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외에는>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죽음 이외에는 머독 미스터리 1
모린 제닝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피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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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주 오래 전에 TV에서 본 <셜록 홈즈의 눈물>이라는 영화가 여전히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 전반에 걸친 어둡고 음울하고 엽기적인 정서 때문이다. (검색 해보니 비디오로 출시된 제목은 <살인 지령>이다)
매음굴에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셜록 홈즈가 사건을 쫓는데 단순한 치정 살인인가 했던 사건은, 점차 사건의 중심에 부패하고 잔혹한 권력이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셜록 홈즈의 눈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사건 전체를 파악한 셜록 홈즈가 분노하는 장면이었는데, 부패한 권력이 벌이는 그들만의 잔치에 사회의 가장 최하층이라고 할 수 있는 매춘부들이 희생된 것에 대한 분노였다. 여기엔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드러났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성역에 대한 분노도 포함된다.
소위 말하는 셜록키언은 아니지만 '셜록 홈즈'를 읽은 이래 나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셜록 홈즈가 어둡고 피폐한 탐정 소설이었던가 의심했던 것 같다. 실제로 어려서 읽은 셜록홈즈는 사건의 미스테리를 푸는 탐정의 활약에 시선을 빼앗겼다면, 최근 다시 읽은 셜록 홈즈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둘러싼 군상들의 모습과 당시 사회의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섬나라는 대륙과 달리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육로가 끊어지는 데서 오는 폐쇄성과 고립성 때문인지 유독 엽기적인 사건이 많은 듯 느껴진다. 모린 제닝스의 추리소설『죽음 이외에는』의 배경은 캐나다지만 영국 태생인 로즈 부인의 청교도적인 분위기나 눈이 펑펑 내리는 얼어 죽을 듯 차가운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으로 인해 안개 자욱한 영국의 음울한 정서가 연상된다. 여기에 더해 추운 겨울 밤 나체로 얼어 죽은 채 발견된 어린 소녀의 신분과 종교로 인해 시작부터 편견과의 힘겨루기를 하는 머독 형사의 모습 역시 우울하게 다가온다. 
지금이야 인터넷의 보급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온갖 엽기적인 사건 사고들을 접하면서 '엽기'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만도 하지만 여전히 청교도적 정서의 영향을 받았던 19~20세기 초반의 유럽은 어땠을까. 아마도 어리고 예쁜 하녀가 추운 겨울 거리에서 얼어 죽은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 큰 파문을 일으켰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것도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고 사체에서 마약 성분이 발견되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범죄는 보통 생계에서 비롯된다. 먹고 살려고, 죽지 않으려고 벌이는 생계형 범죄가 대부분이다. 반면 가진 사람들의 범죄는 대개 그들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불행은, 가진 사람들의 탐욕이 불러 들인 비극에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자신의 탐욕을 다스리지 못해 벌어지는 (소위)'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범죄야말로 엽기적인 것이 아닐런지. '일어나지 않아도 됐을'과 '일어날 수 밖에 없었을'의 간극은 뚜렷한데, 전자(가진자)는 개인의 책임이고 후자(가지지 못한 자)는 사회의 책임인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셜록 홈즈의 눈물>에 비하면 (대체로) 권선징악이라는 결론에 이르는『죽음 이외에는』는 그나마 희망적이다. 
'머독 시리즈'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모린 제닝스의 탐정 추리소설이 TV시리즈로도 제작, 방영되었다니 언제 기회가 있으면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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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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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성장소설'이라는 타이틀만 붙이고 말기에는 책 전체에 걸쳐 밑줄을 긋고 싶게끔 만드는 곡진하게 다가오는 문장과 표현들이 참 많다.
처음 보는 작가의 소설을 대하는 기분은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이랄까, 그랬는데 막상 페이지 수가 늘어갈수록 이 작가를 향한 호감이 깊어지고 종내에는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슬람 정육점』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인상을 풍기는 이 소설은 최근 몇 년 새 부쩍 흔해진 새로운 표현인 '다문화'와 (유사 형태의)대안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에 대해 부연하면 무슬림인 하산이 정육점을 하고 돼지고기를 직접 손질해서 판다는 내용은 그 자체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데 공존, 공생, 화합을 말하고자 하는 상징인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화자인 '나'가 몇 살인지 혹은 순수 한국인인지조차 알 수 없는 채로 끝을 맺는 소설은 몇 곳 고아원을 전전하다 하산을 따라 서울 어딘가 높은 지대의 동네로 오게 된 '나'의 시선을 통해 '안네의 일기'를 '안내양의 일기'로 잘못 읽었다는 안나 아줌마, 전쟁으로 입은 상처와 공포를 피해 또 다른 전쟁(한국전쟁)으로 도피한 야모스, 잃어버린 기억을 타인의 기록으로 채운 대머리,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말더듬이 유정, 말 그대로 '맹랑'한 맹랑한 녀석 등 소외된 이들, 비주류로 낙인찍힌 이들의 일상과 내면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벙어리 신부님 일화였다. 전체 분량에 비하면 아주 짧은 얘기였지만 울림이 꽤 크고 깊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흉터'와 '그림자'를 들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흉터에 대한 비밀은 끝내 비밀로 남지만 뭐 어떠랴 싶기도 하고. 안나 아줌마 말대로 모르는 게 약이고, 모든 것을 꼭 다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이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이들 가운데 백 년 뒤에도 이곳에서 숨 쉴 자는 단 한 명도 없단다. 우리 모두 이 아름다운 하늘과 땅과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이곳을 떠나야 하는 존재들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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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 대역본> 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영한대역 (영문판 + 한글판 + MP3 CD)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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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는 자연이고, 가장 좋은 교육자 역시 자연이라고 믿고 있다.
내가 '나 어렸을 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배경은 아무래도 어린 시절 상당한 기간을 시골 외가에서 보낸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나를 주체로, 세상을 객체로 인식하기 시작할 즈음인 여섯, 일곱 살의 대부분을 시골 외가에서 보낸 것은 내 정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시골에서 보냈던 유년의 기억은 지금도 뚜렷한데 이를테면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개구리를 잡으러 논두렁을 헤집고 다니던 거나, 어느 여름 장맛비에 내 키만큼 범람한 강물에 떠내려가던 돼지가 마냥 신기하기만 하던 것, 상여를 쫓아 길게 이어지던 행렬이 어린 마음에도 아련했던 것 등등 내 유년은 도시의 아이들은 경험하기 힘든 재미있고 특이한 추억들로 가득하다. 여담이지만 그중에는 닭과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있는데, 그러니까 국내 영화 <귀신이 산다>에서 배우 차승원이 닭을 무서워하는 장면을 보면서 진심으로 공감했던 나는 말하자면 '닭 포비아(phobia)'다, 사연은 이러하다. 집 앞 개울가에 빨래를 하러 가기 전 이모가 막 쪄낸 고구마를 내 손에 쥐어주었는데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에 내 고구마가 절반이나 사라지고 말았다. 도둑의 정체는 닭이었다. 뻔뻔한 닭은 내 고구마를 절반이나 먹어 치우고도 도망가기는커녕 정체불명의 머리통을 전후좌우로 까딱이면서 나를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는데 당시 여섯 살이었던 내가 다음에 했던 행동은 뻔하다. 쪼그만 몸 어디에 그런 소리가 숨어 있었는지 나는 목청껏 울어 젖혔고 근처 개울가에 빨래를 하던 이모는 얼굴이 새파래져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원제가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이고 번역 제목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인 이 소설의 화자는 '작은 나무'(Little Tree)다. 부모님을 갓 여의고 조부를 따라 산으로 온 다섯 살 소년 '작은 나무'의 성장소설인 이 소설이 특별해지는 지점은 '산을 내려오다'(p.526)와 이어지는 '집으로 돌아오다'(p.618) 챕터이다. 공권력의 판단에 의해 작은 나무가 조부모와 산을 떠나 고아원으로 옮겨 가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보여줌으로써 흔히 제도권과 주류로 분류되는 사회의 가치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만 보이는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또렷하게 변별할 수 있게 한다.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공생하는 것을 배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묘사(p.193)를 통해 자연의 생장과 인간의 생장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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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종료] 6기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마리우스 세라 지음 / 푸른숲

나 또한 그 틀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도 타인의 생로병사를 보는 것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는 것처럼 언제나 불편하다. 그래서 내겐 영상을 포함 소설이든 에세이든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무조건 피하고 안 보는 버릇이 있는데 아무래도 '강 건너 불구경'식이 될 수밖에 없는, 타인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행위에 생리적인 거부감이 든다.
슬픔은 슬픔이고, 비극은 비극이다. 남의 고통을 함부로 얘기해서도 안 되며, 함부로 들여다봐서도 안 된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고통이 한낱 이야깃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평소 생각하는바, 사정이 이렇고 보니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를 받았을 때,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면역이 약한 나는 좀 과장하면 아찔했다. 그러나 과정은 이렇듯 좀 거칠었으나 중요한 결론은 읽기를 잘 했다는 것.
책을 읽으면서 서술자와 서술자의 태도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되새겼는데 유유의 아빠이면서 책의 서술자이기도 한 저자의 담담한 서술이 특히 인상적이다. '다를 뿐 틀리지 않다'는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들 중 하나인데, 인생을 설계하면서 꿈에서조차 계획에 넣지 않았을 '날벼락'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유유 가족의 낙관성이 삶의 긍정적인 측면을 확인하게 한다.
 


-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생후 5주인 자신의 아이에게서 선천성 뇌질환을 발견했을 때, "왜 하필 내 아이에게(우리에게)"는 숱한 상처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아이가 내 아이, 내가 이 아이의 부모"가 된다. 그리고 이즈음에 이르면 부모는 이미 강해져 있다.

 

 

경계는 우리의 의식과 생활, 우리가 누리는 물질세계, 정신세계 어디에도 존재한다. 다만 그것의 속성이 워낙 모호하고 희미하여 미처 못 느낄 뿐, 실제로 우리는 끊임없이 경계의 간섭을 받으면서 산다. 그러므로 경계의 바깥과 안을 가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현세자의 독살설에 흥미를 가지고 책을 펼친다면 아마 실망할지도 모를 소설 『소현』은 소현세자의 죽음을 다루고 있지 않다. 대신 세자가 인질의 신분으로 보냈던 심양에서의 9년, 그 중에서도 마지막 2년에 집중한다. 또한 작가의 시선이 향하는 것도 사건이 아니라 인물이다. 그리하여 소현세자와 소현세자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의 내밀한 독백은 이 소설을 역사의 기록이 아닌 개인의 기록으로 읽히게 한다.
 

삶을 긍정하고 낙관하는 힘은 누구도, 무엇도 아닌 바로 '나(자신)'에게서 나온다. 가끔, 인간의 고민은 너무 많이 가진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생을 채워야 할 밑 빠진 독이 아니라 비워야 할 화수분으로 응시한다면 삶이 한층 가볍고 유쾌해질 텐데... 

 

중국문학과 일본문학의 차이는 뚜렷하다. 중국문학은 확실히 대륙의 특징인 확장성이 느껴지고 일본문학은 섬 특유의 오밀조밀 섬세한 느낌이 든다.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어느 제왕(이었던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쑤퉁의 『나, 제왕의 생애』가 선잠에 들어 꾼 꿈이라면 『딩씨 마을의 꿈』은 깜깜한 새벽에 꾸는 악몽 같다고 할까.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아이가 들려주는 매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 마을의 비극이 몽환적이고 기괴한 한편 현실적으로 다가와 더욱 섬뜩하다.

 

-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전기도 안 들어오는 깊은 오지에 홀로 사시는 스님을 뵌 적이 있어요. 그때 스님께서 붓글씨로 담락(湛樂)이라고 쓰셨는데 평화롭고 담담하게 즐긴다는 이 뜻이 가슴에 와 닿았죠. 스님처럼 살 수는 없더라도 인생을 이런 마음으로 살면 좋겠구나 하는 작은 깨침을 얻은 자리였어요. 얼마 전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법륜 스님 법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스님께서 두려움에는 실체가 없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실체도 없는 두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겁먹고 사는 거라고." - p.033,『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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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0-07-10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인삼 밭에 그 아낙네님. 마지막 글 잘 읽었습니다. 조곤조곤 야무지게 마지막 설명 써주신 거 보면서, 제가 신간 평가단 분들은 하여간 참 탁월하게 뽑았다는 자만심이 몰려옵니다. (응?) 고맙습니다.

인삼밭에그아낙네 2010-07-12 15:59   좋아요 0 | URL
늘 좋은 책을 보내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장마 전이라 그런지 습도도 높고 엄청 덥습니다. 올 여름도 시원하게 나시길 바랍니다~ ^^
 
<젊은 날의 깨달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젊은 날의 깨달음 -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
혜민 (慧敏)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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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나무가 쓰러졌는데 주변에 나무도 그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으면, 소리가 날까?"(p.27,『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
나 어릴 적, 우리 아버지는 한동안 교회에 열심히 나가셨는데 그러다 또 한동안은 절에 다니셨다. 지금은 어느 한 종교에 적을 두지 않고 다만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이유로 불교에 (아주)조금 더 친밀감을 느끼시는 듯 한데, 제사가 이유라면 아버지의 종교는 '유교'여야 되지 않을까 싶지만 어쨌든 매번 종교를 향한 아버지의 방향 전환은 매끄러웠다. 반면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 엄마는 종교 없이 이십대를 보내고, 우리를 낳은 뒤로 (개신)교회에 열심히 나가시더니 지금은 카톨릭 교회에서 영세를 받고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서 미사를 올리는 카톨릭교인이시다. 부모님의 종교 역사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말하자면 종교에 관한한 비교적 유연하셨던 부모님 덕에 나 역시 종교간 경계에 비교적 자유로운 잣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예로 내 mp3 목록에는 CCM과 반야심경, 천수경 등이 사이좋게 함께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던 중에 특히 눈에 띄었던 구절이 다음 구절이다.

(…전략)교리에만 집착하면 종교 간의 건널 수 없는 차이가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실제 실천 수행으로 들어가면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을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발표했다. - p. 119

언제부터인가 종교의 의미와 역할보다 종교인의 의미와 역할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내 종교는 정교요, 네 종교는 이단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손가락질 하는 양태를 심심찮게 본다. 사회가 분화하고 다변화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의 한 단면이려니 이해하면서도 가끔 본질은 어디다 내팽개치고 껍데기가 설치는 세상이 되었나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혜민 스님은 이번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의 약력을 먼저 읽고 책을 펼치면서 한 때 내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 그 의미는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물론 저자가 아닌 내가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나 책을 읽어가는 동안 다만 한 가지, 자신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절대적인 무엇. 그것이 종교를 통한 구원이든, 절대자에게 복종하는 믿음이든, 자신의 내면을 향한 정진이든... 세상의 복잡한 욕심과 번뇌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나려는 한 출가인의 기꺼운 그 걸음이 부러웠던 것만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마음 아파하는 마음」이후는 아포리즘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 책 전반이 그러하다. 책을 읽는 내내 옆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는 편안한 기분이 든다. 
百人百色이라고 했다. 행복의 추구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그 방법적인 면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러니 누구의 선택, 누구의 방법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자리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아닐까.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도움을 줄 때 우리들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셨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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