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돌봐줘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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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연히 맞은편 아파트에 살게 된 두 남자가 서로를 변태 관음증 환자로 오해한다. 그런 오해의 발단은 두 사람이 아파트 창문으로 다른 사람의 창문 안의 일을 너무 열심히 관찰하는 것이었다. 상대가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 두 남자는 지저분한 방식으로 상대방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 입주자의 개가 책 상자에 깔려 압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죽은 개를 숨긴 비자발적인 ‘범인’은 개 주인이 필사적으로 개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낀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 주인이 거꾸로 매달린 채 죽은 채로 발견된다. 숨겨두었던 죽은 개를 손에 꼭 쥐고. 게다가 사건을 수사하러 왔다는 형사는 알고 보니 가짜였다.

<개를 돌봐줘>는 각 입주자들의 시점에서 본 아파트에서의 삶을 통해 기묘한 연쇄살인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양한 인물들이 쓴 일기와 편지, 이메일, 전단지, 음성 메시지를 나열하면서 사건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뒤에 숨은 흑막을 알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름 반전이 있긴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철저히 이성에 입각한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감성에 기반한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나는 돈 주고 사서 봤지만 친구들한테는 내 책을 빌려줘서 읽히고 싶은; 책이다(칭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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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음, 황보석 옮김 / 문이당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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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소설에는 파라반이라는 천민이 나옵니다. 계급사회인 인도에서 파라반은 야자수 수액을 채취하는 천민인데요. 계급제도인 카스트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천민 계급은 파라반, 펠리야, 풀라야 이렇게 하는 일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고, 주요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벨루타는 야자수 수액을 채취하는 파라반이었던 거죠. 파라반들은 신분이 높은 힌두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이 만지는 어떤 것에도 손을 대면 안됩니다. 우산을 써도 안됩니다. 말을 할 때는 자신의 입김이 상대에게 향하지 않게 입을 가려야 합니다. 이런 파라반인 벨루타가 신분이 높은 아무와 사랑에 빠지는 게 화근이 됩니다. 벨루타는 자신이 들어서려는 터널의 유일한 출구가 자신을 말살시키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못합니다. 그 사회 법칙을 어긴 죄로 그는 끔찍한 댓가를 치루게 됩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계급이 중요하지 않고, 세상의 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사회는 그런 모습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아룬다티 로이는 <작은 것들의 신>에서 그런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순차적으로 들려주지 않는데요. 그래서 무엇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를 알기 위해 가족의 과거로, 더 깊고 오랜 과거로 이야기가 파고듭니다. 소피 몰이라는 소녀의 장례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 사회 법칙을 깬 남녀가, 특히 신분이 낮았던 남자가 강간죄를 뒤집어쓰고 개처럼 두들겨맞고 누명을 벗지 못한 채 죽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배권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성이 냉철하게 폭력으로 증명되는 거죠.
<작은 것들의 신>에는 시간의 축이 두 개 존재합니다. 이란성 쌍둥이 중 여자아이였던 라헬이 고향 아예메넴으로 돌아오는 일을 기점으로 하는 시간의 축과 소피 몰이라는 소녀의 죽음을 기점으로 한 과거의 축이 있습니다. 죽던 당시 아홉 살이었던 소피 몰은 이란성 쌍둥이 남매인 에스타와 라헬의 외사촌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잠깐 놀러 와 있던 소녀였죠. 그런데 이 죽음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발생했는지 약간 모호한 상태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과거로 이야기가 돌아갈 때면 꼭 소피 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소피 몰이 죽은 직후, 소피 몰이 살아 있던 당시의 모습들이 하나씩 등장하다가 왜,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에까지 이르죠. 소피 몰이라는 소녀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기보다는 소피 몰의 죽음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과거에 의미심장한 시간의 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소피 몰은 과거에 일어났던 많은 사건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사건이었고,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할 때면 소피 몰을 기점으로 시간을 끌어다 대게 됩니다.
이란성 쌍둥이인 라헬과 에스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 초반에는 대체 어쩌자는 건지 알기가 좀 힘듭니다. 전혀 귀에 익지 않은 인명에 지명에 직업이름에... 게다가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지가 불분명하거든요. 그런데 뒤로 가면서 라헬과 에스타의 어머니인 아무의 이야기 쪽으로 비중이 서서히 높아지더니 후반부에 이르면 아무와 벨루타의 이야기가 폭발적으로 쏟아집니다. <작은 것들의 신>의 매력은, 이 책이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조짐을 독자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자잘한 암시와 불길한 그림자가 점점 어두워지는 셈인데요. 그러다 후반부에서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건의 진실이 한꺼번에 쏟아집니다. 이 후반부의 주인공이 바로 아무와 벨루타입니다. 신분차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졌는데, 도저히 해피엔딩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죠. 게다가 이미 책 앞부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암시를 읽은 뒤라면 더더욱 불안해지죠.
이 책에서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게 바로 아무와 벨루타의 사랑입니다. 계급을 뛰어넘으려는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이 하필이면 다른 계급이었던 셈입니다.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벨루타는 아무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쓰고 개처럼 맞습니다. 그리고 경찰서로 끌려가죠. 경찰 관계자는 사실 강간은 없었다는 사실을 안 뒤 아무의 가족을 위협합니다. 결국 있지도 않은 벨루타의 혐의는 엄마인 아무를 구하려는 꼬마 에스타의 한마디로 완성되고 맙니다. 과연 그 사랑이 벨루타가 속했던 사회로부터 배신당하고 죽기까지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와 벨루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벨루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일자리, 가족, 목숨까지 잃게 될 거라는 사실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연인이죠. 발각되는 날로 모든 게 끝이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작은 것들에만 매달립니다. 개미에게 엉덩이를 물린 자국이나, 뒤집혀서 제 힘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풍뎅이나, 거미줄의 일부, 먼지, 썩은 잎사귀를 보면서 웃을 수 있을 뿐입니다. 우연히 잡은 거미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투영해 거미가 하루를 더 살아남으면 기뻐하는 식이죠. 자신들의 믿음을 나약하고 작은 것에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벨루타는 그런 작은 것들의 신이 됩니다. 두 사람이 헤어질 때 했던 유일한 약속은 단 한가지입니다. “내일”이라는 한마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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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딸들
D. H. 로렌스 지음, 백낙청 옮김 / 창비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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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D.H. 로렌스가 쓴 단편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는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시선을 외면하는 데 선수인 여자의 기묘한 로맨스를 보여준다. 이 단편은 <목사의 딸들>이라는 소설집 맨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작가 이름과 단편 제목이 벌써 완전 선정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야기는 그렇게 어두침침하지는 않다. 어두운 침실이 사건의 발단이기는 하지만.

로클리 집안에는 세 식구가 살고 있다. 나이들고 육체가 허약해진 아버지, 노처녀인 마틸다와 에미 자매가 바로 그들이다. 마틸다는 분별력있는 우아한 여인이었고, 에미는 집안 일을 잘 돌보았다. 자매의 아버지인 테드 로클리는 아들이 없는 인생을 한탄하다가, 에미가 열네살, 마틸다가 열여섯살이었을 때 여섯 살 먹은 헤이드리언이라는 남자애를 양자 삼아 데리고 왔다. 소녀들은 낯선 소년을 반기지 않았고, 자신들을 누나라는 말 대신 사촌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했다. 그러다 열다섯살이 되었을 때 소년은 식민지로 가겠다고, 캐나다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났고, 헤이드리언은 참전해 유럽으로 왔고, 휴전협정이 맺어지자 그는 양아버지와 사촌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스물 한 살의 헤이드리언이 로클리 집안에 돌아와 얼마간 양아버지의 침실을 쓰게 되었다. 헤이드리언은 영국보다 민주적인 캐나다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마틸다는 그 사실이 약간 불만스럽다. 너무 잘난체를 하는 것 같아서다. 게다가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데 양아들이 찾아오다니, 유산 다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유산 문제를 이야기한 날 밤, 마틸다는 아무래도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 방으로 갔다. 침대 위에서 뒤척이는 기색을 느낀 마틸다는 침대 곁으로 다가가 누워 있는 얼굴의 이마 위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오늘밤엔 잠이 안 오시나봐요?” 돌아온 대답. “아니, 자는데요.” 아버지의 침실을 헤이드리언이 쓴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날 밤, 마틸다도 헤이드리언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고백도 아니고 키스도 아니고, 자던 남자 이마에 손 한번 얹은게 뭐가 문제라고. 하지만 그 일 이후로 두 사람은 서로를 예민하게 의식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헤이드리언은 마틸다와 결혼할 생각이 있다고 양아버지에게 말을 한다. 양아버지는 그 제안이 마음에 든 나머지 마틸다가 그와 결혼을 하지 않으면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딸들을 협박한다. 마틸다는 그가 돈 때문에 자기와 결혼하려 한다고 우기지만 헤이드리언은 그저 침착하게 행동할 뿐이다. “돈 때문이 아니라는 걸 마틸다 사촌은 알고 있어요.” 침착하지만 굴하지 않는 저돌적인 태도로, 헤이드리언은 마틸다를 설득한다. “나도 그 일이 실수였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잊어버리지는 않을 거에요. 일단 남자를 깨워놓으면, 자라고 해서 다시 잠을 잘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마틸다는 화를 내며 망측한 말이라고 하지만 헤이드리언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뭐가요?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그리고 헤이드리언은 승리를 거둔다. 마틸다의 태도는 그대로인 듯 하지만 차가움은 미묘하게 가라앉은 채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고전적이다 못해 낡은 옛날 이야기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에는 요즘 드라마에도 통용될 코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10살 연상의 여자를 좋아하는 헤이드리언에게서 <아현동 마님>을 연상할 수 있고, 무관심한 듯 하지만 나이 어린 에미를 두고 마틸다에게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헤이드리언의 태도는 츤데레에 다름아니다. 친딸과 양아들이 결혼하는 식의 가족드라마 역시 낯설지 않고, 딸 부잣집의 괴팍한 아버지 캐릭터도 낯이 익다. 돈 때문에 결혼을 해야 하는 식의 이야기는 또 어떻고.

마틸다의 아버지가 최종적으로 작성한 유언장은 이런 내용이다. 마틸다가 헤이드리언과 결혼하면 옛 유언장, 즉 약간의 물건과 돈을 제외하고 모든 재산을 마틸다와 에미가 상속받는 게 유효하고, 마틸다가 거절하면 사망 후 육개월 후 전 재산이 헤이드리언에게 넘어가게 된다. 헤이드리언은 돈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하는 게 아님을 이보다 더 명징하게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마틸다가 결국 결혼을 승낙한 이유도, 그런 이해득실을 따져 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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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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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시작되기가 무섭게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범인, 피해자를 밝힌다. 2002년 1월 6일, 후쿠오카와 사가현의 경계인 미쓰세 고개에서 나가사키 교외에 사는 젊은 토목공이 후쿠오카 시내에 살던 보험설계사 이시바시 요시노를 목졸라 죽이고 시체를 유기한 용의자로 나가사키현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자, 그런데 무슨 미스터리가 있을까? 시점은 피해자 요시노가 죽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요시노의 친구, 요시노가 만나기로 했던 사람, 요시노가 실제로 만났던 사람, 요시노의 가족의 일상이 이어진다. 그리고 범인의 이야기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기 위해 그가 자주 지명했던 윤락업소의 종업원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범인 유이치는 어째서 요시노를 죽였을까? 유이치의 여자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제목의 ‘악인’이 유이치인가? 요시다 슈이치가 다양한,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인간 군상 하나하나의 삶을 들여다보며 완성하는 큰 그림은 단순히 살인의 이유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계열의 책으로는 <모방범>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다음 책을 일단 기대해본다. 신간을 기대해도 좋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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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혹성 1 - SLEEPIN" PLANET
요우키히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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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 된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잠들어버리고 나 혼자 깨어있는다면- 과 같은 몽상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화책. 19게 관람가로서의 책무도 꽤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잠든 사람을 깨우기 위해 섹스를 해야 한다는 설정이라... 여자가 남자를 깨울 수 없다면, 남자 주인공의 미래는 암흑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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