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라디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
-
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마술 라디오>는 프롤로그 때문에 첫 진입이 꽤 어려웠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일단, 무엇보다, 로맹 가리의 일곱 번째 오렌지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 싶은 우화적 감동 혹은 교훈이 좀처럼 와닿지가 않는다. 도전, 비약... 그런 얘기인 건 알겠는데 T.P.O가 맞지 않는달까, 돌잔치에 트로트 가수가 축하공연을 하는 듯 내용과 주제가 겉도는 것이 도통 생뚱맞다.
백 마디 산만한 말보다 한 마디 적절한 비유가 주는 촌철살인의 감동을 새삼 언급할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분명한 건 뜬금없는 프롤로그 때문에 14개의 마술라디오를 놓친다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라는 사실.
다행히 프롤로그라는 가시밭을 잘 빠져 나온다면 14개의 마술 같은 얘기들을 만날 수 있다.
내용과 상관 없이 눈길을 끌기 위한 관상용에 불과한 제목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의 제목은 주제 의식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데 이 책의 제목 <마술 라디오> 역시 제 역할을 십분 해낸다. 즉슨, 책을 읽다 보면 이 책의 제목 '마술', '라디오'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아울러 이야기 전달자로서 작가가 선택한 변사적 화법 역시도.
화자이자 필자인 작가의 입을 빌어 등장하는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인물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재미를 떠나 시쳇말로 내가 장자의 꿈을 꾸는가, 나비의 꿈을 꾸는가 싶게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몽환적인데, 마치 참말과 거짓말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미로를 돌아다니는 기분이 든다.
이는 실재하는 배경, 직업, 생생한 주변 묘사에도 불구하고 막상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얘기는 마치 허구처럼 느껴지기 때문인데 이런 위화감의 가장 큰 이유는 '어법'에 있다. 필자의 귀를 통해 직접화법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언어가 지나치게 수사적이고, 문학적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중남미 문학의 장르적 특징인데 대표적인 작가가 이 책의 에필로그에도 등장하는 <백년동안의 고독>의 마르께스이다. 하지만 14개의 꼭지를 달고 있는 본문을 연이어 읽다 보면 서술적 특징 탓에 마르께스보다 보르헤스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하니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것도 같은 얘기들, 하지만 초등 2,3학년 쯤 되는 아이들이 우리 집에... 우리 아빠는... 하는 듯 어딘가 어수룩한 얘기들이 보르헤스식 우아한 '뻥'의 기시감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러니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사실은 꿈속에서 들은 얘기야~' 고백한다고 해서 배신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스티븐 킹이 일찌기 말하지 않았나. 책은, 일단, 무조건, 재미있고 봐야 한다고. 이 책은 재미있다. 그것도 '문학적으로' 재미있다.
일례로 '빠비용의 아버지', '주먹맨'은 보편적인 인류애를 건드리는 감동을, '두 갈래 길', '신은 나에게 그녀 대신~'은 해방 이후 근대소설을 읽는 것 같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준다. 한편 작가는 쌍용노조, 밀양 송전탑 같은 현실적인 에피소드도 놓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달까 이 에피소드조차 문학적이어서 석양을 받아 오색으로 반짝이는 수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듯 밑줄 긋고 싶은 표현들이 무수하다.
결론은, 에세이보다는 소설로 읽히는 책이고 소설로 읽을 때 더욱 글맛이 생생한 책이다.
명심할 건 이 책이 르포르타쥬가 아니라는 점이다. 왜 이 얘기를 하는가 하니, 바로 내가 그런 착각을 지니고 이 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나니 색색의 포스트잇이 가득이다. 정혜윤의 다음 책은 소설로 만나보고 싶은 기대가 생기는 한 권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