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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중순까지 일을 구하지 못하면 체리 따러 체리농장에 가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다녔던 이유는 그만큼 열심히 일을 구해보겠다는 다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일찾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고 나는 내 인생의 행복 지수 최저점을 기록했던 2007년 하반기를 도돌이표하며 울다 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더이상 꽃돌이들도 삶의 낙이 되어주질 못했고 난 내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 다시금 알콜중독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3주 전이었던가 이력서를 뿌려두었던 요거트가게에서 연락이 왔고 한국인 워커들에게 대단한 호의를 보이는 매니저와 인터뷰를 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서도 멀고, 하고 싶었던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던 농장일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에(?) 마구 환호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을 시작한다는 건 실로 나쁘지 않았다. 나는 태생적으로 노동자였던 것이다. 뼛속까지 권태로워야 하는 귀족따위는 애초에 될 수가 없었던 거지. 

얼린 과일과 얼린 요거트를 함께 섞어서 요거트를 만드는 일은 좀 재미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제일 큰 몰이었다던 West Edmonton Mall에 자리잡고 있는 이 작은 요거트 가게에는 전 세계에서 온 수백명의 사람들이 다녀간다. 아직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실수를 할까봐, 영어를 어떻게 써야할지 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일에만 온통 사로잡혀 있는 지금이지만 일을 원했던 만큼이나 재미있다. 이제야 조금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면목 없어서 아빠에게 전화도 드리지 못했는데, 생신에 맞추어 간신히 자랑스레 전화도 드렸고, 하루 휴가내어서 록키로 여행도 다녀왔고, 하루쯤은 누워서 뒹굴거려도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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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기대했던 현지인들의 러쉬는 예상밖으로 전무하다. 하하하 ㅠㅠ  

캐나다 워홀 까페의 요즘 화두는 한국여성과 캐네디언남성 커플에 대한 한국남성의 열폭과 그에 반응하는 한국여성의 열폭인데 읽어보면 재미있다. 심지어 구글에 korean girl 이라고 치면 easy korean girl이라는 검색어가 아래에 뜬다는 말까지 있어서 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캐네디언남이랑 사귀면 싸구려가 되어버린다는 것처럼 글을 장황하게 써두고는 일부 여성들에게만 한하는 이야기라고 못박아두는 글도 재미있고, '저 골 비었어요!!' 라고 외치는 것마냥 캐네디언과의 연애담을 연재하는 글도 재미있고 애국심을 가장한 마초, 페미니즘을 가장한 마초들의 '토론'을 읽다보면 웃음밖에 안나온다. 

누군가가 '언젠가는 했어야 할 이야기'라고 했는데 도대체 왜 이 주제가 화두가 되어야 하는지 난 도저히 모르겠다. 피해의식들의 조화로운 만남이라고 밖에 해석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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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번 노티스]를 대단히 재미있게 보고 있다. 마이클 웨스턴 좀 짱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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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에 다녀왔다. 대단히 유명한 곳(밴프, 재스퍼)이 아니라 작고 아담한 곳(캔모어)에 다녀왔는데 록키를 몇 번이나 다녀오신 분들도 캔모어가 훨씬 낫다고들 하시니 난 완전 럭키했던 거다. 당일치기로 다녀와서 완전 아쉬웠는데 다음에는 좀 넉넉하게 다녀와야겠다고 다짐, 다짐, 또 다짐했다. 짧고 빡센 여행은 역시 체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산코스에서 저력을 발휘하여 친구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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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7-07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일자리도 얻고 록키도 다녀오고~ 멋져요!!
잘 지내고 있다니 안심하는 엄마 마인드.^^

Forgettable. 2010-07-09 04:30   좋아요 0 | URL
무지 다행이죠. ㅎㅎ 동생이 록키에 4번은 다녀와야 한다고 해서 열심히 기회를 또 노리고 있어요!ㅋ

다락방 2010-07-07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뭔가 갈증이 풀리는 느낌이에요, 뽀.
이제 일 구했으니 그때 말했던 맥북도 사고(응?) 근황을 자주자주 보고해요. 읽으니까 좋네!
:)

Forgettable. 2010-07-09 04:30   좋아요 0 | URL
아.. 이 월급가지고는 맥북은 커녕 여행자금이나 마련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ㅠㅠ
허리띠 졸라매 볼게요 ㅋㅋ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0-07-0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고 있군요. 장해요 뽀!
저는 까만 피부를 가진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로망이 있는데 말이죠..
(만져보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강함 =.=)
어쨌거나 누가 누구를 만나든 참 관심들이 많군요.
종종 소식전해요.
여기는 많이 더워요.

Forgettable. 2010-07-09 04:32   좋아요 0 | URL
캐나다에는 까만 피부를 가진 친구들이 많이 없어요. 미쿡엘 가셔야. ㅋㅋㅋ
여긴 너무 안더워서 큰일이에요.
가져온 핫팬츠와 나시들이 울고 있어요. 여기서 긴팔만 몇개를 샀는지 ㅋㅋ
설마하고 가져왔던 수면바지를 아직도 애용중 ㅠㅠㅠㅠ

하지만 거의 천국같은 날씨입니다. :)

잉크냄새 2010-07-0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록키 다녀오셔서 럭키한 거군요.
사진으로 접한 록키 정말 아름답네요.

Forgettable. 2010-07-09 04:33   좋아요 0 | URL
정말 예쁘죠? 괜찮은 사진들이 무척 많아요!! 필름 현상하고 싶어 죽겠음 ㅠㅠ
다행히 공안한테 안붙들리고 무사하시군요. :)

Demian 2010-07-0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개인적으로 요거트 광이라 그런가
요거트 가게에 계신다니 뜬금없이 엄청 부러워졌어요;;;

그나저나,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는데 잘 계신것 같아 좋네요^^
록키도 다녀오셨다니.......사진좀 구경시켜 주세요!ㅎㅎ

Forgettable. 2010-07-09 04:34   좋아요 0 | URL
와. 진짜 ㅋㅋ 요거트 실컷 먹어요. 살찌겠어요. 안그래도 일하는 시간 때문에 밥도 불규칙하게 폭식하고 그래서 ㅠ 전 요거트 별로 안좋아하는데도 엄청 맛있어요! :)

사진은 엄청나게 찍었는데 진짜 마음에 드는 사진은 얼마 안되더라고요. 구경시켜드릴게요, 조만간 ^^

LAYLA 2010-07-07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리 농장도 괜찮게 들리는데요. 감자농장-이런거랑 질적으로 다르게 로맨틱한 느낌.......하하하 요거트가게 아가씨는 귀여워요!!!

다락방 2010-07-08 13:10   좋아요 0 | URL
체리 농장엔 체리도 있고 짐승남도 있을것만 같아요!

Forgettable. 2010-07-09 04:37   좋아요 0 | URL
동생한테 '농장갈거야...' 했더니 호박 나르고 그러면 허리 나간다고 걱정하길래 체리야 체리! 라고 하며 왠지 자부심(?)같은걸 느꼈었죠. 체리는 뼛속부터 다른 느낌이에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짐승남들이 버킷을 앞뒤로 두르고 사다리 위에서 체리를 빛의 속도로 딴다고 해요!!!!!!!!!!

2010-07-1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진이 영화 포스터 같아요 나중에 현상할 필름 사진들이 궁금하네요 ㄷㄷ
체리 농장, 요거트 가게라고 하니 왠지 무척 평화롭게 느껴져요.
손때 묻은 단편집 구석에 실린, 하얀 여백 속의 아기자기한 삽화 같은 느낌도 들고...
실제론 무척 바쁘고 힘드실텐데;

암튼 외국인 남자친구와 사귀는 한국녀 이야기는 늘 뜨거운 화젯거리가 되곤 하는데,
전 이제 시들해졌어요, 양간지남들을 보며 열폭하는 것도 지쳤고;
어쩌면 그냥 연애나 이성 이야기 자체에 흥미가 사라졌는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머리 속엔 미래에 대한 걱정, 카메라 덕후질, 먹을 거 생각 뿐이란;

Forgettable. 2010-07-18 03:47   좋아요 0 | URL
저도 필름사진들 궁금해 죽겠어요. 근데 여긴 너무 비싸서.. 아마 한국 들어가서 한꺼번에 현상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ㄷㄷㄷ 무척 평화로운거 맞아요. 여기 사람들 느긋해서 주말에는 요거트 먹겠다고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데도 빨리좀 해달라고 재촉하는 사람 한명도 못봤어요. 한국에서 일할 땐 조금만 지체되도 신경질 부리면서 빨리 해달라고 난리극성이었는데 말이죠. 다들 웃으면서 인사하고, 요거트 받고 얼굴에 기쁨을 가득 담아갖고 가는걸 보면 진짜 뿌듯 ㅋㅋㅋㅋ

유난히도 미소녀들이 많았던 이번 학기를 그냥 보내버리신 것 같아 제가 다 안타깝다능 ㅠㅠ
그래도 오두막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화이팅!!!

자하(紫霞) 2010-07-16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거트+ 매니저사진도 찍어주세요~궁금해요!
록키사진은 정말 멋있네요. 색이 넘 좋아요!!

Forgettable. 2010-07-18 03:49   좋아요 0 | URL
하하 매니저 사진은 왜 ㅋㅋㅋㅋㅋㅋㅋ
저 호수가 저런 색감으로 유명하대요. 황이 많다나 어쩐다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귀여운 말투랑 매치가 안된다능 ㅋㅋㅋㅋ

하이드 2010-07-19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사진이 멋지다!

한국남자들의 열폭-> 한국여자들의 열폭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 나 10년도 더 전에 미국에 있을 때 '캐내디언'을 '일본'으로 바꾸면 그 때부터 듣던 이야기구나 ㅎ

요거트 가게 .. 좋지 아니한가.
체리 농장도 확실히 땡기긴 한다. 나도 프랑스 가서 와이너리에서 포도를 밟는다던가 (키아누 리버스 같은 일꾼이 함께라면 금상첨화. 에헴 - ) 뭐 그런 소박한(?) 소망이 있습니다.


Forgettable. 2010-07-20 17:32   좋아요 0 | URL
하하하 일본남자. 그렇군요.
따지고 보면 한국 남자애들이 일본 여자애들 좋아하는 거보고 한국 여자애들은 아무말도 안하는데 말이죠. 이상한 일이에요.

저 손에 습진 심하잖아요. 캐나다 와서 크림 잘 발라주고 해서 많이 좋아졌는데 일하면서 맨날 물묻히고 그래서 걱정했는데 요거트가 피부에 좋아서인지 완전 아무 이상없어요! 역시 요거트가 진리. 전 요거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요새 완전 중독 ㄷㄷㄷ
체리 농장. 요즘 흉년이고 체력 딸리고 키 딸리면 본전도 못뽑는대요. 나중에 호주가서 챙 넓은 모자 쓰고 사과나 딸까 생각중. 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체리 농장 상상하면서 초콜릿 근육의 유러피안과 밤에 모닥불에 마시멜로 구워먹고 막 이러는 것 상상했는데, 아쉽죠 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