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속 과거는 '4일 6시간' 동안이다. 이를 크게 나누어 보면,

A: 해군 페리 폭발, 더그 등장
B: 더그, 백설공주팀에 합류. 과거로 쪽지를 보냄으로써 과거에 첫 개입
C: 더그, ① 여자를 살리고 ② 폭발을 막기 위해 과거로 감
D: 더그, 클레어를 살려내고 폭발도 막음(그 와중에 범인 사망)
E: 더그, 사망. 클레어, 그녀 시점(죽은 더그에겐 과거)의 더그
만남 

 

A → B : 현재, 정상적인 시간 흐름
C → D : 과거 - 현재, 정상적인 시간 흐름
D → E : 새로운 시간 발생

이야기는 잘 흘러가다가 D의 막바지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클레어를 살려내는 데까지는 더그의 현재 기억대로 진행되는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이었으나 D에서 더그가 여자를 살려낸 후 더그가 오기 전인 A,B의 상황과 다른 시간의 흐름이 발생한 것.
영화속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원래의 강줄기에 미래(혹은 현재)가 과거에 개입함으로서 또다른 강줄기, 즉 다른 차원의 평행우주가 발생한 것인데 영화의 스토리상 리얼리티에 근접하려면 더그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죽고 페리는 폭발되는 것이 옳다.

과거가 (미래인)현재가 되고, 현재의 개입은 이미 일어난 과거에 현재의 성격을 보태고, 그 과거는 다시 현재가 되고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 정석인데, 결국 더그와 클레어를 이어주려는 무리한 해피엔딩 때문에 영화 끄트머리에서 완성도가 떨어진 것이 아쉽다.
얘기의 분기점은 과거로 간 더그가 클레어의 욕실에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고 각성하던 장면이다. 여기까지는 더그가 과거로 가기 전까지 현재에서 진행되던 것과 상황이 동일하다. 추측이지만 해피엔딩을 위해 감독이 이 지점에서 이야기속 시간을 꺾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 역행을 다룬 영화중 아직 제대로 된 영화는 못 본 것 같다. 앞으로도 힘들지 않을까. 인간의 상상력이 과학을 앞지르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시간 역행은 거의 실현성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과거로 간다는 것 자체가 현재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 

미치오 가쿠의『평행우주』 는 시간 역행을 다루는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시간역행을 다룬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은데 그중 재미있게 본 건 테리 길리엄의《12몽키즈(Twelve Monke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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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여자가 등장하는 얘기를 즐기는 이면에는 혹시 '금기'를 즐기는 성향이 있는 걸까 가끔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남장여자'는 그 자체로 재미있는 요소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엔 필연적으로 남장여인에게 반하는 '진짜' 남자가 등장하기 때문. 보는 입장에서야 '쟨 사실 여자거든' 알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만, 실상 가상이 현실이 되는 화면 저 쪽은 한 마디로 동성애인 것이다.
《She is the man》은 스포츠를 좋아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소녀가 남장을 하고 남자들 세계로 들어간다는 점에서 나카조 히사야의 만화『아름다운 그대에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아름다운...』은 높이뛰기 대회에서 우연히 사노의 경기를 보고 사노에게 반한 미즈키가 남장을 하고 사노의 학교로 전학오면서 시작되는 얘기다. 이 만화가 주는 즐거움은, 미즈키가 사노를 좋아하는 이유에 있다. 미즈키의 사노를 향한 감정은 이성을 향한 가슴앓이보다는 우상을 바라보는 그것에 더 근접해 있다. 그리하여 미즈키는 사노를 다시 필드에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사노의 개인적인 아픔에 다가간다. 물론 미즈키는 어느덧 사노를 남자로 의식하게 되지만 이 과정이 알콩달콩 재미있다. 정말 바람직한 10대 소년 소녀들이 아닌가. 예쁜 우정과 순수한 첫사랑의 설렘이 어우러진 그들의 수줍음은 귀엽기 그지 없다. 미즈키가 이렇다보니 그녀의 주변 인물들도 모두 전염되듯 깨물어주고 싶은 귀여움을 발휘한다. 하물며 엑스트라처럼 종종 등장하는 개까지도 귀엽다.
『She is tha man』도 마찬가지. 오빠 세바스찬과 이란성 쌍둥이인 올리비아는 축구를 사랑하는 소녀다. 하지만 학교 축구부에선 올리비아를 여자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실망한 올리비아는 우연한 기회에 남장을 하고 세바스찬대신 그의 학교에 전학생 신분으로 간다.
이 영화가 남장여인의 좌충우돌에 머물렀다면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영리하게도 올리비아가 애초에 남장결심을 하게 된 이유인 '축구에 대한 열정'을 놓치지 않는다. 틴에이저 영화는 10대이기 때문에, 10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상큼하고 발랄한 장점을 가진 반면 자칫 가볍다 못해 유치하고 어정쩡한 코믹 만화가 돼버리기 일쑤인데『She is the man』은 이런 허점을 잘 피해간다. 한 마디로 영리한 영화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
1. 올리비아를 맡은 여배우의 남장 연기에 주목.
2. 운동장에서 뛸 때, 그녀가 보여주는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은 관대하게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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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늦게 뜬 감은 있지만 주진모 이 배우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렇게 잘 생겨도 되는가, 다. 풍부한 표정을 담은 눈동자하며 저음의 목소리하며. 예전 일이지만 집 근처 모델하우스의 벽면에 걸려있는 이 배우의 대형 광고현수막을 볼 때마다 저걸 밤에 몰래 뜯어와, 말어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김아중, 주진모 주연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원작은 스즈키 유미코의 『미녀는 괴로워』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베스트는 『미녀 망가지다』를 꼽는다. 한때 내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의 최고점이 어디인가 시험하던 만화이기도 하다. 

 

 

영화로 돌아와서, 김아중의 연기는 생각보다 안정감이 있어서 좋았다. 출산드라도 연기 잘 하고. 주조연이 모두 고르게 제 몫을 해준 것 같다. 역시 흥행하는 영화는 이유가 있다. 물론 마지막 콘서트 장면은 좀 아니올시다였지만. (그러면서 그 장면에서 울고있는 건 또 뭐란 말인가;;)
결론적으로, 한나는 전신성형을 한 이후 사랑도 일도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김아중의 연기에 표를 주고 싶은 이유는, 그것이 계산된 연기였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제니가 된 이후의 한나가 그다지 예뻐보이지 않아서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지 못 하는 사람은 어떻게 생겼든, 뭘 하든 매력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이 시대를 사는 80%의 평범한 여성들에게 위안을 주는 미덕은 마지막 순간, 제니가 자신이 가진 본래의 정체성(=한나)을 되찾고자 용기를 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형식은 때로 그 틀안에 내용을 가두고 내용을 지배하지만 내용, 즉 본질 그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정체성인 것이다.

어느 비오는 밤,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한 두 아가씨가 차례로 찾아와 성문을 두드린다. 두 아가씨 중 한 사람은 공주. 하지만 실례가 될까 물어보지 못하고 고민하던 성주는 꾀를 낸다. 이튿날, "잘 잤느냐"고 묻는 성주에게 한 아가씨는 "편안하게 잘 잤다"고 대꾸하고 다른 한 아가씨는 "뭔가가 등을 찔러대서 잠자리가 불편했다"고 투덜거린다. 성주가 매트리스 아래에 한 알의 콩을 넣어두었던 것. 성주는 이렇게 해서 공주를 가려낸다. 

기억하고 있는 이 동화는 아마 <그림동화>에서 읽었지 싶다.
본질의 문제보다도 오래된 습관이 체화된데서 오는 습성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원래 다 그런 것이다. 우리는 '인간은 다 똑같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종종 몇 가지 이유로 그것을 잊는다. 본질 혹은 내면을 정확하게 읽을 줄 아는 것은 그래서 인생을 사는 중요한 지혜인 것.
  

존 업다이크의 『브라질』은 겉모습을 바꾸지만 결국 타고난 본성은 바꾸지 못했던 주인공의 비극을 통해 본질과 현상의 괴리를 보여주는 문제적 소설. (국내 도서 이미지가 없어 원서로 대신한다)

 

 

결론은, 와인은 소주잔에 담아도 와인이고, 소주는 와인잔에 담아도 소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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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사극이다.
그러니 대사톤을 가지고 연기력 왈가왈부 입을 비죽일 필요는 없다. 고증을 가지고 눈을 흘길 필요도 없다. 편집이 현대적이고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장면 전환이 빠르다. 기존의 정통 사극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 그러고 보니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가 등장한 지도 꽤 됐구나.
 


사랑을 모르는 불감증 여자, 정빈(김민정)
사랑에 관심없는 남자, 윤서(한석규)

이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된다.

사랑밖에 난 몰라, 정빈
사랑이냐 (예술적)야망이냐, 윤서


김윤서.
이 남자 진짜 재미있다. 신중하기가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다. 하물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사랑인가 아닌가, 영화의 막바지까지 고민한다. 그것과 별개로 새로 발견한 즐거움, '음란소설 창작'을 위해선 체면도 뭐도 다 버렸다. 한 마디로  음란물 집필이라는 신선 놀음에 머리 새는 줄을 모른다.  
뒤늦게 발견한 도둑질에 대한 김윤서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장안의 음란소설 분야에서 1위를 탈환하기 위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밤낮 고심하고 그 아이디어, 즉 자신의 글에 삽화를 넣기 위해 집안의 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숭쟁이 의금부도사 광헌까지 꼬드겨낸다.
(꼬는 놈이나, 꼬이는 놈이나... 정말 웃기는 놈들)

알쏭달쏭한 문제적 인간, 김윤서.
소심한가 하면 대범하고, 나약한가 하면 제법 절개가 있는 듯 보이고, 지루한 사람인가 싶으면 하고 싶은 건 목숨을 걸고라도 해야 하는 그는 사실은 심심한 걸 제일 무서워하는 인간이 아닐까. 어쩌면 정쟁도 집안의 복수도 야심도 모두 덧없다 생각하는, '무위(無爲)론자'처럼 보이던 윤서에게 음란소설 쓰기는 재미있는 세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일지도 모른다. 아마 추월색이라는 '익명성'이 그를 소설속에서나마 자유분방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 지도. 문제는 우연히 발견한 신천지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막상 현실 세계에서 정빈과의 사이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화학적 반응의 정체가 뭔지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자, 약자"

자신이 아닌 딴 놈과 정분 난 애첩 정빈에게 임금이 하는 말이다. 윤서를 앞에 두고 임금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정빈 너도 약자라고 말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윤서가 진심을 털어놓는데 뭐라고 하는고 하니 요약하면, "정빈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 그저 본능인지 알 수가 없어 고민했다"
란다.

정확한 시대 배경은 없으나 의복의 모양으로 보아 대충 조선시대 어디쯤 될 그 시대에, 유교 사상의 지배 아래에 있는 사대부 장손 윤서에겐 육체와 정신을 결부시킨다는 것이 힘들었을 법도 하다.
영화 중에, 장안의 화제가 된 윤서의 역작 '흑곡비사'(너무 웃기지 않은가?)의 결말에 대한 얘기가 잠깐 등장하는데 그에 대한 윤서의 생각이 흥미롭다. 출판업자는 윤서에게 해피엔딩이 당연하다고 조르지만 윤서는 결말이 비극이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쯤 되고 보면 남녀의 정사를 바라보는 윤서의 시각이 '그저 유흥'만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남녀 이야기에서 비극이라 함은 결국 죽음이 갈라놓든, 어느 한쪽의 마음이 바뀌든 어쨌든 '이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바로 그 이별이 아프기 때문에 비극인 것이다. 헤어진 후 '아, 후련하다. 아, 행복해' 한다면 그것이 비극인가? 희극이고 해피엔딩이지.
그런 이유로 육체적 정사가 전부인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저 즐기고 헤어지면 그뿐인 것을, 작가 김윤서가 '비극적 결말'에 집착하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보여진다. 즉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인 동시에 정빈에 대한 윤서의 감정이 음란한 본능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음란물을 쓰는 동안 자신의 육체적 본능에 충실해지면서 점차 그동안 억눌려있던 감정적 본능에도 정직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짐작해 볼 수 있다.   

푸코에 의하면 광기(狂氣)는 시대적, 사회적 억압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소수 약자들의 본능의 정직한 표출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서는 충분히 시대를 앞서간 광인(狂人)적 인물이라고 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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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화》는 아무래도 앞서 개봉했던 장쯔이 주연의《야연》과 비교가 불가피한데,《야연》이 색채의 화려함이 주는 영상미의 극치를 보여줬다면《황후화》는 방대한 공간의 스케일이 스크린을 장악하는 느낌이 확연하다. 
예전에 북경 여행을 갔을 때 대륙의 웅장함이라고 할까,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꼈었는데 이 영화는 그 때 느꼈던 그 웅장한 분위기가 제대로 전달된다.  

무엇보다 장이모우의 예전 영화들에 비해 이번 영화는 엄청난 물량공세를 투입한 기색이 역력하다. 가끔 자본에 감독의 역량이 밀리는 영화를 보는데 이 영화는 감독이 영화에 투입된 자본을 십분 잘 활용했구나, 생각이 든다. 앞선《영웅》의 라스트신에서 보여주었던 내공이 이번 영화에서 절정에 달했다는 생각도 들고. 결론은《황후화》는 극장에서 넓은 스크린으로 봐야 할 영화다. 웅장함도 웅장함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중국 황실 의식주의 섬세한 디테일은 작은 화면으로 축소되면 아무래도 스크린이 주는 것보다 감탄이 확 줄어든다.
화려한 볼거리에 비하면 내용은 평이하다. 권력이 있고, 그 권력의 그늘이 있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가 있고 그 권력을 꺾으려는 자가 있다. 남녀의 정과 부자(父子)의 정은 권력 앞에서 물처럼 연기처럼 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덧없이 흩어진다. 엇나간 애정의 비극이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색채와 비감이 잘 어우러진 느낌.   

'황실비극'까지는 아니지만 황실을 배경으로 권력이란 한바탕 꿈을 꾼 듯 몽롱하고 덧없는 인생의 그림자임을 보여주는 쑤퉁의『나, 제왕의 생애』는 놓치면 아까운 소설이다.

 

  

 

장이모우 감독은 사회주의 체제하의 중화권의 감독치고는 ‘치정’에 남다른 철학이 있는 듯 보인다.《영웅》의 연장선에서 보면, 정점에 선 권력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소적인 것 같은데《집으로 가는 길》《홍등》《국두》등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남녀 간의 사랑을 보는 시각은 상당히 로맨틱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흥미로운 인물이다. 

《국두》의 원작소설「푸시푸시」수록. 

《홍등》의 원작 소설「처첩성군」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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