거나 위로해주는 펭귄 미샤가 있다. 미샤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미스터리도 아니고 순문학도 아닌 어정쩡하고 가벼운 지나가는 소설이 되어버렸을 것이 명백할 만큼 미샤의 존재는 소중하다.
한가지..! 빅토르는 어떻게 미샤가 아파서 몇 달 동안 집을 비우는데, 수의사가 안된다고 했다고 해서 보길 포기해버리고 마냥 기다릴 수 있었을까, 나같았음 어떻게 했을까.. 생각에 잠겼었다. 펭귄미샤가 없는 동안 빅토르에게 이런저런 급박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빅토르의 성격탓도 있었겠지. 남극으로 보내주고 싶다는 그들의 각별한 '애정'덕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이게 정말 애정이지, 내 옆에 꼭 붙들어 매고 내가 돌봐주어야 한다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관계의 집착'인 것 같다.
이것이 소위 쿨한 서구문화인 것일까? 친한 세르게이는 인사도 없이 모스크바로 떠나버리고, 그에 대해 빅토르는 그저 '인사도 없이 갔네.'라고 생각할 뿐 딱히 서운해하거나 삐지지 않는다. 한 번 얽매이기 시작하면 사소한 쩜하나까지도 옭아매는 나로써는 무심한 빅토르가 부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게다가 한두번 본 펭귄학자에게는 큰 돈을 들여서 병원에도 입원시켜주고 장례식까지 치뤄준다. 잘 알지도 못하는 펭귄아닌 미샤의 딸 소냐를 계속 데리고 있으면서 보살펴주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무심한 사람인지..? 모순의 중심에 있는 난 이런 단순복잡한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이다. [파이트클럽]의 오만방자한 캐릭터와는 아예 반대지점이랄까. '반대'지점이라.. 오리무중, 카오스.
스릴러라기엔 좀 뽀송뽀송한 감이 없지않아 있고, 그렇다고 또 감동물이라기엔 스펙타클하다. 그렇다고 어중이떠중이 다 모인 잡탕같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장르를 종잡을 수 없고 쉬운데 깊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굵게 자리잡고 있으니 완전 내가 추구하는 작품상이다. 주인공은 약간 자기비하에 우울하지만 따뜻, 무심한 쏘쿨한 남자며, 무지하게 귀여운 펭귄미샤를 소유하고 있는 완벽한 캐릭터다. 껴안아주고싶을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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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꺼려하는 '.......(말 끝을 흐리는 기법)'이 약간 과도하게 쓰인점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일단 패스.
급작스러운 오픈 결말의 불충분한 설명은 [펭귄의 실종]이 나왔으니 일단 용서해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